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부 · 순교자
복자 요한 세례자 마차도
(John Baptist Macha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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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5월 22일 목록에서 일본의 오무라(Omura) 북쪽 코리에서 작은 형제회(프란치스코회) 소속 성모 승천의 복자 베드로(Petrus of the Assumption) 신부와 예수회의 복자 요한 세례자 마차도(Joannes Baptista Machado) 신부가 그리스도교 신앙에 대한 증오로 인해 참수형을 당했는데, 그들이 순교한 이유는 비밀리에 사목 활동을 펼쳤다는 것이라고 기록하며 그들의 이름을 새로 추가하였다.
그들의 순교는 1597년 2월 5일 나가사키(Nagasaki)에서 성 바오로 미키(Paulus Miki, 2월 6일)와 25위의 동료가 순교한 대박해 이후 1617년부터 1632년 사이에 일본에서 일어난 두 번째 대박해의 시작이었다.
그들은 모두 1867년 7월 7일 교황 복자 비오 9세(Pius IX)에 의해 ‘복자 알폰소 나바레테(Alphonsus Navarrete)와 그의 동료 204위, 1617년에서 1632년 사이 일본에서 순교한 사람들’이란 명칭으로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시복되었고, 보통 ‘일본의 205위 순교복자들’로 불린다. 1597년 성 바오로 미키와 25위의 동료가 순교한 이후 일본에 남은 선교사들은 모두 일본 밖으로 나가야 했다.
그런데 30여 명의 선교사는 교우들을 위해 남아서 숨어지냈다. 1598년에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사망한 후 박해가 잠잠해지면서 예수회를 비롯해 선교사들의 활동이 재개되어 1612년까지 평화롭게 지내며 교회 또한 크게 성장하였다. 1612년 몇몇 지방에서 그리스도인에 대한 탄압이 시작되었고, 1614년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의 아들인 도쿠가와 히데타다(德川秀忠) 막부 시절에 모든 선교사를 추방하고 교회를 파괴하거나 폐쇄하고, 그리스도교 신앙을 금지하는 칙령이 반포되면서 박해는 더욱 광범위해졌다.
그로 인해 수천 명이 순교하면서 많은 가톨릭 신자가 지하로 숨어들어 메이지 유신 이후 1873년 종교의 자유가 회복되기까지 은밀히 신앙생활을 이어가면서 ‘카쿠레 키리시탄’(숨은 그리스도인)이라는 용어가 생겼고, 오늘날까지 일부 지역에서 그들만의 고유한 전통과 신앙을 간직하며 살아가고 있다.
복자 요한네스 세례자 마차도(또는 요한 세례자 마차도)는 1580년 또는 1581년 포르투갈 아조레스 제도(Azores Islands)에 있는 테르세이라섬(Terceira Is.) 남쪽의 앙그라(Angra)에서 귀족 가문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어린 시절에 어머니에게 인도와 일본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당시 ‘인도의 사도’ 또는 ‘일본의 사도’로 불리는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Franciscus Xavier/Javier, +1552년, 12월 3일)의 서한집이 출판되면서 포르투갈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었다.
동양에서 활약한 선교사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복자 요한 세례자 마차도는 위대한 선교사의 발자취를 따르려는 열망을 키웠다.
그는 앙그라에서 교육을 받고 15살 때 리스본(Lisbon)을 거쳐 코임브라(Coimbra)로 갔다.
그는 아버지가 사망한 후 모든 재산을 어머니에게 양도한다는 서류를 남기고 1597년 약 16살의 나이에 코임브라에서 예수회에 입회하여 수련기를 시작했다.
그곳에서 학업을 마치고 서원한 후 그는 1601년 인도로 가서 고아(Goa)에서 철학을, 마카오(Macao)에서 신학을 공부한 후 고아로 돌아와 사제품을 받았다. 1609년에 그는 고아를 떠나 선교사로서 일본의 나가사키에 도착했다.
