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황 사임] 교황 베네딕토 16세 사임 해설 |
||
|
깨어있는 영적 식별력에 따른 용기 있는 결단 |
||
교황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사임과 관련해 크게 두 가지 물음을 던져볼 수 있다. 하나는 교황의 사임 동기, 또 하나는 이 초유의 사건이 교황 직무와 보편교회에 미칠 영향이다.
교회법적으로 사임이 가능하지만, 극히 일부 사례 외에 교황의 종신 직무는 2000년 교회 역사 안에서 확고한 교회 전통으로 여겨져 왔기 때문에 교황의 사임 소식은 매우 놀라운 것이었고, 그것이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쉽게 예측할 수는 없다. 세계교회의 반응은 우선 놀라움에 이어 깊은 고뇌 끝의 '깨어있는 영적 식별력과 용기 있는 결단'에 대한 경탄으로 요약된다. 특히 항상 새로운 교황의 면모를 보여주던 전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는 달리 보수적이라고 경직된 평가를 받던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보여준 결단은 어떤 면에서는 가장 진보적이라고 할 정도로 파격적이다. ■ 고령과 건강 교황은 사임 발표문에서, 사임의 직접적인 동기는 고령으로 인한 육체적, 정신적 쇠약함과 이로 인해 적절한 업무 수행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 확신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이러한 고민과 그에 따른 사임에 대한 고려는 이미 수년 전부터 교황의 발언에서 감지돼 왔다. 2010년 독일 언론인 페터 제발트와의 인터뷰에서 교황은 "육체적, 정신적, 영적으로 교황 업무 수행이 어렵다고 느낄 경우 사임할 권리가 있을 뿐만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는 그것이 의무"라고까지 말했다. 교황의 형인 라칭거 몬시뇰은 영국 BBC 방송과 가진 인터뷰에서 "매우 놀라웠지만 충분히 이해한다"며 교황이 "수개월 동안 사임을 고민해왔다"고 전했다. 지난해 12월 캔터베리 총대주교 및 세계 성공회 수장의 직위에서 물러난 로원 윌리엄스 주교는 교황이 이미 지난해 3월에 가진 대화에서, 은퇴하고 기도와 연구에 헌신할 가능성을 비쳤다고 말했다. 그는 "교황이 자신의 쇠약함을 깨닫고 있었고, 바로 이번 사임 결정이 그가 생각하고 있었던 일임을 알 수 있었다"며 "이미 그는 오래 전부터 '올바른 양심으로 직무를 수행할 수 있는가?'를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있었다"고 말했다. ■ 전통과 현실 사이에서의 고민 베네딕토 16세는 교황 선출 당시 78세의 고령에, 심장박동조절기를 달고 있었다. 2010년 10월 이후 전례 행렬 때 이동식 장비를 사용해왔고 수개월 뒤에는 지팡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교황은 건강이 악화됨에 따라, 선종 때까지 교황직을 유지하는 교회 전통과, '급변'할 뿐만 아니라 '신앙생활의 중대한 문제들로 흔들리는 세상'에서 복음을 선포하는데 필요한 '몸과 마음의 힘'이 부족한 현실 사이에서 사임에 대한 고뇌를 했을 것으로 보인다. 교황은 사임을 발표하기 사흘 전인 2월 8일 로마교구 신학생들과 만난 자리에서 파킨슨씨병으로 고통을 겪으며, 세상을 떠날 때까지 교황직의 십자가를 짊어졌던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과 사임이라는 또 다른 형태의 십자가를 감수하기로 한 베네딕토 16세 교황 모두를 이해할 수 있는 단초를 제시했다. ■ 두 가지 형태의 십자가 "우리 역시 매우 다른 형태를 띠는 그리스도교적 순교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십자가는 아주 서로 다른 모습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누구도 십자가에 못박히신 분을 따르지 않고서는, 순교의 순간을 받아들이지 않고서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습니다." 