신선이 노닐만한 절경, 두타산 무릉계곡과 삼화사
신선이 노닐었다는 무릉계곡 일명 무릉도원이라 불리우는 무릉계곡은 두타산과 청옥산을 배경으로 이루어진 계곡으로 무릉반석, 학소대, 관음 폭포, 용추폭포, 쌍폭포, 장군바위 등 수많은 기암괴석과 절경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어 마치 현존하는 선경에 와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 태고의 신비와 전설 속에 무릉계곡은 이곳을 찾는 많은 관광객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한 관광명소다.
두타산의 '두타(頭陀)'란 '속된 말로 '골 때린다'는 뜻이 아니라 속세의 번뇌를 버리고 불도를 닦는 수행'을 말한다. 이는 두타산이 불교와 인연이 깊은 불교의 도량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지금은 삼화사,관음암,천은사가 남아 있지만 10여개의 사찰이 있다는 옛기록으로 보아 무릉계는 불교가 크게 번성했던 두타의 도량이었던 같다.두타산입구인 삼화동에서 서남쪽으로 4km쯤 계곡을 들어가면 수백 명이 쉴 수 있는 넓은 반석이 보인다. 이 반석이 '무릉반'으로, 여기서부터 유명한 무릉계가 펼쳐진다. 무릉반석에는 안평대군, 한호(석봉), 김구와 함께 조선의 4대 명필인 양사언의 친필이 새겨져 있다.무릉선원 중대천석 두타동천 (武陵仙源 中臺泉石 頭陀洞天)'의 12자로 두타산을 예찬하고 있다는 점이 재밌다. 두타산의 무릉계는 중국 진나라때 도연명의 '도화원기'에 나오는 '무릉도원'에서 따온 말로, 이 곳이 세상과 따로 떨어져 별천지를 이루고 있다는 뜻이다. 고려시대에 동안거사 이승휴가 천은사의 전신인 용안당에 머물며 <제왕운기>를 저술하였고, 조선 선조때에 삼척부사로 재직 하고 있던 김효원이 제명 하였다고 한다.
무릉계에서 두타산을 오르는 들머리에는 돌로 쌓은 둘레 2km 넘는 산성터가 있다. 무릉계에는 무릉반석과 더불어 호암, 베틀바위, 학소대, 벼락바위, 병풍바위, 대궐터, 문바위 같은 이름난 바위가 많다. 폭포는 삼단으로 떨어지는 용추폭포와 쌍폭, 칠성폭포, 박달폭포 ,상폭, 관음폭포가 계곡의 비경을 더해준다. 이런 빼어난 경관 때문에 두타산무릉계곡에는 옛날부터 시인이나 묵객들이 많이 드나들었다. 기암괴석이 즐비하게 절경을 이루고 있어, 마치 선경에 도달한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무릉계는 수많은 관광객을 도취시키며, 많은 전설과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유서 깊은 명승지로, 1977년 국민관광지 제1호로 지정되었다.
두 산의 수많은 골짜기에서 흘러내린 물이 모여 동쪽으로 장장 14km를 내닫는 계곡이 무릉계곡이다. 신선이 산다는 무릉도원에서 그 이름이 연유한다. 무릉계곡의 입구에는 무릉반석이라는 천여 명이 앉아도 너끈할 만큼 흰 너럭바위(6.600m², 1500평)가 있다. 이 반석 위에는 봉래 양사언의 ‘무릉선경 중대천석 두타동천(武陵仙境 中臺泉石 頭陀洞天)’이라는 각자와 매월당 김시습의 각자(확인하지 못했다) 등 옛 시인묵객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다.
