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미예수님^^
소망님께서 가톨릭교회에 대하여 질문을 하심에 따라 가톨릭교회교리서를 중심으로 설명을 해드립니다.
"연옥"이라고 함은 가톨릭에서,
구원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이 <회개치 않고 죽었을 경우, 혹은 죄를 지닌채 죽었을 경우>
하느님의 무구한 지복직관(천국)에 들기 전, 지은 죄를 정화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연옥"이라 함은 <구원을 받지 못한 영혼이 죽어서 구원을 받은 그러한 곳이 아니고>,
혹은 <죽은 후에도, 이승에서 미사나 기도를 해 주면 지옥 갈 사람이 천당으로 가는 즉 구원을 받는 그러한 사후 구원이 아님>을 확실하게 알려 드립니다.
연옥은 이승에서 구원(=의화=>세례로서 죄를 용서받고 하느님의 자녀로 거듭 남)을 받은 사람이 성화된 상태로 죽지 않았을 경우,,
주님의 심판에 의해,
하느님의 지복직관에 들기 전(=천국에 들기전=하느님의 신성에 온전히 참여하기 전)에, 자신이 이승에서 지은 죄를 정화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느님을 떠나 저주받은 곳을 지옥이라고 합니다,
연옥은 하느님을 영원히 떠나는 벌이 아니라, 하느님으로부터 영혼을 완벽하게 정화 받는 상태로서, 하느님과 함께 있는 곳이니 넓은 의미에서는 천국에 포함될 것입니다.)
그리고 구원은 의화(=칭의=죄를 용서 받고 하느님의 자녀로 거듭남)을 의미하느냐?
아니면 의회된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의 복음대로 잘 살아 심판시 상벌을 받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조금 달라 집니다.
개신교나 가톨릭이나 의화(의인=구원)는 <성령의 은총안에서 예수님을 믿음으로서 받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의회된 사람일지라도,
언제나 회개를 하고 주님의 은총안에서 살기를 가르치는것 또한 같습니다.
성공회나 장로교, 루터교, 감리교 등의 개신교라고 하여,
의화(=칭의=죄를 용서받고 거듭난 그리스도인)되었다 하여,
평소 거룩하게 살지도 않고, 또한 회개치도 않고,
마구 큰 죄를 짓고 살았을 경우는 (죽은 후) 구원을 잃을수 잃을 수 있다=지옥에 갈수 있다라고 합니다.
간혹 의화받은 그리스도인의 평상시의 삶에서 회개를 통한 성화의 삶을 살것을 거부하는 일부 개신교 종파에서는
<예수만 믿으면 무조건 천당행>이라는 주장을 합니다만.
이러한 주장은 개신교의 주류들인 성공회나 루터교나 장로교 등의 가르침과는 다른 것입니다.
물론 가톨릭과도 다르지요.^^
이러한 주장은 거짓된 주장임이라는 것이 성경의가르칩니다.
이 점을 잘 인식하심이 옳을 것 같습니다.
가톨릭교회교리서와 성경을 통해서 정리를 하여 보겟습니다.
<<<연옥에 대하여>>>
가톨릭교회교리서 1031>>
교회는 선택된 이들이 거치는 이러한 정화를 "연옥"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단죄받은 이들이 받는 벌과는 완전히 구별된다.---
- 개신교에서의 연옥의 가르침은 성경에 없다고 하지만 성경을 면밀하게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다만 "원죄"나 "삼위일체"의 용어처럼 성경에 "연옥이라는 용어가 없을 뿐"입니다.
"심판"에 대한 언급과 "죄에 대한 용서에 대한 계시"는 이미 성서안에서 충분히 발견되고 있습니다. 몇가지만.
마태오 12.31
" 성령을 거슬러 모욕하는 죄만은 --- <<현세에서나 내세에서나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라는 주님의 말씀과.
베드로 1. 17
" 여러분은 <<각자의 업적에 따라서 공정하게 판단하시는 분>>을 아버지로 모시고 있으니 ---- 두려운 마음으로 지내십시요." 라는 베드로의 말이나,
고린토1, 3.13-15
" 이제 심판의 날이 오면 ----심판의 날은 불을 몰고 오겠고, --- 그 불은 각자의 업적을 심판하여 그 진가를 밝혀 줄 것입니다.--- 그 불속에서 살아나오는 사람같이 구원을 받습니다."
1. 마태 12. 31의 말씀에서 <내세라는 말은 영원히라는 말을 강조한다고 성서 학자들이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세라는 말 대산에 영원히 라는 의미로 받아 드린다 하더라도,
"죄를 영원히 사함을 받을 수 없다"라는 말은, 영원이 아닌 "순간 혹은 어떤 특정 시기"에도 "사함을 받을 수 있다"는 의미가 됩니다.
2. 베드로는 <업적에 따라 공정하게 판단>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연옥의 개념은 그리스도인의 <업적에 의해서 공정하게 심판되어 잠벌과 정화를 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승에서의 죄로 얼룩되어진 의화받은 사람들은,
연옥 정화를 통해 영혼이 하느님의 신성에 온전히 참요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순수 무구한 하느님의 신성(하느님의 나라)에 이승에서 얼룩진 죄허물을 가지고 들어갈수는 없을 것입니다.
3. 바울로는 심판의 불에 견디어 나오는 사람은 업적이 판단된다>라고 합니다.
연옥의 정화를 교회는 예로부터 <불의 정화>라고 하였습니다.
성서에서는 간혹 성령님의 은총을 불로서 비유하기도 합니다.
