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교구 역사, 현황.마크

김종업

2009. 2. 2. 오후 6:48:58

 
서울대교구 역사, 현황
 

전사(前史)

17-18세기 이래 우리나라에 도입된 서학서(西學書)를 통해 남인 학자들 사이에 천주교리에 대한 연구가 있어, 주어사 강학 등으로 천주교 신앙이 싹트기 시작하였다. 이 때 이벽의 권유에 의하여 이승훈이 북경에 가서 세례를 받고 1784년에 귀국하여 이벽 등과 더불어 포교를 시작하고 영세를 집전함으로써 서울에 비로소 신앙 공동체가 탄생하였다. 이어 그들은 가성직제도 아래 가성직단을 구성하여 영세는 물론 미사까지도 집전하였던 바, 차츰 이 가성직제도가 법에 어긋남을 깨닫고, 북경 교구에 선교사의 파견을 의뢰하기에 이르렀다. 이 요청에 따라 1795년에 중국인 주문모 신부가 입국함으로써, 조선교회는 비로소 목자를 갖게 되어 천주교는 전국적으로 전파되었다. 이미 1782년 조선교회는 북경교구의 보호를 받게 됨으로써 북경교구에 예속되었다. 그러나 교회 창설과 더불어 박해는 끊임없이 계속되어, 1801년 신유박해 때에는 주신부를 비롯하여 수 많은 순교자를 낳게 되니 조선교회는 다시금 목자를 잃고 말았다.

 

▶조선대목구 설정

이렇듯 박해 속에서 지하에서나마 자생적인 발전을 거듭하면서, 북경 주교와 교황청에까지 호소하는 성직자 영입 운동은 끊임없이 추진되어, 마침내 1831년 9월 9일 교황 그레고리오 16세는 조선 교회를 북경교구로부터 분리하여 독립된 대목구로 설립하는 한편, 파리 외방 전교회로 하여금 전교사업을 담당하게 함과 동시에 자원해서 조선에 나오기를 간청한 브뤼기에르 주교를 초대 대목으로 임명하였다.

이에 브뤼기에르 대목은 갖은 고난을 겪으면서 조선 입국을 기도했으나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하고 병사하였고, 뒤 따르던 모방(Moubant)신부와 샤스탕(Chutan)신부가 1835년부터 조선 입국에 성공하고, 제2대 대목으로 임명된 앵베르(Imbert) 주교도 1837년에 입국하니 조선교회는 비로소 주교와 신부를 가져 견고한 기반을 갖출 수 있게 되었다.

▶거듭되는 박해

그러나 기해 박해로 주교와 신부, 그리고 많은 교회 지도자들이 순교하니 조선교회는 다시금 목자없는 폐허가 되었다. 제3대 대목으로 임명된 페레올(Ferreol)주교와 우리나라 최초의 사제 김대건 신부가 1845년 입국해서 조선교구 재건에 전력을 다 했으나 김신부는 1846년 병오년에 잡혀 순교하였다. 그러나 페레올 주교는 다행히도 박해를 피해 다니며 순교에 힘쓰시다가 1853년에 병사하였고, 그 동안에 메스트르(Maistre) 신부가 입국하여 성영회를 조직, 최초로 고아 구제 사업까지도 전개하였다. 이어 최양업 신부도 입국하여 전국 각지를 순회하며 전교에 힘 쓴 결과 교세는 날로 신장되어 갔다.

제 4대 교목으로 임명된 베르늬(Berneux) 주교가 1855년 입국하고 뒤이어 많은 선교사들이 입국하니 1866년 병인 박해 때에는 국내에 모두 10명의 선교사가 있었다. 병인 박해로 베르늬 주교가 먼저 순교하자 보좌 주교였던 다블뤼(Daveluy)주교가 잠시 제5대 대목이 되었으나 곧5명의 선교사들과 함께 순교하였다.  요행히 살아 남아 조선을 탈출한 리델(Ridel)신부가 제6대 대목이 되어 1877년에 다시 조선에 입국하였으나 곧 체포되어 중국으로 추방되었다.

