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회 태백산 산행기(허형석 프란치스코)
1월의 태백산 산행은 특이했다. 높이 약 30㎝의 눈길을 원없이 걸었고 사람 구경도 실컷 했다. 우리가 산행에 나서기 전 이 지역에는 폭설이 내려 사람이 다니지 않는 곳은 스틱으로 찔러 보니 적설량이 50㎝ 정도는 돼 보였다. 사람이 다니는 길은 인간의 체중으로 다져져 눈의 높이가 약간 내려갔을 뿐이다. 또 우리의 산행에 맞춰 이곳에서는 눈꽃 축제가 열려 많은 사람이 모였다. 사람에 떠밀려 산에 올라갔다가 내려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눈과 사람만 기억에 남는다.
26일 6시 40분 경 성당을 출발했다. 거리가 멀어 다른 때보다 30분 정도 먼저 출발했다. 사정상 불참하는 이명인 시몬 단장의 환송을 받으며 차는 강원도 오지를 향해 달렸다. 나누어 주는 떡을 먹고 묵주기도를 바치니 약간 졸음이 오기도 했다. 성모님께 바치는 기도를 이렇게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며 기도에 열중하려 했다. 한참을 달리니 차는 강원도 땅에 들어섰다. 커브 길이 많아 비몽사몽 간에 이리저리 쏠리다가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여기부터 인산인해라는 느낌이 든다. 밖으로 나오니 공기가 싸늘하다. 해발 1천m 이상의 지역을 실감한다. 간단한 체조로 몸을 풀고 각자 아이젠과 방풍복으로 중무장을 한 뒤 산행 길에 들어섰다.
행렬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전국에서 몰려든 버스가 엄청난 수의 사람을 풀어대니 그 수는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저 앞만 보고 앞사람을 따라가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공기는 차가웠다. 산행 중 쉬면 손과 발이 시려올 정도였다. 워낙 많은 사람이 천제단을 향하니 가끔 교통 체증이 일어나기도 했다. 청계산과 관악산에 아무리 많은 사람이 모여도 이런 체증을 본 적은 없었다. 우리는 아프리카에서 떼를 지어 이동하는 짐승의 행렬과도 같았다. 좀 답답했다. 그래도 눈이 많은 태백산을 걷는다는 기쁨에 사람이 많다는 사실을 잠시 잊을 수는 있었다.
워낙 사람이 많다 보니 우리끼리 어느 장소에서 오붓한 시간을 갖기는 정말로 어려웠다. 가다가 가끔 우리 교우분들이 산행을 잘 하는지를 확인하는 정도였다. 이전의 산행처럼 휴식하면서 성가를 부르는 일은 없었다.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몇몇 교우는 간식을 들며 휴식을 취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서도 김명수 요셉 형제와 정애숙 에밀리아나 자매를 비롯한 여러분이 우리를 인도(?)하는 데 애를 쓰셨다. 희생과 봉사만이 우리를 살린다는 진리를 다시 새겼다.
얼마를 오르니 전망이 트였다. 떠밀려 올라온 피로감도 어지간히 가셨다. 태백산 주위의 산하는 눈으로 덮인 설국이었다. 최근 이 지역에는 50㎝가 넘는 폭설이 내렸다고 한다. 장군봉과 천제단의 정상 지역은 경치가 좋았다. 경비행기를 타고 주위를 돌아보는 기분이 들었다. 정상에 오른 기분을 만끽하며 숨을 크게 들이켰다. 그래도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정상에서 전열을 정비(?)한 우리는 한 켠에 자리를 잡고 점심 식사를 했다. 산행 후 처음 교우분들이 상봉하는 시간이었다.
하산길은 평탄했지만 곳곳에 위험이 도사렸다. 워낙 눈의 높이가 있다보니 아이젠의 브레이크 역할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그래도 아이젠을 착용한 편이 훨씬 안전했다. 믿을 것은 그것밖에 없었다. 내리막 길은 위험하기도 했다. 서로 미끄러져 부딪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내려 오는 길에 대형 비닐을 썰매로 삼아 타는 사람도 많이 봤다. 적설량이 많아 가능한 일이었다. 눈길을 걷기는 평지를 걷기보다 몇 배나 힘이 들었다. 좀 지루한 느낌도 들었다. 아마 눈꽃이 많이 남아 있지 않아 그것을 보지 못한 아쉬움 때문인지도 모른다.
당골에 있는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하지 못했다. 이곳에 예약을 했지만 가보니 예약 운운할 상황이 아니었다. 밥을 먹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 지역에는 버스가 수백 대나 모여 우리가 타고온 버스를 찾기도 쉽지 않았다. 운전기사에게 휴대전화로 물어 제10주차장을 찾아 갔다. 그곳까지 교우분들이 모두 잘 찾아왔다. 버스에 오르면서 등산이 아니라 난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질서를 지키며 모든 상황을 인내한 성모의 어린이 집 수녀님 두 분과 교우분께 감사한 생각이 들었다.
저녁 식사는 태백에서는 할 수가 없어 영월에서 했다. 초등학교 시절 화력발전소가 있다고 배웠던 그곳이다. 단종을 모신 장릉 앞에 있는 식당이었다. 시장했던지라 음식이 좀 짜긴했지만 밥맛이 있었다. 집에 와서 영월을 찾아 보니 태백에서도 꽤나 되는 거리에 있었다. 이렇게 여러 교우분들과 함께 담소를 나누며 식사를 하니 등산을 무사히 끝냈다는 안도감이 드디어 왔다.
집에 돌아와 하느님께 감사하다는 생각을 했다. 장관의 백색 세계로 우리를 초대해 주시고 오랜 산행에도 아무런 사고도 없이 우리를 인도해 주셨기 때문이다. 산행 길이 너무 미끄웠고 사람이 많아 사고가 얼마든지 날 수도 있었다. 우리 일행 중에는 소화가 되지 않아 배가 약간 아픈 사람을 제외하고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연합뉴스 태백발 보도를 보니 26일 약 4만5천 명이 태백산을 찾았다고 한다. 이런 와중에서도 무사히 산행을 마치게해 주신 천주님께 다시 감사를 드린다.
2008년 1월 29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