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이 주는 행복, 하느님이 주는 행복

김시몬·2007. 5. 3. 오전 9:38:39

예전에 묵상하면서 써 두었던 글을 올립니다.

 

오늘도 내가 버리고 싶지 않은 것을 주님을 위해서 버릴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기도를 하면서 휴~~하고 한숨이 나오는 것은 왜일까요? ^.^

주님, 오직 당신만을 사랑하는 지 마음 알지예. 

주님, 사랑합니데이!  

 

 

성공이 주는 행복 하느님이 주는 행복

 

인생의 평가 기준은 얼마나 이루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성공했느냐이다뭐 거창한 분의 어록에서 나온 말이 아니라 화장실 벽에 누가 적어 놓은 글이다. 그 화장실은 주로 대학원생이나 교수들이 주로 이용하는 화장실이니 아마도 그 중에 누가 써 놓았을 가능성이 높다.

 

누가? 왜 그런 글을 써 놓았을까? 하는 궁금증이 문득 일었다. 아마도 대학원생 중에 졸업이 가까워지고도 자기가 원하는 직장을 구하지 못했거나 자기가 애써 펴낸 연구가 본인의 생각보다 대중에게서 호응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많은 경우 학문적 연구의 성과나 성공이 항상 일반 대중들의 성공 (, 명예 또는 권력)과는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남들이 보기에는 연구가로써 학자로써 성공을 한 것처럼 보여도 본인이 느끼는 만족과는 거리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인간은 무엇을 얼마나 가져야 만족할 수 있을까? 하는 궁금증을 가졌다. 돈은 진이는 명예를 명예를 가진이는 권력을 이 모든 것을 가진이는 무엇을 원할까? 아마도 그것은 영원한 삶일 것이다. 왜냐하면 그 옛날 천하를 통일하고 이 모든 것을 넘치도록 가졌던 진시황이 그토록 원했던 것이 바로 영원히 살수 있는 불로초였으니까. 우리가 일반적으로 부러워하는 그 모든 것을 가진 그도 생의 마지막 순간에는 그토록 갖고 싶은 것을 갈망하며 불행하게 죽어가지 않았을까?

 

그런데 만약 인간에게 영원한 삶이 주어진다면 우리는 만족할 수 있을까? 세상 모든 부와 권력과 명예와 그리고 영원한 삶을 가졌다면 만족할 수 있을까? 잘은 모르겠지만 아닐 것이다. 그 다음에는 또 새로운 뭔가를 요구했을 것이다. 아마도 신의 능력이나 영역을 부러워하지 않았을까?  아무리 채워도 우리의 욕망은 끊임없이 다른 무엇인가를 쫓으라고 요구할 것이다.  아마도 인간이 끝없이 무언가를 갈망하고 남이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질려고 하는 것은 본능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아담도 하느님과 같은 모습으로 창조 되었음에도 하느님과 같아 질것이라는 뱀의 꾀임에 무화과 열매를 먹지 않았을까?  그 욕망이라는 것이 욕심이라는 것이 늘 인간을 불행하게 만들었기에 부처님께서는 모든 것을 버리고 자유로워지라고 한 것일까?

 

내 삶의 기준이 성공도 아니고 성취도 아니라면 어떨까? 내가 행복해지는 기준이 남들이 하지 못한 무엇을 이루는 것이 아니고 남들이 가진 것을 부러워하는 것이 아니라면 난 행복해질까? 단지 그것만으로는 부족할 것이다.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그 텅 빈 공간에 인간의 욕망과는 무관한 무엇인가가 들어와야 행복해질 것이다. , 명예, 권력 이런 것들과 무관한 무엇인가가 들어와야 참 행복에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아마 그것은 인간이 채울 수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본능은 욕망이나 욕심과 너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어떤 순수한 것을 넣어도 욕망과 욕심과 관련된 불순함들이 딸려 들어 올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만약 다 비워서 나에게 텅 빈 공간이 생겼다면 그 공간에는 하느님께서 주시는 진정 순수하고 깨끗한 무언가를 채워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우리는 진정한 행복에 가까이 갈수 있을 것이다.

 

오늘도 주님께서 채워주실 참 행복을 위해 내가 가진 것을 버리게 하소서.

 

2006 8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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