▶문화활동

이렇듯 박해가 끊이지 않는 가운데도 국내에서 각종 교리서의 번역 보급과 함께 한불자전 등의 편찬사업이 진행되어 1880년과 1881년에 걸쳐 간행됨으로써 한국을 세계에 알리게 되었다. 또한, 달레(Dallet)의 한국천주교회사(Histoire de l'Eglise de Coree)가 1874년에 파리에서 간행됨으로써 한국 교회가 전 세계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1882년 선교의 자유가 어느 정도 허용되면서 제7대 대목으로 임명된 블랑(Blunc)주교는 종현성당을 비롯하여 여러 성당의 건립을 위한 대지를 매수하는 등 교회 재건에 힘썼다.

▶서울대목구

이어 1890년 제8대 대목으로 뮈텔(Mutel) 주교가 임명되어 1898년에 명동대성당의 축성식을 갖게 됨을 계기로, 여러 곳에 성당이 건립되어 전교사업은 전국적인 규모로 확대 발전해 나갔다. 이렇게 해서 1911년에 조선대목구에서 대구대목구가 분리되고, 조선대목구는 서울대목구로 개칭되어 충청도 이북만을 관장하게 되었는데, 뮈텔 주교가 계속 서을 대목구를 맡아 보았다. 그러는 가운데에도 해서교안 등 적고 큰 교난이 끊이지 않았으나 교세는 날로 신장되어 전교 구역은 멀리 제주도와 간도에까지 뻗어 나갔다.

이에 1920년에 원산대목구가 분리되어 함경도와 간도지방의 전교사업은 독일의 상트 오틸리엔의 베네딕또회에 위촉하였고 1927년에는 서울대목구 안에 평양지목구를 독립시켜 미국 메리놀회에 위임하였다.

그리고 장차 한국인 교구 설정을 준비하고자 황해도를 감목 대리구로 설정하였다. 교세가 날로 성해지는 가운데 1925년 7월5일에 로마 교황청에서 기해 박해와 병오 박해 때 순교한 79위의 시복식이 거행되어 조선교회는 다시 없는 영광을 갖게 되었다.

1933년 뮈텔 주교가 선종하고 라리보(Larribeau)주교가 9대 대목으로 취임하였으나 일제의 강압으로 사임하고, 1942년 초 제10 대목으로 노기남 신부가 첫 한국인 주교로 성성되어 취임함으로써 비로소 서울대목구의 자립을 보기에 이르렀다. 노기남 주교는 일제 말기의 여러 가지의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평양지목구와 춘천 지목구장을 겸임하면서 난국을 타개하여 서울대목구를 지켜 왔다.

▶광복후의 성장

1945년 광복이 되자 노 대주교는 전국 성직자와 신자들에게 고유(告諭)하여 교회조직을 정비하였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6.25전쟁으로 다시 교회가 파괴되고 많은 신자를 잃는 비극을 초래하였으나 휴전과 더불어 노주교는 세계 각국을 순방하여 원조를 청해다가 조국 재건과 교회 복구에 노력해 온 결과 1962년 3월 10일에는 교계제도 설정에 따라 서울대목구가 대교구로 승격됨에 노주교는 대주교로 승품되었다.

 

1998년 5월 29일 교황 요한바오로 2세는 제 13대 서울대교구장으로 정진석 니콜라오 대주교를 임명하였다.

 1967년 노대주교가 은퇴하고 윤공희 대주교가 교구장 서리도 임명되었으나 곧 이어 1968년 4월 9일에 김수환 주교가 서울대교구장으로 임명되었다. 그 해 10월6일에는 로마 교황청에서 병인 박해로 순교한 24위의 시복식이 거행되어 다시 한 번 한국교회의 영광을 만방에 빛나게 했으며, 1969년 3월에는 김수환 대주교가 추기경으로 임명되어 한국교회의 영광을 더해 주었다.

 
 
 
서울대교구는 모진 박해 속에서도 복음 전파의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던 신앙 선조의 피땀으로 말미암아 눈부신 성장을 거듭했습니다. 1945년 해방 당시 신자 수가 65,795명이었던 서울대교구는 한국전쟁 이후 신자 수가 급증했으며, 1970년대의 어두운 시대에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면서 급성장했습니다.