무릉반석 옆에는 있는 금란정이라는 정자를 지나면 두타산 삼화사라는 편액을 건 일주문이 나타난다. 삼화사는 신라 선덕여왕 11년(642) 자장율사가 절을 짓고 흑연대(黑蓮臺)라 한 것이 그 효시라고 하지만, 경문왕 4년에 구산선문 사굴산파의 개산조 범일조사가 삼공정에다 삼공암(三公庵)을 지었을 때부터 내력이 뚜렷하다, 고려 태조 왕건이 삼공암에서 후삼국 통일을 빌었으며, ‘세 나라를 하나로 화합시킨 영험한 절’이란 이름으로 삼화사(三和寺)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그 후 여러 차례의 소실(燒失)과 중건(重建)이 있었으며, 1977년 쌍용양회 동해 공장의 채광권내에 들어가자 현재의 위치인 개국사터로 옮겨오게 된 것이다. 원래의 사지(寺址)는 동쪽 1.3km지점에 위치한다.
▲금란정 1945년 서생계원과 자손들이 선대의 뜻을 받들어 처음 북평동 석경지에 건립했다가 1958년 무릉계곡의 현 위치로 이전했다.
삼화사의 천왕문을 들어서면 정면으로 적광전이 자리하고 그 앞에는 신라 말기인 9세기 후반에 조성된 동해 삼화사3층석탑(보물 제1277호)이 있다. 높은 계단 위에 자리 잡은 주불전인 적광전에는 삼화사 철조노사불좌상(보물 제1292호)이 안치되어 있다. 이 불상은 원래 많이 훼손된 것을 근래에 보수 복원한 것이다. 복원과정 중 오른쪽 등판면에서 약 10행 161자로 된 글이 발견되었다. 내용에 노사나불이란 명칭이 2번 나와 이 불상의 이름을 알려 주고 있으며 시주자의 부모를 위해 880년대에 활약한 결언 스님을 중심으로 화엄경에 따라 불상을 조성했다는 기록이 나타나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초에 만든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삼화사 앞을 지나 무릉계곡을 타고 산으로 올라가면 학소대, 관음폭포, 하늘문, 병풍바위, 장군바위, 선녀탕, 쌍폭포, 용추폭포 같은 뛰어난 절경이 펼쳐진다. 이 길은 옛날 삼척지방 사람들이 백봉령을 넘어 정선 임계로 해서 서울로 오갈 때 사용하는 지름길이다.
▲학소대 무릉계곡 관리사무소에서 서쪽으로 1km지점에 있는 폭포와 바위벼랑으로 삼화사를 지나 관음암으로 가는 동굴 초입에 있다.
<쌍폭포> 삼화사에서 서쪽 2.2km 떨어져 있으며 용추폭포와 박달폭포에서 내려온 물이 합수되는 곳에 있는 2개의 폭포이다. 밑으로는 선녀탕이 있고 위로는 작은 3개의 폭포가 연이어 있다.
<용추폭포> 무릉계곡 관리사무소에서 2.6km 떨어진 지점에 위피하고 쌍폭을 지나 오른쪽 바로 위에 있다. 청옥산에서 발원한 물이 흘러내리며 3단의 단애에서 3개의 폭포를 만들고 있다. 중단 폭포 전망대까지는 안전시설이 잘되어 있고 폭포를 잘 조망할 수 있지만 상단폭포 전망대는 오르는 길이 가파르고 나뭇가지에 가려 조망이 좋지 못하다. 상중단의 폭포는 항아리 모양으로 되어 있고 하단 폭포는 둘레는 30m 깊이는 10m정도 이다. 조선시대에는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냈다고 한다. 하단 암벽 오른쪽에는 정조 21년(1787) 12월 용의 덕을 빌면서 삼척부사 유한준이 쓴 ‘용추(龍湫)’라는 각자가 있다. 또 무인 모춘에 광릉귀객이 쓴 ‘별류천지’글귀는 선경과 같은 무릉계의 뛰어난 경치를 표현하고 있다.
<하산길 풍경> 무릉계곡 입구에서 삼화사를 탐방한 후 용추폭포까지만 산행을 했다. 보통걸음으로 걸으면 2시간 이내에 다녀 올 수 있지만 가족과 함께 천천히 즐기면서 걸으면 3시간 정도가 걸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