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열며(06.11.30) - 성 안드레아 사도 축일

2006. 11. 30. 오전 9:16:09

글자
2006년 11월 30일 성 안드레아 사도 축일

제1독서
로마서 10,9-18
형제 여러분, 9 예수님은 주님이시라고 입으로 고백하고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셨다고 마음으로 믿으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10 곧 마음으로 믿어 의로움을 얻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을 얻습니다.
11 성경도 “그를 믿는 이는 누구나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으리라.” 하고 말합니다.
12 유다인과 그리스인 사이에 차별이 없습니다. 같은 주님께서 모든 사람의 주님으로서, 당신을 받들어 부르는 모든 이에게 풍성한 은혜를 베푸십니다. 13 과연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는 이는 모두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14 그런데 자기가 믿지 않는 분을 어떻게 받들어 부를 수 있겠습니까? 자기가 들은 적이 없는 분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선포하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 15 파견되지 않았으면 어떻게 선포할 수 있겠습니까? 이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16 그러나 모든 사람이 복음에 순종한 것은 아닙니다. 사실 이사야도 “주님, 저희가 전한 말을 누가 믿었습니까?”하고 말합니다. 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
18 그러나 나는 묻습니다. 그들이 들은 적이 없다는 것입니까? 물론 들었습니다. “그들의 소리는 온 땅으로, 그들의 말은 누리 끝까지 퍼져 나갔다.”


복음 마태오 4,18-22
그때에 18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 호숫가를 지나가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는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아가 호수에 어망을 던지는 것을 보셨다. 그들은 어부였다.
1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 20 그러자 그들은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21 거기에서 더 가시다가 예수님께서 다른 두 형제, 곧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이 배에서 아버지 제베대오와 함께 그물을 손질하는 것을 보시고 그들을 부르셨다.
22 그들은 곧바로 배와 아버지를 버려두고 그분을 따랐다.




먼저 내일부터 12월 4일(월)까지 새벽 묵상 글이 없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제가 오늘부터 꾸르실료 지도를 들어가거든요. 더군다나 이 글을 쓰자마자 컴퓨터도 싸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다시 짐을 푸는 즉, 간석4동 성당으로 이동해서야 새벽 묵상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무튼 며칠 동안 묵상 글이 올라오지 않더라도 오해하지 마시고 12월 5일까지 참아 주시길 바랍니다.

지난 달, 어떤 자매님으로부터 “신부님, 감기 예방 접종을 맞으셔야지요.”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저는 이 말에 “안 됩니다. 저는 감기 예방 접종만 맞으면 꼭 심하게 감기를 앓아요. 더군다나 저는 올해 감기 걸린 적이 없습니다. 제가 워낙 튼튼한 체질이잖아요. 자매님의 성의는 감사하지만, 굳이 맞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지요.

그런데 저 지금 심한 독감으로 시달리고 있습니다. 목이 아파서 말도 제대로 못하겠고, 두통에 몸살 기운까지 겹쳐서 온 몸이 쑤셔 옵니다. 오늘부터 꾸르실료 들어가서 강행군을 해야 하는데 어떻게 보내야 할 지 앞이 캄캄합니다. 그리고 들은 생각……. “그냥 감기 예방 주사 맞을 걸......”

하지만 버스는 이미 떠났지요. 후회한들 감기 걸리지 않은 상태로 다시 되돌아 갈 수는 없습니다. 바로 ‘나는 감기 걸리지 않을 것이다.’라는 교만이 지금의 이런 고생을 하게끔 만든 것이지요.

사실 고집을 부려서 잘 된 적이 그렇게 많은 것 같지 않습니다. 오히려 상대방의 의견을 수렴해서 깊은 생각을 한 뒤 했던 일들이 훨씬 좋은 결과가 있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런데도 우리들은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듣지 않을 때가 참으로 많습니다. 그것은 ‘내가 저 사람보다는 낫다.’는 교만이 활동하기 때문이지요.

오늘 복음에서는 성 안드레아 사도 축일을 맞이하여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부르심의 장면을 떠올리면서 엉뚱한 상상을 해봅니다. 만약 ‘제자가 된다고 돈과 명예가 생기는 것도 아닌데, 예수를 쫓아갈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 때문에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을 거절했다면 어떠했을까요? 오늘의 기쁜 축일도 없었을 테지요. 하지만 예수님의 제자들은 달랐습니다. 자신 안에 가지고 있는 모든 교만들을 내려놓았기 때문에, 일하다말고 그물을 놔두고 그리고 가족과 친척들을 뒤로 한 채 곧바로 예수님을 따를 수 있었습니다.

지금 내 안에 혹시 다른 사람들 위에 올라서려는 교만이 있는지를 반성해 봅니다. 특히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조차도 내 밑에 두려는 교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그래서 모든 이의 하느님이 아니라 나만 잘 되게 하는 나만의 하느님을 외치고 기도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이제 교만이라는 것은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래야 고생하지 않습니다.


감기 조심하세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선물('좋은 글' 중에서)


경제 대공황 시절 미국의 많은 가정들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구입하기는 커녕 하루하루 먹고 살기도 어려웠다. 그래도 우리 아버지는 가족들에게 ”하지만 우리 가족이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놀이도 있지.” 라며 가난에 찌들릴 대로 찌들려 잔뜩 주눅이 든 우리들에게 재미있는 놀이를 제안하셨다.

“상상력을 발휘하는 거야, 서로에게 주고 싶는 선물을 그림으로 그려서 주면 되잖아.”

크리스마스 아침이 되었다. 아버지가 빛나는 검정 리무진과 빨간 색 코터보트를 선물로 받았다. 어머니는 다이아몬드 팔찌와 새 모자를 받았다. 어린 피터는 선물을 받으면서 활짝 웃었다. 수영장 그림과 잡지에서 오려낸 장난감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제는 피터가 부모님께 선물을 드릴 차례였다.

피터는 얼굴 가득 즐거운 표정을 지으며 밝은 색 크레용으로 남자, 여자 그리고 사내 아이가 그려진 그림을 내밀었다. 그리고 그림 밑에 서툰 글씨로 꼬불꼬불하게 힘들어 쓴 한 단어를 보고 가족들은 감격에 겨워 서로 꼭 부둥켜 안았다.

그 단어는 바로 “우리”라는 글자였다.

댓글 1

  • 2006년 12월 2일 오전 11:15

    빠다킹 신부님이 감기가 심하게 걸리신것 같으네요..오늘도 묵상글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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