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 체험기

고은상

2009. 8. 24. 오전 11:00:37

 

1. 성공회 

성공회라는 명칭은 ''하나이요, 거룩하고(聖), 공번되고(公), 사도적인 교회''라는 교회에 관한 신앙고백 가운데 성(聖)과 공(公) 두 자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그 밖에 영국 국교회, 영국 성공회, 앵글리컨 처치(Anglican Church)라고 하며, 미국의 성공회는 ''주교 감독제 교회''라는 의미의 에피스코팔교회(Episcopal Church)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근세 영국의 해외 진출에 따라 성공회는 북미주,아프리카,아시아,오스트레일리아로 확대되었으며 세계성공회 공동체에 속한 모든 교회를 일컫고 있습니다. 세계 성공회는 중앙헌법이나 연방적 통치의 체제를 갖지 않으며 독립관구가 되지 못하여 켄터베리 관구 관할에 있는 소수 교회를 제외한 나머지 성공회는 나라마다 독립된 관구나 관구군을 갖고 독립적인 헌장과 교회법 체계를 갖추어 독자적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성공회(聖公會)는 영국에서 시작된 교회입니다. 영국에는 성공회라고 하는 교회가 틀을 갖추기 이전부터 켈틱교회라고 불리우는 독립적이고 민족적인 교회들이 있었습니다. 이 켈틱교회는 AD175년경부터 시작되었는데 아주 민주적이며 이성적(理性的)인 교회였습니다. 영국민족이 독특하게 키워온 민족교회였습니다. 그후 AD596년에 로마 카톨릭과 관계를 맺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주지하다시피 로마 카톨릭은 시간이 흐를수록 부패하기 시작했고 로마교황은 "왕중의 왕"으로서 무한한 권력을 휘두르기 시작했습니다. 드디어 루터, 위클리프, 칼빈 등 종교개혁가들은 부패한 로마교황에 대항해서 지나치게 권위주의적인 교회체제를 부정하고 "오직 성서로, 오직 말씀으로, 오직 은총으로"라는 구호를 내걸고 교회의 개혁을 시작했습니다. 이즈음 영국에서도 교황이 부과하는 과중한 세금과 지나친 간섭, 성직자들의 권위와 신비에의 지나친 의존 등으로 인한 신앙의 정체등을 타파하고 새로운 교회를 만들어 보자는 기운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로마교황은 이런 기운을 무력을 동원해서 억누르려고만 했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영국민족의 민족적 자존심이 발동했고 교회의 잘못된 모습들이 더욱 선명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피비린내 나는 과정을 거치면서 "새로운 교회"의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헨리8세의 이야기도 로마로부터 영국이 독립하기 위한 계기였고 새로운 교회가 태동되는 복잡한 과정 중의 일부입니다. 수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많은 신앙 선조들의 사려깊은 고민 끝에 16세기에 이르러서 지금의 성공회가 모습을 갖추게 된 것입니다. 


성공회가 새로운 교회의 모습을 갖추면서 영국의 종교개혁가들에 의해 지금도 유지되고 있는 몇 가지의 특징적인 모습들이 교회의 요소들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첫째, 당시 지나치게 권위주의적이고 신비주의적인 로마 카톨릭의 요소가 배제되고 켈틱교회의 민주적이고 이성적인 전통, 높은 도덕적 품성을 요구하는 사상과 철학을 받아들였고,

둘째, 전통과 기본적인 권위(교회질서)마저 무시하는 개신교적 요소도 배제되었습니다. 또한 방언만 있고 예언은 없는 교회의 모습도 배제되었습니다.

셋째, 사도시대로부터 이어오는 교회의 질서(주교제를 비롯한 삼품성직)와 교부들의 신앙고백의 전통을 계승하였습니다. 당시 로마 카톨릭의 예전들을 좀더 합리적이고 아름답게 그리고 성직자와 회중이 함께 하는 예전으로 개혁했습니다.

넷째, 개신교 종교 개혁가들이 주창한 성서, 은총, 말씀의 요소들을 수용해서 예전 중에 성서를 가장 많이 읽는 교회가 되었고 말씀과 성예전이 조화를 이루는 예전을 이룩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카톨릭적인 요소와 개신교적 요소의 장점들이 민족주의적 요소와 결합된 교회가 성공회(거룩하고 공번된 교회)입니다. 세계의 많은 신학자들이 교회일치의 모델 교회로 성공회를 지적하는 것은 위의 요소들을 생각할 때 타당합니다.

