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0월 29일 연중 제30주간 토요일

2011. 10. 29. 오전 9:13:48

글자
 
2011년 10월 29일 연중 제30주간 토요일

제1독서 로마 11,1ㄴ-2ㄱ.11-12.25-29

형제 여러분, 1 하느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물리치신 것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나 자신도 이스라엘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으로서 벤야민 지파 사람입니다.
2 하느님께서는 미리 뽑으신 당신의 백성을 물리치지 않으셨습니다. 11 그러면 내가 묻습니다. 그들은 걸려 비틀거리다가 끝내 쓰러지고 말았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의 잘못으로 다른 민족들이 구원을 받게 되었고, 그래서 그들이 다른 민족들을 시기하게 되었습니다. 12 그런데 그들의 잘못으로 세상이 풍요로워졌다면, 그들의 실패로 다른 민족들이 풍요로워졌다면, 그들이 모두 믿게 될 때에는 얼마나 더 풍요롭겠습니까?
25 형제 여러분, 나는 여러분이 이 신비를 알아 스스로 슬기롭다고 여기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그 신비는 이렇습니다. 이스라엘의 일부가 마음이 완고해진 상태는 다른 민족들의 수가 다 찰 때까지 이어지고 26 그다음에는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이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시온에서 구원자가 오시어 야곱에게서 불경함을 치우시리라. 27 이것이 내가 그들의 죄를 없앨 때 그들과 맺어 줄 나의 계약이다.” 28 그들은 복음의 관점에서 보면 여러분이 잘되라고 하느님의 원수가 되었지만, 선택의 관점에서 보면 조상들 덕분에 여전히 하느님께 사랑을 받는 이들입니다. 29 하느님의 은사와 소명은 철회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복음 루카 14,1.7-11

1 예수님께서 어느 안식일에 바리사이들의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의 집에 가시어 음식을 잡수실 때 일이다. 7 예수님께서는 초대받은 이들이 윗자리를 고르는 모습을 바라보시며 그들에게 비유를 말씀하셨다.
8 “누가 너를 혼인 잔치에 초대하거든 윗자리에 앉지 마라. 너보다 귀한 이가 초대를 받았을 경우, 9 너와 그 사람을 초대한 이가 너에게 와서, ‘이분에게 자리를 내 드리게.’ 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너는 부끄러워하며 끝자리로 물러앉게 될 것이다.
10 초대를 받거든 끝자리에 가서 앉아라. 그러면 너를 초대한 이가 너에게 와서, ‘여보게, 더 앞자리로 올라앉게.’ 할 것이다. 그때에 너는 함께 앉아 있는 모든 사람 앞에서 영광스럽게 될 것이다.
11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사람들을 만나다보면 가끔 먼저 부정적으로 말을 내뱉는 분을 만나곤 합니다. 처음에는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 비판을 하기에,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시는 분 또는 깨어 있는 분이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분들은 무엇이든 먼저 부정하고 보는 경향이 많습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깨달았을 때에는 이 분과 대화를 나눈다는 것이 큰 부담감으로 다가옵니다.

사실 인간은 부정적인 말을 하는데 많이 익숙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자기가 하는 말에 있어서는 익숙하지만, 듣는데 있어서는 익숙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부정적인 불평불만의 말을 들으면 괜히 거리감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제가 아는 신부님 중 한 분은 무엇이든 긍정적으로 바라보십니다. 박사 학위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을 배려하는데 절대 소홀하지 않습니다. 한번은 제가 그 신부님께서 공부하신 부분에 대한 반대의 의견을 제시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신부님의 입장에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이 분명합니다. 그런데도 “그럴 수도 있겠네요.”하면서 자신이 공부했던 학문적 이론을 제시하기보다는 먼저 저를 이해해주고 받아주려는 것입니다.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이 신부님이 제 후배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더 크게 보이는 것입니다. 어떤 책에서 이러한 글을 읽었습니다.

“자신의 창문이 더럽고 흐리면 그 창문을 통해 보는 세상도 더럽고 흐리게 보입니다.”

부정적인 말과 행동을 하는 이유는 자기 마음의 창문이 더럽고 흐리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자기 마음의 창문이 깨끗한 사람은 어떨까요? 자신이 보는 모든 것이 맑고 깨끗하게 보이기 때문에 긍정적인 말과 행동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부정적인 말과 행동으로 상대방을 누르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마음을 깨끗하게 만드는 겸손이 필요한 것입니다. 겸손이 왠지 약해 보이고 상대방에게 고개를 숙이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앞서 그 신부님이 오히려 큰 사람이 보이는 것처럼, 겸손은 주님을 통해 더욱 더 큰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해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겸손을 자주 강조하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을 통해서도 윗자리보다는 끝자리에 앉으라고 하시지요. 왜냐하면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겸손한 사람이 결국은 사람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듯이, 하느님께도 더 큰 사랑과 은총을 충만히 받게 될 것입니다. 이 점을 기억하며, 부정적인 생각보다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또한 교만한 마음보다는 겸손한 마음으로 주님 뜻에 맞게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말하는 권리는 자유의 시작일진 모르지만, 그 권리를 소중하게 만들려면 반드시 남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월터 리프먼)



내 뜻을 다르게 받아들일 때.

스테인글라스 창문입니다. 단순해도 멋있네요.

종종 실망을 할 때가 있습니다. 제 뜻을 알아주지 못할 때 괜히 속상하면서 실망을 하지요.

지난 9월부터 성소후원회 월례 미사를 봉헌하기에 앞서 90분 성경강의를 창세기부터 하기 시작했습니다. 성소후원회원들이 단순히 후원만을 위한 단체가 아니라, 영적으로도 성숙할 수 있는 단체가 되길 원하는 마음에서 시작했지요. 사실 이곳저곳에서 제게 강의를 많이 부탁합니다. 본당에도 단체에도 또 회사에까지 강의 부탁을 받고 나가기에 성경 강의를 준비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소국장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에 9월부터 시작했던 것입니다.

문제는 후원회원들이 별로 원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강의가 너무 길다는 이야기가 주를 이루지만, 아마도 전공도 아닌 성경을 강의하는 저의 자질 문제 역시 한몫을 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별로 반기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힘들게 준비해야 하는 이유도 잘 모르겠고요... 하지만 또 하나의 전환점을 만들 수 있는 것 같더군요. 예전과 같은 스타일을 고수하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변화시킬 수도 있으며, 강의 준비하는 것에 있어서도 더 신경 쓸 수 있으니까요.

기분이 그렇게 좋지 않았지만, 저를 위한 장점이 더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결국 화를 낼 필요가 없다는 것이지요.

화 낼 일이 있을 때, 내 주위를 둘러보세요. 분명히 나를 위한 선물이 있음을 깨달을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의 화를 사라지게 만들거에요.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오늘의복음묵상

목록 전체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