영혼을 정화시키는 "불은 정화"되는 감관적인 고통을 수반하겠지만,
그 불은 온누리를 새롭게 하시는 성령님의 은총의 불로서 연옥 영혼은 정회될 것입니다.
연옥의 정화는 사소한 죄로 오염이 된 그리스도인의 영혼을 더욱 더 빛나게 해 주어 천국에서 <하느님의 신성과 합일>하는데 아무런 장애가 없어질 것입니다.
참고로
초대 교부들인 성 암부로시우스, 성 아우구스티누스 등의 저서등에서도 연옥에 대한 믿음은 볼수가 있습니다.
성서가 381년도에 다마소 교황에 의해서 로마교회회의에서 확정되고 397년도 카르타고 교회회에서 거듭 확인되기 이전부터,
교부들은 서간을 통해서 <업적에 대한 심판-잠벌의 보상과 정화라는 연옥에 대한 개념>을 믿어 왔음을 알수가 있습니다.
어떤 개신교신자는 잘 모르면서도
- 연옥은 "천국과 지옥 사이의 중간장소"인것처럼, 죽어서 구원을 받는 사후 구원의 장소로 말하고 있지만,^^
연옥은 그러한 개념이 아님을 위에서 고찰하였습니다.
연옥은 천국과지옥의 "중간 장소"라더지 "사후에도 구원을 받는 장소" 등으로 표현함은 가당치 않은 것입니다.
교회는,
연옥의 정화를, 불신자가 죽어서 받는 영벌(지옥)에 대비되는 표현으로
"잠벌"의 의미로 설명을 합니다.
즉 베드로 서간의 설명처럼 "자기 업적에 따른 심판" 에 따라
이승에서 지은 죄의 댓가인 벌을 의미하는 잠벌(잠시 받는 벌)이며 이를 통해 영혼의 정화를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그리스도인들이라도 이승에서 죄를 지을수 있으며 또한 죄를 회개하지 않고 죽을 수 있으니
당연히 심판에 의하여 죄에 해당하는 벌을 받아야 올바른 심판이 될 것입니다.
이 심판은 하느님의 공의로움과도 합치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연옥의 정화는 하느님의 자비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연옥영혼은 온전히 하느님께 합일하는 기쁨을 아직 누리지 못할 지라고,
하느님안에서 "정화되는 기쁨"은 가득할 것입니다.
"간혹 가톨릭신자들안에서도 발견되는 <연옥 영혼은 불쌍하다.>라고 하는표현이 있지만 사실 제가 보기에는^^
연옥 영혼이 정화에 따른 <감각적인 고통을 느낄지라도=그래서 불쌍할 지라도^^>
하느님안에서 정화되는 기쁨을 가지고 있으므로 "불쌍하다"고 표현하는 것은 하느님의 자비심에 좀 거슬리는 표현처럼 보입니다.^^"(이 의견은 제 견해입니다.^^)
그리고 최후의 심판(공심판) 후 즉 마지막 날 이후로는 연옥의 상태는 사라질것입니다.
왜냐하면 마지막 날(심판) 이후는
영원한 복락(샤하늘과 새땅) 과 영원한 슬픔(하느님으로부터 유리되는 지옥)만 존재하기 때문이지요.
그러므로 연옥은 항구적인 중간장소라던지 제3장소가 아닙니다.
연옥은 가톨릭교회교리서에서 가르치는 것처럼,
(((가톨릭교회교리서)))
<<1030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 안에서 죽었으나 완전히 정화되지 않은 사람들은 영원한 구원이 보장되기는 하지만, 하늘의 기쁨으로 들어가기에 필요한 거룩함을 얻기 위하여 죽은 다음에 정화를 거쳐야 한다.
1031 교회는 선택된 이들이 거치는 이러한 정화를 '연옥'>>이라고 함을 잘 이해하여야 할 것입니다.
[답변 1에 대한 항의]-익명
"참고로
초대 교부들인 성 테르툴리아노, 성 암부로시우스, 성 아우구스티누스등의 저서등에서도 연옥에 대한 믿음은 볼수가 있습니다."
쓰신 글에 대한 저의 반발은 이렇습니다. 성 암부로스와 성 어거스틴,, 두 주교님을 저는 존경합니다. 하느님께서 성 암부로시우스를 내지 않으셨다면, 성 아우구스티누스 주교님이 계시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망령된 일인지 몰라도, 저는 그렇게까지 표현하고 싶습니다. 터툴리안은 두분과 비길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최소한,, 제가 속해있는 소망교회에서는 목사님께서 축도 하실 때 - 강복 선언이라고 이해하면 무리가 없으시겠지요 - 터툴리안으로부터 전승한 것으로 판단하시는 동작을 취하십니다. 팔을 벌려 십자를 만드십니다. 그렇긴 하지만,, 목사님의 신학이 터툴리안의 신학을 계승하였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말할것도 없이, 역사적 프로테스탄트의 후예로서, 루터 박사님의 신학과 요한 칼빈님의 신학을 가르치십니다. 그 신학은 성 어거스틴으로부터 전승한, 가톨릭 신학입니다. 물론,, 라칭거 추기경님께서는 주교님의 '이중 예정'교리를 인정하지 않으실테니까, 제 판단을 정죄하실지도 모르겠지요.
성 안토니의 하느님이신 성 어거스틴의 하느님께서 저희의 하느님이 되어주시길 바라지만, 몬타누스와 테르툴리아누스의 하느님을 저의 하느님으로 모시고 싶지 않습니다. 몬타누스, 입신, 성령의 소리라는 두 여자의 예언(예언 기도), 엑스타시, 임박한 예수님의 재림 선언 - 성령께서 말씀하시는, 터툴리안의 몬타누스파 가담후의 활동, 더 엄격한 터툴리안파를 이끔, 죽을때까지......
