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 출사 ( 08.09.05 )

2008. 9. 9. 오전 11:4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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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덕수궁의 역사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서 선조가 의주까지 피난갔다가 서울로 돌아와 보니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이 모두 불타버려서 왕이 거처할 왕궁이 없어서 왕족의 집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완전했던 월산대군가를 행궁으로 삼아 왕이 거처하게 되었다.

  1608년 2월에 선조는 행궁의 침전에서 돌아가시고 광해군이 행궁의 서청에서 왕위에 즉위하였다. 광해군 3년(1611)에 행궁을 경운궁 이라 하였다. 경운궁의 정문은 원래 정남쪽의 인화문이었으나, 다시 지으면서 동쪽에 있던 대안문을 수리하고 이름도 대한문(大漢門)으로 고쳐 정문으로 삼았다. 1906년에는 화재로 불탔던 중화전이 복구되었다.

  석조전은 1900년에 착공하여 1909년에 완공되었다. 1907년 7월 20일에 일본침략자들의 강압에 의하여 고종이 순종에게 제위를 전위 하자 선제가 거처하는 궁이 되어 덕수궁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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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덕수궁 돌담길 전설-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덕수궁 돌담길 전설이란, 사랑하는 두 남녀가 덕수궁 돌담길을 함께 걸으면 오래지 않아 헤어지게 된다는 전설이다. 그러나 실제로 덕수궁 돌담길을 걸은 뒤 이별한 연인들이 많은지는 확인된 바 없다. 아마도 덕수궁 돌담길이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가 된 것을 시기한 누군가가 장난으로 퍼뜨린 것으로 추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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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덕수궁 돌담길 / 진송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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