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신학원의 졸업은 신앙의 마침이 아니라 신앙의 출발점이다.
졸업생 모임은 단지 우리들만의 친선도모가 아니라 세상을 뛰어넘어 복음을 사는 것이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눈빛, 즉 소외되고 고통 받는 이들이 도움을 요청하는 눈빛이 아닌가? 우리들은 내 가족의 행복한 것은 마치 하느님께서 주시는 특별한 은총이라고 생각한다. 이 은총도 따지고 보면 소외받고 고통 받는 그들의 밑거름으로 누리는 행복이라는 것을 망각하고 살아간다. 그들의 시선을 외면하는 것은 예수님의 눈빛을 외면하는 것이라 할 수가 있다.
중국선교에서 깨달음은 그동안 저의 신앙생활이 사치였다고 반성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어렸을 때 눈비 오는 날 구멍 난 젖은 검정고무신을 신고 한 겨울 새벽미사에 복사시절의 순수함을 찾은 추억의 시간이었습니다. 영하 17도에서도 난방시설 없이 미사를 드려야 했고 중국의 주교관 화장실은 우리나라 60,70년대 시설이었고 점심은 빵과 중국식 스프 두 가지가 전부였습니다. 그리고 예수성심회 소신학교에 방문할 기회가 있어서 점심식사에 동참하였는데 빵과 소금배추국 한가지로 식사하고 본인이 설거지 하는 것을 보고 충격이었습니다.
해외원조주일을 맞이하여 관심을 새롭게 하여야하지 않는가?
한국가톨릭은 불과 70년대 까지만 하더라도 해외로부터 원조를 받았다. 지진이 난 아이티도 한국에 원조를 하였는데 이제는 중국보다 못한 나라가 얼마나 많은가?
우리들은 기도를 할 때 하느님께 불쌍한 이들을 굽어보시라고 청한다. 이에 대해 하느님은 “그들을 위해 너희들이 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떤 청년이 몇 년 동안 복권에 당첨되기를 기도했다고 한다. 계속 기도만 하자 답답한 나머지 하느님이 말씀하셨다. “제발 복권을 사야 당첨을 시켜줘도 줄게 아니냐? 시도하지 않고는 아무것도 이를 수 없다. 저절로 되는 것은 없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