이상은 제가 터툴리안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것 중의 일부입니다. 도발적인 질문을 하겠습니다.
"그쪽분께서는 어떤 사람처럼 - 제가 지목하고 싶은 사람은 이곳,주교회의에서 가끔 보는 필명 한시몬씨입니다 - 마틴 루터 박사님과 요한 칼빈님을 싫어하면서도,, 터툴리안은 존경해마지 않는,, 그런 사람과 같은 인식을 하고 계십니까. 아니길 바랍니다."
"계속해서 터툴리안 앞에 '성'을 붙여주시는 건 - 항상은 아니었을 겁니다. 그점, 고맙게 생각합니다 - 무슨 이유입니까."
"혹여 - 그렇지 않기를 바랍니다 - 테르툴리아노 성인이라 말하는 것이 가하다고 생각한다면, 이 질문도 드립니다. 성 몬타누스, 성 노바투스,, 이런 표현은 가하다고 판단하십니까, 불가하다고 판단하십니까."
2003년5월27일화요일오전2시30분경,충청도에서 ㅠ.ㅠ.. 입력합니다.
[항의에 대한 답변]-조정제
무심코 인용하다가,
테르툴리아누스에게 교부 칭호와 성자를 붙여 항의를 받게되었습니다.^^
오히려 이 항의는 정확한 정보와 올바른 지혜를 위한 하느님의 뜻으로 보입니다.^^(수정하겠습니다.)
테르툴리아누스는 초기 서방교회(동방에 대비하여)의 위대한 신학자였으며 처음부터 탁월한 신앙심으로 교부의 "반열에 설 정도"였지만,
후에 이단에 빠져 들었으며, 회개치않고 오히려 교회를 공격하며 이단자로서 생을 마친 분입니다.
테르툴리아누스의 영향으로 북아프리카 교회에는 도나투스 이단이 창궐하여 교회를 분열시키다가 결국 이슬람에게 멸망을 당했습니다.
이 분의 빼어난 이론(삼위일체에 대한)과 지독하리만큼 엄격한 경건주의에 매력을 느끼는 신자나 성직자들이 많아서인지 무심코 이분에게 교부라던지, <성>자를 부치지만,
ㅠ.ㅍ..님의 지적대로 이분은 교회를 떠나 이단자로서 죽었기에,
이분에게 교부라던지 <성>자라던지 아직도 삭제되지않고 있다는 서방전례력안에서 <성인축일>은 당연히 삭제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항의에 감사드리며.^^
[답변 2]-한시몬
소망님이 올리신 연옥에 대한 질문과 관련하여 조 정제님의 설명에 추가로 참고적인 정보를 드린다면, 위령성월인 11월에 인천 가톨릭 대학교 겨레문화연구소장님으로 계시는 최 기산 보니파시오 신부님께서 쓰신 글을 아래에 올려드리오니 함께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제 목: 연옥에 대해 생각한다
쓴 이: 최기산 보니파시오. 인천 가톨릭 대학교 겨레문화연구소장
우수수 낙엽이 떨어져 뒹구는 계절이다. 스산한 바람결에 휘날리는 낙엽 하나하나에 진리가 담겨있다. 어제의 그 파랗던 낙엽이 아니었던가. 인간도 시들어지는 때가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죽음을 비켜갈 사람은 아무도 없다. 태고 이래로 죽음을 이겨보려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동물은 죽음을 숙명으로 받아들이지만 인간은 극복해 보려고 노력한다. 11월은 죽음을 특별히 생각해 보고, 연옥 영혼들을 위해 기도하는 위령성월이다.
누구에게나 다가올 죽음인데도 나에게는 비켜갈 것만 같은 죽음! 그것은 인생의 수수께끼 가운데 절정이다. 과연 죽음은 내게 언제 들이닥칠 것인가? 아무도 모른다. 하느님만이 아신다. 인간은 죽음 앞에서 절치 통곡하게 된다. 울고 또 울고 슬픔은 눈물이 되어 흐르고 또 흐른다.
과연 그리스도인들에게 죽음이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 그저 슬프고 두려움만 주는 것인가? 아니다. 믿는 이들에게는 죽음이 새로운 삶으로 옮아가는 관문이다. "교우 여러분, 죽은 사람들에 관해서 여러분이 알아두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희망을 가지지 못하는 사람들처럼 슬퍼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것을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를 믿다가 죽은 사람들을 하느님께서 예수와 함께 생명의 나라로 데려가실 것을 믿습니다"(1데살 4,13-14).
