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시복

김종업

2011. 5. 7. 오후 6:33:14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시복

 

“교황이여, 영원하라”, 선종 6년만에 경사 … 87개국 300만 명 참가

 

"나는 행복합니다, 여러분도 행복하십시오."

전 세계인의 평화와 행복을 기원하고 떠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복자품에 올랐다. 선종한 지 6년1개월(2005년 4월 2일 선종)만이며, 교황으로서 11번째 복자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1일 오전 10시 바티칸 베드로광장에서 87개국 300여만 명의 군중이 함께한 가운데 시복식을 열고, 요한 바오로 2세를 복자로 선포했다. 선포와 함께 성베드로대성당 외벽에 걸린 요한 바오로 2세의 사진 위 휘장이 걷히자, 그의 고향인 폴란드를 비롯한 다양한 나라에서 온 참석자들은 환호하며 '비바, 빠빠(교황이여, 영원하라)'를 외쳤다.

군중들은 시복 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약력이 소개될 때도 로마교구장으로 임명되고, 젊은이를 매우 사랑했다는 부분에서 큰 박수와 탄성을 보냈었다. 이어 이번 시복의 근거가 된 기적의 주인공, 마리 시몬 피에르 수녀가 요한 바오로 2세의 혈액을 제대에 봉헌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강론을 통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복자로 시복됐다"고 다시 한 번 강조하며 "1982년부터 신앙교리성 장관을 지내며 그와 함께 일할 수 있었던 것을 진심으로 하느님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교황은 시복식 후 성베드로대성당에 놓인 요한 바오로 2세의 관 앞에 무릎을 꿇고 한참동안 기도하며 입을 맞췄다.

바티칸은 이날 시복식을 위해 4월 30일부터 시내 차량통제에 돌입했으며, 고대 로마시대 원형경기장 유적인 치르코 마시모에서 전야행사를 열고 축제의 장을 마련했다. 오후 8시부터 로마교구 총대리 아고스티노 발리니 추기경의 주례로 진행된 행사에는 25만 명의 군중들이 참석했으며, 교황의 개인비서였던 스타니슬라프 드지비츠 추기경, 기적을 받은 마리 피에르 수녀 등 인연이 깊은 이들이 출연, 빛의 신비를 봉헌하며 그를 회고했다.

스타니슬라프 드지비츠 추기경은 요한 바오로 2세를 '기도하는 교황'이라며 '이제는 성인으로(SANTO SUBITO)'라는 현수막을 보고 '그의 삶 자체가 성인의 삶'이었다고 전했다.

복자품에 오른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원래 이름은 카롤 보이티와로 1978년 제264대 교황으로 선출됐으며, 104차례 129개국을 순방해 '행동하는 교황' 등 수많은 애칭을 얻었다. 특히 1984년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 및 103위 순교자 시성식과 1989년 서울세계성체대회에 참석해 한국 교회에 대한 사랑을 보여준 바 있다.

한편 이명박 대통령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시복식을 맞아 교황 베네딕토 16세 앞으로 서한을 보내 "동서 냉전 타파 및 세계 평화정착에 기여한 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시복을 축하한다"는 뜻을 전했다.


 
▲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시복식 후 요한 바오로 2세 관 앞에서 기도를 바치고 있다.
 
 
 
로마(이탈리아) 오혜민 기자 (oh0311@catimes.kr)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발자취를 찾아서] (1)

 

잘못 인정할 줄 아는 ‘영웅적 덕행’ 재조명, 104회·129개국 순방 기록 세운 ‘행동하는 교황’, 교회 일치에 앞장 … 시대 초월한 진리 고수 노력, 시복 맞아 거룩했던 덕행의 발자취 되짚어 볼 것

 
전 세계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시복을 맞아 환호 중이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시복 관련 페이스북(www.facebook.com/vatican.johnpaul2) 담벼락에는 매일 동영상과 글이 올라오고 있으며, 수많은 댓글이 달리는 등 많은 이들이 관심을 쏟고 있다. '여러분도 행복하세요.' 마지막까지도 우리의 행복을 빌었던 교황, 그래서 선종 후에도 뜨거운 사랑을 받은 교황. 5월 1일 시복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발자취를 다시 한 번 더듬어본다.



