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 Louis의 간단한 소개

2006. 4. 29. 오후 9: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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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제 31위로 큰 도시인 St. Louis는  유명한 세인트 루이스 오케스트라를 비롯하여 대학이나 문화시설의 수준이 매우 높아 미국에서 가장 살기좋은 도시로 제 8위를 차지.  미시시피강(江)과 미주리강이 합류하는 곳 부근에 위치하고, 오래 전부터 미시시피강의 주요 하항(河港)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대륙의 십자로에 해당하며 서부로 들어가는 입구라는 지리적 조건 때문에 25개의 철도를 비롯하여 다수의 고속도로·항공로, 미시시피강의 수운 등 교통망의 발달로 오늘날은 상공업과 경제의 중심이 되어 주(州) 최대의 도시로 발전하였다.
도시의 기원은 1764년 뉴올리언스에서 온 피에르 라클레드가 무역교역소로서 설립하였으며, 프랑스의 루이 15세와 그의 수호성인루이 9세의 이름을 따서 명명하였다. 1770년 에스파냐령(領)이 되었으나 1803년 미국이 차지하였다. 풍부한 자원·노동력·수송력 등은 공업발전의 큰 요소가 되어, 디트로이트에 이어 자동차공업과 제화·양조·식품가공·기계·철강·화학제품·항공기·전자 등 각종 제조업이 세계적 수준에 달하고 있다. 특히 모피시장은 세계 최대의 규모이다.
미국 중서부의 교육·문화의 중심지로서 세인트루이스대학교(1818)·워싱턴대학교(1853),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세인트루이스교향악단(1880) 등이 있다. 특히 세인트루이스대학교 도서관에는 바티칸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도서들의 마이크로필름이 소장되어 있다. 포리스트파크는 1904년 세인트루이스 세계박람회(루이지애나 구매박람회)가 열린 곳으로, 이 곳에는 미술관·제퍼슨기념박물관·극장·동물원·천문관·스케이트장 등이 있다.

독립된 지역인 이 시는 미시시피 강을 사이에 두고 일리노이 주 이스트세인트루이스와 마주보며 7개의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미시시피 강과 미주리 강이 합류하는 지점에서 16㎞ 아래쪽에 있다. 미주리 주에서 가장 큰 시이며 1876년에 행정적으로 독립한 이래 경계선에 변동이 없었다.

 

도시의 유래는 1764년에 뉴올리언스의 피에르 라클레드 리게스트가 모피교역소로 세웠으며 오귀스트 슈토가 자치체로 조직하고 성인으로 인정된 프랑스의 루이 4세의 이름을 따서 명명했다. 1770년 스페인에 양도되었다가 얼마 후 프랑스령으로 다시 넘어왔으며, 1803년의 루이지애나 매입에 따라 미국령이 되었다. 이 도시는 루이지애나 준주의 행정소재지(1805)이자 미주리 준주의 행정소재지(1812)였다. 1820년의 제1차 미주리 입법회의가 이곳에서 열렸지만, 1821년 미주리가 정식으로 미국의 주가 되면서 주도의 지위는 박탈되었다. 세인트루이스는 미국의 서부 확장시기의 교차로이자 탐험대와 모피교역 원정대, 캘리포니아의 샌타페이와 오리건 마차길을 따라 여행하는 개척자들의 준비지점이 되었다. 1846년의 멕시코 전쟁은 남서부와의 교역이 활발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남북전쟁중에는 계엄통치하에서 미국의 기지로 남았다.

증기선 시대(1817~70)와 1850년대의 철도 부설 이래 주요 교통 중심지가 되었다. 통관항으로서 세인트루이스는 오대호에서 멕시코 만으로 이어지는 수로의 중심지이며, 가축·곡물·양모·목재를 거래하는 큰 시장들이 있다. 철·납·아연·구리·알루미늄·마그네슘 등과 같은 현지에서 산출되는 원료 때문에 경제는 아주 다각화되어 있다. 고도로 다각화된 산업으로 양조·식품가공·항공기·자동차·신발·화학제품·철도차량·섬유·전자부품 등의 제조업이 있다.

대도시권에는 여러 개의 대학교·대학·신학교·성서학교·상업학교 등이 있다. 세인트루이스대학교(1818)에는 바티칸 도서관의 귀중한 도서들의 마이크로 필름을 보존하기 위하여 건립된 피우스 12세 도서관이 있다. 워싱턴대학교(1853)는 시인 T. S. 엘리엇의 할아버지 윌리엄 그린리프 엘리엇에 의하여 설립되었으며, 세인트루이스약학대학은 1864년에 설립되었다. 미주리세인트루이스대학교(1963)는 이 도시의 북쪽에 있다. 단과대학으로는 린던우드(1827)·메리빌(1872)·웨브스터(1915)·폰트본(1917)·해리스스토(1857) 등이 있다.

1880년 창립된 세인트루이스 교향악단은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다. 포리스트 파크는 세인트루이스에 국제적 명성을 안겨다준 1904년의 루이지애나 구매 박람회(세인트로렌스 세계박람회)가 개최되었던 곳이다. 본래 마을이 있던 곳에 건립된 제퍼슨 국토확장 기념관에는 에로 사리넨이 '서부로 가는 관문'의 역할을 한 세인트루이스의 역사적인 업적을 기념하기 위하여 설계한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든 높이 192m의 관문 아치가 우뚝 솟아 있다. 프랑스의 성 루이에게 헌정된 옛 성당(1831~34, 비잔틴 양식)은 교황 그레고리우스 16세로부터 면상을 받았다. 옛 법원청사(1839~64)는 드레드 스콧 노예 소송이 다루어졌던 곳이며, 칼 위마의 프레스코 벽화들을 소장하고 있다. 알로에 광장에는 미시시피 강과 미주리 강의 합류를 상징하는 칼 밀스의 분수가 서 있다. 시인 유진 필드의 소년시절 고향집에는 어린이들을 위한 박물관이 건립되어 있다. 스페인 인터내셔널 파빌리언에는 1964~65년의 뉴욕 세계박람회 때부터 세인트루이스로 이전된 극장이 들어서 있다. 세계 최초의 3각 철골구조 경간 다리인 이드스 브리지(1874)는 미국의 사적지로 지정되었다. 제퍼슨 배럭스 역사공원이 19㎞ 남쪽에 있다. 또한 이 도시에 있는 카디날스 야구팀의 홈구장이며 부시 기념체육관에서는 수많은 운동경기가 열리고 있다. 세인트루이스 게이트웨이 회관은 1978년에 완공되었다. 1821년 읍이 되었고, 1823년 시가 되었다. 이 밖의 관광명물로서 1846년 노예 드레드 스콧의 소송을 다룬 옛 법원청사, 서부로 가는 관문 역할을 한 세인트루이스를 기념하여 세운 강철제 관문아치(에로 사리넌 작품), 1860년 세인트루이스의 자선가 헨리 쇼가 만들어 11,000종 이상의 식물을 가지고 있는 미주리보태니컬가든(쇼스가든), 세계 최초의 3각 철골구조 다리인 이드스교(1874), 부시기념체육관 등이 있다.

댓글 2

  • 2006년 6월 29일 오후 10:01

    연복이 언니 공부 많이했네!

  • 2006년 7월 17일 오후 3:47

    지난번에 소개글을 퍼간적이 있읍니다. 늦게나마 양해를 구합니다. 대신 ESL소개글로 갚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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