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를 마치며
+찬미예수님!
“하늘의 모후님, 기뻐하소서. 알렐루야. 태중에 모시던 아드님께서, 알렐루야. 말씀하신 대로 부활하셨나이다. 알렐루야.”
매일 삼종기도를 바치면서 언제쯤 이 부활 삼종기도를 바치나 손꼽아 기다린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부활 삼종기도를 바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지금 바쁘다는 핑계로 이 좋은 기도를 소홀히하고 있는 제 모습을 보게 됩니다.
지난 주는 저희 집에 한국에서 손님이 방문하셔서 바쁜 한 주간을 보냈습니다. 주님을 알고부터 제 주위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 주님의 역사하심을 강하게 느낍니다. 무디고 더딘 내가 알아차리지 못할 뿐이지 주님 뜻 없이 일어나는 일은 아무것도 없음을 새삼 깨닫는 한주간 이었습니다.
로마서는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보여주는 신앙인의 좋은 규범집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로마서 서두에 우리는 율법이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게 되며 우리의 믿음을 통해서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약속을 실현하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의롭게 된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생명을 주시는 성령을 통해서 하느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영광을 우리도 누릴 수 있지만 그것은 오로지 그분과 함께 고난을 받을 때에만 가능하다고 하셨습니다. 로마서를 통한 바오로 사도의 메시지는 그 시절 로마인들보다 “사랑의 하느님” “자비의 하느님”만을 외치고 있는 지금의 교회에 더 필요합니다.
요즈음 교회는 사랑의 하느님과 용서의 하느님을 너무나 강조한 나머지 고난을 통한 그리스도와의 일치는 어느덧 뒷전이 되어버리고 마냥 즐겁게 찬양만 하고 고통없는 사랑만을 이야기 하면 그리스도의 영광과 하느님의 평화가 얻어지는 것처럼 인식되어 지고 있습니다. 그러한 현세의 교회에 바오로 사도는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누리려면 그분과 함께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 왜 그 옛날 수도자들이 스스로 아무것도 없는 사막에 찾아가 고행을 하며 주님을 찾았겠습니까? 그들이 주님의 사랑과 자비를 알지 못해서 그렇게 척박하고 삭막한 곳에서 자신의 육체를 혹독하게 다루며 주님께 다가가려 했겠습니까? 그분들은 그리스도의 영광과 평화를 누릴 수 있는 확실한 길이 주님 고난에 동참하는 것임을 알고 계셨기에 그렇게 하셨습니다.
“세속에 살고 있는 우리는 어떻게 주님 고난에 동참해야 할까요?” 이 질문에 바오로 사도께서는 명쾌한 해답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여러분의 몸을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바치십시오. 여러분은 현세에 동화되지 말고 정신을 새롭게 하여 여러분 자신이 변화되게 하십시오. 그리하여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하느님 마음에 들며 무엇이 완전한 것인지 분별할 수 있게 하십시오.” (로마서 12장 1-2절)
하느님 마음에 드는 거룩한 산 제물이란 바로 우리 자신을 매일매일 정결하게 주님께 바치는 것입니다. 그분께서 원하시는 기도 생활로 우리 자신을 정결하고 거룩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현세에 동화되지 않고 새로운 정신으로 육적인 것에서 멀어져 영적인 그리스도의 자녀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그 변화 안에서 우리는 주님의 뜻과 주님의 의와 주님의 마음을 분명히 알 수 있게 됩니다.
바오로 사도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나기 위해서는 육적인 것을 버려야 한다고 수없이 말하고 있습니다. 육적인 것이란 작게는 육체의 피곤함을 핑계로 기도생활을 소홀히 하는 것에서부터 크게는 자신의 이익이나 욕망을 위해서 주님의 일과 의를 저버리는 행위들입니다. 육적인 것은 항상 좀더 편안하고 안락한 것을 추구하게 함으로써 우리가 그리스도의 자녀가 되는 것을 방해하고 막아섭니다. 육적인 것에서 벗어나 참된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자세는 바로 이런 것이 아니겠습니까?
“살아도 주님을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님을 위하여 죽어야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든지 죽든지 주님의 것입니다.” 아멘
2009년 부활 2주간 금요일 새벽에
김시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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