서울대교구의 현황을 살펴보면, 관할 지역은 서울특별시 전역과 황해도 전 지역으로 면적은 17,053.41㎢입니다.
관할 지역의 인구 수는 10,575,446명이고, 그 중에 신자 수는 1,417,695명입니다. 따라서 신자 비율은 13.4%이며, 주민 100명당 13명이 천주교 신자인 셈입니다.

성직자 현황을 보면 추기경 1명, 주교 2명, 몬시뇰 9명, 신부 710명, 신학생은 288명이며, 서울대교구의 본당 수는 224개입니다.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을 관할하고 있는 서울대교구는 한국 천주교회의 중심 교구라 할 수 있습니다.
한국 천주교회는 크게 3개 관구, 즉 서울관구, 대구관구, 광주관구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서울대교구가 그 중심인 서울관구에는 서울대교구 이외에도 7개 교구가 소속되어 있습니다.

                                                                                                                           2010년 12월 31일 통계 기준 입니다.
 
서울대교구는 2002년 1월 1일 반포된 ‘서울대교구 사목 체계 쇄신에 관한 교령’에 따라 교구장 대리 제도를 적극적으로 도입했습니다.
즉, 보좌주교들과 몬시뇰직능 담당 교구장 대리지역 담당 교구장 대리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현재 3명의 보좌주교가 직능 담당 교구장 대리로서 교구 조직을 나누어 관할하고 있습니다.

서울대교구교구 운영을 위해 행정 기관인 교구청을 두고 있으며, 교구장을 보좌하기 위해 자문 의결 기구
주교평의회, 교구 참사회, 사제평의회, 사목평의회를 두고 있습니다. 이밖에도 교구 운영에 필요한 다양한 위원회를 설치해 교구장을 자문하고 있습니다.
또한 사목 활동을 위해 교육, 언론, 사회복지 등 각종 교회 기관을 두고 있습니다.
 
 [출처 2008년 서울대교구 안내책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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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1년 12월 7일   출생
  1961년 3월 18일   사제 수품
  1961년~1967년   성신 고등학교 교사
  1962년~1968년   한국 천주교 중앙협의회 총무, 서울대교구 상서국장
      성신고등학교 부교장
  1970년 10월 3일   주교 수품, 청주교구장 착좌
  1996년~1999년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
  1998년 6월 29일   대주교 승품, 서울대교구장 착좌
 

2006년 2월

  추기경 서임
  교구장님 홈페이지
 
 
 
 
[문장]
    추기경 문장        추기경 이전 문장
 
새 문장은 기존 문장에 양쪽 술을 한 단씩 늘려 다섯 단으로 하고, 모자와 술의 색깔을 추기경 복장색인 붉은색으로 바꾼 것이다.
 
 
[모자]
   
  원래 목자(牧者)들이 쓰던 모자의 변형으로 주교가 교구를 순시할 때 전통적으로 쓰고 다니던 것이다. 주교의 사목 책임을 표현하는 모자가 문장에서는 진홍색으로 표현되어 있다.
   
[왼편]
   
  [가] 별 : 세 별은 우리나라(가운데 큰 별은 나라 전체를, 좌우의 별은 남한[서울]과 북한[평양]을 상징함)를 보호하시는 성모님과 성가정을 상징한다.
[나] 빨마 : 순교자의 승리를 상징한다.
[다] 칼 : 온갖 불의에 항거하는 정의를 상징한다.
[라] 무궁화 : 우리나라를 상징한다.

<우리나라를 돌보시는 성모님의 보호(세 별) 아래, 순교 성인들의 정신으로(빨마, 칼 및 빨강 색 바탕), 성덕을 실천함으로써(별과 칼의 금색), “이 땅에 빛을” 비추어(노란색 무궁화) 민족의 복음화와 일치를 이룩하여 온 백성이 성가정을 본받아 화목한 한 가족을 이루도록 하고자 함을 뜻한다.
   
