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쪽물같이 푸르게 산 여인 황진이 ◑

레지나·2007. 2. 25. 오전 8:41:34
 

◐ 쪽물같이 푸르게 산 여인 황진이 ◑

황진이는 문 과 예에 능할 뿐 아니라
반상계급제에 굴하지 않는 정신적 지조를 지키고 산
재색을 겸비한 조선조 최고의 명기로 유명하다.

관습화 되어 가던 당대(當代)의 시조에
파격적인 표현으로 활력을 불어 넣은 시인으로,

과감한 일탈을 통해 제도와 인습에 대항한

당대의 신여성으로서 운명의 굴레를 벗어난 자유혼의 상징 !



 - 출생 -

 

연산군 시절,
왕의 폭정 속에 기생‘진현학금’은 왕의 노리개로 발탁되자
스스로 눈을 멀게 하여 연산군의 마수로부터 벗어난다.

이후 진현학금은 거문고 연주에 매진하고,
황 진사는 비록 맹인이지만

타고난 미색과 고혹적인 매력을 지닌 그녀를
사모하게 되어 두 사람은 깊은 사랑을 나누지만,
신분의 벽을 넘지 못하고 이별을 한다.

진현학금은 황 진사의 핏줄인‘진’을 맡기고

홀연히 유랑을 떠난다.

양반가 규수의 신분에서 천기 소실의 여식으로 전락하고,
이후로 진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해나갈 것을 결심한다
.


본질적 자유혼의 삶을 살고 간 여인 황진이

본명은 진(眞). 기명(妓名)은 명월(明月).
진사의 서녀로 태어났으나,
[사서삼경 (四書三經)]을 익혀

시(詩), 서(書), 음률(音律)에 뛰어났고,
출중한 용모로 더욱 유명하였다.

박연폭포(절승) 서경덕(절윤)황진이(절색)를

송도3절(松都三絶)이라 자칭하였으니

그 대담함과 자신감이란...



15세 무렵에 동네 총각이 자기를 연모하다가 
상사병으로 죽자

기생에 투신, 문인, 유생들과 교류하며

탁월한 시재(詩才)와 용모로 그들을 매혹시켰다.

당시 10년 동안 수도에 정진하여 생불이라 불리던
천마산 지족암의 지족선사를 유혹하여 파계(破戒)시켰고,

당대의 대학자 서경덕을 유혹하려 하였으나 실패한 뒤,
평생을 흠모하며 사제관계를 맺는다


- 황진이 -

"청산 속에 흐르는 푸른 시냇물아
쉽게 흘러감을 자랑 마라.

한번 바다에 이르면 다시 돌아오기 어려우니
명월이 빈 산에 가득 찼으니 쉬어 가면 어떻겠느냐.



- 서경덕 -

마음이 어리석으니 하는 일이 다 어리석다.
겹겹이 쌓인 깊은 산 속에

어느 임이 오겠는가 마는 떨어지는 잎
부는 바람 소리에 혹시 그이인가 하노라."



벽계수와는 깊은 애정을 나누며
난숙한 시작(詩作)을 통하여 독특한 애정관을 표현했다.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둘에 내어’는

그의 가장 대표적 시조이다.

    황진이가 사랑했던 사람

    내 언제 무신하여 임을 언제 속였관대 월침 삼경에 온 뜻이 전혀 없네 추풍에 지는 잎 소리야 낸들 어이 하리오.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베어 내어 춘풍 이불 안에 서리서리 넣었다가 어룬 임 오신 날 밤이어든 굽이굽이 펴리라. 산은 옛 산이로되 물은 옛 물이 아니로다 주야에 흐르니 옛 물이 있을소냐 인걸도 물과 같도다. 가고 아니 오노매라.

    황진이를 기리는 사람

    어져 내 일이여, 그릴 줄을 모르더냐. 이시라 하더면 가랴마는 제 구태여 보내고 그리는 정은 나도 몰라 하노라.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 감을 자랑 마라 일도 창해하면 돌아오기 어려우니, 명월이 만공산 하니 쉬어 간들 어떠리. 청초 우거진 골에 자는다 누웠는다 홍안은 어디 두고 백골만 묻혔는다 잔 잡아 권할 이 없으니 그를 슬퍼하노라. 이는 임제가 황진이 무덤에서 기리는 글입니다.


조선시대 아닌 현대의 우리나라에도
최초의 여성총리가 탄생했으니
황진이 보담 낫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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