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9월 18일 연중 제25주일

2011. 9. 18. 오전 6:2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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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9월 18일 연중 제25주일

제1독서 이사야 55,6-9

6 만나 뵐 수 있을 때에 주님을 찾아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분을 불러라. 7 죄인은 제 길을, 불의한 사람은 제 생각을 버리고 주님께 돌아오너라. 그분께서 그를 가엾이 여기시리라. 우리 하느님께 돌아오너라. 그분께서는 너그러이 용서하신다.
8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같지 않고, 너희 길은 내 길과 같지 않다. 주님의 말씀이다. 9 하늘이 땅 위에 드높이 있듯이 내 길은 너희 길 위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 위에 드높이 있다.


제2독서 필리피 1,20ㄷ-24.27ㄱ

형제 여러분, 20 나는 살든지 죽든지 나의 이 몸으로 아주 담대히 그리스도를 찬양합니다. 21 사실 나에게는 삶이 곧 그리스도이며 죽는 것이 이득입니다. 22 그러나 내가 육신을 입고 살아야 한다면, 나에게는 그것도 보람된 일입니다. 그래서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23 나는 이 둘 사이에 끼여 있습니다. 나의 바람은 이 세상을 떠나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입니다. 그편이 훨씬 낫습니다. 24 그러나 내가 이 육신 속에 머물러 있는 것이 여러분에게는 더 필요합니다.
27 다만,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하십시오.


복음 마태오 20,1-1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런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1 “하늘 나라는 자기 포도밭에서 일할 일꾼들을 사려고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선 밭 임자와 같다. 2 그는 일꾼들과 하루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고 그들을 자기 포도밭으로 보냈다.
3 그가 또 아홉 시쯤에 나가 보니 다른 이들이 하는 일 없이 장터에 서 있었다. 4 그래서 그들에게, ‘당신들도 포도밭으로 가시오. 정당한 삯을 주겠소.’ 하고 말하자, 5 그들이 갔다.
그는 다시 열두 시와 오후 세 시쯤에도 나가서 그와 같이 하였다
6 그리고 오후 다섯 시쯤에도 나가 보니 또 다른 이들이 서 있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당신들은 왜 온종일 하는 일 없이 여기 서 있소?’ 하고 물으니, 7 그들이 ‘아무도 우리를 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그는 ‘당신들도 포도밭으로 가시오.’ 하고 말하였다. 8 저녁때가 되자 포도밭 주인은 자기 관리인에게 말하였다. ‘일꾼들을 불러 맨 나중에 온 이들부터 시작하여 맨 먼저 온 이들에게까지 품삯을 내주시오.’
9 그리하여 오후 다섯 시쯤부터 일한 이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 받았다. 10 그래서 맨 먼저 온 이들은 차례가 되자 자기들은 더 받으려니 생각하였는데, 그들도 한 데나리온씩만 받았다.
11 그것을 받아 들고 그들은 밭 임자에게 투덜거리면서, 12 ‘맨 나중에 온 저자들은 한 시간만 일했는데도, 뙤약볕 아래에서 온종일 고생한 우리와 똑같이 대우하시는군요.’ 하고 말하였다.
13 그러자 그는 그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말하였다. ‘친구여, 내가 당신에게 불의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오. 당신은 나와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지 않았소? 14 당신 품삯이나 받아서 돌아가시오. 나는 맨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당신에게처럼 품삯을 주고 싶소.
15 내 것을 가지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없다는 말이오? 아니면, 내가 후하다고 해서 시기하는 것이오?’
16 이처럼 꼴찌가 첫째 되고 첫째가 꼴찌 될 것이다.”




몇 년 전에 이집트의 시나이 산을 오른 적이 있습니다. 성지순례를 갔다가 시나이 산에서 일출을 보고 미사를 봉헌하기로 했었지요. 힘들게 정상에 올라갔고, 그곳에서 우리는 일출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해가 빨리 떠오르지 않는 것입니다. 춥고, 배고프고, 졸리고……. 기다림의 시간은 매우 지루했고, 너무나도 힘들었습니다. 추워서 몸을 웅크리고 앉아 잠시 눈을 감고 있었는데, 누군가가 큰 소리로 “뜬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시나이 산의 정상에서 바라 본 일출은 너무나도 멋졌습니다. 하지만 일출은 너무 짧아서 기다린 시간에 비해서 너무나 빨리 순식간에 지나가더군요. 그래도 일출의 짧은 그 순간을 보고 나니 얼마나 흐뭇하던 지요. 정상까지 올라갔던 그 시간들이 아깝지 않았고, 춥고 배고프고 졸렸던 그 순간 역시 멋진 일출의 모습을 보고 난 뒤 다 잊어졌습니다.