그는 규슈(九州, Kyushu) 남단 아리마(Arima) 신학교에서 일본어를 공부한 후 5년 동안 오늘날의 교토(京都, Kyoto) 지방인 수도 미야코(宮古, Miyako)와 그 주변 지역에서 선교 활동을 펼치며 신자들을 돌보았다. 1614년의 선교사 추방령 이후 예수회 선교사 100여 명이 필리핀의 마닐라(Manila)나 중국의 마카오로 떠났고, 그 또한 일본을 떠나라는 장상의 권유를 받았으나 위험을 무릅쓰고 신자들을 돌보기 위해 남았다.
그리고 3년 동안 박해 위협 속에 많은 그리스도인이 신앙을 포기하는 슬픔도 겪었지만, 동시에 끝까지 신앙을 지켜나가는 일본 신자들도 많이 보았다.
주로 밤에 변장하고 이동하며 사목하던 그는 1617년 4월 가톨릭 신자가 많이 사는 고토 제도(五島列島, Goto Islands)의 한 섬에 있는 나환자촌을 방문할 계획을 세웠다.
항구마다 첩자들이 있어 만류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는 4월 21일 신자들을 만나 미사를 집전하고 다음 날 그를 미행하던 첩자에 의해 체포되어 나가사키로 끌려갔다.
복자 요한 세례자 마차도 신부는 나가사키 북쪽 오무라(Omura)로 끌려갔다가 그곳에서 멀지 않은 코리로 이송되었다.
코리의 감옥에서 그는 평소 함께 비밀리에 미사와 성사를 집전하고 신자들을 돌보던 프란치스코회의 성모 승천의 복자 베드로 신부를 만나게 되었다.
두 신부는 곧 토모나가(Tomonaga)라는 하급 관리의 집에 가택 연금 상태로 갇혔는데, 토모나가는 배교한 그리스도인이며 예수회 신부의 형제이기도 했다.
그는 두 신부가 매일 미사를 봉헌할 수 있도록 허락했고 자주 방문해서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렇게 얼마간 생활하던 중 슬픔에 잠긴 토모나가가 찾아와 5월 22일 삼위일체 대축일에 두 신부가 처형될 것임을 알려주었다.
두 신부는 하느님을 찬미하며 모든 성인 호칭 기도와 성모 호칭 기도를 바쳤다.
그날 오후에 복자 요한 세례자 마차도 신부와 성모 승천의 복자 베드로 신부는 오무라 북쪽 코리 지역의 숲이 우거진 언덕으로 끌려가 서로의 고해성사를 들은 후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이날은 1617년 5월 22일로 수천 명의 순교자가 탄생한 일본 내 두 번째 대박해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날이었다.
그로부터 6개월도 채 지나지 않아 토모나가도 회개하고 돌아와 순교했다고 한다.
일본의 205위 순교복자들은 개별적으로 순교한 날에 각자의 기념일을 지내지만, 일본 교회는 특별히 52명의 순교복자가 탄생한 9월 10일(1622년)을 ‘일본의 205위 순교복자’를 함께 기념하는 축일로 지내고 있다.♣
가톨릭 용어 안내
성인(성녀)
순교자나 거룩하게 살다 죽은 이 가운데 훌륭한 덕행과 모범이 인정되어 공식적으로 성인품에 오른 사람. 넓게는 거룩한 사람, 곧 하늘나라(천국)에 간 모든 사람을 일컫기도 합니다.
대천사
하느님의 특별한 사명을 전달하기 위하여 파견된 천사를 뜻하며,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가 있습니다.
복자(복녀)
가톨릭 교회가 시복(諡福)을 통해 신자들의 공경의 대상으로 공식 선포한 사람. 남자는 복자, 여자는 복녀라 합니다. 복자가 시성(諡聖)되면 성인(여자는 성녀)이 됩니다.
세례명
가톨릭 신자들이 세례 때 받는 이름. 좋아하는 성인의 이름을 골라 정하며, 일생 동안 그 성인을 수호자로 공경하며 그 덕행을 본받으려 애씁니다. 흔히 본명(本名)이라고도 합니다.
영명축일
가톨릭 신자가 자신의 세례명으로 택한 수호 성인의 축일. 대개 그 성인이 선종한 날이 축일이 됩니다.
성인 자료 출처: 가톨릭 인터넷 굿뉴스 · catholic.or.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