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도 주임신부님 사목지침서

한택종

2008. 12. 23. 오후 12:50:52

 

“말씀과 성체 안에서 본당 토대 다지기”


 

주님께서 내리시는 은총과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13년간의 준비 끝에 “해밀턴 한인천주교회 서부공소”가 “키치너-워털루 한인천주교회”로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역대 신부님들과 공소회장, 단체장, 그리고 무엇보다도 신자들이 한마음 한 뜻으로 기도해 온 노력의 결실이 아닌가 합니다.

성령의 도우심이 있었음은 물론입니다.

공소에서 본당으로 승격됨은 또 다른 준비를 필요로 합니다.

지금까지 익숙해왔던 것을 과감하게 버리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에 우리는 초대교회 공동체로부터의 가르침을 주추삼아야 하겠습니다.


첫 신자 공동체의 생활  (사도 2, 42-47)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고 친교를 이루며 빵을 떼어 나누고 기도하는 일에 전념하였다.  
 그리고 사도들을 통하여 많은 이적과 표징이 일어나므로 사람들은 저마다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신자들은 모두 함께 지내며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  
 그리고 재산과 재물을 팔아 모든 사람에게 저마다 필요한 대로 나누어 주곤 하였다.  
 그들은 날마다 한마음으로 성전에 열심히 모이고 이 집 저 집에서 빵을 떼어 나누었으며, 즐겁고 순박한 마음으로 음식을 함께 먹고,  
 하느님을 찬미하며 온 백성에게서 호감을 얻었다. 주님께서는 날마다 그들의 모임에 구원받을 이들을 보태어 주셨다.  


초대교회 신자들이 함께 모여서 빵을 나눴다는 것은 미사참례를 했다는 의미입니다.

본당이 된 후 가장 큰 변화는 미사성제를 드릴 사제가 상주하면서 평일미사를 봉헌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을 위해서나 공동체의 구원을 위해 일주일에 한 번씩은 평일미사를 하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사회적인 친교는 인간적인 식사로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신앙인의 친교는 ‘빵 나눔’이라고 불렀던 미사성제 안에서 보다 높은 차원으로 승화됨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초대교회에서는 ‘빵 나눔’과 더불어 ‘말씀의 봉독’이 이어졌습니다.

말씀을 생활화하여 지역 사회에 좋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말씀이 생생하게 살아있어야만 합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뒷전으로 밀려난 교회는 개인의 이익을 대변하는 장으로 변질되기 마련입니다.

교회는 분명 인간 사회 안에 존재하는 것이 틀림없지만 신앙적 차원이 아닌 사회적인 접근방식으로 그 공동체가 유지된다면 작은 풍파에도 견디어내기가 어려움을 통찰해야만 합니다.

꾸준하게 기도하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는 ‘말씀의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봉사자와 원로들, 단체장의 직무를 수행하는 경우에는 덕망과 존경을 받을 수 있도록 행동하고, 말과 행동에 있어서 사려 깊게 해야 합니다.

또한 공동체의 성장은 교회 구성원 각자의 행실 여하에 달려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구원받을 이들을 불러 모으는 것은 성서의 말씀으로 무장할 때 가능합니다.

영성체가 그리스도의 몸을 먹는 것이라면 성경 말씀을 읽는 것은 그리스도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신자라면 말씀의 봉독과 미사참례를 꾸준히 해야 ‘진실한 신앙인’이 되는 기본 토대가 놓이는 것입니다.

 

 

2009년도에는 다음 사항을 실천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1. 성서 쓰기, 읽기

2. 평일미사 참례하기

3. 주요기도문 다시 외우기


본당 주보성인은 성 정하상 바오로로 정했습니다.


정하상 바오로(1795년-1839년)는 남인 양반의 후예로 경기도 양근 지방 마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정약종 아우구스티누스(1801년 순교)이며, 어머니는 유 체칠리아(1839년 순교)이다.

아버지가 순교할 때에 그는 겨우 일곱 살로 그의 모친과 누이 정 엘리사벳과 함께 풀려났다.

그러나 가산을 몰수당하여 그의 숙부인 정약용 요한에게 의지하고 살았다.

20세 때에 서울로 올라와 조증이 바르바라의 집에 머물면서 목자 없는 조선교회의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교회 재건을 모색하였다.

그는 함경도에 귀양 가 있던 한학자 조동섬 유스티아누스에게서 학문을 배우고, 어떤 역관의 집에 하인으로 들어가 살다가 북경에 가서 세례와 견진성사를 받았다.

주교에게 성직자 한 분을 요청했으나 실패하였다.

그러나 실망하지 않고 성직자 영입을 위해 북경까지 9회, 변문까지 11회나 왕래하였다.

그는 유진길, 조신철 그리고 강진에 유배 가 있는 삼촌 정약용의 자문과 후원으로 끊임없이 성직자 영입 운동을 전개했다.

그들은 로마 교황에게 탄원서를 보내는 한편, 북경 주교에게도 서신 등을 보냄으로써 마침내 조선교회가 파리 외방전교회에 위임되고, 동시에 조선 독립교구로 설정되었다.

마침내 그는 유방제 파치피코 신부를 모셔 들이고, 모방, 샤스탕 신부와 앵베르 범 주교까지 모셔 들여 자신의 집에 모셨다.

앵베르 주교는 정하상 바오로가 사제가 되기에 적당하다고 여겨 라틴어와 신학을 가르치던 중 박해가 일어나자 그는 주교를 피신시키고 순교의 때를 기다렸다. 이때 그는 체포될 경우를 대비하여 “상재상서”를 작성했는데, 이것은 조선교회 최초의 호교론이다. 그는 이 속에 박해의 부당성을 뛰어난 문장으로 논박했기 때문에 조정에서까지 이 글에 대하여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1839년 7월 11일 체포되어  1839년 9월 22일에 서소문 밖에서 순교하였다. 이때 그의 나이는 45세였다. 그는 1925년 7월 5일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시복되었고,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회 창설 200주년을 기해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성되었다.


키치너-워털루 한인천주교회를 시작하면서 성직자 영입을 위해 헌신하신 정하상 바오로 성인이 떠올랐습니다.

사제가 파견되기에는 조금 작은 공동체지만 여러분의 성실한 준비와 열정으로 말미암아 사제가 왔습니다.

서두에 언급한 바와 같이 사제를 영입하는 것은 새로운 마음의 자세를 요구합니다.

편리하게 생각해온 익숙한 것들로부터의 탈피는 결코 쉽지 않은 도전이 될 것입니다.

좀 더 유연한 사고방식으로, 그리고 적극적으로, 열린 마음으로 접근할 때 주보성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과 더불어 살아갈 사제를 통해 자신의 신앙이 더욱 견고하게 되도록 사제를 잘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한국 초대교회는 마치 겨자씨가 자라나서 큰 열매를 맺듯 씨앗 역할을 한 열정적인 몇 사람의 투지와 순교로 시작되었습니다.

우리 공동체도 지금은 작지만 조상님들이 그렇게 해주셨던 것처럼 여러분의 후손들에게 신앙이라는 보배로운 유산을 물려주시기 바랍니다.

주어진 달란트를 땅 속에 묻어두는 어리석음보다 두 달란트, 다섯 달란트, 열 달란트로 성장시키는 것이야말로 신앙인의  참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함께 격려해주고 아껴주는 사랑의 공동체, 긍정적인 마인드로 칭찬해주는 공동체, 무엇보다도 서로의 신앙을 성숙시켜줄 수 있는 만남이 되기를 바랍니다.


2008년 12월 21일


키치너-워털루 한인천주교회

주임신부 김선호 루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