 

2. 왜 영국교회는 로마교회에서 독립했나? 

 영국교회의 개혁은 헨리 8세(1491-1547) 때 그 불꽃이 점화되었습니다. 로마교회와의 단절의 표면적 계기는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바와 같이 헨리 8세와 캐서린 왕비의 결혼무효 소송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 당시 영국의 정치력과 경제의 장래는 위기에 빠졌습니다. 그것은 헨리 8세와 캐서린 왕비 사이에는 사내아이가 없다는 것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당시 왕위를 계승할 왕자가 없다는 것은 영국이 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게 된다는 것을 의미했기에 헨리 8세는 왕위 계승을 위해 캐서린과의 결혼을 무효로 해달라고 교황청에 요청했던 것입니다. 사실상 헨리 8세는 국가 이익을 위해 형수인 캐서린과 정략 결혼했고(헨리 7세는 정치상 이 결연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다) 이는 교회법에도 어긋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레위 20:21). 그러나 교황 클레멘트 7세는 이를 거절했습니다. 그 이유는 교리적이라기보다 정치적이었습니다. 당시 교황은 독일 찰스 5세의 보호 아래 있었고 찰스 5세는 캐서린의 조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또 헨리 8세가 미망인 형수와 결혼한 것은 전임 교황 유리우스 2세가 허락한 것인데 이를 무효로 선언하면 북구(北歐)에서 철저하게 공격을 받고 있던 교황권에 대해 더욱 불신임을 가져오게 되는고로 그는 이 사실을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결혼무효 청원이 거부당하자 헨리 8세는 의회를 소집했고 의회는 ''영국은 어떠한 외국 세력으로부터도 자유롭다''는 결의를 하고 영국의 로마교회(Church in England)를 영국성공회(Church of England)로 바꾸었습니다. 이렇게 영국의 종교개혁은 헨리 8세의 이혼문제가 표면적 계기가 되었을 뿐 근본적인 동기는 외국의 지배를 벗어나 왕권과 강력한 국가를 이루려는 국가주의에 기초한 국민의식이 일치되어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역사학자 앙드레 모로아는 그의 영국사에서 ''헨리 8세의 이혼은 왕자를 얻어 전쟁의 위험을 피하고 영국 국가를 강하고 안전하게 하고자 한 것이며 그의 개혁의 시도는 군주로서의 무정견한 망동이 아니라 영국 국민의식의 종교적 표현이었다''고 하였습니다. 


3. 영국의 종교개혁 과정 


영국 성공회 종교개혁의 중심에는 크랜머(Thomas Cranmer, 1489-1556) 대주교가 있습니다. 크랜머 대주교는 중세의 미신적이고 습관적인 의식을 폐지하고 프로테스탄트적 방향으로 개혁했습니다. 1547년, 헨리 8세의 서거를 계기로 영국의 종교개혁은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었습니다. 첫째는 로마교회를 중심으로한 외국교회의 간섭이나 교리, 예배의식을 싫어하는 국교회파가 있었고, 둘째는 교황청 세력을 회복하려는 로마 가톨릭파가 있었으며, 셋째는 대륙의 종교개혁을 도입하려는 신교파가 있었습니다. 이런 가운데 에드워드 6세(1537-1553) 치하에서 6년 동안은 프로테스탄트를 새롭게 시도해 보았고 메어리 여왕 6년동안 다시 로마 가톨릭으로 돌아갔습니다. 영국 성공회는 엘리자베스(1553-1603) 여왕이 즉위하면서 종교개혁의 정착기를 맞이했습니다. 두개의 극단적인 그리스도교를 경험한 그는 극단을 피하고 중용의 길(中庸, Via Media)을 표방하는 신중하고 온건한 종교정책을 추구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양자를 포용하는 기도서 제정(1559)과 극단을 배제하고 중용의 노선을 추구하는 39개신조(1563)를 발표하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성공회는 초대 교회로부터 이어져오는 가톨릭적 전통을 유지하면서 종교개혁적인 복음사상을 받아들여 가톨릭적이며 개혁적인 성공회의 전통을 형성하게 된 것입니다. 


