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산책이 기다려진다.

레나·2006. 7. 26. 오후 12:42:13

비오는 오늘 아침도 비옷을 입고 우산을 들고 길을 나섰다.

 

길게 펄럭이는 기장과 팔 끝이 귀찮다고 댕강 잘라버린 우비를 입고 앞서 가는 남편은 말없이 왼 손에 묵주만 흔들며 늘 앞장서서 걷는다. 어쩌다 기척이 안 느껴지면  뒤 돌아보다가 내가 가까이 가면 그대로 열심히 걷는다. 나무들이 우거진 숲길을 지나면서 우산을 접고 우비 모자를 덮어쓰고 우산은 나무에 걸어놓고 그냥 비를 맞으며 걷는다. 흙길에 물이 찰박거려 물 빠지는 곳을 골라 밟으며 앞에 가는 남편의 발만 보며 따라간다. 풀들이 비에 흠뻑 젖어서 생기가 발랄하다. 겨우 살고 있다고 느껴지던 길가의 코스모스가 비 내리는 동안에 가지도 뻗고 키도 쑥 올라왔다. 가을이면 아름다운 코스모스를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달맞이꽃의 노란 색이 유난히 더 노래 보이고  아직 드문드문 피고 있는 자귀나무의 분홍 꽃이 물방울사이로 더 투명하고 파란 꽃 사과 푸른 열매에 빗물이 깔끔하게 세수를 시켜주어 뽀득 뽀득 소리가 날 것 같다.

 

들숨은 코로 날숨은 입으로 복식 호흡을 하며 코스코의 ‘우편마차’ 노래를 부르며 장단을 마친다.  비오는 산책길은 사람들이 적어서 좋다. 젊은 부부가 우산 을 쓰고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우리 뒤로 물러나고 자귀나무와 라일락 둥치를 지나서 개망초와 약쑥이 쑥쑥 자란 잡초사이로 난 좁은 길을 부지런히 걸어간다. 멀리 북한산 줄기에서 도봉산으로 이어지는  푸르스름한 능선을 둘러치고 남쪽의 아차산 너머 흐릿한 능선을 보며 돌아 불암산 자락 검은 소나무 숲을 다시 바라본다. 하늘을 올려다보면 자귀나무 작은 잎 새 자잘한 사이로 흐린 하늘이 보인다. 자잘하게 마주 붙은 이파리를 타고 긁은 물방울들이 뚝뚝 떨어진다. 잔 풀 사이에 고여 있는 물을 철벅이다가 흙탕물을 밟고 깨끗하게 닦여진 자갈돌을 밟다가  진흙이 패인 길을 걷는다.

 

산비둘기 한 마리가 구루룩 구우우 구루룩 구우우 처량하게 운다. 어디에 앉아 이 비를 다 맞으며 울고 있담. 묵주를 챙기지 못한 오늘은 손가락을 꼽으며 기도를 드리는데 자꾸만 잡념이 생긴다. 빗물은 모자를 타고 흐르고 소매 끝과 다리에 우비 자락이 자꾸 붙어 답답한데 오늘 입은 싸구려 반바지 허리는 자꾸 늘어나서 흘러내리다 못해 우비 사이로 손을 넣고 허리를 움켜쥐고 걸어야 한다. 걸음은 느려지고  기도 횟수를 자꾸 까먹고 한 기도를 반복하여 다시 또 시작을 한다. 정강이가 아파오고 땀도 나고 우비 속은 한증막이다. 긴 수원지언덕 길을 세 바퀴 돌고나니 한시간이 더 걸렸다. 드디어 오늘 아침 바치려고 한 묵주기도 15단을 그런대로 빗속에서 다 마쳤다. 비도 잦아들고 돌아오는 길은 상쾌해진다. 언덕위에서 우산 손잡이를 내밀며 잡고 올라오라는 남편을 보니 웃음이 난다. 계속해서 앞만 보고 걷더니 가파른 언덕에서는 뒤뚱이는 내가 미끄러질까 걱정은 되는 모양이다. 어제 본 망태기 버섯은 비가 오는데도 노랗게 망태기를 올리고 있다.

 

 

 


 

댓글 2

옥복이·2006. 7. 26. 오후 8:22:13

두분의 다정한 모습 아름다운 한폭의 수채화로 상상해봅니다. 낮에 형제님 만나 얘기듣고 손잡고 데이트 잘 하셔요' 했더니 따로 따로 기도만 하노라고 하셨어요. 낼부텀 기도도 합송으로 하세~엠!!!

레나·2006. 7. 29. 오후 9:26:50

우리가 합송으로 기도 드릴 때는 제사날 연도들릴 때 뿐인 것 같으네....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