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의토착화

2005. 5. 27. 오전 2:02:39

글자

典禮 土着化

 

시작하면서

 

전례는 교회활동이 지향하는 정점(頂點)이며, 모든 힘이 흘러나오는 원천이다.”1) 이 말이 타당한 것은 전례는 신앙심의 표현이고, 신앙심은 이론이나 원칙이 아니라 구체적인 생활이기 때문이다. 참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 말은 타당하다. 하지만 아직 그런 수준에 이르지 못한 이들에게 전례는 자칫 따분하고 의무적으로 채워야 하는 부담이 될 수도 있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문제점을 발견하게 된다. 첫째로 전례를 참여하는 신자들의 문제이다. 전례의 의미를 올바로 알아듣고 그렇게 생활하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둘째는 전례 자체의 문제이다. 모든 교회 활동의 원천적인 힘이어야 하는 전례가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느냐 하는 점이다. 첫째 문제는 개인적인 신앙의 차원이기에 우리의 논의에서 일단은 생략해야 하겠다. 둘째 문제는 다시 말해서 전례가 우리들의 신앙생활에 도움이 되고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따분하게만 느껴지는 말,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기도문들,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는 행동들, 맥없이 부르는 성가, 등등. 과연 이런 것들이 우리의 신앙을 깊게 하는데 도움이 되고 있고, 신앙을 모르는 이들에게 신앙의 불씨를 심을 수 있는 요소가 되고 있는지? 여기서 전례 토착화의 실천적 당위성이 제기된다. 신앙에 있어서도 심리적, 문화적 요인들을 간과할 수 없기 때문에 전례 역시 토착 문화와 사람들에 대하여 적응해야 하는 당위성이 있는 것이다.

 

 


제1부  典禮의 土着化

 

여기서는 먼저 전례의 토착화 내지 적응의 필요성에 대해 세 가지 차원에서 살펴 본 후, 전례 토착화의 대헌장이라는 「전례헌장」 37항에서 40항의 내용을 바탕으로 전례 토착화의 기본 정신을 살펴보기로 한다. 그리고 나서 다른나라와 우리나라 전례 토착화의 현황을 통하여 우리나라 전례 토착화의 문제점을 살펴보기로 한다.

 

1. 전례 토착화의 필요성

 

토착화 내지 적응을 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시대와 장소에 맞춰 하느님의 말씀이 끊임없이 육화될 수 있도록 육화사업을 연장시켜 나가야 한다는 교회의 본질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즉 육화의 신비가 바로 토착화의 신학적 원칙인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역시 특별한 시공간 안에 당신을 육화하셨다. 이 예수 그리스도의 육화는 유일회적인 것이지만 교회를 통하여 끊임없이 再肉化되어야 한다. 이 교회의 육화는 그리스도께서 스스로 어떤 특정한 민족과 ‘완전히 혼연일체가 되셨던’2) 것을 본뜬 일종의 융합의 과정이다.3) 이 말은 육화의 신비는 교회가 자신이 속해 있는 민족의 사회적, 문화적 조건들을 받아들일 때마다 다시금 새롭게 탄생한다는 말이다. 물론 여기에 교회의 보편성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하지만 공의회는 오히려 이 육화를 통해서 지역교회나 보편교회나 모두 더 풍요로워 진다고 말하고 있다.4)

 

현재의 전례양식은 초기교회 이래로 계속적으로 진행되어 온 문화와 역사의 산물이다. 문화적응 내지 토착화되어 온 것이며, 이것이 하느님 말씀의 재육화인 것이다. 이처럼 문화와 밀접한 연관을 맺어 온 전례라면 당연히 현재진행형일 수 밖에 없다. 문화는 늘 변화 내지 발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전례는 당연히 다원적일 수 밖에 없다. 아니 다원적이어야만 한다.

