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징] 전례 안의 침묵

2003. 7. 14. 오후 3:00:02

글자

 

전례 안의 '침묵'

 

 

전례는 거행이다. 정해진 순서에 따라 기도하고 말하고(낭독하고) 노래함으로써 하느님과 대화의 자리를 갖는 것이다. 하지만 전례 안에서 '침묵'도 있다. 침묵은 전례 안에서 본질적인 요소이다.

교회는 교우들의 능동적인 전례 참여를 촉진하기 위해 합당한 때에 필요한 침묵을 지켜야 하고, 미사 중의 침묵도 미사의 한 부분으로 제 때에 지켜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전례헌장 30항; 성음악 훈령 17항; 미사 전례 총지침 23항). 이렇게 침묵은 노래, 기도, 동작 등과 함께 전례의 기본 요소이다. 이 침묵은 자신을 되돌아보고, 하느님의 뜻에 귀를 기울이며, 하느님께 찬미와 영광을 드리기 위해 말을 하지 않는 '창조적 침묵'이다. 미사 중에 공동체는 다양한 성격의 침묵을 지키게 된다.

 

① 마음을 준비하는 침묵이다. 공동체가 하느님 대전에 서 있음을 생각하고 하느님께 대한 열심한 마음을 가다듬기 위한 침묵이다. 가령 참회예식 때는 양심을 성찰하고 죄를 뉘우치며 반성하기 위해 침묵한다. 그리고 사제가 본기도와 영성체 후 기도를 시작할 때 '기도합시다'하고 공동체를 초대하면, 교우들은 침묵을 지키면서 사제의 기도에 동참할 준비를 갖추고, 동시에 자신들의 기도를 하느님께 바친다. 또한 보편 지향 기도(신자들의 기도)를 바칠 때 공동체는 침묵을 지킴으로써 기도지향에 동의함을 표현하기도 한다. 이런 것들이 마음을 준비하는 침묵들에 해당된다.

 

② 사제가 드리는 기도를 경청하고 이해하며, 그 기도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한 침묵이 있다. 곧 사제가 공동체의 이름으로 하느님께 '직무기도'를 바칠 때, 교우들은 사제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며 사제와 함께 기도를 드리게 된다. 곧 공적인 기도와 개인기도의 결합을 이루는 내면화를 위한 침묵이다.

 

③ 말씀을 듣기 위한 침묵이다. 이 침묵은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느님의 소리를 귀담아 듣기 위한 가장 적극적인 자세이다. '듣는 것'과 '읽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이다. 미사에 가기 전에 우리는 그날 미사 성서를 읽고 묵상해야 하지만, 전례 중에 하느님께서 말씀하시는 그 순간에는 듣는 자세를 취해야 한다. 전례 중에 하느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순간에 교우들이 '매일 미사'책을 함께 보거나 읽는 것은 하느님의 말씀을 경청하는 모습이 아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말씀하시는 분의 권위를 인정하고, 그분의 뜻을 따르며, 그분의 말씀을 내 생명의 양식으로 삼겠다는 마음의 자세까지 드러내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④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난 다음 지켜야 하는 침묵이 있다. 하느님의 말씀은 한마디 한마디에 깊은 뜻이 있고 소중하기 때문에, 여기에 알맞은 응답을 하려면 그 말씀을 되새기고 묵상할 여유가 있어야 한다. 하느님의 말씀은 성체와 더불어 미사 전례에서 제공하는 영신의 양식이다. 성체의 양식을 취한 후에 마음 속으로 하느님을 찬미하며 기도드리는 침묵을 필요로 하듯이, 말씀의 양식을 받은 다음에도 마음 속에 들어오신 하느님을 고요히 음미할 침묵의 시간이 필요하다.

 

⑤ 기도하기 위한 침묵이다. 영성체 전후에 공동체는 침묵 중에 감사기도를 드리게 된다. 특히 영성체 후 그날 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다시 한번 되새기면서, 침묵 중에 감사기도를 드릴 수 있는 것은 특권이며 은총이다.

 

이렇게 침묵은 전례의 한가지 필수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그것은 내면화의 순간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곧 침묵은 교회의 공적인 기도와 집회 구성원 각자의 개인기도 사이의 중요 연결을 합치시키는 것이다.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미사에서 침묵은 여러 곳에서 그 자리를 찾아본다. 하지만 많은 곳에서 이 침묵이 냉대 받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렇다고 전례 거행에서 불균형의 원인이 되는 지나치게 긴 침묵은 피해야 한다. 침묵은 전례 전체에서 중요하며 전례를 도움이 되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적당하고 알맞은 침묵을 통해 전례가 더욱 아름답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공동체는 함께 노력해야 할 것이다.

 

<전례생활, 제6호(2002년 1월 1일), 나기정 다니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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