어떤 종교에서는 인간이 죽으면 다시 환생한다고 믿는다.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았는지에 따라, 더 좋게 태어나거나 더 나쁘게 태어난다고 믿는다. 때로는 버러지로 태어나기도 하고 돼지로 태어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은 환생도 전생도 믿지 않는다. 우리는 영생을 믿는다. 영생은 하느님 나라에서 누리게 된다. 또한 개신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천국에 가느냐, 지옥에 가느냐로 결판난다고 믿는다. 천국에 갈 사람은 여기저기 거치지 않고 직접 가는 것이고 지옥에 갈 사람도 직접 가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가톨릭 교회는 연옥이 있음을 천명하고 있다. 사람이 죽으면 천국으로 가기 전 정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물론 죄도, 그 벌도 없는 완전히 정화된 사람은 천국으로 직행할 것이다. 그런데 인간이 어찌 완전히 정화된 상태로 죽을 수 있는가 말이다. 그러므로 정화가 필요한 사람은 죽어서라도 정화를 거쳐야 하며 이를 ’연옥’이라고 부른다. 일단 연옥에 가면 언젠가는 하늘나라로 갈 수 있기에 지극히 희망적이다. 물론 여기서 연옥을 어떤 장소의 개념으로 알아들을 수는 없다. 그러나 인간의 인식의 한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장소의 개념으로 알아들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연 옥
연옥에 대한 신앙교리는 피렌체 공의회와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확정되었다. 교회가 연옥이 있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성서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것은 여러분의 믿음을 순수하게 만들기 위한 것입니다. 결국 없어지고 말 황금도 불로 단련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황금보다 훨씬 더 귀한 여러분의 믿음은 많은 단련을 받아 순수한 것이 되어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는 날에 칭찬과 영광과 영예를 받을 것입니다"(1베드 1,7). "만일 그 집이 불에 타버리면 그는 낭패를 볼 것입니다. 그러나 그 자신은 불속에서 살아나오는 사람같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1고린 3,15). 연옥은 불로써 표현된다. 불이란 정화시키는 것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옥의 불을 면하게 해달라는 기도를 옛 기도문에서 자주 발견할 수 있다.
구약성서에서도 연옥에 관계된 구절을 발견할 수 있다. 유다 마카베오가 죽은 이들이 그들의 죄에서 풀려나도록 그들을 위해서 그 속죄의 제물을 드리게 하였다(2마카 12,45 참조).
성서뿐 아니라 성인들도 연옥에 대해서 많이 이야기하고 있다. 대 그레고리오 성인은 그의 대화집에서 "어떤 죄들은 현세에서 용서받을 수 있으나, 어떤 죄들은 내세에서 용서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이는 연옥에서 죄의 잔재를 용서받을 수 있음을 증언하는 것이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주저하지 말고 세상을 떠난 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그들을 위해 기도드리자."고 호소했다.
우리 교회는 초대교회 때부터 죽은 이들을 존중하고 기념했으며 그들을 위해 기도와 미사 성제를 드려왔다. 이러한 전통은 지금껏 계속되고 있다. 또한 죽은 이들을 위해 기도뿐 아니라 자선과 대사와 보속도 권고하고 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요즘 우리에게 문제가 생겨나고 있다. 예를 들면 연옥 영혼들에게 대사를 받도록 기도하는 것이 무력화되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는 분명히 말한다. "정화 중에 있는 죽은 신자들도 성인들과 통공을 이루는 같은 지체들이므로 우리는 그들을 위한 다른 도움과 더불어 특히 그들의 죄로 인한 잠벌을 면하게 하는 대사로서 그들을 도울 수 있다." 바오로 6세의 교황령에 따르면 "대사는 죄로 인해 받게 될 일시적인 벌을 부분적으로 면제하느냐 전적으로 면제하느냐에 따라 부분대사와 전대사로 구분된다." 즉 잠벌을 어느 정도 면하게 할 수 있는 한대사를 받을 수도 있고 완전하게 잠벌을 면하게 할 수 있는 전대사를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보다 먼저 간 영혼들에게 전대사를 받을 수 있게 함으로써 그 뜨거운 연옥의 형벌을 면하게 할 수 있다. 이는 무엇보다도 귀한 선물일 것이다.
묘지를 근사하게 단장하고 번들번들한 비석을 세워주는 것이 달가운 게 아니다. 죽은 이에게 대사를 얻게 하는 것이야말로 너무나 귀중한 선물이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1997년도에 나온 새 가톨릭 기도서에는 ’대사를 얻는 기도문’이 빠져있다. 이는 연옥 영혼에게 너무도 실망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왜 빠졌을까? 연옥 영혼들에 대한 무관심 때문이 아닐까?우리 나라에서는 성교 공과라는 두꺼운 기도서가 오랫동안 사용되었다. 그러다가 1968년 가톨릭 기도서가 발행되었는데 새 시대에 맞는 문체로 만든 것이다. 그러던 중 1987년 수정판이 나왔다. 거기까지는 대사를 얻는 기도가 있었다. 새로 나온 기도서가 문제를 가지고 있다면 하루빨리 수정하여 대사를 얻는 기도를 통해서 많은 이들이 연옥 영혼에게 대사를 기부함으로써 그들이 천국에 빨리 들어갈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대사를 얻는 기도문은 간단하게 되어있다. 그리고 교황님의 뜻대로 주모경(주님의 기도와 성모송)을 하면 된다. 물론 은총 지위에 있는 사람으로서 미사에 참석한 다음에 외우는 기도다. 문자가 중요한 것은 아니나 대사를 얻는 기도문이 기도서에 있는 것과 없는 것과는 너무도 다르다. 물론 우리 교회가 가르치는 대로 연옥 영혼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그들을 대신하여 자선을 하고 보속도 함으로써 그들을 도울 수 있다.
위령기도(연도)는 많은 신자들이 즐겨하는 연옥 영혼들을 위한 기도다. 또한 우리의 전통에는 그들을 위하여 자주 위령미사(연미사)도 봉헌한다. 부모가 세상을 떠난 뒤 한번도 위령기도를 바치지 않거나 위령미사를 드리지 않는 사람은 믿음이 부족한 사람이다. 모든 성인의 통공을 모르는 사람이다.
위령성월에 죽은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동시에 우리 자신의 죽음을 가슴에 새기면서 주님 곁으로 더 가까이 다가가는 성스러운 달이 되었으면 좋겠다.
