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전수전에 공중전까지(10/4)

2004. 10. 4. 오전 12:06:03

글자

 아사시의 성 프란치스코 기념일 (2004-10-04)
독서 : 갈라 1,6-12 또는 갈라 6,14-18 복음 : 루가 10,25-37 또는 마태 11,25-30

산전수전에 공중전까지

그때에 어떤 율법교사가 일어서서 예수의 속을 떠보려고 “선생님, 제가 무슨 일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께서는 “율법서에 무엇이라고 적혀 있으며 너는 그것을 어떻게 읽었느냐?” 하고 반문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생각을 다하여 주님이신 네 하느님을 사랑하라. 그리고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고 하였습니다.” 이 대답에 예수께서는 “옳은 대답이다. 그대로 실천하여라. 그러면 살 수 있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율법교사는 짐짓 제가 옳다는 것을 드러내려고 “그러면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들을 만났다. 강도들은 그 사람이 가진 것을 모조리 빼앗고 마구 두들겨서 반쯤 죽여놓고 갔다. 마침 한 사제가 바로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 사람을 보고는 피해서 지나가 버렸다. 또 레위 사람도 거기까지 왔다가 그 사람을 보고 피해서 지나가 버렸다. 그런데 길을 가던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그의 옆을 지나다가 그를 보고는 가엾은 마음이 들어 가까이 가서 상처에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매어 주고는 자기 나귀에 태워 여관으로 데려가서 간호해 주었다. 다음날 자기 주머니에서 돈 두 데나리온을 꺼내어 여관 주인에게 주면서 ‘저 사람을 잘 돌보아 주시오. 비용이 더 들면 돌아오는 길에 갚아드리겠소’ 하며 부탁하고 떠났다. 자, 그러면 이 세 사람 중에서 강도를 만난 사람의 이웃이 되어준 사람은 누구였다고 생각하느냐?” 율법교사가 “그 사람에게 사랑을 베푼 사람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너도 가서 그렇게 하여라.”
(루가 10,25­-37)

◆우리집엔 매스컴에서나 나올 법한, 웬만한 어른들 인생 육십에 뺨치는 산전수전 공중전을 겪은 아이들이 태반이다. 자의든 타의든 이른바 문제아가 된 우리 아이들에게 가장 어려운 것은 사랑이다. 친부의 성폭행과 구타, 자기를 버리고 도망간 엄마, 새 남편 앞에서 이모라고 부르라는 엄마를 둔 아이들에게 하느님 아버지와 성모님의 사랑은 송아지 껌 씹는 소리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더이상의 방황과 갈등을 멈추고 삶의 변화와 성장을 위해 희망의 미래를 향해 나아가려고 무던히도 애쓴다.
그런 아이들을 볼 때면 늘 프란치스코 성인과 제자의 일화가 생각난다. 어느날 제자가 스승에게 이웃 마을의 흉악범에 대해 말하자 프란치스코 성인은 그를 욕하지 말라 하시면서 그가 내게 베푸신 은혜의 10분의 1이라도 받았다면 그는 결코 흉악범이 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과 그토록 많은 은총을 받았음에도 이 모습뿐이라는 겸손한 모습을 드러내신다. 그러나 성인의 말씀이 그저 겸손만이 아님을 절감한다. 정말 우리 아이들이 내가 받은 신뢰와 사랑을 받았더라면`…, 정말 우리 아이들이 내가 우리 부모님께 받은 사랑의 10분의 1만이라도 받았더라도 이렇게 아픈 모습은 아닐 거라는`…. 그럼에도 그토록 많은 사랑을 받은 나는 불신과 치졸한 갈등 속에 있다는 것이 부끄럽다. 사마리아 사람은 어쩌면 자기가 받은 사랑을 고스란히 돌려줄 줄 알았던 사람이 아니었을까? 계산 없이 받은 신뢰와 사랑을 상대가 누구든지 가리지 않고 고스란히 돌려줄 줄 아는 사람, 내가 받았기에 가서 그렇게 할 줄 안 사람.

강석연 수녀(살레시오 수녀회 마자레로 센터)

댓글 1

  • 2004년 10월 4일 오후 7:20

    내 이웃이 누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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