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9월 11일 연중 제24주일

2011. 9. 11. 오전 8: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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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9월 11일 연중 제24주일

제1독서 집회서 27,30ㅡ28,7

30 분노와 진노 역시 혐오스러운 것인데도 죄지은 사람은 이것들을 지니고 있다.
28,1 복수하는 자는 주님의 복수를 만나게 되리라. 그분께서는 그의 죄악을 엄격히 헤아리시리라.
2 네 이웃의 불의를 용서하여라. 그러면 네가 간청할 때 네 죄도 없어지리라.
3 인간이 인간에게 화를 품고서 주님께 치유를 구할 수 있겠느냐? 4 인간이 같은 인간에게 자비를 품지 않으면서 자기 죄의 용서를 청할 수 있겠느냐?
5 죽을 몸으로 태어난 인간이 분노를 품고 있으면 누가 그의 죄를 사해 줄 수 있겠느냐?
6 종말을 생각하고 적개심을 버려라. 파멸과 죽음을 생각하고 계명에 충실하여라.
7 계명을 기억하고 이웃에게 분노하지 마라. 지극히 높으신 분의 계약을 기억하고 잘못을 눈감아 주어라.


제2독서 로마 14,7-10

형제 여러분, 7 우리 가운데에는 자신을 위하여 사는 사람도 없고 자신을 위하여 죽는 사람도 없습니다. 8 우리는 살아도 주님을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님을 위하여 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든지 죽든지 주님의 것입니다.
9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셨다가 살아나신 것은, 바로 죽은 이들과 산 이들의 주님이 되시기 위해서입니다.


복음 마태오 18,21-35

21 그때에 베드로가 예수님께 다가와,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22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23 그러므로 하늘 나라는 자기 종들과 셈을 하려는 어떤 임금에게 비길 수 있다. 24 임금이 셈을 하기 시작하자 만 탈렌트를 빚진 사람 하나가 끌려왔다.
25 그런데 그가 빚을 갚을 길이 없으므로, 주인은 그 종에게 자신과 아내와 자식과 그 밖에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갚으라고 명령하였다.
26 그러자 그 종이 엎드려 절하며, ‘제발 참아 주십시오. 제가 다 갚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27 그 종의 주인은 가엾은 마음이 들어, 그를 놓아주고 부채도 탕감해 주었다.
28 그런데 그 종이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을 빚진 동료 하나를 만났다. 그러자 그를 붙들어 멱살을 잡고 ‘빚진 것을 갚아라.’ 하고 말하였다.
29 그의 동료는 엎드려서, ‘제발 참아 주게. 내가 갚겠네.’ 하고 청하였다. 30 그러나 그는 들어주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고 가서 그 동료가 빚진 것을 다 갚을 때까지 감옥에 가두었다.
31 동료들이 그렇게 벌어진 일을 보고 너무 안타까운 나머지,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죄다 일렀다.
32 그러자 주인이 그 종을 불러들여 말하였다. ‘이 악한 종아, 네가 청하기에 나는 너에게 빚을 다 탕감해 주었다. 33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네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하지 않느냐?’ 34 그러고 나서 화가 난 주인은 그를 고문 형리에게 넘겨 빚진 것을 다 갚게 하였다.
35 너희가 저마다 자기 형제를 마음으로부터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의 내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그와 같이 하실 것이다.”




어제 인천 백석 하늘의 묘원 성직자 묘지에서 한가위 위령미사를 봉헌하고 돌아왔습니다. 한가위를 맞이하여 먼저 가신 조상님들과 친척, 친지들의 연령들을 위한 미사였지요. 미사를 봉헌하며 많은 생각을 갖게 됩니다. 특히 먼저 주님 곁으로 가신 신부님들의 묘를 보면서, 그 신부님들과의 만남이 생각나더군요. 좋은 만남, 나쁜 만남 모두 다 말입니다. 그런데 좋은 만남에 대해서는 미소가 떠오르는 반면, 나쁜 만남에 대해서는 ‘내가 왜 그랬을까?’라는 후회가 밀려듭니다.

이러한 저의 생각을 보면서, 이 세상 안에서 좋은 만남을 만들기 위해 더욱 더 노력해야 함을 깨닫게 됩니다. 내 자신을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 좋은 만남을 만들어 나가는데 장애가 참으로 많습니다. 내가 손해 본다는 생각, 그리고 끊임없이 생겨나는 욕심과 이기심입니다.

사람이 죽고 나서 입고 떠나게 될 수의를 보신 적이 있습니까? 이 수의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바로 호주머니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는 알몸으로 이 세상에 온 우리는 결국 알몸으로 이 세상을 떠나가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지요. 만약 이 세상을 떠나간 후 우리에게 남게 될 것은 무엇일까요? 재산일까요? 명예일까요?

아닙니다. 우리에게 남게 될 것은 바로 사랑의 행동뿐입니다. 나에게 아픔을 준 사람에게 베푸는 용서, 어려운 이웃을 향해 던졌던 사심 없는 마음과 따뜻한 손길, 병자들을 찾아가 나누었던 위로, 정의와 평화를 위해 애썼던 용기 등의 행동들뿐임을 우리보다 먼저 주님 곁으로 가신 선조들을 통해 분명하게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 사랑의 행동을 실천하기란 참 쉽지가 않습니다. 바로 지금의 나만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회 속에서 살고 있는 지금의 나를 떠나, 먼 훗날 주님 앞에 서 있는 나를 떠올려 보십시오. 그 모습을 떠올리면서도 과연 미워하고 판단하고 단죄할 수 있을까요? 또 끊임없이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것에 대한 욕심들을 드러낼 수 있을까요? 그럴 수 없습니다. 주님 앞에 떳떳해질 수 있는 사람은 주님의 뜻에 맞게 열심히 살았던 사람뿐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라고 말씀하시며, 임금에게 빚진 종의 이야기를 해주십니다. 바로 하느님 아버지께서 우리의 모든 잘못과 죄에 대해 끊임없이 용서를 해주시는 것을 기억하면서, 내게 행한 이웃의 자그마한 잘못을 용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어떤 이들은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라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먼 훗날 주님 앞에 나아가 떳떳해지기 위해서는 용서해야 함을, 그리고 주님의 사랑을 본다면 반드시 용서할 수밖에 없음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사랑에 감동받는 사람은 어둠 속을 배회하지 않는다(플라톤).



하늘나라

백석 하늘의 문 성직자 묘원. 미사 전 모습입니다.

한 신부님이 어린이 미사 강론시간에 하늘나라는 매우 좋고, 아름다운 곳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미사가 끝나고 한 꼬마가 신부님 앞으로 달려와 묻습니다.

“신부님은 한 번도 하늘나라에 가본 적이 없으면서 어떻게 하늘나라가 좋은지 아세요?”

그러자 이렇게 대답하셨다고 하지요.

“응, 그것은 아주 쉽게 알 수 있단다. 왜냐하면 하늘나라가 싫다고 해서 되돌아온 사람이 아직까지 한 사람도 없었거든.”

아무도 되돌아 올 수 없는 나라. 그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오늘도 멋진 사랑을 실천하는 주님의 자녀가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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