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교구장 성탄 메시지/교구장 이 기 헌 베드로 주교

송산성당

2016. 12. 30. 오후 11:2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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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교구장 성탄 메시지]

“두려워하지 마라. 

나는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너희에게 전한다.”(루카 2,10)

 

온 세상이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하는 밤입니다. 성탄을 기다리며 우리는 참으로 간절한 마음으로 아기 예수님의 사랑의 빛이 이 어두운 세상을 환히 밝혀 주기를 기도해 왔습니다. 우리가 너무 불안한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대림절 기간 동안 우리는 국가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을 중심으로 긴 시간에 걸쳐 이루어졌던 국정농단 사건을 겪으면서 참담한 마음으로 이 나라를 걱정해 왔습니다. 부정직과 부패, 권력과의 야합을 통해야만 생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회구조에 울분을 터뜨리기도 하고, 거대한 국가조직의 허술함과 무책임함을 보며 절망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평화롭고 조용한 질서 속에 촛불을 밝히며 외쳤던 국민들의 힘찬 함성은 성숙한 민주주의의 회복과 정직하고 깨끗한 국가 건설에 대한 새로운 희망을 보여주었습니다. 무엇보다 국가의 주인이 국민임을 보여주었던 역사의 한 장면이 펼쳐졌습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부유하고 강한 나라들이 우리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인류 가족 공동체라는 근본 이해를 저버린 채 자기 나라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국가주의에 사로잡혀 가고 있습니다. 전쟁과 극심한 가난으로 살길을 찾아온 난민이나 이민을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차가운 벽을 쌓고 있습니다. 미국을 비롯하여 유럽의 여러 나라들과 아시아 강대국들마저도 강한 국가가 되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이런 국가이기주의는 국가 간의 긴장과 충돌을 피할 수 없는 상황으로 몰아가고, 전쟁과 가난에 지친 나라들을 외면하게 합니다.

커다란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이웃나라에서 온 난민들을 따뜻하게 받아들였던 유럽의 그리스도교 국가들마저도 이제 하나둘 자기 살 궁리만을 하는 비정한 세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인도주의를 바탕으로 했던 나라들만이 아니라 어려운 이웃에게 기꺼이 손을 내밀어 주던 착한 그리스도인들마저 등을 돌리는 모습을 보며 우리는 실망하게 됩니다.


성탄은 그리스도인의 품위를 찾는 날입니다


주님의 성탄을 전하는 성경 말씀들은 우리로 하여금 아기 예수님을 맞이하기 위해 갖추어야 할 것이 무엇이며, 해야 할 일들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해줍니다. 성탄 밤, 베들레헴 하늘에서 처음 울려 퍼진 소리는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루카 2,14)였습니다. 성탄을 맞이할 수 있는 이는 하느님 마음에 드는 사람, 모든 것을 통해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고 착한 마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입니다. 거짓과 탐욕으로 가득 찬 사람들은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아니며,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 예수님을 보아도 볼 수 없습니다.

레오 대 교황께서는 일찍이 성탄의 기쁜 소식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셨습니다. “오 그리스도인이여, 그대의 품위를 깨달으십시오, 여러분이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하게 되었음을 명심하십시오.” 하느님께서 우리 모습으로 찾아와 주신 성탄 사건은 우리 모두가 얼마나 귀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 알려줍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품위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하느님을 알고 닮도록 사람이 되셨습니다. 그러기에 그리스도인의 품위는 나아가 그리스도를 닮은 인간성에 있고, 그리스도의 말씀에 감화되어 말을 전하고 행동하는 데 있습니다.

과연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품위를 간직하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입니까? 사도 바오로는 그리스도인의 품위가 그리스도의 향기를 전하고 나날이 새로워지는 데서 나타나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에 “그리스도의 향기”(2코린 2,15)를 피워야 할 사람들이며, “나날이 새로워지는”(2코린 4,16)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사람들입니다.

성탄이 우리에게 기쁨인 것은, 우리도 예수님을 닮아 품위 있는 인간으로, 품위 있는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하는 대열에 참여하게 되었다는 점에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의 본성인 사랑과 진실, 정의와 평화에 참여하는 사람이며, 하느님이 주시는 참 행복인 가난과 온유함, 정의와 자비, 평화를 추구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저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또 한 가지 우리가 주목해야 할 성경 말씀은 구세주 오심을 알리던 세례자 요한이 자신을 찾아온 군중들을 비롯하여 다양한 직업의 사람들과 주고받은 대화 부분(루카 3,10-14)입니다. “그러면, 저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고 묻는 이들에게 요한 세례자는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군중들) “옷을 두벌 가진 사람은 못 가진 사람에게 나누어 주어라. 먹을 것을 가진 사람도 그렇게 하여라.”

(세리들) “정해진 것보다 더 요구하지 마라.”

(군인들) “아무도 강탈하거나 갈취하지 말고 너희 봉급으로 만족하여라.”

일상생활 안에서 자비를 실천하고 양심적이며 정의로운 직업윤리를 가지고 살라는 메시지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일자리에서 성실하고 묵묵하게 일을 하며 맡은 바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또 적지 않은 곳에서 직업윤리가 실종되어 가고 있습니다. 자신의 안위를 도모하기 위해 국가와 국민을 위해 하여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정치인들, 제 역할을 제대로 못하는 언론인들, 사회질서를 어지럽히는 기업인들…. 어디 그뿐입니까. 사회 곳곳의 크고 작은 직업 현장에서 이익 추구에 몰두하여 양심과 도덕 윤리에 어긋나는 일들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자신의 직업에서도 정직하고 깨끗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예수 성탄의 은총이 국가 이기주의로 내닫는 나라들을 비추어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만드는데 마음을 열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의 국가 지도자들이 국민의 아픔을 알고 국민을 위한 참된 정치를 하는 지도자가 될 수 있도록 오늘이 축복과 회심의 축일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믿는 이들에게 늘 새로움을 주시는 그리스도께서 아기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시는 성탄축일을 기쁜 마음으로 맞이합시다. 


2016년 성탄대축일,
교구장 이 기 헌 베드로 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