 

전례가 토착화 내지 적응해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선교지역에서 교회의 활동이 보다 쉽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모든 문화권에서 그리스도교 신앙이 온전히 받아들여 질 수 있도록, 또 전례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전례를 각 문화에 맞게 적응해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어떤 민족 고유의 가치와 언어표현 방식들, 사고방식, 고유한 감성 등이 신앙의 발전에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럴 때 이러한 문화 요소들은 당연히 전례에 받아들여져야 한다.

 

하지만 적응해야 하는 문화가 단순히 그 민족의 토착문화라고만 말할 수는 없다. 문화는 늘 발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전례 적응도 신축성있게, 유기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5) 나아가 전례 적응의 목표는 토착문화를 “현대의 여러가지 조건에 발맞추어”6) 발전시켜 마침내는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될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이라고 하겠다.

 

 

전례의 토착화를 추진하는데 있어서 결코 간과되어서는 안되는 원칙은 다음의 두가지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첫째는 “전례는 무엇보다도 하느님께 대한 흠숭의 禮”7)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전례는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그 지체들이 함께 합쳐진 ‘총체적 그리스도(total Christ)’가 하느님께 바치는 기도라는 인식이다. 둘째는 전례는 하느님과 신자 각자가 개인적으로 만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전례는 단순히 인간들 사이의 만남의 장이 아니라 하느님과 공동체의 만남이며, 또한 하느님과 한 개인의 만남의 장이기도 하다.8)

 

첫번째 원칙에서 우리는 하느님께 대한 欽崇之禮라는 면에서 전세계 공통의 유일한 전례 양식의 필요성을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결코 그 의미만은 아닐 것이다. 하느님께 바치는 흠숭지례가 꼭 한가지로 통일되어야 한다는 원칙은 아니다. 하느님께 최상의 흠숭을 드리는 방법은 각 민족마다 고유할 수 있다. 각 나라와 민족의 관습과 예절이 다르기 때문에 그 나라와 민족이 하느님게 드리는 흠숭의 방법 역시 다를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총체적 그리스도가 바치는 기도로서의 공동체적 성격이 문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공동체적 성격은 그 방법이 아니라 그 내용 속에서 찾아지는 것이기 때문에 하등 문제가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둘째 원칙에 있어서는 상황이 약간 다르다. 각 개인이 하느님을 체험하는 양태는 다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공감하는 통일된 전례 양식을 마련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각 개인은 자신의 나라나 민족의 공통된 관습과 인식에 소속되기 때문에 토착화된 전례 형식이 각 개인에게는 더 도움이 될 것이다.

 

2. 전례 토착화의 기본정신(전례헌장이 말하는 전례 토착화의 원리)

 

전례 토착화의 대헌장이라고 볼 수 있는 전례헌장 37-40항은 토착화에 있어서 상당한 개방성을 보여주고 있다. “민족들의 특성과 전통에 적응시킴에 관한 규정”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묶여 있는 이 조목들은 내용상 둘로 구분된다. 하나는 전례의 일반적 적응에 관한 규범을 정하는 38-39항이고, 다른 하나는 40항으로 “더 깊은 전례적응(Profundior Liturgiae Aptatio)”에 관한 규범이다. 그리고 37항은 서론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9) 여기서 공의회는 미신적 요소가 없고 또 윤리적 규범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라면 각 민족의 고유 풍습이나 특성을 무엇이나 존중하고, 나아가서 전례의 본정신과 어긋나는 것이 아니라면 전례에 도입하는 것을 허락한다는 방침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10) 또한 각 지역 교회가 이를 깊이 연구하여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것은 성청의 승인 하에 실시할 수 있다는 폭넓은 개방성을 보여주고 있다.11)

 