소망님께서 가톨릭교회에 대하여 질문을 하심에 따라 가톨릭교회교리서를 중심으로 설명을 해드립니다.
"연옥"이라고 함은 가톨릭에서,
구원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이 <회개치 않고 죽었을 경우, 혹은 죄를 지닌채 죽었을 경우>
하느님의 무구한 지복직관(천국)에 들기 전, 지은 죄를 정화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연옥"이라 함은 <구원을 받지 못한 영혼이 죽어서 구원을 받은 그러한 곳이 아니고>,
혹은 <죽은 후에도, 이승에서 미사나 기도를 해 주면 지옥 갈 사람이 천당으로 가는 즉 구원을 받는 그러한 사후 구원이 아님>을 확실하게 알려 드립니다.
연옥은 이승에서 구원(=의화=>세례로서 죄를 용서받고 하느님의 자녀로 거듭 남)을 받은 사람이 성화된 상태로 죽지 않았을 경우,,
주님의 심판에 의해,
하느님의 지복직관에 들기 전(=천국에 들기전=하느님의 신성에 온전히 참여하기 전)에, 자신이 이승에서 지은 죄를 정화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느님을 떠나 저주받은 곳을 지옥이라고 합니다,
연옥은 하느님을 영원히 떠나는 벌이 아니라, 하느님으로부터 영혼을 완벽하게 정화 받는 상태로서, 하느님과 함께 있는 곳이니 넓은 의미에서는 천국에 포함될 것입니다.)
그리고 구원은 의화(=칭의=죄를 용서 받고 하느님의 자녀로 거듭남)을 의미하느냐?
아니면 의회된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의 복음대로 잘 살아 심판시 상벌을 받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조금 달라 집니다.
개신교나 가톨릭이나 의화(의인=구원)는 <성령의 은총안에서 예수님을 믿음으로서 받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의회된 사람일지라도,
언제나 회개를 하고 주님의 은총안에서 살기를 가르치는것 또한 같습니다.
성공회나 장로교, 루터교, 감리교 등의 개신교라고 하여,
의화(=칭의=죄를 용서받고 거듭난 그리스도인)되었다 하여,
평소 거룩하게 살지도 않고, 또한 회개치도 않고,
마구 큰 죄를 짓고 살았을 경우는 (죽은 후) 구원을 잃을수 잃을 수 있다=지옥에 갈수 있다라고 합니다.
간혹 의화받은 그리스도인의 평상시의 삶에서 회개를 통한 성화의 삶을 살것을 거부하는 일부 개신교 종파에서는
<예수만 믿으면 무조건 천당행>이라는 주장을 합니다만.
이러한 주장은 개신교의 주류들인 성공회나 루터교나 장로교 등의 가르침과는 다른 것입니다.
물론 가톨릭과도 다르지요.^^
이러한 주장은 거짓된 주장임이라는 것이 성경의가르칩니다.
이 점을 잘 인식하심이 옳을 것 같습니다.
가톨릭교회교리서와 성경을 통해서 정리를 하여 보겟습니다.
<<<연옥에 대하여>>>
가톨릭교회교리서 1031>>
교회는 선택된 이들이 거치는 이러한 정화를 "연옥"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단죄받은 이들이 받는 벌과는 완전히 구별된다.---
- 개신교에서의 연옥의 가르침은 성경에 없다고 하지만 성경을 면밀하게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다만 "원죄"나 "삼위일체"의 용어처럼 성경에 "연옥이라는 용어가 없을 뿐"입니다.
"심판"에 대한 언급과 "죄에 대한 용서에 대한 계시"는 이미 성서안에서 충분히 발견되고 있습니다. 몇가지만.
마태오 12.31
" 성령을 거슬러 모욕하는 죄만은 --- <<현세에서나 내세에서나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라는 주님의 말씀과.
베드로 1. 17
" 여러분은 <<각자의 업적에 따라서 공정하게 판단하시는 분>>을 아버지로 모시고 있으니 ---- 두려운 마음으로 지내십시요." 라는 베드로의 말이나,
고린토1, 3.13-15
" 이제 심판의 날이 오면 ----심판의 날은 불을 몰고 오겠고, --- 그 불은 각자의 업적을 심판하여 그 진가를 밝혀 줄 것입니다.--- 그 불속에서 살아나오는 사람같이 구원을 받습니다."
1. 마태 12. 31의 말씀에서 <내세라는 말은 영원히라는 말을 강조한다고 성서 학자들이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세라는 말 대산에 영원히 라는 의미로 받아 드린다 하더라도,
"죄를 영원히 사함을 받을 수 없다"라는 말은, 영원이 아닌 "순간 혹은 어떤 특정 시기"에도 "사함을 받을 수 있다"는 의미가 됩니다.
2. 베드로는 <업적에 따라 공정하게 판단>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연옥의 개념은 그리스도인의 <업적에 의해서 공정하게 심판되어 잠벌과 정화를 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승에서의 죄로 얼룩되어진 의화받은 사람들은,
연옥 정화를 통해 영혼이 하느님의 신성에 온전히 참요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순수 무구한 하느님의 신성(하느님의 나라)에 이승에서 얼룩진 죄허물을 가지고 들어갈수는 없을 것입니다.
3. 바울로는 심판의 불에 견디어 나오는 사람은 업적이 판단된다>라고 합니다.
연옥의 정화를 교회는 예로부터 <불의 정화>라고 하였습니다.
성서에서는 간혹 성령님의 은총을 불로서 비유하기도 합니다.
