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 전례의 쇄신

1999. 10. 29. 오후 8:51:33

글자

 

전례의 쇄신

요셉 라칭거 추기경과 비토리오 메쏘리의 대담

 

정종휴 옮김(전남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보존해야 할 풍요한 재산

 

"추기경님, 잠깐 전례의 개혁에 대해 이야기하실까요? 이 문제는 가장 많이 다루어지고 가장 성가신 문제 중에 하나입니다. 또한 이 문제는 악마와 이단의 냄새가 난다면서 전례의 몇몇 쇄신에 반항하는 주교, 마르셀 르페부르 몬시뇰의 비장한 전일주의가 보이는 반공의회적 전통주의적 반응의 하나입니다……."

 

추기경은 정확히 표현하려고 내 말을 바로 가로막는다. "전례 개혁의 특정한 구체적인 종류에 대하여는, 그리고 무엇보다 일정한 전례론자들의 입장에 대하여 곤혹과 불쾌를 느끼는 사람들의 범위는 반공의회적인 전통주의자들의 범위보다 훨씬 넓습니다. 달리 말하면, 그만한 불만을 털어놓는 모든 이가 그렇다고 이미 전일주의자인 것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극단적인 전통주의를 멀리하는 가톨릭 신자에게도 공의회 이후의 일정한 전례론에 대하여 의심을 품거나 항의하는 것은 정당하다는 것을 말씀하시려는지요? 향수에 빠지지 않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완전히 받아들일 준비가 된 가톨릭 신자에게도 말입니다."

 

라칭거는 답한다. "전례 이해의 다양한 방법의 이면에는 거의 언제나 그렇듯이 교회의 이해, 따라서 하느님의 이해, 하느님에 대한 인간의 관계 이해의 다양한 방법이 있습니다. 전례의 문제는 결코 주변 문제가 아닙니다. 전례가 그리스도인 신앙의 핵심이라는 점을 상기시킨 것은 다름아닌 제2차 바티칸 공의회였습니다."

 

로마에서의 소임이 중요하다보니, 요셉 라칭거는 (시간도 기회도 모자라서) 하고 싶어하는 학술 논문과 저서의 출간을 계속할 수 없는 입장이다. 전례라는 주제가 그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는 그가 근자에 공간한 몇 안되는 저적의 하나가 이 주제를 다룬 것이라는 사실이 보여 준다. 그의 '신앙의 향연'(Das Fest des Glaubens)이라는 책이 바로 그러하다. 그 책은 그가 벌써 제2차 공의회 종료 10년 후에 경악하여 표명한, 전례와 '적응'(aggiornamento)의 한 특정한 이해야 관한 짧은 논문집이다.

 

나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10년'을 주제로 한 제명제"라는 1975년의 원고에서 한 절을 뽑아 읽는다. "민족어로의 전례의 개방은 근거 있고 정당한 것이다. 트리엔트 공의회도 그 가능성을 제시한 바이다. 새로운 전례 양식의 교육은 트리엔트 공의회와 모순된다고 일부의 전일주의자들과 함께 주장함은 참으로 그릇된 것이다. 전례 개혁의 개별적인 발걸음들이 얼마나 진정한 개선이었는지 아니면 오히려 깎아 내린 것이었는지, 그것들이 사목상 현명했는지 어리석었는지 아니면 무모했는지는 이 자리에서는 미결인 채로 남아 있음에 틀림없다."

 

나는 당시 아직 신학 교수이던, 그러나 이미 교황청 국제 신학자 위원회의 위원이던 요셉 라칭거의 논문을 더 읽어 간다. "분명한 것은 전례를 단순화하고 되도록 이해할 수 있게 하면서도, 교회의 행위 속에 하느님의 역사하심의 신비가, 즉 사제와 공동체에게는 건드릴 수 없는 전례의 핵심이 미리 주어져 있다는 것과 그 전교회적 성격은 고스란히 지켜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라칭거 교수는 경고한다. "전례를 본당의 동아리 모임으로 전락시키고 전례를 사진판 일간지를 이해하는 수준으로 깎아 내리는 합리적 천박화, 쓸데없는 잡담, 사목적 유치함에 대하여는 지금까지 했던 것보다 훨씬 단호히 대처해야 한다. 현재 진행 중인 개혁도, 특히 예식 부문에서의 개혁도 그러한 관점에서 재고되어야 한다."

 

내가 추기경의 이 논술을 읽고 있는 동안 추기경은 언제나처럼 주의 깊고 인내롭게 내 말을 듣는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났다. 이러한 경고의 저자는 이젠 단순한 학자가 아니고, 교회의 정통성에 관한 파수꾼이다. 오늘의 라칭거, 신앙교리성 장관은 이 점을 확인할 것인가?

 

그는 지체없이 내게 답한다. "철두철미 그렇습니다. 제가 이 글을 쓴 이래, 보존되어야 할 많은 측면이 오히려 소홀해졌고, 당시까지만도 남아 있던 많은 보배가 허비되어 버렸어요. 1975년 당시에는 많은 동료 신학자들이 제 이야기에 분노하거나 적어도 깜짝 놀랐지요. 지금은 그 가운데 많은 분들이 제 이야기가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옳다고 인정하고 있습니다."

6년 후, 위에서 언급한 책 속에서, 다음과 같은 말로, 이보다 심각한 (전례상의) 오해와 오류가 확인되었다고 하겠다. "사람들로 하여금 공의회 후의 맥빠진 전례를 느끼게 하는 차디찬 분위기, 알맹이 없는 인위적인 내용을 가진 진부한 평준화 취향에서 비록한 전례의 지루함이……."

 

...... 나머지 전문은 첨부 파일에 있습니다.

 

미사 중의 언어

다양한 전례 형태

거룩한 것을 위한 자리

교회 음악

장엄함은 '개선 영광 편중주의'가 아니다.

성체 : 믿음의 중심

"미사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사목, 1993년 9월호 / 인천교구 시노드 홈페이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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