그런데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37-40항만을 따로 떼어놓고 볼 때는 전례의 어떤 부분도 개혁할 수 있는 것으로 잘못 이해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 항목들은 전례헌장 21항을 전제하고 있다는 것을 숙지할 필요가 있다. 21항은 “전례는 神的 制定인 고로 변경할 수 없는 부분과 시대의 변천에 따라 변경될 수 있는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천명하고 있다. 즉 토착화와 적응의 수준도 변경할 수 있는 부분에 한정되는 것으로 알아들어야 한다. 또한 “예절은 기품있는 단순성을 지니며, 간결하고 일목요연하며, 불필요한 반복을 피해야 한다. 또한 신자들에게 이해가 갈 수 있도록 해서 일반적으로 많은 설명이 필요없게 해야 한다”12)는 로마 전례의 특성을 잘 이해해야 한다. 그것은 전례쇄신을 하려는 근본취지이기도 한데, 원래 로마 전례의 특성이었던 단순한 구조와 명료한 표현방식을 되찾음으로써 신자들이 전례를 쉽게 이해하고 전례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이러한 근본 취지에 입각하여 작성된 새로운 로마 전례서는 단지 전 세계 교회에 하나의 모델로서 제시된 것일 뿐이다. 이것은 다시 말해서 새로운 전례는 마땅히 각 지역교회의 고유한 특성에 맞게 적응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즉 전례의 근본 메시지는 그대로 살려 두면서 전례를 각 문화의 표현방식에 맞게 다시 해석하고 적응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1) 적응의 일반적 원리 : 전례헌장 37항

 

37. 성교회는 신앙이나 공익에 관계없는 일에 엄격한 통일성을 강요하고자 하지 않으며, 전례에 있어서도 또한 그러하다. 오히려 여러 종족과 민족의 훌륭한 정신적 유산은 이를 보호 육성한다. 또한 민족들의 풍습 중에, 미신이나 오류와 끊을 수 없는 관계에 있지 않는 것이면, 무엇이나 호의를 가져 고려하고, 할 수 있다면 잘 보존하고자 한다. 그것들이 참되고 올바른 전례 본정신에 적합하다면, 때로는 전례 자체에도 이의 도입을 허용한다.

 

2) 적응의 제1단계 : 전례헌장 38-39항

 

38. 로마식 전례의 본질적 통일성을 보존하는 조건하에, 여러 단체, 지역, 민족 특히 포교지방에, 합법적 다양성과 적응의 길을 열어 줄 것이니, 이는 전례서를 개정할 때에도 그러하다. 또한 이 원칙은 전례의 구조와 전례 규정 작성에서도 적절히 고려되어야 한다.

39. 전례서들의 표준판에 정해진 범위 내에서, 특히 성사 집전, 준성사, 행렬, 전례 용어, 성 음악과 성 미술의 적응을 규정하는 권한은 제22항의 규정에 따라 당해 지역 교회 당국이 가진다. 그러나 이 헌장에 실려 있는 규정들에 의거해야 한다.

 

3) 적응의 제2단계 : 전례헌장 40항

 

40. 그러나 여러 지방과 갖가지 환경에 더 깊은, 따라서 더 어려운 전례 적응이 요구되니, 다음과 같은 점을 고려해야 한다.

   

 1) 제22항 2번의 규정에 따라 당해 지역 교회 당국은 이 사정에 있어, 국민의 전통과 특성에서 무엇을 전례에 도입할 것인지, 신중히 또한 지혜롭게 헤아려야 한다. 유익하고 또 필요한 적응이라고 생각될 때에는 교황청에 제출해서 동의를 얻은 후 실시 할 수 있다.

   

 2) 이러한 적응이 필요한 배려 하에 이루어지게 하기 위하여, 교황청은 그 지역 교회 당국에, 경우에 따라서 이 목적에 적합한 어떤 단체로 하여금 일정한 기간 필요한 예비시험을 시키는 것을 허용하고, 또한 이를 지도할 권한을 주게 될 것이다.

    

3) 전례 법규의 적응은 특히 포교 지방에 있어 특별한 어려움을 가져오고 있으니만큼 이 사정에 정통한 사람들이 이 법규 제정에 종사해야 한다.