영혼을 정화시키는 "불은 정화"되는 감관적인 고통을 수반하겠지만,
그 불은 온누리를 새롭게 하시는 성령님의 은총의 불로서 연옥 영혼은 정회될 것입니다.
연옥의 정화는 사소한 죄로 오염이 된 그리스도인의 영혼을 더욱 더 빛나게 해 주어 천국에서 <하느님의 신성과 합일>하는데 아무런 장애가 없어질 것입니다.
참고로
초대 교부들인 성 암부로시우스, 성 아우구스티누스 등의 저서등에서도 연옥에 대한 믿음은 볼수가 있습니다.
성서가 381년도에 다마소 교황에 의해서 로마교회회의에서 확정되고 397년도 카르타고 교회회에서 거듭 확인되기 이전부터,
교부들은 서간을 통해서 <업적에 대한 심판-잠벌의 보상과 정화라는 연옥에 대한 개념>을 믿어 왔음을 알수가 있습니다.
어떤 개신교신자는 잘 모르면서도
- 연옥은 "천국과 지옥 사이의 중간장소"인것처럼, 죽어서 구원을 받는 사후 구원의 장소로 말하고 있지만,^^
연옥은 그러한 개념이 아님을 위에서 고찰하였습니다.
연옥은 천국과지옥의 "중간 장소"라더지 "사후에도 구원을 받는 장소" 등으로 표현함은 가당치 않은 것입니다.
교회는,
연옥의 정화를, 불신자가 죽어서 받는 영벌(지옥)에 대비되는 표현으로
"잠벌"의 의미로 설명을 합니다.
즉 베드로 서간의 설명처럼 "자기 업적에 따른 심판" 에 따라
이승에서 지은 죄의 댓가인 벌을 의미하는 잠벌(잠시 받는 벌)이며 이를 통해 영혼의 정화를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그리스도인들이라도 이승에서 죄를 지을수 있으며 또한 죄를 회개하지 않고 죽을 수 있으니
당연히 심판에 의하여 죄에 해당하는 벌을 받아야 올바른 심판이 될 것입니다.
이 심판은 하느님의 공의로움과도 합치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연옥의 정화는 하느님의 자비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연옥영혼은 온전히 하느님께 합일하는 기쁨을 아직 누리지 못할 지라고,
하느님안에서 "정화되는 기쁨"은 가득할 것입니다.
"간혹 가톨릭신자들안에서도 발견되는 <연옥 영혼은 불쌍하다.>라고 하는표현이 있지만 사실 제가 보기에는^^
연옥 영혼이 정화에 따른 <감각적인 고통을 느낄지라도=그래서 불쌍할 지라도^^>
하느님안에서 정화되는 기쁨을 가지고 있으므로 "불쌍하다"고 표현하는 것은 하느님의 자비심에 좀 거슬리는 표현처럼 보입니다.^^"(이 의견은 제 견해입니다.^^)
그리고 최후의 심판(공심판) 후 즉 마지막 날 이후로는 연옥의 상태는 사라질것입니다.
왜냐하면 마지막 날(심판) 이후는
영원한 복락(샤하늘과 새땅) 과 영원한 슬픔(하느님으로부터 유리되는 지옥)만 존재하기 때문이지요.
그러므로 연옥은 항구적인 중간장소라던지 제3장소가 아닙니다.
연옥은 가톨릭교회교리서에서 가르치는 것처럼,
(((가톨릭교회교리서)))
<<1030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 안에서 죽었으나 완전히 정화되지 않은 사람들은 영원한 구원이 보장되기는 하지만, 하늘의 기쁨으로 들어가기에 필요한 거룩함을 얻기 위하여 죽은 다음에 정화를 거쳐야 한다.
1031 교회는 선택된 이들이 거치는 이러한 정화를 '연옥'>>이라고 함을 잘 이해하여야 할 것입니다.
[답변 1에 대한 항의]-익명
"참고로
초대 교부들인 성 테르툴리아노, 성 암부로시우스, 성 아우구스티누스등의 저서등에서도 연옥에 대한 믿음은 볼수가 있습니다."
쓰신 글에 대한 저의 반발은 이렇습니다. 성 암부로스와 성 어거스틴,, 두 주교님을 저는 존경합니다. 하느님께서 성 암부로시우스를 내지 않으셨다면, 성 아우구스티누스 주교님이 계시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망령된 일인지 몰라도, 저는 그렇게까지 표현하고 싶습니다. 터툴리안은 두분과 비길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최소한,, 제가 속해있는 소망교회에서는 목사님께서 축도 하실 때 - 강복 선언이라고 이해하면 무리가 없으시겠지요 - 터툴리안으로부터 전승한 것으로 판단하시는 동작을 취하십니다. 팔을 벌려 십자를 만드십니다. 그렇긴 하지만,, 목사님의 신학이 터툴리안의 신학을 계승하였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말할것도 없이, 역사적 프로테스탄트의 후예로서, 루터 박사님의 신학과 요한 칼빈님의 신학을 가르치십니다. 그 신학은 성 어거스틴으로부터 전승한, 가톨릭 신학입니다. 물론,, 라칭거 추기경님께서는 주교님의 '이중 예정'교리를 인정하지 않으실테니까, 제 판단을 정죄하실지도 모르겠지요.
성 안토니의 하느님이신 성 어거스틴의 하느님께서 저희의 하느님이 되어주시길 바라지만, 몬타누스와 테르툴리아누스의 하느님을 저의 하느님으로 모시고 싶지 않습니다. 몬타누스, 입신, 성령의 소리라는 두 여자의 예언(예언 기도), 엑스타시, 임박한 예수님의 재림 선언 - 성령께서 말씀하시는, 터툴리안의 몬타누스파 가담후의 활동, 더 엄격한 터툴리안파를 이끔, 죽을때까지......
