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 2 주 다해 (번역: 강은희 젬마)
시계 알람이 울리자 삼학년 짜리가 작은 신음을 토했습니다. 하루가 시작하면 무엇 보다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제일 힘든 일일것 같습니다 그는 잠이 다 깨지도 않은체 팔을 뻗어 얼람이 멈출때 까지 버튼을 눌렀습니다. 그런 다음 매우 노력을 했는데도 눈은 감기고 다시 잠들어 버렸습니다. 20분쯤 지나면 두 누나중 하나가 아니면 둘이 같이 상냥하게 흔들어 깨우거나 기분이 그렇지 않을땐 냅다 소리를 질러 깨웁니다. 그것이 그날의 첫번째 싸움의 원인인것입니다. 곧 이어 엄마가 싸움을 말리시고, 엄하지만 다정하게 아들을 침대에서 끌어 내리십니다. 삼학년 짜리에게 그 나머지 아침 일과는 몽롱한체 지나 갑니다. 학교에 가느라 차를 타고 있을때서야 잠이 완전히 깨는 것입니다. 매일 매일 똑같은 일과 때문에 엄마가 지치셨습니다. 엄마 친구 한분이 괘종 시계를 반시간 앞당겨 마추어 줘 보라고 하셨습니다. 신기하게도 그때 부터 차츰 나아 지기 시작 했습니다. 눈 뜨자 마자 침대에서 뛰어 내리지 않고 여분의 시간 동안 천천히 잠을 깰수 있었든 것입니다.
루까 복음에서 베드로와 야교보, 그리고 요한은 확실히 잠 한번 잘 자고 있습니다. 최후의 만찬을 한 후 예수님께서 겟쌔마니 동산에서 기도하실 동안 오늘 그들은 잠이 들었습니다. 이런 잠은 영적인 잠에 속하거나 영적으로 부주의 하기 때문일 것이라는 짐작이 갑니다. 이것은 제자들이 결코 그리스도의 말씀을 전혀 주의해 듣지 않았다는 말이 아닙니다. 말하자면 그들에게 더많은 어떤것을 주려 하셨지만 그때 마다 제자들이 다 알아 보지는 못했다는 것입니다. 베드로와 야곱 요한을 깨우기 위한 어떤 방법이 필요 했는데 오늘 복음의 그 작전은 직접적인것,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었습니다. 베드로와 야곱 그리고 요한에게 빛을 쏟아 부으시고, 예수님으로 하여금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감동적이고 신비스런 미래에 관해 이야기를 하시도록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삼학년 짜리 처럼 잠을 깹니다. 반쯤 잠이 덜 깨서는 천막을 세게 세우면 어떻겠느냐고 하는데, 루까 복음 서가는 “베드로는 정말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았다.” 고 합니다. 우리도 영적 잠이 들때가 있는데 깰수 있는 방법중 한가지는 하느님의 영광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세나 엘리아 또는빛나는 흰옷을 입으신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지는 못하 겠지만, 살면서 완전히 투명한 순간을 경험하는 때가 있습니다, 자각을, 하느님께 대한 감사함을 그리고 중심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순간. 현재는 의미심장하여 감격적이고 미래는 놀랄만큼 확신이 서는 순간. 보다 위대한 어떤것에 잡힌듯한 그러면서도 철저히 우리 자신인 순간. 그런 순간들을 사랑하십시요. 그 순간이 지나가는 것을 애통해하든가 어떻게 하면 그런 순간이 다시 와서 머물게 할 수 있을지를 집요하게 궁금해 하지 마십시요. 그대신 그런 순간들을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갖도록 하십시요. 당장에 필요한것과 걱정이 정리된뒤, 그런 투명한 순간의 어떤것이 서서히 그러나 분명히 영혼을 따뜻하게 하도록 기도하는 마음을 갖도록하십시요. 이것이 께어있는 사람들의 기도 입니다. “이는 나의 아들, 내가 선택한 아들이니, 그의 말을 들어라.” 이런 상태의 마음과 정신이면 사순절 동안 지키는 절제와 특별한 노력이 의미가 있고 타당하다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이러한 순간들을 사랑으로 응답하는 것이 그리스도께서 새우신 계약의 조건입니다 .제일 독서의 아브람과의 계약에서 그런 조건이 어마 어마 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그것은 또한 복음서에서도 분명히 풍성히 있습니다. 제 2 독서에서도 예수께서는 “우리의 비천한 몸을 당신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은 형상으로 변화 시켜 주실 것입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미사중 성체 성사가 그 말씀이 사실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동안 내내 잠자지 마십시요. 잠에 취해있지 말고 깨어 나십시요. 일어 나십시요. 울고 있는 사람들에게 조차 새로운 새벽이 트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