■ 화제의 인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 5월 1일 시복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유례없는 지구촌 순방의 기록뿐 아니라 사회주의 정권 및 자본주의에 대한 맹점 비판, 시대를 초월하는 전통교회의 입장을 분명히 밝힌 점 등에서 '영웅적 덕행'이 돋보이는 삶을 살았다.
 
 
5월 1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시복됐다. 그의 업적은 그가 이룬 '영웅적 덕행의 삶'이었다. 2009년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요한 바오로 2세가 '영웅적 덕행의 삶'을 살았다고 선언한 바 있다.

카롤 보이티야(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원래 이름). 그는 교황 임명 때부터 선종까지 세인들의 화제가 돼왔다.

그는 우선 공산국가 폴란드 출신이었고, 교황직을 수행한 첫 슬라브인이며, 네덜란드 출신의 하드리아노 6세 이후 첫 번째 비이탈리아인 교황이었다. 그의 소박한 취임식은 교황직을 더 빛나게 했으며, '여러분, 걱정하지 마십시오'라는 말로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주었다.

그는 교황으로 임명되기 전에도 38세의 폴란드 역사상 가장 젊은 나이의 주교(1958년, 크라코프대교구 보좌주교)였으며,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 참석, 사목헌장을 다듬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했다. 또 1964년 그는 크라코프대교구장으로 임명됐으며, 불과 3년 뒤인 1967년 추기경에 서임됐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행동하는 교황'으로도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았다. 유례없는 그의 지구촌 순방은 1979년 1월 멕시코 바하마 방문부터 2004년 8월 프랑스 루르드 방문까지 104회, 129개국 순방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이 가운데는 두 차례의 한국 방문도 있었으며, 2000년에는 대희년을 맞아 이집트와 요르단,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등을 성지순례하기도 했다.

'행동하던' 교황은 그 명성과 덕행에 따라 큰 위협을 받기도 했다. 1981년 5월, 베드로광장에서 일반알현 당시 저격을 당한 것이다. 그러나 보편교회의 목자로서 그는 1982년 포르투갈의 파티마를 방문, 저격에서 자신을 구해준 성모에게 감사의 기도를 바쳤으며, 저격한 이를 오히려 용서하기도 했다.

■ 영웅적 덕행의 삶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삶은 영웅적 덕행의 삶이었다. 사회주의 정권에 대해 비판의식을 가졌던 그는 1989년 당시 소련의 공산당 서기장 고르바초프를 만나기도 했으며, 동유럽이 서유럽의 물질주의를 좇는 것을 보면서 회칙 「100주년」을 통해 자본주의의 맹점도 지적한 바 있다.

특히 그는 갈라진 형제들을 하나로 모으는 교회일치 운동을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는데, 이 가운데 동방교회와의 우호적 관계를 증진시키기 위해 힘썼다. 1979년 이스탄불에서의 전례, 1986년 로마 프로테스탄트 교회에서의 설교, 아시시에서 가진 평화를 위한 세계기도모임, 2002년 미국 9·11 테러 후 종교인들과 또 다른 아시시 기도모임을 열었던 것은 그가 교회일치를 위해 노력한 흔적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교황으로서 파격적 행보를 내딛었던 그에게 신앙은 늘 보수적인 것이었다. 따라서 그는 '확실성의 교황'으로도 불리고 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개혁을 받아들이지 않은 르페브르 대주교를 파문했으며, 피임, 낙태, 동성애와 같은 문제에 대해서도 계속 반대 입장을 취했다. 또 회칙 「진리의 광채」 등을 통해 전통교회의 입장을 분명히 밝히며 시대를 초월하는 진리를 전달하려고 노력했다.

그는 이러한 올곧은 신앙의 입장을 전달하기 위해 시시각각 변하는 다양한 사회현상과 사회논리에 대해 관심을 두었다. 따라서 인공수정과 무기산업, 대중매체와 인터넷 등 다양한 문제에 대해 교회의 가르침을 일깨웠다. 하지만 최빈국의 부채를 탕감해달라는 외채문제에 대한 요청과 교회의 과오를 인정하고 용서를 청한 행동 등은 보수적 입장에서 벗어나 파격과 함께 그의 생각의 깊이를 나타내는 것이기도 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 종교전쟁, 종교재판, 십자군 전쟁 등 다양한 문제에 대해 그리스도교의 잘못에 대해 비판적 연구를 하도록 했으며, 가톨릭 구성원들이 잘못한 지난 역사들에 대해 하느님의 용서를 청했다.

