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요강

레지나·2007. 6. 30. 오전 8:02:07

<아버지의 요강>


 

"아버지, 그게 뭐예요?"

저녁 무렵 아버지는 양손에 볼이 불룩한
검은 비닐봉지를 들고 들어오셨다.

 

"이거? 요강이다, 요강."
"요, 요강이요?"

어머니와 나는 아버지가 왠 요강을 사들고 오셨는지 의아해
서로 얼굴만 쳐다보고 있었다.

 

"다 쓸 데가 있어 사왔지."

이렇게 대꾸를 하시더니 아버지는 화장실로 가셔서
요강 두 개를 비눗물로 깨끗이 씻고 행궈
마른 걸레로 정성껏 닦으셨다.


그때까지도 어머니와 나는 아버지를 그저 물끄러미 바라만 보았다.

"대체 무슨 일이니? 난데없이 요강을 다 사 오시고."
"그러게 말이에요. 저걸 누구보고 쓰라고...그것도 두 개씩이나."

연로하신 할머니가 계시긴 하지만 아직 정정하셔서
요강 따위를 둘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저녁상을 물리자
아버지는 화장실 옆에 놔 둔 요강을 들고 오셨다.

"자. 이건 네 거구. 그리고 이건 당신하고 나랑 쓰면 되겠네"


"여보!"
"아버지!"

황당한 노릇이었다.


요즘 요강을 변기로 쓰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그것도 얼마 전 우리는 새로 지은 아파트로 이사와
깨끗한 수세식 화장실이 버젓이 있는데.


십 수 년 만에 우리 집은 좁은 산동네에서 벗어나
스물 한 평짜리 아파트로 옮겨왔다.
기반은 없었지만 성실하게 살아오신 부모님 덕분에
집다운 집에서 살게 된 것이다.


할머니와 방도 따로 쓸 수 있게 되었고,
무엇보다도 방 옆에 붙은 화장실이 얼마나 반가웠는지...


그러니 아버지가 들이미는 요강이
얼마나 뜬금 없는 물건이었겠는가.

"아버지, 멀쩡한 화장실 놔두고 웬 요강이에요."
"당신, 무슨 일 있수?"

어머니와 내가 이렇게 따지고 들자
그제서야 아버지는 입을 여셨다.

 

"이사 온 날 밤에 말이야.
내가 볼일을 보고 물을 내리는데
어머니가 놀라서 깨시더라구.


그렇지 않아도 요즘 심장 때문에 조심스러운데
밤마다 우리가 화장실 물 내리는 소리에 놀라시면 어떡해?
좀 불편하더라도 이렇게 해 보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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