이상은 제가 터툴리안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것 중의 일부입니다. 도발적인 질문을 하겠습니다.
"그쪽분께서는 어떤 사람처럼 - 제가 지목하고 싶은 사람은 이곳,주교회의에서 가끔 보는 필명 한시몬씨입니다 - 마틴 루터 박사님과 요한 칼빈님을 싫어하면서도,, 터툴리안은 존경해마지 않는,, 그런 사람과 같은 인식을 하고 계십니까. 아니길 바랍니다."
"계속해서 터툴리안 앞에 '성'을 붙여주시는 건 - 항상은 아니었을 겁니다. 그점, 고맙게 생각합니다 - 무슨 이유입니까."
"혹여 - 그렇지 않기를 바랍니다 - 테르툴리아노 성인이라 말하는 것이 가하다고 생각한다면, 이 질문도 드립니다. 성 몬타누스, 성 노바투스,, 이런 표현은 가하다고 판단하십니까, 불가하다고 판단하십니까."
2003년5월27일화요일오전2시30분경,충청도에서 ㅠ.ㅠ.. 입력합니다.
[항의에 대한 답변]-조정제
무심코 인용하다가,
테르툴리아누스에게 교부 칭호와 성자를 붙여 항의를 받게되었습니다.^^
오히려 이 항의는 정확한 정보와 올바른 지혜를 위한 하느님의 뜻으로 보입니다.^^(수정하겠습니다.)
테르툴리아누스는 초기 서방교회(동방에 대비하여)의 위대한 신학자였으며 처음부터 탁월한 신앙심으로 교부의 "반열에 설 정도"였지만,
후에 이단에 빠져 들었으며, 회개치않고 오히려 교회를 공격하며 이단자로서 생을 마친 분입니다.
테르툴리아누스의 영향으로 북아프리카 교회에는 도나투스 이단이 창궐하여 교회를 분열시키다가 결국 이슬람에게 멸망을 당했습니다.
이 분의 빼어난 이론(삼위일체에 대한)과 지독하리만큼 엄격한 경건주의에 매력을 느끼는 신자나 성직자들이 많아서인지 무심코 이분에게 교부라던지, <성>자를 부치지만,
ㅠ.ㅍ..님의 지적대로 이분은 교회를 떠나 이단자로서 죽었기에,
이분에게 교부라던지 <성>자라던지 아직도 삭제되지않고 있다는 서방전례력안에서 <성인축일>은 당연히 삭제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항의에 감사드리며.^^
[답변 2]-한시몬
소망님이 올리신 연옥에 대한 질문과 관련하여 조 정제님의 설명에 추가로 참고적인 정보를 드린다면, 위령성월인 11월에 인천 가톨릭 대학교 겨레문화연구소장님으로 계시는 최 기산 보니파시오 신부님께서 쓰신 글을 아래에 올려드리오니 함께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제 목: 연옥에 대해 생각한다
쓴 이: 최기산 보니파시오. 인천 가톨릭 대학교 겨레문화연구소장
우수수 낙엽이 떨어져 뒹구는 계절이다. 스산한 바람결에 휘날리는 낙엽 하나하나에 진리가 담겨있다. 어제의 그 파랗던 낙엽이 아니었던가. 인간도 시들어지는 때가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죽음을 비켜갈 사람은 아무도 없다. 태고 이래로 죽음을 이겨보려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동물은 죽음을 숙명으로 받아들이지만 인간은 극복해 보려고 노력한다. 11월은 죽음을 특별히 생각해 보고, 연옥 영혼들을 위해 기도하는 위령성월이다.
누구에게나 다가올 죽음인데도 나에게는 비켜갈 것만 같은 죽음! 그것은 인생의 수수께끼 가운데 절정이다. 과연 죽음은 내게 언제 들이닥칠 것인가? 아무도 모른다. 하느님만이 아신다. 인간은 죽음 앞에서 절치 통곡하게 된다. 울고 또 울고 슬픔은 눈물이 되어 흐르고 또 흐른다.
과연 그리스도인들에게 죽음이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 그저 슬프고 두려움만 주는 것인가? 아니다. 믿는 이들에게는 죽음이 새로운 삶으로 옮아가는 관문이다. "교우 여러분, 죽은 사람들에 관해서 여러분이 알아두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희망을 가지지 못하는 사람들처럼 슬퍼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것을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를 믿다가 죽은 사람들을 하느님께서 예수와 함께 생명의 나라로 데려가실 것을 믿습니다"(1데살 4,13-14).