 

3. 전례 토착화의 현황

 

이상에서 살펴 본 공의회의 기본정신에 의하면 전례의 많은 부분에 대한 적응이 가능함을 알 수 있다. 200주년 사목회의 전례의안 12항에서도 이의 필요성 내지 시급성을 지적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지적과 시대적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전례 토착화에 대한 노력은 아쉽게도 거의 찾아 볼 수 없는 실정이다. 전례 적응에 대한 노력에 있어서 다른 나라의 경우는 무척 적극적임을 볼 수 있다. 전통적인 예식을 미사에 받아들이는 경우 같은 외적인 면들에 대해서 적응을 시도하는 예를 많이 볼 수 있다. 나아가 내적인 면, 이를테면 고유한 전례문을 만들어 사용하는 경우나, 전례 형식 자체를 토착화하는 경우들을 볼 수 있다. 자이레에서는 성찬기도문 자체를 토착화된 형식으로 만들어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성찬기도문에 대한 변경은 아직 교황청의 허락이 난 상태는 아니지만 널리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자유중국에서는 1972년 음력 설날에 모든 성당에서 조상제사를 거행하였는데, 이는 교회가 실시해도 좋다는 승인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교회의 명령으로 실시된 것이다. 인도는 다른 나라에 비해서 더 적극적이다. 고유 성찬기도를 시도하고 있고, 지역 축제를 위한 인도적 양식의 기도문을 작성하여 사용하고 있다.13) 이러한 노력은 물론 해당 지역교회의 주교회의의 건의와 성청의 허락을 통하여 얻어낸 것들이다.

 

이에 비하여 우리나라의 전례 토착화(조절)에 대한 공식적인 노력은 미약하다 못해 있는지 조차 잘 알 수 없는 실정이다. 200주년 기념 사목회의 전례의안에서 여러가지 면에서 토착화의 지침과 제안사항 등이 있었지만 그 이후의 실천적인 적용은 미미하기만 하다.

 

전례의 적응에 관한 공식적인 권한은 주교회의에 있다고 했다.14) 우리나라 주교회의가 전례 적응에 대하여 기울인 노력은 다음의 한가지가 있을 뿐이다. 1971년 3월 3-5일 사이에 개최된 주교회의는 성청에 두 가지 전례 적응의 뜻을 보고했고 1972년 12월 1일에 경신성성은 이를 승인하였다. 그 하나는 존경의 표시에 대한 것인데 무릎을 꿇는 대신 몸을 깊이 숙여 절하고 제대와 책에 친구하는 대신 머리를 숙여 절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평화의 인사’에 대한 것인데 인사를 나누는 방법이 서로 다르므로 동작으로 하지 않고 말로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진심으로 축복합니다”라는 말을 만들게 된 것이다.15)

 

이러한 공식적 노력 외에 토착화 연구 발표회 등 학문적 접근의 경우는 간혹 있어 왔지만, 전례의 적응이라는 시급하고 중요한 현안에 비추어 볼 때 아직도 매우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4. 전례 토착화를 위한 제언

 

한국교회는 로마교회보다도 더 로마적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비단 전례 부분에 있어서 로마전례서를 그대로 따라한다는 의미만은 아니겠지만 어쨋든 전례 부분에 있어서 우리 것이 거의 전무한 상태는 심각한 수준이 아닐 수 없다. 자발적인 노력은 기울이지 못한다 할지라도 심지어는 여러 전례서에서 권장하고 있는 적응에 대해서도 무감각해 왔다.

이러한 현실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다음의 몇가지 내용을 제언하고자 한다.

 

1) 주교들과 사제들의 의식이 개선되어야 한다.

2) 신자들에 대한 교육을 강화하여 타성화된 신앙생활이 변화하여야 한다.

3) 주교회의 전례위원회의 활동이 강화되어야 한다.

4) 각 교구의 전례위원회를 구성하고 활동이 강화되어야 한다.

5) 전례에 대한 제반 연구 및 교육을 실시할 「전례 연구소」가 설립되어야 한다.


