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오늘은 최양업 신부 순직일

2005. 6. 15. 오전 10: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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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 년] 우리나라 두 번째 사제 최양업 신부 순직

우리나라 최초의 사제 김대건 신부에 이어 두 번째로 사제 서품을 받은 최양업(1821∼1861) 신부가 경상도 지역 전교를 마치고 서울로 올라오던 중 1861년 6월 15일 과로로 문경에서 순직했다. 시신은 제천의 배론성지에 묻혔다.


충청도 홍주 다락골의 천주교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1836년 파리외방전교회의 모방 신부에 의해 김대건, 최방제와 함께 신학생으로 선발돼 중국으로 건너갔다. 마카오와 몽골에서 신학을 공부한 최양업이 상해에서 사제 서품을 받은 것은 1849년. 함께 떠났던 김대건보다 4년 뒤였다. 그러나 김대건(1821∼1846)이 짧고 치열하게 활동한 후 순교했기 때문에 최양업은 유일한 한국인 사제였다.


조선으로 돌아온 최양업은 전국 5개도에 흩어져 있던 127여개의 교우촌(공소)을 순회하며 12년 동안 지칠 줄 모르는 전교활동을 폈다. 극심한 핍박을 피해 신자들을 찾아다니던 최 신부는 결국 이날 식중독과 과로로 인한 장티푸스에 걸려 순직했다. 가톨릭에서는 김대건 신부를 '피의 증거자'로 칭하는 대신, 쉼없는 전교활동을 편 최 신부를 '땀의 증거자'로 부른다.


그는 또 한국천주교회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는 19통의 라틴어편지를 비롯해 순교자에 관한 자료수집, 성교요리문답 및 기도서 번역간행, 천주가사 저술 등의 업적을 남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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