헨리 8세와 엘리자벳 1세를 연결한 기간에 가장 대표적인 중심 인물을 뽑으라면 당연 크랜머 대주교일 것입니다. 1547년 헨리 8세가 죽었을 때, 영국 종교개혁 지도의 중책이 크랜머의 양 어께로 넘어갔습니다. 크랜머는 교의나 미신을 제거하기 위해 먼저 예배에 대한 개혁에 착수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라틴어라는 것 때문에 화를 입게 되었으며, 성찬식의 은혜로운 공동예배에 출석하는 것을 싫어하고 있다는 것을 목격하였습니다. 그래서 크랜머는 예배개혁이 참 종교가 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크랜머는 공동기도서를 만들었는데 이 기도서는 일반 국민이 모르는 라틴어 대신 영어를 사용하여 모든 사람이 예배에 참여토록 했으며 성서 읽기표를 많이 넣어 중세교회가 상실한 성서적 요소를 회복시켰습니다. 이 기도서는 오늘날까지 세계성공회의 보배로운 유산이 되고 있습니다. 


4. 성공회의 신앙과 특징 

성공회는 그리스도교 신앙을 지키는 권위에 대하여 독특한 관점을 발전시켰습니다. 성공회는 신앙을 판단하는 권위를 성서와 이성(理性) 그리고 전통의 근거에 의해 서로 비판적으로 조명합니다. 성서는 종교개혁의 출발점이었습니다. 성서는 잘못된 전통과 진리를 비판하는 힘입니다. 진리의 회복으로 종교개혁은 존재하는데 그 비판과 회복을 위한 최우선의 권위는 성서에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성서의 권위는 전통과 교리를 절대화하려는 모든 신학적 노력과 주장을 상대화하려는 비판적 윈리입니다. 따라서 성공회는 잘못된 교회를 비판하기 위해 성서를 강조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오로서 성서로만''이라는 원리에도 약점은 있습니다. 즉 역사적 발전을 간과하여 환상적인 원리적 신앙을 추구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환상을 피하기 위하여 인간 이성(理性)의 개입이 불가피합니다. 그러나 이때의 ''이성(理性)''은 해석자의 자의(恣意)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성은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선물이며 교회공동체가 함께 공유하고 판단하는 이성(理性, Cosmic and corporate Reason)입니다. 이 점에서 이성은 전통보다 앞서는데, 전통은 이성을 통해 형성되기 때문입니다. 이성의 역할은 합일이 이루어지는 원칙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이성은 인간의 경험이 사물의 본질과 조화를 이루는 근거입니다. 즉 성서에 담긴 계시는 특정한 역사와 조건을 지니고 있는데 이것이 다른 역사 속에서 재해석되려면 이성을 통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또 성공회에서 전통은 인간의 경험과 실천 그리고 합의가 최종적으로 만들어낸 산물로서 교회의 중요한 권위입니다. 즉 성서에 대한 이성적 작업으로서 축적된 신앙의 결과물이 바로 전통입니다. 그러므로 전통은 성서와 이성에 의해 제공된 것에 종속되어야 합니다. 전통은 성서에 속한 초자연적인 최고의 진리를 가져다 줄 수 없지만 개인적 판단의 위험성을 피할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전통은 성서와 이성에 근거한 인간의 ''실천, 경험, 동의''에 의해 필요에 따라 변경되고 폐지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공회는 이렇게 성서와 이성과 전통의 긴장관계를 통하여 교회사에 나타나는 극단적인 주장과 오류를 피하는 ''중용(中庸, Via Media)''의 정신을 구현해왔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중용의 정신이 오늘날 그리스도교의 분열을 극복하고 일치를 추구하는 데 공헌할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아울러 세계성공회는 1888년 람베드회의에서 채택한 다음의 람베드-시카고 4개 조항을 함께 고백하므로써 그리스도교의 일치릉 위한 신앙적 기준을 삼고 있습니다.

1. 구약과 신약 66권은 ''구원에 필요한 모든 것을 담고 있는'' 하느님의 계시된 말씀이다.

2. 초대교회의 신앙고백인 사도신경과 니케아신경은 그리스도 신앙을 드러내기 충분한 선언이다.

3. 세례와 성찬례는 그리스도께서 친히 제정하신 두 가지 성사(聖事)이다.

4. 역사적 주교직은 교회의 일치를 위한 적절한 처리방법이며, 그 형태는 다양할 수 있다.

 


성공회의 주요특징은 아래와 같습니다..