제2부  토착화 연구 발표회 : 「典禮의 土着化」

 

토착화의 당위성 및 중요성은 재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이제 우리나라에서의 토착화의 노력을 소개하고자 한다. 소개의 범위는 주제에 따라 전례에 국한시킬 것이다. 소개라고 강조하는 이유는 우리가 소개하는 분야에 전문적인 지식을 지니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토착화를 하는데 있어서 명심해야 하는 모습들을 생각할 수 있는 계기는 되리라 믿는다.

 

1. 구약에 있어서의 전례의 토착화16)

 

심용섭 신부는(이하 발제자) “구약에 있어서의 전례의 토착화”라는 제목하에 우리나라 전례의 토착화를 위한 방향제시를 시도하였다. 구체적으로 빠스까를 중심으로 의견을 개진하였다. 즉 발제자는 전승사적 관점에서 이스라엘의 전례 특히 빠스까가 역사적 종교적 필요에 따라 어떻게 변화 정착되어 갔는가 하는 것을 소개하였다. 요약을 한다면, 빠스까는 유목민들의 의식이었고, 무교절은 본래 농경민의 의식이었다. 이런 것들을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들의 역사적 사회적 종교적 필요에 의해 새로운 신학적 내용을 첨가한다든지 독립해 있던 두 개의 의식을 하나로 합친다든지, 가정 축제를 순례 축제화한다든지 하여 새로운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기존의 전례를 토착화 또는 정착해 갔다. 특히 이것을 요시아 종교개혁의 시대적 배경과 그 시대의 정치적 종교적 필요에 의했던 것임을 밝혔다.

 

부연하면, 빠스까가 무교절과 연결이 되면서 유목민의 전승인 피의 의식의 의미가 상실되고 대신 제사 의식이 앞서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무교절이 이스라엘에 수용되면서 땅의 소출이 바알의 덕이 아니고, 야훼의 은혜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추수되는 모든 것이 야훼 것이고 야훼가 땅의 주인이라는 것은 이스라엘이 에집트에서 나와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된 역사적 사실을 가나안의 축일을 이어받아 경신례의 차원에서 재해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발제자는 이상에서와 같이 빠스까의 정착과정을 언급하면서, 다음과 같은 조언을 한다. 토착화를 하는데 있어서 우리나라의 고유한 사상연구도 중요하겠지만 한국인 모두에게 있는 또는 있었던 문제를 파악하는게 중요한 것이다. 즉 백성전체에게 통용되는 것들을 야훼화시키고 다시 경신례화해서 그것이 우리에게 다시 힘을 주는 것으로 나타나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2. 조상제사의 미사 전례적 수용에 관한 시론17)

 

발제자는 유가의 조상제사와 미사성제의 조화 및 조상제사의 미사 전례적 수용에 대해 시론적으로 논하였다. 즉 발제자는 유가에서 공자이래로 현세 중심적이고 윤리적인 면이 강하였고, 윤리적인 면과 종교적인 면이 가장 잘 만날 수 있다고 보는 조상제사와 미사전례의 연관성을 찾아 논리를 전개하였다. 바로 조상제사의 장점을 현대에서 되살리려고 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하겠다.

 

발제자가 지적한 조상제사의 미사전례적 수용에 있어서 유의해야 할점을 소개하고자 한다.18) 첫째, 미사는 “그리스도교 생활 전체의 원천이요 절정”(교회헌장11항)이므로 명절이나 기일 또는 선조를 특별히 기억해야 할 날에는 미사를 통해 선조께 감사드리고 선조를 위해 기도하면서 통교와 일치를 체험토록 해야 할 것이다. 둘째, 미사성제는 모든 제사의 완성이므로 조상제사 역시 미사성제와의 밀접한 연결에서 그 의의와 목적이 완성된다는 점이다. 셋째, 미사안에 모든 조상제사를 다 흡수시키려 할때 미사의 고귀함도 조상제사의 장점도 손상시킬 수 있으므로 양자의 고유성과 특성을 다 살리는 방향에서 조화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19) 발제자는 끝으로 조상제사의 복음화와 미사전례적 수용은 계속적인 연구와 다양한 실험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으므로 혼란과 큰 물의를 빚지 않는 범위에서 슬기롭게 다양한 시안들이 실험되고 평가되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하였다.

