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용
우리는 감각을 만족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주님을 위해서, 주님과 함께 일하고
또 희생과 참화의 삶을 살기를 원한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음식을 먹습니다.
성 빈센치오 아 바울로는 그의 수도회는 입회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종종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 가난한 사람들은 우리 주인입니다.
우리가 존경심을 가지고 가난한 사람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위하여 일하고, 그들이 청하는 것을 들어주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지요. 이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그런데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을 우리에게 불필요한 것들을 버릴 만한 쓰레기쯤으로 여기는 것은 아닌지요?
우리는 먹기 싫은 음식이나 상하려고 하는 음식을 그들에게 줍니다. 유효 기간이 지난 음식. 그래서 해를 끼칠 수도 있는 것들이 쓰레기통 속으로 다시 말해 가난한 사람들에게 갑니다.
그리고 유행이 지난 옷, 이제는 입고 싶지 않는 옷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갑니다. 이런 것을 보면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을 우리 주인으로 여기면서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열등하다고 여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느 날 저녁, 어떤 사람이 우리 집에 와서 여덟 자녀를 둔 한 힌두교인 가정에서며칠 전부터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굶주리고 있다는 얘기를 해주었습니다.
그들에겐 먹을 게 전혀 없었습니다.
나는 한 끼 식사로 충분한 쌀을 가지고 그 집으로 갔습니다.
그들은 몹시 허기죠 보였고 아이들의 눈은 툭 불거져 나와 있더군요.
말할 수 없이 비참한 모습이었습니다.
내가 쌀을 건네자 아이들의 어머니는 그것을 반으로 나누어 가지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잠시 후에 그녀가 돌아오자 나는 어디에 갔었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짤막하게 대답했습니다. "그들 역시 굶주리고 있습니다."
'그들'이란 식구 수가 같은 옆집의 이슬람교인들이었습니다.
그 어머니는 굶주림이 어떤 것인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또한 자신의 쌀을 나눌 수 있는 용기와 사랑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기도 어려운 처지에 있으면서 얼마 되지 않지만
가진 것을 이웃과 한께 나누는 것이 행복이라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 어머니의 행복을 손상시키지 않기 위해서 그날 저녁에는 쌀을 더 가지고 가지 않았습니다.
대신 다음날 조금 더 가지고 갔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어떤 사람입니까?"
어떤 사람이 힌두교도에게 물었습니다.
그는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주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에게 부탁할 것이 있습니다.
싫증내지 말고 주십시오. 그런데 남은 것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
상처를 받을 때까지, 고통을 느낄 때까지 주십시오.
하느님께서 서서히 주시는 사랑에 마음을 여십시오.
하느님은 당신을 다정하게 사랑하십니다.
그 분께서 주시는 사랑의 선물은 자물쇠로 걸어 잠그고
보관해 두라고 주시는 게 아니라 서로 나누라고 주시는 것입니다.
쌓아 두면 쌓아 둘수록 줄 수 있는 것은 적어집니다.
가진 것이 적으면 적을수록 나누는 방법을 제대로 알게 되지요.
무언가 원하실 때 아낌없이 내줄 수 있는
그런 후한 마음을 달라고 하느님께 청하십시오.
[마더 데레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