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다킹 신부님과 새벽을 열며

이혜순·2005. 12. 9. 오전 7:15:39




몇 달 전, 텔레비전에서 개그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코너는 여자 세 명(두 명인가요? 딱 한 번 보아서 잘 모르겠네요)이 나와서 대화를 나누는데요, 그 중 한 사람이 꼭 마지막 답변으로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꼭 그렇지만은 않아.”

물론 사람들을 웃기기 위해 말투도 이상하게 하면서 하는 말이지만, 이 말이 우리들 세상에 딱 들어맞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이 세상은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돌아가는 법이 없다는 것이지요. 즉, 이 세상은 꼭 그렇지만은 않은 법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들은 그렇게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분법으로 나누듯이, ‘좋다, 나쁘다’라고 쉽게 말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정말로 그렇게 나눌 수 있을까요?

어떤 사람이 자신의 직장에서 최선을 다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밤을 새워가면서도 일을 하지요. 어떻습니까? 바로 이때 이렇게 밤을 새우면서 일하는 이 사람의 모습은 어떤가요? 좋은가요? 나쁜가요? 건강이 조금 걱정되지만 그래도 열심한 이 모습을 사람들은 긍정적으로 바라볼 것입니다.

똑같이 밤을 새우면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고스톱을 치고 있습니다. 또 어떤 이는 컴퓨터 오락을 하면서 밤을 새우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사람들은 어때요? 분명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밤을 새우면서까지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우리들은 긍정적으로 바라볼까요?

이번에는 이런 예를 한번 들어 볼게요. 금이나 은이 엄청나게 많으면 부자일까요? 가난할까요? 아마 부자라고 이야기할 것입니다. 하지만 가난할 수도 있습니다. 아프리카에 금이나 은이 생산되는 나라를 떠올려 보세요. 부자입니까? 우리나라에는 금이나 은이 많이 생산되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금이나 은이 엄청나게 생산되는 나라보다 더 잘 살고 있다는 것이지요.

이 세상은 이렇기 때문에 ‘옳고, 그르다’라는 식의 이분법이 통용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그러한 이분법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지 않나 싶어요. 그런데 여기서 특히 문제되는 것은 이분법을 주장하면서 그 안에 부정적인 모습만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그렇지요. 그래서 예수님 시대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세례자 요한도 반대하고, 예수님도 반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즉, 사람들은 세례자 요한이 너무 금욕적이라고 하면서 반대하였고, 예수님은 너무나 세속적이라고 하면서 반대하였습니다.

이렇게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의 모습은 정반대의 노선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세례자 요한이 옳다’, 또는 ‘예수님이 옳다’라고 어느 한쪽만을 주장할 수 있을까요? 그럴 수 없지요. 왜냐하면 예수님의 노선도, 세례자 요한의 노선 양쪽 다 옳기 때문입니다.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이분법적인 사고는 버려야 합니다. 또한 이 안에서 발생되는 부정적인 마음도 내 마음에서 지워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주님의 다양한 모습을 체험하면서, 이 세상 안에서 보다 더 의미 있게 생활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긍정적인 말만 합시다. 만약 부정적인 말을 하면 벌금을 내세요. 누구에게?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요…….





♬ 예수님 어서 오세요 ♬

댓글 1

김헌식·2005. 12. 9. 오후 3:24:11

항상 모든일에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생각하면서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