결국 최후의 순간까지 교황직을 수행해야 했던 요한 바오로 2세의 고통과 희생, 그리고 변화된 세계와 시대의 요청에 따라 종신직의 전통에 또 다른 선택의 가능성을 열며 사임의 결단을 내린 베네딕토 16세 교황 또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지는 서로 다른 모습일 수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 의문, 즉 교황 사임이 이제 교황직과 차기 교황, 보편교회 사목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는 더욱 중요한 질문이 될 수 있다. 미국 에드윈 F. 오브라이언 추기경은 교황의 사임 결정이 "베네딕토 16세 교황 이전에는 별로 뚜렷하지 않았던 선택의 여지를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보스톤 대교구장 션 오말리 추기경 역시 이에 동의하면서 "교황의 이번 결정은 분명히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라며 베네딕토 16세의 교황 사임이 하나의 선례로 작용할 것임을 예측했다. ■ 교황 사임의 선례 물론 교황 사임 결정은 개인적인 결단이다. 교황은 이번 결정을 위해 소수의 주위 인사들과 논의했을 것이지만, 광범위한 자문을 거치지는 않은 것으로 보여진다. 개인의 실존 차원에서 "하느님 앞에서 양심을 거듭거듭 성찰"하고 내린 결정이다. 따라서 교황 종신의 전통을 제도적으로 바꾸는 것이라기보다는 인간적인 한계와 시대적 요구, 하느님 백성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된 개인적 선택이다. 하지만 교황은 발표문에서 "이 행위(사임)의 중대성을 잘 의식"하고 있으며, 교황 직무가 "말과 행동뿐만 아니라 기도와 고통으로" 수행해야 함을 알고 있지만, "이 시대의 급변하는 세상에서, 신앙생활의 중대한 문제들로 흔들리는 세상에서" "몸과 마음의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즉, 시대의 변화에 따라 요구되는 활동적이고 역동적인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점을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다. 미국 오하이오주 스튜벤빌 프란치스코대학교 신학부 앨런 쉬렉 교수는 "교황은 우리 시대의 사목적 주제들에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충분히 준비돼 있어야 한다는 점을 일깨운다"고 말했다. 예수회 소속으로 「이냐시오 프레스」의 편집자인 조셉 페시오 신부는 "교회는 더욱 활발한 지도력을 필요로 한다"며 "교황은 그 점을 잘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 시대의 요청에 따른 최선의 선택 바티칸 전문 언론인 로코 팔모는 교황의 사임에 대한 고려가 이미 2008년부터 드러난다며 당시 교황은 종신직의 전통 안에 있던 예수회 총장 피터 한스 콜벤바흐의 사임을 승인했다고 말했다. 로코는 "이전의 어떤 총장도 사임한 적이 없었다"며 최초로 총장이 사임했던 사례처럼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사임이 후대의 선례로 기록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한편 미국 디트로이트 전 대교구장 애덤 마이다 대주교는 교황을 현실주의자라고 평가하고, "베네딕토 교황의 사임에 정말 슬픔을 느끼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긍정적인 움직임으로 본다"며 "자신과 하느님 백성을 위한 최선의 선택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영호 기자
|
||
| [기사원문 보기] | ||
| [가톨릭신문 2013.02.21] | ||
|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걸어온 길(연보) |
|
|
△1927년 4월 16일 독일 바이에른주 마르크틀 암 인 출생. 생후 4시간 만에 영세
