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일 문화교류를 다녀와서 >
동정성모지역대 소녀대 장주연
어느 날, 여느 때처럼 동정성모대 카페에서 여러 가지 게시물들을 확인하고 있었다. 그러던 도중, 한.일 문화교류 참가자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게 되었고, ‘연맹에서 두 명 정도 밖에 뽑지 않는데 설마 되겠어?’라는 심정으로 서류를 보냈다. 내가 서류를 보냈다는 사실조차 잊혀질 때 즈음 1차 서류심사를 통과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 기뻐 어쩔 줄을 몰랐다. 그 후, 난 사전훈련에서 반원들과 친해지고, 일본 걸스카우트들에게 보여 줄 강강수월래 연습도 했다. 강강수월래를 본 적은 있었지만 내가 직접 하는 것은 처음이었기에 색다른 경험이었다. 강강수월래를 하는 동안 너무 어지러웠지만 우리나라 문화를 알릴 수 있다는 자부심을 갖고 열심히 하였다.
드디어 한국을 떠나는 날. 두려움과 설레임의 감정이 교차하는 가운데 비행기에 탑승하였다. 비행기 안에서의 시간은 왜 그렇게 안 가던지...... 아마 내가 빨리 일본에 가고 싶어서 그렇게 느꼈던 것 같다. 나리타 공항에 도착하여 출구로 나가니 일본 걸스카우트들이 “어서 오세요”라고 말하며 우리를 반겨주었다. 조금 당황스럽기도 하고, 기쁘기도 했다. 우리가 묵을 곳인 혼간지로 가는 버스에서 우리는 영어로 조금씩 일본 걸스카우트들과 친해져 갔다. 서로 부르는 사물의 이름이 달라 조금은 힘이 들었지만 우리는 굴하지 않고 몸짓 등을 이용하여 대화를 이어갔다. 한마디, 한마디 의미가 통할 때마다 느껴지는 기쁨이란!! 정말 이루 말할 수 가 없었다. 혼간지에 도착하니 느껴지는 혼간지의 웅장함과 그 곳에서 느껴지는 엄숙함은 날 더 긴장하게 만들었다. 방을 배정받고 들어가니 방에는 말로만 듣던 다다미가 깔려 있었다. 신기해서 만져보고, 그 위에 누워보고 난리를 쳤다. 그날 밤, 환영파티를 했는데 우리 사이사이에 일본 걸스카우트들이 앉았다. 난 용기를 내어 그들에게 말을 걸었고, 덕분에 친해질 수 있었다. 처음에 다가가기까지 말을 걸까말까 고민했었는데 용기를 내기 잘한 것 같다. 이날 밤, 난 지진을 느꼈다. 도쿄에서는 규모 3 이었지만 다른 지역에서는 규모 6으로 많은 피해를 입었다고 했다. 나도 이렇게 센 지진은 처음이어서 정말 꿈인 줄만 알았다. 잠에서 깨보니 우리 방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다 깨어있어서 우린 모두 손을 꼭 잡고 다시 잠이 들었다. 그 장면을 다른 사람들이 보았다면 정말 많이 웃었을 것 같다. 지진의 나라 일본에서 지진을 느낀 것도 행운이라면 행운일 것이다.
둘째 날부터 우리의 본격적인 일정이 시작되었다. 도쿄관광을 했는데 일본의 무더운 여름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습기가 많아 가만히 있어도 땀이 비오듯 흐르고 숨이 턱턱 막히는 일본의 여름이란... 내가 땀을 많이 흘리지 않는 체질인 게 다행이었다. 그 후 나와 3명의 대원들은 30여명의 대표로 도쿄도청에 가서 교육감을 만났다. 내가 그런 자리에 대표로 있다는 게 믿기지가 않았고, 너무 영광스러웠다. 그리고 도쿄도청 전망대에 가서 도쿄의 전망을 감상하였는데 너무 멋있었다. 일본은 지진이 많이 일어나서 집들이 대체로 낮은데 그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은 정말 예뻤다.
셋째 날 우리는 걸스카우트 연맹으로 가기 위하여 가파른 골목길을 오르고 또 올랐다. 힘들게 도착한 그 곳에서 우리는 일본 걸스카우트들과 함께 에이즈에 대하여 토론을 했다. 우리와 함께 토론을 한 아이들이 영어를 했으면 정말 좋았으련만 그 아이들은 아직 영어를 배우지 않아서 우리와 말이 전혀 통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의사를 전달하기 위해 보디랭귀지와 그림을 총동원하여 설명하였다. 그나마 아이들이 이해를 잘 하는 것이 다행이었다. 그 후, 각자 조 아이들과 함께 시부야와 하라주쿠에 가서 쇼핑을 했다. 시부야는 쇼핑의 천국답게 살만한 것이 많았지만, 가격이 너무 비쌌다. 50%할인인데도 40,000원이 기본이었다. 일본과 한국의 물가차이를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하라주쿠에는 싸면서 살만한 물건들이 많았다. 하지만 시간이 30분밖에 없었던 터라 일본친구들과 스티커 사진만 찍었다. 더 구경하지 못해서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우린 그렇게 다시 혼간지로 돌아왔고 우리의 셋째날 밤은 그렇게 깊어갔다.
