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공현 대축일

김정현·2009. 1. 1. 오후 4:50:12

주님 공현 대축일    최창덕(F.하비에르) 신부

 전례신학적 성격
 

주님 공현(Epiphania) 축일로 불리는 1월 6일의 축제는 성탄 축제 시기의 두 번째 정점을 이룹니다.

고대사회의 사람들은 에피파니아(Epiphania)라는 표현으로 왕이나 황제의 오심을 마치 신성(神性)의

현현(顯顯)과 그분의 영광이 나타내 보이는 것과도 같이 표시했습니다.

 우리 역시 신약성서 사도 바울로의 편지에서 이 같은 표현을 만나게 됩니다. 이 표현은 곧 그리스도를

뜻했습니다. 디모테오 후서는 강생 안에서 그리스도의 첫 번째 오심을 공현(Epiphania)으로 표현합니다.

 “지금은 우리의 구원자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출현으로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죽음을 없애시고

복음을 통하여 생명과 불멸함을 빛내셨습니다.”(2디모 1,10) 다른 곳에서는 Epiphania로 영광 중에 오시는

주님의 재림을 의미했습니다. : “또 복된 희망이 이루어져, 위대하신 하느님의 영광이 나타나시고 우리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기를 기다리게 합니다.”(디도 2,13)

 1월 6일의 공현 축제 표현에서 ‘에피파니아(Epiphania)’라는 단어가 받아들여졌다면, 그를 통해서 주님의

첫 번째 오심으로 여기는 강생이라는 사상만이 아니라, 영광 가운데 주님의 재림이 원래의 목적이며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전례 안에서 그 의미를 밝히고 있다는 사실이 분명해집니다. 마찬가지로 이미 축제

이름 안에서 그리고 이날의 미사양식 본문 안에서 강조되는 두 번째 사상은 왕이시며 주권자로서의 주님은

창조 전부를 포함하는 당신의 소유물 안으로 오신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만이 야훼의 소유물

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에로 불림을 받고 구속된 이교 백성들도 하느님의 소유물인 것입니다.

동방박사들의 경배에 대해 알려주는 마태오 복음 구절은 이 사상을 가장 분명하게 강조합니다. 이 사건 안

에서 복음사가는 야곱에게서 별이 떠오르고 이스라엘에서 한 왕권이 일어나며(민수 24,17), 이스라엘을 다

스릴 분이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시어(미가 5,1), 그 왕 앞에 이마를 대고 경배하리라(이사 49,23)고 예언한 예

언자들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성탄 축제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대표하는 이들이 구유 앞에 서서 다윗의 아들이며 왕이요 메시아이신 분을

경배했다고 말할 수 있다면, 주님 공현 대축일에서는 이교 백성들을 대표하는 이들이 새로 태어나신 세상의

주도자이신 분께 경배와 공경을 드린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레오 대 교종은 주님의 강생 안에서 하느님의 영광이 전 인류에게 계시되어 그들이 구원으로 불려졌다는

공현 축제의 이 같은 신학적 의미를 자신의 공현 축일 설교에서 잘 표현하였습니다. : “오늘 경축하는 주님

공현 대축일은 우리에게 성탄의 기쁨을 연장시켜 주고 있는데, 두 축일에서 서로 비슷한 내용의 신비를

연이어 지낸다 해서 우리 기쁨의 강도나 믿음의 열정이 약화되지 않습니다.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중개자로

태어나신 갓난아기가 작은 마을에 갇혀 계시면서도 벌써 온 세상에 선포하신 인류구원에 관한 일입니다.

사실 그분은 이스라엘의 백성 그리고 이 백성 가운데 한 가정을 선택하셨으며, 이 가정에서부터 전 인류가

지니고 있는 본성을 취하셨지만 당신의 탄생이 어머니의 협소한 거처 안에 감추어져 있기를 원치 않으시고

만민을 위해 태어나신 그분은 즉시 모든 이에게 알려지기를 원하셨습니다.”(강론 31편, 제1 주님 공현 강론)

 그러므로 공현 축제는 성탄 축제의 의미를 다른 차원에서 깊이 보완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성탄 축제에
 
서는 주님께서 취하신 인간성이 그 중심에 놓여진다면, 즉 그 인간성이 베들레헴에서 아기가 구유에 누워졌
 
을 때 이미 계시되었다면, 공현 대축일에서의 교회는 우리 인간(人間) 가운데 드러나셨고 육(肉)을 취하셨던
 
신성(神性)에로 그 눈길을 돌립니다. 하느님이 구유에 누워있는 아기로서 비록 인간적 연약함 안에 자신을
 
계시하셨다 하더라도, 그분은 왕이시고 주도권자이시며 인간의 모습 안에 계시는 하느님이십니다.
 
전례는 인간적 사고의 한계성을 고려합니다. 즉 우리는 두 가지 지향, 곧 그리스도 안에서의 신적인 모습과

인간적인 모습을 동시에 숙고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두 축제는 서로 서로 성탄과 공현의 의미를 보완하

고 서로에게 빛을 밝혀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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