 

3. 전례와 전통 상제례20)

 

발제자는 우리 민족의 신앙행위는 샤머니즘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즉 한국민족은 한국적인 문화나 샤머니즘에 대한 근본 바탕을 전혀 버리지 않고 지니고 있으면서 외형적으로는 강대국들의 문화와 종교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양식을 지녔다고 진단한다. 때문에 천주교에서 우리 민족에게 공감대를 줄 수 있고 우리 민족의 신앙의식이 자연스럽게 표현될 수 있는 양식을 연구하여 시행하여야 함을 강조한다. 즉 한국인의 토속적인 옛날의 문화와 의식을 오늘의 이 시대에 끌어내어 거리감을 없애고 이중적인 요소를 복음으로 하나가 되게 하는데 이른바 토착화의 과제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토착화를 해야한다는 당위성만 되풀이하였지 어떻게 하자는 실천적인 지도는 거의 없었다고 현실을 진단한다. 일례로 우리나라의 경우는 아니지만, 1939년 12월 8일 교황 비오 12세가 ‘중국 예식에 관한 훈령’을 통하여 조상제사를 허용하였으나 제사를 어떻게 지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방법은 그 후로도 제시된 바가 없었다는 사실을 지적할 수 있다. 여하튼, 발제자의 논조는 한마디로 우리 민족의 감정에 맞게 예식의 참된 의미가 드러나야 함이라고 말할 수 있다. 즉 로마식 전례가 우리 민족의 감정과 별개로 우리의 감정에 동화되지 못하고 겉돌고 있음이 분명하다면 그것을 우리의 가슴속에 우리의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나아가 이러한 작업을 원할이 수행해 나가고 연구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우리 자신의 것이 무엇인가를 파악하고 연구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함을 피력한 것이다.

 

4. 교회음악의 토착화21)

 

발제자는 교회음악, 특별히 성가의 목적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례헌장(1964년)과 1967년 “거룩한 전례안에서의 성음악에 관한 훈령”에서 정의한 내용을 소개한다. 첫째, 하느님의 영광을 찬미하고 둘째, 하느님 백성의 상호 일치 셋째, 하느님 백성의 성화이다. 이러한 사실을 염두해 두면서 발제자가 제시한 한국 교회음악의 토착화의 방법에 시선을 집중해 보자.

 

가. 우선 교회음악이란 무엇이고 그 음악이 내포해야 하는 요소가 무엇인지, 어떤 요소는 시대에 적응하기 위하여 양보할 수 있고, 또 종교음악, 전례 성가이기 때문에 끝까지 양보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 정립되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춤을 위한 4분의 3박자인 왈츠곡이 더 이상 춤을 돕는 곡이 아닐때는 무도곡으로서의 생명을 잃듯이 성가곡인 전례 음악이 하느님의 영광 찬미, 하느님 백성의 성화와 상호 일치 정신과 마음을 드높일 수 없다면, 더 이상 성가로 보기에는 힘들다는 것이다.