■ 시복을 앞두고

포르투갈 출신으로 교황청 시성성 장관을 지낸 호세 사라이바 마르틴 추기경은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요한 바오로 2세의 시복을 위한 기적 인정 칙령에 서명한 뒤 즉시 가진 회견에서 "전세계가 기다리던 일"이었다며 "더 없이 행복하다"고 말했다.

가톨릭신문은 5월 1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시복식을 시작으로 교황으로서 걸어간 그의 발자취와 복자로서의 그의 덕행, 한국과의 뜻 깊은 인연을 되짚어본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일군 덕행의 삶은 모든 것을 초월한 거룩함의 모범이자 우리에게 남겨진 숙제가 될 것이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시복] 이모저모 1

 

전 세계 한마음으로 “이제는 성인” (Santo Subito), 축제 분위기 이끈 폴란드 신자 열기 단연 압권, 입장 못한 이들도 대형 스크린 통해 기쁨 나눠, 바티칸 거리에 복자 모습 담은 기념품 넘쳐나

 
1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시복은 전 세계인의 축제였다. 시복식이 열린 바티칸과 로마시내는 물론, 교황의 고향 폴란드에서는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야외스크린을 통해 시복식에 함께했으며, 필리핀과 멕시코 등 여러 나라의 신자들도 한마음으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시복을 지켜봤다. 바티칸은 시복식이 이뤄진 올해 5월부터 1년 동안을 '축제의 해'로 지정하고 요한 바오로 2세의 시복을 경축하기로 했다.
 

 
▲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전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복자로 선언함과 동시에 성베드로성당 외벽에는 자애로운 미소를 띤 새 복자의 대형 초상화가 드리워졌다.
 
 
  
◎… 시복의 축제 열기가 한창인 바티칸 안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사람들은 폴란드 신자들이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고향 폴란드 신자들은 시복식 전부터 최소 100만 명 이상이 바티칸을 찾을 것으로 예상돼 전 세계인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폴란드 신자들은 국기를 손에 흔들며 요한 바오로 2세의 이름을 연호했고, '이제는 성인(SANTO SUBITO)'이라는 현수막을 들고 요한 바오로 2세의 시성을 기원했다. 또 민속의상을 입고 기타를 치며 노래를 하는 등 폴란드인 교황의 시복을 온마음으로 축하했다.
 

 
▲ 시복 전야에 열린 철야기도회에서 순례객들이 '이제는 성인(SANTO SUBITO)'이라는 현수막을 들고 기도를 바치고 있다.
 
 
 
◎… 로마시내 대형본당들은 성베드로광장에 미처 입장하지 못한 신자들을 위해 초대형 스크린을 설치, 시복 전야미사와 시복식을 생중계했다. 특히 4월 30일 시복 전야미사 후 각 성당은 종을 울려 시복에 대한 기쁨을 나타냈으며, 신자들이 함께 모여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시복을 바라는 철야기도회를 열었다. 시복 전야미사에 참례했던 신자들은 바티칸까지 행진하며 각 성당을 순례했다. 또 2만5000명이 바티칸을 떠나지 않고 시복식이 열리는 다음날까지 성베드로광장과 산타안젤로성 사이에서 잠을 청하며 교황의 시복을 염원했다.
 

 
▲ 성베드로광장에서 거행된 시복식에 미처 입장하지 못한 이들은 대형 스크린을 통해 예식을 지켜봤다.
 
