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교형 자매 여러분, 구세주 예수님의 성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구세주 예수님은 인류를 죄와 죽음에서 해방시키기 위해 하느님께서 인간으로 탄생하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구세주 예수님의 탄생은 인류에게 큰 기쁨이며 희망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한 구세주 탄생의 기쁨에서 제외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인류가 수 천 년 기다려온 분이시며 희망의 보루이신 그분의 탄생으로, 인류는 그 누구도 절망의 늪에서 허덕여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을 너무나도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요한 3, 16)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어둠을 거두어 내시고 빛을 주시기 위해 오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인류에게 구원을 주시기 위해 오셨지만 아주 겸손한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구약의 수많은 예언자들이 그분의 오심을 기리고 어서 오시기를 기원했습니다. 그들은 구세주로 오시는 분을 합당한 준비로 맞이하라 명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그분을 맞기에 합당한 준비를 못했습니다. 오늘의 우리도, 성탄절에 우리 마음에 탄생하시는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를 잘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인간의 부족함을 잘 아시는 구세주 예수님은 비천한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자기 조상에 대해서 자랑할 때, 번듯한 조상을 두지 못한 사람들이 실망할까봐 자신의 조상들 중에 천한 사람들이 끼어 있게 하셨습니다. 가난하고 추운 사람들이 멀리할까봐 아주 가난한 모습으로 말구유에서 비참하게 태어나셨습니다. 그분의 탄생 때에 주변에는 유능한 산파도, 푹신한 침구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분의 탄생이 전해지자 그분을 죽이려는 권력자의 음모 때문에 테러의 위협을 당하셨으며, 이집트로 피신해야 하는 떠돌이 이민자 신세가 되셨습니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필립 2, 6-7)
그분은 성모 마리아의 노래대로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시고,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하여 오만한 마음으로 가난한 자들을 멸시하는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시기 위해서 오신 분이십니다. 시메온은 예수님의 탄생을 보며 “이제야 평화로이 이 종이 눈을 감게 되었다”(루카 2, 29-30 참조)고 외쳤습니다. 우리도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오신 구세주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 용약하며 맞이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하며, 오늘 우리가 처한 상황을 신앙 안에서 생각해 봅니다.
아직도 우리나라는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희망하며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신자들이 있다 해도 구세주 탄생의 참 뜻을 망각한 채, 이름뿐인 그리스도신자들이 많아 보입니다. 특히 젊은이들의 사고방식 안에, 예수님은 구세주로서 깊이 뿌리내린 것이 아니라 부모의 성화에 못 이겨 믿어주는 그런 분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아 보입니다. 형식적 신앙이 만연되어 가고 있으며 예수님을 가슴 속에 “주님”으로 모시지 못한 채 허무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한국천주교회는 초기교회 신자들의 신앙 열정을 되살려 그동안 많은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그것은 그간의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의 헌신적인 신앙실천과 선교의 결과였습니다. 그러나 근자에 우리 교회의 현실은 암담하기만 합니다. 냉담자의 가파른 증가, 선교 열의의 퇴보가 그것입니다. 특히 젊은이들이 교회를 멀리하고 있으며 심지어 어린이들마저 부모의 무관심으로 신앙생활을 거절하고 교리반에 참석하지 않습니다. 이 시대야말로 예수님의 탄생의 의미가 모든 가톨릭신자들의 가슴에 깊이 새겨져서, 신앙의 불이 새롭게 활활 타오르게 해야 할 때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힘을 얻습니까?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위안을 받습니까?”(공동번역 필립 2, 1)라고 질문합니다. 우리는 과연 예수님의 성탄을 진심으로 감사하고 기뻐하고 있습니까? 구원을 주시려고 오신 구세주 예수님을 기쁘게 “주님”으로 영접해야 하겠습니다.
세계 경제가 요동치고 있습니다. 인류가 고통의 소용돌이 속에서 힘겨워하고 있습니다. 이럴 때 가난하고 힘든 이들의 처지는 더욱 어려워집니다. 돈이 우상처럼 여겨지고 숭배되어 왔던 현실을 직시할 때, 오늘의 이 사태는 우상이 무너져버린 상황입니다. 먼 옛날 희망의 보루였던 바벨탑이 무너져 내린 것과 다름없는 상황입니다. 인간에게 과연 무엇이 제일 귀중한 것인지를 깨닫게 하는 때이기도 합니다.
어렵고 힘들 때, 우리는 인생의 목적과 의미를 더욱 깊이 묵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구세주 예수님은 희망의 주님으로 오셨습니다. 어둠에 빛을 주시려고 오셨습니다. 그분만이 우리 인생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심을 더 깊이 깨닫게 하는 올 해의 성탄절입니다.
정신적으로, 경제적으로 혹은 신체적으로 말할 수 없는 고통 속에 지내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위로와 희망을 주시려고 오셨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탄생하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힘을 내시기 바랍니다. 위로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분은 죄악에서, 영원한 죽음에서, 해방을 주시려고 오신 분이십니다. 그 어떤 고난 가운데에서도 힘을 낼 수 있도록 위로와 힘을 주시려고 오시는 주님이십니다.
고통 속에 살아가는 이웃에게 따듯한 사랑을 실천하며 성탄절을 지내야 하겠습니다. 오늘의외국인 노동자들처럼 이집트로 피신하여 사셨던 예수님을 생각하며, 희망을 갖고 이 땅에 와서 살아가는 외국인 노동자들에게도 따듯한 사랑의 손길을 전하며 성탄절을 맞이해야 하겠습니다.
어느 해 보다도 우울한 올해의 성탄절에 예수님의 따스한 손길과 사랑이 우리가 실천하는 사랑으로 말미암아 믿지 않는 이들에게도 전달되어 모두가 함께 기뻐하는 성탄절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우리에게 희망을 주시려고, 영생을 주시려고 탄생하신 구세주 예수님을 통해서, 크신 축복이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충만하시기를 기원합니다.
2008년 12월 성탄절 교구장 최기산 (보니파시오)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