 

나. 우리나라는 우리의 고유한 얼이 담긴 많은 민속음악을 갖고 있지만, 이런 좋은 음악을 여러 이유로 해서 오늘날 우리에게 골고루 전수되지 못하였다. 때문에 전수되지 못한 음악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나아가 한국 음악만이 갖고 있는 고유한 장단, 음계, 음정 그리고 가락을 알고 소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 교회음악의 토착화를 위하여는 타분야 학문 내지 주위 환경과의 상호 융합과 조화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음악과 성미술, 조각, 건축과의 관계에서도 그렇다. 스테인드 글라스와 파이프 오르간이 울려 퍼지는 고딕식 성당에서 우리 정통 악기인 거문고와 가야금이 어울릴지? 성당내부는 온통 서양식 그림, 조각들이 있는 곳에서 도자기 성작과 도포와 제사식 전례가 얼마나 어울리지 의문을 제기한다. 한마디로 교회음악의 토착화를 위하여는 전례와 관계되는 분야간에 보조를 맞추면서 협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라. 이상의 모든 일을 총괄적으로 담당할 전문기구와 각 분야별로 연구팀이 구성되어 점진적으로 타분야와 상호 보조하에 작업이 이루어져야 함을 마지막으로 제시하였다.

 

5. 교회 미술의 토착화22)

 

발제자는 교회안에서 미술이 토착화되기 위해서는 어디까지나 미술인이 그 시대를 느끼고 그 민족을 바탕으로 해서 사회적인 환경을 느끼고 소화해서 그것이 자연스럽게 표현될 때 가능하다고 진단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렇지 못함을 지적한다. 즉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외형적인 것보다는 정신적인 것을 추구하는 그림들이 많이 제작되었는데, 그 당시에는 교회에서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러한 현상이 오늘날에 우리나라에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미술의 토착화에 있어서 명심해야 하는 사실은 외형에 너무 치우칠 때 내용은 빈약해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도 외형적인 것을 작가에게 요구하는 그런 방향은 피해야 하는 것이다. 더 본질적인 좋은 내용을 지닌 작품을 요구하여야 한다는 의미인 것이다. 즉 토착화에 있어서 최종적인 문제는 예술가 하나하나의 역량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결국 교회 미술의 토착화란 미술가 개인 개인에 의해서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 미술의 토착화를 위해서는 교회에서 예술가들을 인정해 주고 존중해 주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는 것이 우리 교회의 가장 큰 암적인 존재라고 발제자는 지적한다. 또 하나 지적하는 것은 너무 급히 서두른다는 사실이다. 즉 마음이 조급해서 몇 개월 만에 끝장을 보려 하고, 건축비가 평당에 얼마나 들 것인가만 따져서는 교회미술의 토착화는 요원하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발제자는 음악문제는 음악가에게, 건축문제는 건축가에게, 회화문제는 화가에게 맡겨질 때, 교회 예술의 토착화는 이루어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마무리하면서

 

이상 전례에 관계되는 제반 분야에 있어서의 토착화를 위한 노력을 소개하였다. 소개를 마치면서 함께 생각하고 토착화를 위해서 반드시 선행되어야 하는 작업이 우리 것을 알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제대로 알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당장에 무엇을 해보겠다는 조급함을 지양해야 할 것이다. 서구 그리스도교가 이 땅에 전래된지가 200년이 넘었다면, 그 만큼의 시간을 갖고 우리 마당에 맞는 뿌리를 찾겠다는 여유(?)가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이렇지 못할 때, 토착화는 하나의 공허한 메아리로 그칠 공산이 농후하다. 아울러 꾸준하게 진행되는 이론적인 연구 등이 시도되어 場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끝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루고 각각 서로 서로의 지체구실을 하고 있습니다.”(로마서12. 5)라는 사도 바오로의 말씀처럼 한국 가톨릭 교회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교회의 한 지체라는 사실을 상기하고자 한다. 이 사실을 명심하면서, 토착화는 “전체와 각 부분이 모든 것을 서로 나누어 가지며 일치의 완성을 함께 지향하면서 자라게”23)하는 중요한 작업임을 명심하고 신중하면서도 개방된 모습으로 임해야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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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년 5월 27일 오전 9:08

    이글 읽고 전례헌장 레포트 수정좀 햐겠네요 ㅎㅎㅎ 좋은 자료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고유하는 맘이 넘 아름다워요~~!!

  • 2005년 6월 5일 오후 10:32

    저 퍼갑니다~~~~~~~~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