[오른편]
   
  [가] 연한 남색은 하늘을, 초록색은 땅을, 위로 향한 세모 모양은 하느님을 흠숭하는 백성을 나타낸다.
[나] 큰 원은 완전성, 영원성, 무한한 사랑, 모든 것의 상징이다. 그 가운데 작은 원은 성체의 상징이다.
[다] 비둘기는 성령의 상징이며 또한 대주교님의 함자인 진정할 진(鎭)자가 뜻하는 평화를 이룸을 나타낸다. 성체(작은 원)를 중심으로, 성령(비둘기)와 함께 이 땅에 사는 “모든 이에게 모든 것(큰 원)”이 되어 무한한 사랑을 베풀고 “그들이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게 하도록”(요한 10,10) 복음을 전하며, 평화를 증진하고자 하는 염원을 나타낸다.
문장의 왼편은 교구를, 오른편은 대주교님 자신을 표현한다. 양편이 결합하여 하나의 문장을 이룬다.
   
[좌우명]
   " Omnibus Omnia "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은 사도 바오로의 서한(1코린 9,22)에서 선택한 것으로서
    교구장의 사목지침을 밝힌 것이다.
 
 
 
  1943년 12월 5일 출생
  1970년 12월 8일 사제 수품
  1977년 ~ 2002년 이태원·장위동·영등포동성당 주임,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사무처장, 서울대교구 사무처장,
    제15지구장 겸 목동성당 주임
  2002년 1월 25일 주교 수품, 서울대교구 보좌주교 착좌
  현재 서울대교구 교구청장, 총대리, 홍보사도직 및 사목 당담
교구장 대리
 
 
 
 
  1955년 6월 8일 출생
  1982년 8월 26일 사제 수품
  1991년 9월~ 2004년 연희동보좌신부, 해외유학, 가톨릭대학교성신교정 교수
    출판물검열위원회 위원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처장
  2006년 ~ 현재 서서울지역담당교구장대리주교, 청소년담당교구장대리 주교
 
 
 
 
  정의채 (바오로) 몬시뇰
 
  1925년 12월 27일 출생
  1953년 8월 22일 사제 수품
  1961년 9월 ~ 1984년 4월 가톨릭대학교성신교정 교수, 가톨릭대학교성신교정 학장,
    가톨릭대학교성신교정 대학원장
  1982년 6월 ~ 1984년 8월 사제평의회 위원
  1984년 8월 ~ 1991년 5월 불광동 주임신부, 명동 주임신부, 가톨릭대학교성신교정
    학장
  1991년 9월 ~ 현재 은퇴
  2005년 5월 ~ 현재 명동개발특별위원회 위원장
 
 
  김병도 (프란치스코) 몬시뇰
 
  1935년 1월 22일 출생
  1961년 3월 18일 사제 수품
  1960년 ~ 1980년 5월 후암동 주임신부, 해외유학, 교구장비서실 비서
    가톨릭출판사 사장
  1980년 ~ 1990년 9월 대방동 주임신부, 사무처 처장, 명동 주임신부
    건축위원회 부위원장, 빈민사목위원회 위원장
  1990년 ~ 2002년 3월 가락동 주임신부,구의동 주임신부, 제8지구 지구장
  2002년 ~ 2004년 9월 지역교구장대리(경기도), 교육.수도회 담당 몬시뇰
  2006년 ~ 현재 가톨릭학교법인 담당교구장대리
 
 
  황인국 (마테오) 몬시뇰
 
  1936년 7월 25일 출생
  1964년 12월 18일 사제 수품
  1964년 ~ 1994년 3월 길음동 보좌신부, 성신고등학교 교사, 삼각지 주임신부
    사무처 국장, 전농도주임신부, 돈암동 주임신부
    교포사목, 상계동주임신부, 노원주임신부
  2002년 3월 ~ 2006년 1월 지역교구장대리(동서울)
  2006년 2월 ~ 현재 수도회 담당 교구장 대리
 