△1929년 오스트리아 국경 부근 티토모닝으로 가족 이사 △1939년 부친 정년퇴임 무렵 트라운스타인 근처 슐락으로 이사. 트라운스타인 소신학교 입학 △1943년 뮌헨 방공포 부대 징집. 막스 김나지움에서 주3회 신학공부 △1947년 뮌헨대학 부속 헤르초글리헤스 게오르기아눔 신학교 재입학 △1951년 프라이징에서 사제수품. 뮌헨-모자크 성 마르틴본당 보좌신부 △1953년 뮌헨대학에서 신학박사학위 취득 △1954~57년 프라이징 철학-신학대학에서 교의신학ㆍ기초신학 교수 △1959년 본 대학에서 기초신학과 정교수 △1962~65년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 독일 요제프 프링스 추기경 자문역(전문위원) 활약 △1963년 뮌스터대학 강의 △1966년 튀빙겐대학 교의신학ㆍ교의사학 정교수, 한스 큉과 학문적 교류 △1969년 레겐스부르크대학 교의신학ㆍ교의사학 정교수 △1976~77년 레겐스부르크대학 부총장 △1977년 3월 24일 뮌헨 프라이징 대교구장 △1977년 5월 28일 대주교 수품 △1977년 6월 27일 추기경 서임 △1980년 교황청 평신도에 관한 특별시노드 의장.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청 가톨릭교육성 장관직 제의했으나 뮌헨대교구장 복귀 희망하며 고사 △1981년 11월 25일 교황청 신앙교리성 장관. 교황청 성서위원회 위원장. 국제신학위원회 위원장 △2002년 추기경단 수석 추기경 교황 재위 이후 ▨2005년 제265대 교황으로 선출(4월 19일), 제20차 세계 청년대회 계기로 독일 쾰른 사목방문(8월 18~21일), '성체성사'를 주제로 한 제11차 세계 주교 시노드 정기총회 개최(10월 2~23일), 첫 회칙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발표(12월 25일) ▨2006년 교황 즉위 후 처음으로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대주교를 포함해11개국 15명의 추기경 임명(2월 22일), 교황청 이주사목평의회와 정의평화평의회 지휘부 통합 및 종교간 대화평의회와 문화평의회 지도부 통합(3월 11일), 러시아 정교회 키릴 총주교 접견(5월 20일), 폴란드 사목방문(5월 25~28일), 독일 바이에른 사목방문(9월 9~14일), 터키 사목방문(11월 28일~12월 1일) ▨2007년 「나자렛 예수」 제1권 출간(4월 16일), 브라질 사목방문(5월 9~14일), 중국 가톨릭 신자들에게 서한 발송(5월 27일),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전 방식인 트리덴티노 방식 미사 전면 허용하는 문헌 「교황들」 발표(7월 7일), 새 추기경 23명 임명(10월 17일), 두번째 회칙 「희망으로 구원된 우리」 발표(11월 30일) ▨2008년 미국 사목방문(4월 15~20일), '바오로의 해' 특별희년 선포(6월 28일), 호주 시드니 세계청년대회(WYD) 참석(7월 15~20일), 프랑스 사목방문(9월 12~15일), 제1차 가톨릭-이슬람 대화 모임 참석자들 접견(11월 6일) ▨2009년 김수환 추기경 선종 조전 보냄(2월 16일), 아프리카 첫 사목방문(3월 17~23일), 요르단ㆍ이스라엘ㆍ팔레스타인 자치지구 사목방문(5월 8~15일), '사제의 해' 선포(6월 19일), 세 번째 회칙이자 첫 사회회칙 「진리 안의 사랑」 발표(6월 29일), 복자 다미안 신부 시성식 거행(10월 11일), 성공회 신자들을 포용하는 교령 「성공회 신자 단체」 반포(11월 4일) ▨2010년 로마 유다교 회당 방문(1월 17일), 아일랜드 가톨릭교회 성추문 조사를 위한 아일랜드 주교 24명 접견(2월 15~16일), 포르투갈 사목방문(5월 11~14일), 아시아 가톨릭 평신도대회 교서 보냄(9월 5일), 이스라엘 대통령 시몬 페레스 접견(9월 2일), 스페인 사목방문(11월 6~7일) ▨2011년 동북부 대지진 겪은 일본교회에 위로 메시지 전함(3월 11일), 전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시복식 거행(5월 1일), 크로아티아 사목방문(6월 4~5일), 바티칸-말레이시아 수교(6월 18일), 스페인 마드리드 세계청년대회(WYD) 참석(7월 16~21일), 신앙의 해 선포에 관한 자의교서 「믿음의 문」 반포(10월 16일), 세 번째(첫 국빈 자격) 독일방문(9월 22~25일), 아시시에서 세계 평화를 위한 종교지도자 모임 주관(10월 27일), 아프리카 베냉 방문, 교황 권고 「아프리카의 임무」 발표(11월 18~20일), 사제수품 60주년(12월 21일) ▨2012년 새 추기경 22명 임명(1월 6일), 대담집 「세상의 빛」 한국어판 출간(3월 19일), 멕시코ㆍ쿠바 사목방문(3월 23~28일), 85살 생일(4월 16일), 서울대교구장에 염수정 주교 임명(5월 10일), '신앙의 해' 선포(10월 11일), 새 추기경 6명 임명(10월 24일) ▨2013년 사임 발표(2월 11일) |