어떤 종교에서는 인간이 죽으면 다시 환생한다고 믿는다.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았는지에 따라, 더 좋게 태어나거나 더 나쁘게 태어난다고 믿는다. 때로는 버러지로 태어나기도 하고 돼지로 태어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은 환생도 전생도 믿지 않는다. 우리는 영생을 믿는다. 영생은 하느님 나라에서 누리게 된다. 또한 개신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천국에 가느냐, 지옥에 가느냐로 결판난다고 믿는다. 천국에 갈 사람은 여기저기 거치지 않고 직접 가는 것이고 지옥에 갈 사람도 직접 가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가톨릭 교회는 연옥이 있음을 천명하고 있다. 사람이 죽으면 천국으로 가기 전 정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물론 죄도, 그 벌도 없는 완전히 정화된 사람은 천국으로 직행할 것이다. 그런데 인간이 어찌 완전히 정화된 상태로 죽을 수 있는가 말이다. 그러므로 정화가 필요한 사람은 죽어서라도 정화를 거쳐야 하며 이를 ’연옥’이라고 부른다. 일단 연옥에 가면 언젠가는 하늘나라로 갈 수 있기에 지극히 희망적이다. 물론 여기서 연옥을 어떤 장소의 개념으로 알아들을 수는 없다. 그러나 인간의 인식의 한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장소의 개념으로 알아들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연 옥
연옥에 대한 신앙교리는 피렌체 공의회와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확정되었다. 교회가 연옥이 있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성서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것은 여러분의 믿음을 순수하게 만들기 위한 것입니다. 결국 없어지고 말 황금도 불로 단련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황금보다 훨씬 더 귀한 여러분의 믿음은 많은 단련을 받아 순수한 것이 되어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는 날에 칭찬과 영광과 영예를 받을 것입니다"(1베드 1,7). "만일 그 집이 불에 타버리면 그는 낭패를 볼 것입니다. 그러나 그 자신은 불속에서 살아나오는 사람같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1고린 3,15). 연옥은 불로써 표현된다. 불이란 정화시키는 것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옥의 불을 면하게 해달라는 기도를 옛 기도문에서 자주 발견할 수 있다.
구약성서에서도 연옥에 관계된 구절을 발견할 수 있다. 유다 마카베오가 죽은 이들이 그들의 죄에서 풀려나도록 그들을 위해서 그 속죄의 제물을 드리게 하였다(2마카 12,45 참조).
성서뿐 아니라 성인들도 연옥에 대해서 많이 이야기하고 있다. 대 그레고리오 성인은 그의 대화집에서 "어떤 죄들은 현세에서 용서받을 수 있으나, 어떤 죄들은 내세에서 용서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이는 연옥에서 죄의 잔재를 용서받을 수 있음을 증언하는 것이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주저하지 말고 세상을 떠난 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그들을 위해 기도드리자."고 호소했다.
우리 교회는 초대교회 때부터 죽은 이들을 존중하고 기념했으며 그들을 위해 기도와 미사 성제를 드려왔다. 이러한 전통은 지금껏 계속되고 있다. 또한 죽은 이들을 위해 기도뿐 아니라 자선과 대사와 보속도 권고하고 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요즘 우리에게 문제가 생겨나고 있다. 예를 들면 연옥 영혼들에게 대사를 받도록 기도하는 것이 무력화되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는 분명히 말한다. "정화 중에 있는 죽은 신자들도 성인들과 통공을 이루는 같은 지체들이므로 우리는 그들을 위한 다른 도움과 더불어 특히 그들의 죄로 인한 잠벌을 면하게 하는 대사로서 그들을 도울 수 있다." 바오로 6세의 교황령에 따르면 "대사는 죄로 인해 받게 될 일시적인 벌을 부분적으로 면제하느냐 전적으로 면제하느냐에 따라 부분대사와 전대사로 구분된다." 즉 잠벌을 어느 정도 면하게 할 수 있는 한대사를 받을 수도 있고 완전하게 잠벌을 면하게 할 수 있는 전대사를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보다 먼저 간 영혼들에게 전대사를 받을 수 있게 함으로써 그 뜨거운 연옥의 형벌을 면하게 할 수 있다. 이는 무엇보다도 귀한 선물일 것이다.
묘지를 근사하게 단장하고 번들번들한 비석을 세워주는 것이 달가운 게 아니다. 죽은 이에게 대사를 얻게 하는 것이야말로 너무나 귀중한 선물이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1997년도에 나온 새 가톨릭 기도서에는 ’대사를 얻는 기도문’이 빠져있다. 이는 연옥 영혼에게 너무도 실망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왜 빠졌을까? 연옥 영혼들에 대한 무관심 때문이 아닐까?우리 나라에서는 성교 공과라는 두꺼운 기도서가 오랫동안 사용되었다. 그러다가 1968년 가톨릭 기도서가 발행되었는데 새 시대에 맞는 문체로 만든 것이다. 그러던 중 1987년 수정판이 나왔다. 거기까지는 대사를 얻는 기도가 있었다. 새로 나온 기도서가 문제를 가지고 있다면 하루빨리 수정하여 대사를 얻는 기도를 통해서 많은 이들이 연옥 영혼에게 대사를 기부함으로써 그들이 천국에 빨리 들어갈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대사를 얻는 기도문은 간단하게 되어있다. 그리고 교황님의 뜻대로 주모경(주님의 기도와 성모송)을 하면 된다. 물론 은총 지위에 있는 사람으로서 미사에 참석한 다음에 외우는 기도다. 문자가 중요한 것은 아니나 대사를 얻는 기도문이 기도서에 있는 것과 없는 것과는 너무도 다르다. 물론 우리 교회가 가르치는 대로 연옥 영혼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그들을 대신하여 자선을 하고 보속도 함으로써 그들을 도울 수 있다.
위령기도(연도)는 많은 신자들이 즐겨하는 연옥 영혼들을 위한 기도다. 또한 우리의 전통에는 그들을 위하여 자주 위령미사(연미사)도 봉헌한다. 부모가 세상을 떠난 뒤 한번도 위령기도를 바치지 않거나 위령미사를 드리지 않는 사람은 믿음이 부족한 사람이다. 모든 성인의 통공을 모르는 사람이다.
위령성월에 죽은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동시에 우리 자신의 죽음을 가슴에 새기면서 주님 곁으로 더 가까이 다가가는 성스러운 달이 되었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