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어떤 모습일까요?
천주교-가톨릭이란 보편타당하다는 의미입니다.
그 말은 재산, 권력, 학력, 지위, 외모, 성, 인종 등에 차별받지 않는다는 의미이며 누구에게나 신앙생활을 하는데 위와 같은 걸림돌이 없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가톨릭이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지금까지 꿋꿋하게 지켜온 이유 중의 하나라고 생각됩니다.
세속의 모임이나 단체들의 기준은 일반적으로 민주주의-‘다수결의 원칙’이 결정을 지배합니다.
그래서 소수의견은 내용이 어떻든 간에 묻혀 버리고 맙니다.
이것이 ‘다수결 원칙’의 모순이지만 적어도 교회에서는 이 원칙이 만능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미소한자에게 베푼 것이 곧 나에게 베푼 것”이라는 성경말씀(마태 25)과 같이 소수의 약자를 감싸주고 위로해주고 보듬어야 할 곳이 바로 교회공동체이며 지향해야 할 참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이곳에서마저 다수결의 원칙의 지배를 받는다면 더 이상 교회에 의지하지 못할 것입니다.
특별히 금전적인 문제는 지극히 예민하므로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접근해야합니다.
그것이 당사자나 말 못하는 사람에게는 크나 큰 상처를 주기 때문입니다.
옳음에 대하여 옳다고 말 못하고 피하거나 침묵하는 것은 위선이요 거짓이요 하느님 정의를 실천하는 진선미의 실현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입니다.
다양성 속의 일치 - 인간의 속성상 다른 생각과 성장환경 그리고 현재 처해있는 상황에 비추어 같을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이 다양성 속에서 교회공동체는 일치를 향하여 많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많이 가진 자는 갖지 못한 자에게 나누어야하고 받은 자는 고마워하되 나름대로의 나눔을 실천해서 하나로 향하도록 노력해야합니다.
사회적인 능력이 많고 일처리가 능숙하다고 하여 그렇지 못한 사람을 따돌림 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여기서 일 잘하는 사람(?)의 관용과 인내심 그리고 사랑이 필요하고 그들이 가졌으므로 더 잘 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마찬가지로 부자가 하늘나라에 가기 힘든 이유이기도합니다.
봉사자-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남기신 말씀이 바로 우리의 사도직 활동입니다.
외인들을 입교 권면하는 것도 활동이요 바로 주위의 교우들에 대한 사랑과 봉사의 삶도 사도직활동입니다.
봉사는 고통과 기쁨이 따르고 희생을 요구하지만 기본적으로 겸손함을 잃으면 완장차고 목이 뻣뻣한 군림하는 자의 모습이 되기 때문에 머슴의 입장에서 주인을 섬기는 모습으로 해야 하며 댓가를 바라지 않아야 진정한 봉사자의 모습이 됩니다.
결론적으로 소외되고 능력이 없고 상대적으로 못난이들을 바로 우리가 사랑으로 겸손하게 보듬어주고 감싸 안고 가지 않으면 우리는 언제나 떳떳하지 못한 천주교 신자로서 존재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