우리의 삶 안에서도 이렇지 않습니까? 영광의 한 순간은 우리의 모든 고통과 시련을 잊게 하기에 충분합니다. 그래서 고통과 시련이 가득할 때에는 시간이 참으로 늦게 지나가는 것처럼 생각되지요. 하지만 기쁘고 즐거울 때에는 시간이 그렇게 빨리 지나갈 수가 없습니다. 왜 이러한 현상이 일어날까요? 똑같이 주어지는 24시간이라는 하루이지만, 나의 상태에 따라서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특히 고통과 시련이 일어날 때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싸움을 포기하고 병자가 되고 싶은 유혹에 빠집니다. 그래서 쉽게 포기하려하고 또 자신의 일을 남들이 대신 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이러한 마음에서 어떻게 시간이 빨리 지나가겠습니까?

그러므로 어떠한 일이 있어도 적극적으로 앞을 헤쳐 나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의 은총과 사랑도 충만히 받을 수가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들은 조금 불공평하게 일당을 주는 주인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 주인은 이른 아침에 온 일꾼이나, 9시, 12시, 3시, 그리고 5시에 와서 1시간밖에 일하지 않은 사람 역시 똑같이 하루 일당을 나누어주지요. 세상의 눈으로는 정말로 불공평한 처사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복음의 주인이 나눠주는 일 데나리온은 당시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었습니다. 즉, 이 품삯을 받아야 하루를 온전히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비록 1시간밖에 일하지 않은 일꾼이지만 그 역시 일 데나리온의 품삯은 반드시 필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품삯을 조금만 준다면 그 일꾼은 다음날 쫄쫄 굶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지요. 이렇게 우리의 생각과 하느님의 생각은 다릅니다. 그래서 이사야 예언자도 오늘 독서를 통해 이렇게 이야기해주시지요.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같지 않고, 너희 길은 내 길과 같지 않다.”

그렇다면 이렇게 다른 상태로 살아야 할까요? 아닙니다. 무조건 하느님 앞에 나아가도록 해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그 일꾼들이 그 선한 주인을 만나지 못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냥 아무 일 없이 공치는 하루가 될 것입니다. 그들이 하느님 근처로 나아갔기에 눈에 띌 수 있었고, 공평한(?) 선택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지요.

무조건 하느님 눈에 띌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노력할 것. 그래야 살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서로에 대해서 어떻게 말하는지 알게 된다면 누구든 이 세상에서 네 명 이상의 친구를 갖지 못할 것이다.(파스칼)



코끼리 길들이기

시나이산 정상에서의 일출

코끼리를 어떻게 길들이는지 들으신 분도 계실 것입니다. 조련사는 어린 코끼리의 발을 밧줄로 묶어 말뚝에 매놓는다고 하지요. 어린 코끼리는 이 말뚝에서 벗어나기 위해 힘을 씁니다. 하지만 아직 어린 코끼리가 이 말뚝에서 벗어나기에는 힘이 너무 없지요. 결국 어린 코끼리는 이 범위 내에서 생활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입니다. 이는 몸집도 커지고 힘이 세져서 말뚝을 뽑을 만큼 되었어도 그곳을 벗어나지 않게 만듭니다. 코끼리는 이제 외부의 힘이 아닌 자신이 스스로 만든 환상과 고정관념에 가둬졌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스스로 이러한 환상과 고정관념을 만들 때가 참으로 많습니다. 할 수 있는 것도 할 수 없다고, 그러한 능력과 재능 없음을 원망하고 불평불만에 빠질 때는 얼마나 많았을까요?

내 앞에 커다란 두려움에 직면하게 되었을 때, 잊지 마십시오. 지금 내가 앞선 코끼리처럼 스스로의 환상과 고정관념 속에 나를 가두고 있는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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