|
|
사임 배경과 의미 |
||
|
평소 인간 한계성 언급… 교회 위한 큰 결단 |
||
"하느님 앞에서 거듭거듭 제 양심을 성찰하면서, 저는 고령으로 더 이상 베드로 직무를 수행하기에 맞갖은 힘이 없다는 확신에 이르렀습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11일 발표한 이 대목에서 알 수 있듯이 교황이 사임을 결행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기력 악화'다. 기력 악화는 급작스런 질병이 아니라 고령으로 인한 증세다. 오는 4월 16일이면 만 86살이 되는 교황의 나이를 감안할 때 얼마든지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기력 악화가 사임의 첫째 이유라고 할 수 있을까? 베네딕토 16세는 교황으로 선출됐을 때 이미 78살의 고령이었다. 게다가 90년대부터 심장박동기를 달고 있었다. 최근 들어 기력이 많이 쇠약해지기는 했지만 그것이 교황직 사임의 결정적 논거가 된다고는 쉽게 판단하기 힘들다. 더구나 교황은 자신이 선포한 신앙의 해 한가운데 있었다. 교황으로서 해야 할 일이 많이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본인이 더 잘 알고 있을 터였다. 다른 한편으로 교황의 사임이 충분히 예견된 일이라는 주장도 만만찮다. 실제로 베네딕토 16세는 지난 2010년 독일 언론인 페터 제발트와의 인터뷰에서 "어떤 교황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맡은 일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다는 생각이 분명하게 들 때는 물러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경우에 따라서는 그것이 의무이기도 하다"고 밝힌 바 있다. 또 이에 앞서 2009년 4월 28일 지진 피해를 본 이탈리아 중부 아퀼라 시를 방문했을 때 그곳 대성전에 있는 성 첼레스티노 5세 교황 무덤에 자신의 권위 상징인 팔리움을 놓아두었는데, 이를 두고 이미 그때 교황직 사임을 결심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결과론적이기는 하지만 베네딕토 16세의 재임 중 사임은 얼마든지 예측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교황은 신앙의 해를 마무리한 후에 사임할 수도 있었을 텐데 왜 하필이면 이 시점에서 사임을 발표했을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얻으려면 베네딕토 16세가 교황으로 선출됐을 때로 돌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2005년 4월 19일 교황에 선출된 후 교황 예복을 입는 '눈물의 방'에서 교황은 이렇게 기도했다. "저더러 어쩌라고요, 주님? 이제 주님께서 책임지고 저를 이끌어주셔야만 합니다! 저 혼자서는 할 수 없습니다. 이 직책에 저를 원하셨으니 절 도와주셔야만 합니다!"(베네딕토 16세와 페터 제발트의 대담 「세상의 빛」 중에서). 베네딕토 16세가 교황이 된 것은 주님 뜻이었고, 그는 겸손하게 믿음으로 순명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8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양심 성찰을 통한 숙고 끝에 이제는 교황직을 수행하기가 적절치 않다고 확신하고 사임을 발표하게 된 것이다. 자신의 약함을 겸허하게 인정하는 겸손에서 나온 용기 있는 결정이었다. 그렇다면 '신앙의 해' 도중에 교황직을 사임한 것 또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인간적인 그 어떤 것보다 주님께 의탁하는 신뢰의 행위야말로 오히려 신앙의 해에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가치일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베네딕토 16세는 교황직 사임으로 신앙의 해를 지내는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에게 참으로 값진 선물을 남겼다고 할 수 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