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라오디게이아: 성당터 유물5

2001. 8. 16. 오전 10:50:29

글자

 

로마 제국의 도미시아누스 황제(81-96년 재위)는 말년에 자신을 '주님이요 하느님'(Dominus et Deus)이라 자처하며 황제 숭배를 강요했고, 이를 거부하는 유대교인과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요한 묵시록 저자는 에페소 일대 아시아 속주 일곱 교회에 편지를 보내 신앙을 굳건히 지킬 것을 촉구했습니다. 성서에서 '일곱'이란 전부를 가르키는 충만한 숫자이기 때문에 묵시록의 일곱 교회는 세상 모든 교회에 보내는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에페소 일대 아시아 지방은 사도 바오로의 주 활동 무대이기도 했지만 1세기 말엽 요한계 문헌이 씌어질 당시 이 지역은 사도 요한의 영향력이 컸습니다. 그래서 비잔틴 시대에 지어진 거의 모든 성당들이 요한 성당으로 명명되었지만 바오로 성당은 하나도 없다고 합니다.

 

에페소에서 동쪽 내륙으로 176km 떨어진 데니즐리에서 북쪽으로 8km 떨어진 곳에 라오디게이아(Laodikeia) 폐허인 나지막한 언덕이 있습니다. 이곳의 현재 이름은 라오디케이아(Laodikeia)로 시리아의 셀레우코스 왕조 안티오쿠스 2세(기원전 261-252년 재위)가 세운 도시이며 그 이름은 자신의 왕비 이름을 따서 지었습니다. 사도 바오로가 제3차 전도여행중(53-58년경) 에페소에서 27개월간 전도할 때 골로사이 출신 제자 에바프라가 골로사이 교회(골로 1,6-7), 히에라폴리스와 라오디게이아 교회를 세웠다고 추정하고 있습니다(골로 4,12-13).

 

요한 묵시록 저자는 라오디게이아 교회가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웠으나 영적으로 가난했기 때문에 호되게 꾸짖었습니다(묵시 3,14-22). "네가 이렇게 뜨겁지도 차지도 않고 미지근하기만 하니 나는 너를 내 입에서 뱉어버리겠다"(묵시 3,16). 13세기까지 비잔틴 제국에 속했던 라오디게이아는 그 후 셀주크 투르크족에게 넘어갔고, 1961-1963년 캐나다 라발 대학교 고고학팀이 소규모 발굴 작업을 했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유적은 땅속에 묻혀 있다고 합니다.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해외 성인 성지

목록 전체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