 
 
◎… 시복 전야행사에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생전 모습을 기억하는 이들의 인터뷰가 이어졌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개인비서였던 스타니슬라프 드지비츠 추기경은 "어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무덤을 방문했는데 마치 그가 우리 가운데 다시 돌아온 것 같았다"며 "그는 항상 기도하셨고, 12년 동안 그의 비서로 일하며 느낀 것은 그의 인생 자체가 성인의 삶이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 바티칸 거리에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모습을 담은 포스터와 깃발, 다양한 기념품들이 넘쳐났다. 교황의 생전 말씀을 적은 시복식 포스터와 함께 교황상본과 엽서, 묵주, 기념주화, 티셔츠, 찻숟가락, 십자가, 달력 등이 줄을 이었으며 순례자들은 기념품을 사기 위해 상점 앞에 줄을 섰다. 교황의 생전 사목방문 모습을 담은 화보집과 DVD도 판매됐다. 화보집에는 104차례, 129개국을 순방한 다양한 교황의 모습과 함께 1984년과 1988년 당시 우리나라를 방문했던 모습도 수록돼 있다.


 
▲ 바티칸 거리에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모습이 담긴 다양한 기념품들이 넘쳐났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시복] 이모저모 2

 

 
'비바 파파!' 기쁨과 감격의 순간들
 


 
▲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시복 현장을 지켜 보기 위해 1일 시복식이 거행된 성베드로광장과 화해의 길(Via della Conciliazione)에 1만여 명의 순례객들이 모여 들었다.
 
 

 
▲ 시복 선언 직후 요한 바오로 2세의 기적으로 파킨슨씨병에서 회복된 프랑스 마리시몽 피에르 수녀(오른쪽)와 마지막 순간까지 간호했던 폴란드 토비아나 수녀가 요한 바오로 2세의 혈액이 담긴 은제성유물함을 봉헌하고 있다.
이 혈액은 복자의 선종 전, 수혈에 대비해 채혈된 것이다.
 
 

 
▲ 폴란드 전통의상을 입은 남녀가 시복식 미사에 쓰일 성찬 전례 예물을 들고 입장하고 있다.
 
 

 
▲ 시복식에 참석한 순례객들이 복자 탄생의 기쁨에 감격해 하고 있다.
 
 

 
▲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성베드로성당 안 중앙 제대 위에 안치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관을 참배하고 있다.
이 관은 지난달 29일 안장돼 있던 성베드로성당 지하에서 시복식을 위해 옮겨졌으며, 시복식 후 순례객들의 참배가 끝난 뒤 성세바스티아노경당에 안치할 예정이다.
 
 

 
▲ 시복에 대한 전 세계의 관심도를 말해주듯, 로마 서점에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관한 다양한 책이 진열돼 있다.
 
 

 
▲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전시회장 입구.
하늘에 떠 있는 듯한 책 모형이 이색적이다.
 
 

 
▲ 성인과도 같았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생전의 모습을 그리워 하던 순례객들은 시복식 전야에 철야기도회를 열고 교황의 시복을 염원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시복] 상보

 

전세계 함께한 ‘기적의 축제’

 
3시간여의 시복식은 매순간이 '기적'이었다.

바티칸 성베드로광장에 모인 87개국 300여만 명의 참석자들은 휘장이 올라가며 드러난 요한 바오로 2세의 모습에 함께 환호했고,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강론 후에는 함께 침묵하며 묵상에 잠겼다.

전 세계가 '빠빠(교황)'의 복자됨을 축하했다. 2005년 그의 선종 이후 그를 그리워하던 바티칸은 지금 '축제'다.



▧ 마음의 촛불 하나

2005년 5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선종 당시 신자와 비신자의 구분 없이 눈물을 흘리며 묵주기도를 봉헌하던 모습 그대로, 참석자들은 시복식 전날인 4월 30일부터 바티칸을 메웠다. 이날 오후 8시 고대 로마시대 원형경기장 치르코 마시모(Circo massimo)에서 전야미사를 봉헌한 이들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지정한 '빛의 신비'를 묵상하며 그를 회상했다.

산타체칠리아 합창단의 연주와 함께 어우러진 묵주기도는 이탈리아어를 비롯한 6개 국어로 진행됐으며, 전 세계를 사목 방문한 교황의 모습을 영상으로 기억했다. 시복의 근거가 된 마리 시몬 피에르(Marie-Simon-Pierre, 가톨릭 모성의 작은 수녀회) 프랑스 수녀의 기적체험도 함께 나눴다.