 
  박순재 (라파엘) 몬시뇰
 
  1938년 7월 4일 출생
  1965년 12월 16일 사제 수품
  1967년 1월 ~ 1985년 8월 명동보좌신부, 교구장비서실, 소신학교교사,
    동성고등학교 지도신부, 서교동주임신부,
    동성고등학교 교장
  1981년 3월 ~ 2002년 2월 28일 꾸르실료 지도신부, 대방동주임신부, 혜화동주임신부
    사제공제회 위원장, 청담동주임신부,
    레지오마리애평의회 지도신부, 불광동주임신부,
    제3지구지구장
  2000년 4월 ~ 현재 연령회연합회 위원, 지역교구장대리(서서울),
    대치동 주임신부
 
 
  안경렬 (토마스 데 아퀴노) 몬시뇰
 
  1937년 1월10일 출생
  1967년 12월12일 사제 수품
  1966년 12월 ~ 1982년 9월 9일 명동보좌신부 , 성신고등학교 교사, 법원리주임신부,
    해외유학, 사목연수원, 까리따스담당,
    사회교정사목위원회
  1998년 9월 ~ 2002년 2월28일 제7지구 지구장, 사제평의회 의원,
    종합정보화추진위원회, 참사위원회 위원,
    연령회연합회 지도신부
  2002년 2월 ~ 현재 지역교구장대리(중서울), 주교평의회, 참사위원회,
    교구사목평의회, 은퇴
 
 
  박준영 (라파엘) 몬시뇰
 
  1942년 11월 5일 출생
  1969년 12월17일 사제 수품
  1970년 1월 ~ 1987년 4월14일 도림동, 아현동 보좌신부, 교구장비서, 해외유학
    가톨릭대학교성신교정 교수,
    유학및연수사제추천위원회
  1997년 1월20일 ~ 현재 교구법원장
  1997년 4월 3일 ~ 현재 성소위원회, 오금동주임신부, 제10지구 지구장
    사제평의회, 연령회연합회 지도신부,
    신당동 주임신부
 
 
  최창화 (토마스 데 아퀴노) 몬시뇰
 
  1943년 3월 5일 출생
  1971년 12월 8일 사제 수품
  1998년 천호동주임신부, 제9지구 지구장
  2005년 9월 ~ 2006년 1월 지역교구장대리(중서울)
  2006년 2월 ~ 현재 특수사목담당교구장 대리
 
 
  나원균 (바오로) 몬시뇰
 
  1943년 8월 22일 출생
  1971년 12월 8일 사제 수품
  1998년 10월 혜화동 제4지구 지구장
  2003년 11월 ~ 2005년 1월 교구 시노드 위원장
  2006년 2월 ~ 현재 기획조정실 사목국 통합사목 연구소 교구장 대리
 
 
  박신언 (라파엘) 몬시뇰
 
  1942년 7월 1일 출생
  1972년 12월 8일 사제 수품
  1990년 9월 ~ 2001년 2월 사무처 처장 , 반포 주임신부, 평화방송 T.V 사장
  2001년 9월 ~ 현재 구의동 주임신부, 제8지구 지구장,
    교구사목평의회 위원, 명동개발특별위원 위원,
    명동주임신부
 

 

 
 
   
 
 
   
 
 
 
 
  서울대교구 공식 서체(가톨릭체)입니다.

종류는 일반 PC용(윈도우 서체)와 MAC 사용자용(매킨토시 서체)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1. 일반 PC 사용자
아래의 2가지 방법중 한가지를 선택하여 설치하시기 바랍니다.

  1) 인스톨형식
  '가톨릭서체 설치.exe' 를 다운받아 실행하면 가톨릭체를 설치할 수 있습니다.

   
   
   
    2) 폰트타입
  '가톨릭체.ttf'를 내려받아 '내컴퓨터-C드라이브-WINDOWS-Fonts'에 넣고 컴퓨터를 재시동하면 됩니다.
   
   
   
  2. MAC 사용자
'Catholic.bin' 을 다운받아 Stuffit Expender로 풀으면 폰트가방이 나오고 자형폴더에 넣으면 됩니다.
   
   
   
 
 
   
 
 
  * 각 교구청 부서성당 로고 '천주교 서울대교구 그룹웨어 시스템' - 문화홍보국 게시판에서 다운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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