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와 역사
-샤를로 페로 지음 박상래 옮김-
"Da mihi Animas ! cetera telle" ( 다른 것은 가져가도 영혼만은 달라! )
내가 좋아하는 라틴어 구절 하나. 10대 사춘기를 거치며 소위 자아에 눈뜨기 시작했다. "나는 누구인가?" 나의 정체성(正體性,identity)에 대한 진지한 생각은 질풍노도의 20대를 거치면서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활화산의 마그마처럼 내안에 늘상 뜨겁게 끓고 있었다. "도대체 나는 누구란 말인가?" 30대, 40대, 참 바쁘게 살았다. 그 많은 세월동안 나는 어디서, 무엇하며, 어떤 존재로 살아 왔을까?
지천명(知天命)의 나이에 만난 예수님!
나의 인생에 이런 큰 행운이, 이런 큰 영광이 주어질 줄 몰랐다. 내 인생의 길위에서 만난 위대한 스승 예수님!
난생처음 성전 제대벽에 걸린 거대한 십자고상을 마주 대했을 때, 내 마음은 갈기갈기 찢기는 통증을 느꼈다.
...왜 저분은 2000년이 넘도록 십자가에 매달려 계실까. 왜 우리는 저분을 저토록 고통스럽게 놔두는가...
그때가 2003년 12월 14일, 내가 영세를 받던 날이었다.
우리는 세례성사를 받음으로써 하느님나라로 가는 긴 영혼의 여행을 시작한 나그네이다. 여행중에 배고픔도,목마름도 함께 한다. 중도에 포기하고 싶은 유혹도 느낀다. 하느님나라로 가는 길... 예수님이 남겨 주신 파스카 신비를 통해 그분의 말씀과 행동을 묵상하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철저한 순종의 삶을 살고자 결심하고 언제나 깨달아야 함을 잘 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신앙을 행동으로 옮겨야 함도 잘 안다. 행동하지 않는 신자는 주님으로부터 점점 멀어져 결국 은총 받지 못하는 삶을 살게 될거라 믿는다. 머리로 이해한 신앙을 가슴으로 살지 않으면 그 신앙은 질식하게 된다고 한다. 나뿐 아니라 대부분 그리스도 신자가 그럴 것이다. 내가 이렇게 내 신앙의 주체로 모시는 분, 예수 그리스도!
과연 그분은 누구이신가?(Mr4:41) 예나 지금이나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믿는 이나 믿지 않는 이나 결국 각자의 판단에 달려 있다는 사실!
예수와 역사, 여기의 역사는 무엇이며 또 이 역사와 관련지어 샤를로 페로가 보여 주려한 예수는 누구인가? 이 역사는 예수 자신만의 역사도 아니요, 그가 태어난 당대 사회의 역사만도 아니며, 그분을 뒤따르던 제자들이나 그분을 증언한 사도들의 공동체 역사도 아니다. 더구나 어제까지 그분에 대해서 말하고 쓰고 그분으로 말미암아 살아간 개인들과 집단들의 역사만도 아니다.
이 모든 역사들을 포함하는 이 역사는 오늘, 우리 자신의 역사이기도 하다.
하느님 나라의 이 예언자는 과연 누구며, 악마를 쫓아내고 병자들을 치유한 이 사람은 누구며, 더구나 죽음을 넘어서서 부활을 장담한 이 '사람의 아들' 은 과연 누구란 말인가?
300p 가 넘는 방대한 양이었다. 마치 학위 논문에 필요한 필독서 같았다. 그러나 기우였다 물론 신학적인 언급이 빠질 수는 없었지만 나자렛의 예수라는 한 사람을 역사의 중심에서 관찰한, 오히려 인간학적인? 저술서였다.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체험이 있게 마련이다. 실상 믿음도 체험이다. 다른 것을 달리 믿고 있을 뿐이다. 믿음의 마음가짐과 몸가짐이 성실하다면 우리는 누구하고도 대화를 나눌 수 있다. 그리스도의 신비는 영구불멸할 것을 믿는다. 믿기 때문에 헤겔이나 니체, 프로이트, 또 내가 재속회원으로 활동중인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 또 로욜라의 성 이냐시오 등이 이해한 예수 그리스도를 화제에 올려놓고 우리 각자의 체험을 대화로 나눌 수도 있지 않을까?
2000년전에 팔레스타인 어느 마을에서 살았던 예수님! 2011년 현재 그분을 생각하며 이 글을 쓰는 나!
시간은 영원성 속에 흐르고 있다.
거시적인 역사의 궤 안에서 아마도 우리 모두는 함께 할 것이다. 단, 그리스도인 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천상을 향해 지상을 여행하고, 시간을 걸으면서 영원을 찾아가는 순례자, 이 세상 나그네되어 살고 있는 오늘의 내 모습이기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