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37년 오늘(5월 23일)은 미국 역사상 최고 부호 록펠러가 98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난 날입니다.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피디아에는 동맥경화증으로 숨졌다고 돼 있지만 당시로서는 천수(天壽)를 다 누리고 떠난 것이 아닐까요? 우리나이로 99세이니까, 백수(白壽)에 떠난 것이고요. 백수는 백(百)에서 일(一)을 뺀 일본식 조어(造語)죠.
록펠러는 가난 때문에 16세 때 일터로 나가면서 “반드시 부자가 되겠다”고 다짐하고 그 꿈을 이뤘습니다. 그는 24세에 정유회사를 설립하고 53세에 세계 최대의 갑부가 됐습니다. 하지만 돈을 버는 과정은 징그러울 정도였던 모양입니다. 루즈벨트 전 대통령은 “아무리 큰 선행을 해도 지금 이 악행을 덮지 못할 것”이라고 혹평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지금 ‘록펠러’하면 자선사업을 많이 한 좋은 부자를 떠올립니다. 우리나라 인터넷에는 록펠러가 53세 때 우연히 불치병에 걸려 입원했다가 치료비가 없어 곤경에 처한 소녀의 치료비를 몰래 대주고 행복감을 느낀 뒤 자선사업에 뛰어들었다는 얘기가 올라와 있습니다.
그러나 위키피디아, 구글 등에서 아무리 영어로 검색을 해도 이 이야기를 찾을 수가 없군요.
위키피디아에는 록펠러가 16세 때 취업전선에 뛰어들 때부터 “번 돈의 10%는 반드시 기부한다”는 목표를 세워 이를 죽는 날까지 실천했다고 돼 있습니다. 그는 침례교 교육자인 프레데릭 게이츠와 인도의 수행자 스와미 비베카난다의 조언을 받아들여 적극적으로 선행을 펼칩니다. 특히 의료, 교육, 과학, 종교에 크게 기여합니다. 그의 아들 록펠러2세는 봉사활동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빼어난 경치에 넋을 잃게 되는 그랜드티탄, 아카디아 국립공원의 설립을 주도합니다.
록펠러는 록펠러재단과 록펠러의학연구소, 시카고대, 록펠러대 등을 설립했습니다. 의학적으로 록펠러의 돈은 구충과 황열의 퇴치에 크게 기여합니다. 구충은 십이지장에서 처음 발견돼 십이지장충이라고 불리다가 소장의 위쪽 공장(空腸)에 주로 기생하는 것이 밝혀져 갈고리 모양의 기생충이라고 해서 구충(鉤蟲)이라고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며칠 전 조지훈의 ‘주도론’을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만, 그의 대표적 수필 ‘지조론’에서는 삶의 전반기보다 후반기가 중요하다는 부분이 있습니다.
…<매천야록(梅泉野錄)>에 보면, 민충정공(閔忠正公), 이용익(李容翊) 두 분의 초년 행적(初年行績)을 헐뜯은 곳이 있다. 오늘에 누가 민충정공, 이용익 선생을 욕하는 이 있겠는가. 우리는 그분들의 초년을 모른다. 역사에 남은 것은 그분들의 후반이요, 따라서 그분들의 생명은 마지막에 길이 남게 된 것이다. …
남의 평가를 떠나, 록펠러는 봉사활동에 적극적이었던 삶의 후반기에 진정한 행복을 맛보았다고 합니다. 백수를 누렸고요. 지금까지 선행과 봉사와는 동떨어진 삶을 살았더라도 지금부터 한 손을 내미는 것은 어떨까요? 누군가 욕하고, 저주하는데 익숙한 삶에서 누군가를 돕는 따뜻한 삶으로 바꾸는 것은 어떨까요? 선행과 봉사는 사회를 따뜻하게 하지만, 자신의 행복과 건강에도 좋습니다. 우리 함께 가장 손쉽고도 가장 뿌듯한 건강법을 실천해 볼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