피에르 수녀는 "여기 있는 모든 이들과 청소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며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여러분들을 바라보고 행복해하실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파킨슨씨병이 진행되면서 자신의 이름을 쓸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힘들었다"며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게 전구를 청한 후 제 몸의 무엇인가 변화했음을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생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강조한 부분도 신자들의 기도로 봉헌됐다. 교황이 사랑했던 전 세계 젊은이들과 각자의 가족, 모든 이들의 복음화, 평화와 희망, 교회를 위해 참석자들은 촛불을 손에 들고 온마음으로 기도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마침기도 영상으로 기도를 마친 그들은 '비바, 빠빠(교황이여, 영원하라)'를 외치며 바티칸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바티칸에 도착한 신자들은 요한 바오로 2세를 회상하고 노래를 부르며 시복 전날 밤을 지새웠다.

▧ 시성을 향해

1일 오전 10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시복식이 거행됐다. 새벽부터 성베드로광장은 물론 바티칸 길목이 각 나라에서 온 신자들로 가득 찼다. 이탈리아와 교황의 고향 폴란드, 그리스, 포르투갈, 레바논, 브라질, 필리핀, 아르헨티나, 캐나다, 미국, 멕시코, 프랑스 등 전 세계에서 모인 이들은 저마다의 국기를 흔들며 '비바, 빠빠'를 연호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시복을 선언합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시복 선언과 함께 성베드로성당 외벽에 있던 요한 바오로 2세의 사진 위 휘장이 걷히자 참석자들은 모자를 벗어 흔들며 큰 소리로 환호했다. 이어 마리 시몬 피에르 수녀가 요한 바오로 2세의 혈액과 유해를 봉헌했다. 제단에 봉헌된 혈액은 요한 바오로 2세가 생전 자가수혈에 대비해 채혈된 것으로 냉동상태로 보관 중이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이날 미사강론을 통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시복을 재천명하고 "오늘은 요한 바오로 2세가 시복된 부활 제2주일 자비주일"이며 "이날이 선택된 이유는 하느님의 섭리로 그가 이 축제의 전날 선종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오늘은 5월을 시작하는 성모성월이자 노동자의 성인 요셉을 기억하는 날"이라며 "이러한 모든 요소들이 우리의 순례 여정에 큰 도움이 된다"고 전했다.

그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함께 일할 수 있었던 것을 하느님께 감사드린다"면서 "1982년부터 23년 동안 신앙교리성 장관을 지내며 그의 곁에서 그를 존경해왔다"고 덧붙였다.

교황은 시복식을 마친 후 사제단과 함께 성베드로성당에 놓인 요한 바오로 2세의 관 앞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시복일지

4월 2일 자비주일 전야 : 선종

선종 후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시복에 대한 기존 시복 규정(통상적으로 시복조사가 시작되기 전에는 5년 간의 유예기간이 필요하다) 면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을 잘 아는 120여 명을 대상으로 인터뷰 실시

2005년 6월 : 프랑스 출신 마리 시몬 피에르 수녀가 2001년 40세의 나이로 판정받은 불치병 파킨슨씨병 치유(당시 회원들은 한층 심해진 수녀의 병 치유를 위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전구를 기도함)

2007년 4월 : 교황 선종 2주기 맞아 시복 시작 단계의 조사가 마무리 됐음을 발표, 관련 문헌 교황청 시성성에 전달

2008년 11월 : 시성성 조사팀 포시티오(2000쪽 분량의 성덕에 관한 의견서, positio) 검토 시작

2009년 말 : 시복시성의 지속적 추진 투표로 결정

2009년 12월 :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요한 바오로 2세의 영웅적 덕행(Heroic virtues) 선언, 가경자(Venerable, 可敬者)로 선포하는 칙령 발표

2010년 :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전구를 통해 불치병이 치유됐다는 보고에 대한 심사, 과학적이고 의학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이 없다는 결론.

2011년 1월 14일 :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전구 통한 치유의 기적 승인 칙령 반포(마리 시몬 피에르 수녀의 파킨슨씨병 치유)

2011년 5월 1일 자비주일 :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시복, 선종 6년 만에 이뤄지는 교회 역사상 가장 빠른 기간의 시복


 
▲ 바티칸 성베드로광장에 모인 87개국 300여만 명의 참석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