넷째 날 우리는 일본 걸스카우트들의 공연도 보고, 선물도 교환하며 우정을 쌓아갔다. 또한 우리가 그토록 힘들게 연습하였던 강강수월래도 보여주었다. 일본 사람들이 너무 좋아해서 우리도 신이 나 오버하며 강강수월래를 했다. 준비하는 동안은 정말 많이 힘들었지만 그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정말 뿌듯하고 행복했다. 점심을 먹은 후 우린 홈스테이 가족들과 함께 뿔뿔이 흩어졌다. 내가 홈스테이 하는 집은 엄마랑 아빠께서 영어를 잘하셔서 정말 다행이었다. 의사소통하는데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집에 아이가 두 명 있었는데 9살 나나와 7살 코토였다. 그 아이들에게 외국인인 내가 무서워 보였을 수 도 있는데 비록 일본어였지만 적극적으로 나에게 말을 걸고 같이 놀려고 하였다. 그리고 일본어 히라가나를 한국어로 써 달라고 하여 외우겠다고 하였다. 정말 고마웠다. 홈스테이를 하는 동안 아이들에게 한복을 입혀서 사진도 찍어주고 팥빙수도 만들어주며 우리나라의 문화를 알리고자 노력하였다. 홈스테이 엄마께서는 내 입맛에 조금이나마 맞추어주려고 김치도 사다주고 일본음식도 느끼하지 않게 만들어 주는 등 많은 배려를 해 주셔서 맛있게 식사를 했다.
여섯째 날 일본걸스카우트 217단의 대원들과 함께 그들이 다니는 학교를 방문하였다. 방학인데도 불구하고 학생들이 학교에 나와 오케스트라 연습을 하고 있었다. 연주하는 것을 보았는데 소름이 끼칠 정도로 너무 잘했다. 더욱 놀라웠던 것은 학생들이 1시간 40분 동안 잡담 한 번 안하고 잘 움직이지도 않고 연습에 열중한다는 점이었다. 그날 밤은 한 초등학교에서 잤는데 우리는 유카타를 입고 일본의 전통춤을 추며 일본 걸스카우트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 중 한국인 아줌마가 계셨는데 너무 반가웠다. 이날 저녁 우린 김치 부침개와 일본음식을 같이 먹었다. 김치 부침개에서 느껴지는 고국의 맛이란 너무 맛있었다. 그 후 일본의 공중목욕탕에 갔는데 탕의 온도가 너무 뜨거워서 들어가지는 못하고 샤워만 하고 나왔다. 이것도 색다른 경험이었던 것 같다. 학교에서 자는 게 처음이라 무서울 것 같았는데 너무 피곤해서 그런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잠이 들어버리고 말았다.
일본에서의 마지막 날에는 일본의 다도문화를 체험했는데 그 절차는 이러했다. 먼저 화과자를 먹는데 이 화과자는 설탕으로 만들어져 있어서 많이 달다. 그 뒤, 차를 마시는데 차 맛은 너무 쓰다. 그 이유는 그 전에 먹었던 단 화과자의 맛을 깔끔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우리는 오차를 먹었는데 정말 귀한 차라고 했다. 이 다도회에서 한국과 일본의 다도문화의 차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한국은 차를 우려먹는데 비해 일본은 거품을 내어 그 거품 낸 것을 마신다. 저녁에는 우리나라의 다과와 차를 대접하여 마지막 밤을 보냈다. 그동안의 사진을 슬라이드 쇼로 보여주는데 아이들이 너무 아쉬워서 눈물을 흘렸다. 나도 눈물이 나오려 하는 것을 참았다. 마지막인데 기쁘게 웃으며 보내주는 게 좋을 것 같아서였다. 막상 지내고 보니 8박 9일이 너무 빨리 지나간 것 같아 아쉬웠다.
그 다음날 나리타 공항에서 마지막으로 헤어지는데 일본아이들이 너무 많이 울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우리는 꼭 이메일을 보내라는 한 마디를 남기고 헤어졌다. 나도 모르게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되었다. 우리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어주며 웃으려 애쓰던 일본 걸스카우트들이 아직까지도 기억난다. 이것은 들은 이야기인데 일본 걸스카우트 실행위원 중 쿄쿄라는 아이가 있었다. 그런데 그 아이가 독도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 울면서 어떤 언니한테 자신의 조상들이 한국 사람을 죽여서 미안하다고 하고 독도는 한국 땅인데 왜 일본이 일본 땅이라고 우기는지 모르겠다고 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듣고 너무 감동이었다. 우리도 독도 이야기를 꺼내지 않으려고 노력했는데 먼저 우리에게 서로 민감한 얘기를 꺼내기가 어려웠을텐데 불구하고 이야기를 꺼내고 사과를 했기 때문이다. 이번 한.일 문화교류행사에 참가하기 전에는 일본은 자신들이 잘못해 놓고도 제대로 사과도 안하고,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안 좋은 나라로만 인식했었는데 한.일 문화교류 행사에 참가하고 나서 생각이 달라졌다. 일본의 선진기술과 남을 배려하는 태도 등은 우리도 본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한.일 문화교류가 양국 걸스카우트들의 가슴속에 뜻깊은 추억으로 남았으면 좋겠고 향후 두 나라간의 외교관계에도 좋은 영향을 미쳐 우호적인 관계를 맺는데 이바지 하였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