1. 가톨릭의 7성사 유지: 세례(세례명有),성체, 견진, 신품, 병자, 고해, 혼인성사

2. 사제(神父)제도와 수도자제도(수녀, 수도사)를 유지

3. 부제, 사제(보통은 신부. 일부 목사로 번역), 주교(감독) 의 3 성직제도

4. 여성 사제 허용.

5. 성직자(부제, 사제, 주교)의 결혼 자유 선택으로 독신 +기혼 신부

6. 가톨릭적인 예배(미사)형식 유지  : 말씀의 전례 + 성찬의 전례

7. 각 나라 관구별로 운영되는 체제이나 상징적으론 영국 캔터배리대주교를 중심으로 세계성공회연합체로 구성

8. 성모마리아공경에 대해 천주교회와 개신교회의 중간적입장과 태도

9. 대한성공회는 일반 개신교식 개역성경이 아닌 공동번역성서를 공식성경으로 봄. 구약 외경을 존중참고함.

10. 성찬식에 대해 천주교와 개신교의 중간적 입장 태도

11. 교황제는 반대하나 천주교 교황을 기독교의 최고 지도자로 존중함

12. 묵주를 이용하여 기도를 드림, 렉시오 디비나, 향심기도를 함

13. 일반 개신교, 천주교, 정교회 등  모든 정통 기독교회들과의 활발한 교류 및 교회일치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


성공회 성체 성사에 대한 이해

많은 분들이 성공회에서 화체설을 인정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성공회의 공식 교리에 의하면 화체설은 인정이 안 됩니다. 성공회는 성사적 임재설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성공회의 성사적 임재설이란......

성찬에 사용되는 빵과 포도주가 사제의 축성에 의해 실재로 예수님의 살과 피로 변화는 것은 아니지만, 사제의 축성에 의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신의 능력으로 빵과 포도주 속에 성사적(聖事的)으로 임재 하신다는 믿음입니다. 이에 따라 영성체와 함께 성신께서 함께 계시는 것이 아니라 영성체 후 신자에게 성신께서 임하신다는 교리입니다. 특별히 천주교 미사와는 달리 성공회의 공식 미사는 사제 혼자서 바치는 법이 없습니다. 반드시 집전하는 사제와 미사에 참여하는 한 사람 이상의 신자가 있어야만 공식미사로 인정됩니다.


로마가톨릭교회의 화체설이란......

성체성사에서 사제의 축성으로. 성신께서 오시고 그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대로 면병과 포도주가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된다는 교리입니다. 즉 형상은 술과 떡의 형상이나. 그 본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체 가루 하나에도 온전히 예수께서 계심을 천주교회에서는 고백하고 있고. 그에 따라 혀 영성체등 여러 가지 예절들이 천주교 내에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기적의 성체 변화가 있었고. 성경에서도이 교리는 보증되어 있습니다. 현재 이 공번된 교리는 천주교 외에도 정교회에서 믿습니다. 개신교는 성찬에 대하여 단순 기념설을 주장하고 있고. 루터교는 임재설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현재 가톨릭교회는 루터교와 성공회 사제의 품을 인정치 않고 있고. 이에 따라 성공회와 가톨릭의 미사에서 성체 변화는 일어나지 않습니다.또한 화채교리를 성공회 스스로 부정하고 있으니. 별 문제가 될 것도 없습니다. 가톨릭 신자가 성공회나 개신교의 예배에 참석할 경우 주일 참례로 인정되지 않으며 성체 변화가 인정되는 정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 성공회가 개신교인 이유.

1. 교황을 교회의 수장으로 삼지 않는다.

2. 마리아 얘기를 하지 않는다.

3. 신구약 성경은 66권만 인정한다.

4. 7성사가 있되 다 의무적(?)이지 않다.

5. 성찬례에서 화체설(化體說)을 인정하지 않는다.

6. 성찬례에서 일반 신도도 포도주를 먹는다.

7. 스스로를 카톨릭이라고 전혀 여기지 않는다.


- 천주교( 의 아류 )로 오해받는 이유.

1. 주교, 사제, 부제, 수녀 제도가 있다.

2. 신부라는 호칭을 사용한다.

3. 성당이라는 호칭을 사용한다.

4. 하느님이라고 한다.

5. 예배의식이 천주교와 매우 흡사하다.

6. 성호를 긋는다.

7. 고상 십자가, 묵주를 사용한다.

8. 매주 성찬례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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