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열며(06.10.03) - 연중 제26주일 화요일

2006. 10. 3. 오전 9:21:49

글자
2006년 10월 3일 연중 제26주간 화요일

제1독서
욥 3,1-3.11-17.20-23
1 욥이 입을 열어 제 생일을 저주하였다. 2 욥이 말하기 시작하였다. 3 “차라리 없어져 버려라, 내가 태어난 날, ‘사내아이를 배었네!’ 하고 말하던 밤! 11 어찌하여 내가 태중에서 죽지 않았던가? 어찌하여 내가 모태에서 나올 때 숨지지 않았던가? 12 어째서 무릎은 나를 받아 냈던가? 젖은 왜 있어서 내가 빨았던가?
13 나 지금 누워 쉬고 있을 터인데. 잠들어 안식을 누리고 있을 터인데. 14 임금들과 나라의 고관들, 폐허를 제집으로 지은 자들과 함께 있을 터인데. 15 또 금을 소유한 제후들, 제집을 은으로 가득 채운 자들과 함께 있을 터인데. 16 파묻힌 유산아처럼, 빛을 보지 못한 아기들처럼 나 지금 있지 않을 터인데. 17 그곳은 악인들이 소란을 멈추는 곳. 힘 다한 이들이 안식을 누리는 곳. 20 어찌하여 그분께서는 고생하는 이에게 빛을 주시고, 영혼이 쓰라린 이에게 생명을 주시는가?
21 그들은 죽음을 기다리건만, 숨겨진 보물보다 더 찾아 헤매건만 오지 않는구나. 22 그들이 무덤을 얻으면 환호하고 기뻐하며 즐거워하련만. 23 어찌하여 앞길이 보이지 않는 사내에게, 하느님께서 사방을 에워싸 버리시고는 생명을 주시는가?”


복음 루카 9,51-56
51 하늘에 올라가실 때가 차자,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시려고 마음을 굳히셨다.
52 그래서 당신에 앞서 심부름꾼들을 보내셨다. 그들은 예수님을 모실 준비를 하려고 길을 떠나 사마리아인들의 한 마을로 들어갔다. 53 그러나 사마리아인들은 예수님을 맞아들이지 않았다. 그분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54 야고보와 요한 제자가 그것을 보고, “주님, 저희가 하늘에서 불을 불러 내려 저들을 불살라 버리기를 원하십니까?” 하고 물었다.
55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그들을 꾸짖으셨다. 56 그리하여 그들은 다른 마을로 갔다.




어느 날 마당에서 토끼에게 풀을 먹이던 아이가 엄마에게 물었습니다.

“엄마, 토끼는 어디를 잡아야 꼼짝 못하지요?”

어머니가 대답했습니다.

“그야 귀를 잡으면 되지.”

바로 그 때 고양이 한 마리가 담장 위를 지나갔습니다. 이 모습을 보고는 아이가 다시 묻습니다.

“엄마, 그러면 고양이는 어디를 잡아야 하지요?”

“목덜미를 잡으면 되지.”

그리고 이번에는 어머니가 오히려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그러면 사람은 어디를 잡아야겠니?”

아이는 곧바로 대답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도대체 어디를 잡아야 하는지를 모르겠습니다. 귀를 잡는 것도, 목덜미를 잡는 것도 꼼짝 못하게 하는 것은 아닌 것 같거든요. 그런데 어머니는 답을 말씀해 주시지 않았습니다.

여러분들이 생각하시기에 사람은 어디를 잡아야 꼼짝하지 못할까요?

이제 아이는 자라서 엄마 나이만한 어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깨달았다고 하네요. 사람은 목덜미를 잡아도, 또 팔을 잡아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오직 마음을 잡아야 제대로 잡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들은 과연 이 아이의 깨달음처럼 사람들의 마음을 잡으려고 하나요? 혹시 다른 동물 잡듯이 한 부위만을 열심히 잡으려고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예수님께서는 바로 우리 사람들의 마음을 잡으려고 최선을 다하셨던 분이십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은 그렇지가 않았지요.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사마리아인들의 마을로 들어가시려 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예수님을 무시하는지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이에 제자들이 말합니다.

“주님, 저희가 하늘에서 불을 불러 낼 저들을 불살라 버리기를 원하십니까?”

바로 우리들의 일반적인 모습들이지요. 우리에게 서운한 일을 하거나 잘못하면 곧바로 보복하려는 마음. 그래야 상대방도 나를 알아 줄 수 있다고 착각합니다. 어쩌면 이 모습이 사람의 마음을 잡으려는 것이 아니라, 다른 부분을 잡으려고 애쓰는 모습이라는 것이지요.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다른 부분을 잡지 않습니다. 마음을 잡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에, 오히려 제자들을 꾸짖으면서 다른 마을로 가셨던 것입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처벌하기 위해 오신 하느님이 아니라,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하느님이십니다.

나는 사람들의 어디를 잡으려고 했을까요? 예수님처럼 마음을 잡기 위해서 사랑을 실천하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나요? 아니면 제자들처럼 나의 힘으로써 사람을 잡으려고 했었던 것은 아닐까요?


나보다 약하다고 강압적으로 명령하지 맙시다.



실패가 의미하는 것들('좋은 생각' 중에서)
순간의 실패를 영원한 실패로 착각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당신에게 드릴 누군가의 말이 있습니다.

실패는 당신이 실패자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당신이 아직 성공하지 못하였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실패는 당신이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당신이 무언가 배웠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패는 당신이 소유하지 못한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당신이 다른 방법을 배웠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패는 당신이 열등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당신이 완전하지 못함을 의미한다.

실패는 당신이 생을 낭비하였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당신이 새 출발할 이유를 가졌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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