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소공동체 20년]

김종업

2012. 1. 6. 오후 12:20:32





한국교회 소공동체 활성화 기폭제 기대

 

 
이번 한국에서 열리는 아시파 제3차 총회는 한국교회 소공동체 활성화의 새로운 기폭제가 될 것입니다. 아시아 각국 교회 소공동체 관계자들이 한데 모여 소공동체 활동 사례를 나누고 심화함으로써 한층 성숙한 소공동체상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아시파 제3차 총회 준비 총책임자 정월기(서울대교구 복음화사무국장) 신부는 지난 1 2차 총회가 소공동체를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교회상을 학습하는 단계였다면 이번 총회는 한걸음 나아가 소공동체가 구체적으로 사회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가를 깊이있게 논의하는 장이 될 것 이라면서 이번 총회를 계기로 소공동체에 대한 교회 관심이 좀더 높아지기를 희망했다.

 새천년기 들어 소공동체 운동의 전국적 확산에 큰 기여를 한 소공동체 전국모임 은 아시파 제2차 총회(2000년)에서 영감을 얻어 마련된 것이라는 게 정 신부의 설명. 그는 3차 총회를 한국에서 직접 개최함으로써 소공동체와 평신도를 중심으로 하는 미래 교회상이 좀더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기존 본당이 성직자와 행정 중심이라면 미래 본당은 평신도의 적극적 참여를 토대로 하는 소공동체가 중심이 돼야 합니다. 3차 총회에서는 미래 교회가 나가야 할 방향 특히 평신도가 좀더 주체적이고 능동적으로 나설 수 있도록 하는 방안에 대해 많은 토의가 이뤄질 것입니다. 이는 서울 시노드가 추구하는 방향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기도 하죠.

 정 신부는 총회가 끝나면 총회에서 논의된 모든 내용들을 정리해 인터넷과 자료집 등을 통해 한국교회 전체가 공유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2차 아시파 총회가 끝난 다음 한국교회 소공동체 전국모임이 결성된 것처럼 이번 총회에 참여하는 모든 교구가 총회를 계기로 소공동체 모임을 결성하는 등 소공동체 활성화에 좀더 적극 나서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미래를 향한 새로운 비전을 창출하는 총회가 될 수 있도록 신자 여러분의 많은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아울러 총회에 앞서 서울대교구를 비롯해 4개 교구가 마련한 아더 신부 초청 강연회에도 많이 참석해 소공동체에 대한 이해를 좀더 심화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한국교회 소공동체는 아시아의 모범

 

 
아시파 제3차 총회 총괄 책임자 코라 마태오씨(필리핀)는 1993년 평신도로서 특히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아시아주교회의연합(FABC) 산하 평신도 사무국(대만 소재) 국장에 임명된 소공동체 전문가다. 2000년부터 아시파 관련 업무만을 전담하고 있는 마태오씨는 이번 총회에 대해 각국 소공동체 정보교환 수준에서 한걸음 나아가 심도있는 나눔을 통해 소공동체에 대한 이해를 심화하는 토론의 장이었다 고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총회 기간 중 소공동체 현장을 탐방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살아있는 현장을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아울러 일본과 파키스탄이 총회에 처음 참가한 것은 아시아 지역에 소공동체 운동을 좀더 널리 확산시키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1989년 서울에서 열렸던 세계성체대회에 참가한 이래 이번이 7번째 방한인 마태오씨는 한국교회 소공동체 활동에 대해 높이 평가했다.

  평신도에 의해 시작된 한국교회는 순교성인들의 신앙을 본받아 매사에 매우 헌신적이라는 사실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소공동체 역시 체계적일뿐 아니라 지도자 양성이나 관련 자료 교구의 관심과 지원 등 모든 면에서 여타 아시아 교회의 모범이 될 만합니다. 또 기존 구역·반 조직이 잘되어 있기 때문에 소공동체가 뿌리내리기에 더없이 적합한 배경을 지니고 있죠.

 마태오씨는 성직자와 수도자 평신도를 망라한 모든 신자들이 소공동체 정신을 통한 교회 쇄신을 원하고 있다 며 소공동체는 성령의 이끄심에 따른 새천년대 교회 대안으로 앞으로 점점 더 중요하게 인식될 것 이라고 말했다.

  아시아 각국 교회의 소공동체 운동이 날로 성장해감에 따라 아시파 본부 역할은 차츰 축소되는 경향입니다. 소공동체를 통한 교회 쇄신의 밑거름이 될 수 있도록 아시파 측에서도 최선을 다해 각국 교회를 지원할 계획입니다.


한국교회 소공동체 체험중인 일본인 시모사꼬 유미 수녀

 

 
"소공동체는 교회 살리는 길" 『한국 교회 소공동체의 역동성과 신자들의 활력이 어디에 힘을 두고 있는지 알고 싶고 신자들과 만나는 기회를 많이 가지면서 한일 교회 신자간 교류에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서울대교구 복음화사무국에는 지난 5월 3일부터 매일 오후 소공동체 연수를 위해 일본인 수녀가 모습을 보이고 있다. 주인공은 시모사꼬 유미 수녀(일본 성모영보수녀회). 3년 전부터 진행중인 서울대교구와 나가사키 대교구의 소공동체 교류 활동 덕분에 그간 두 번정도 한국 교회를 방문한 바 있으나 이번에는 1년 정도 시간을 가지면서 다소 장기간의 소공동체 체험을 작정하고 있다

나가사키 대교구에서 도서지역 교리교사 양성 업무를 맡아왔던 유미 수녀는 일본의 소공동체 운동 현황에 대해 『나가사키 대교구의 경우 전 교구가 소공동체 운동 활성화에 적극 나서기 시작했기 때문에 잘될 것이라는 확신을 갖는다』고 말했다

『개인적으로도 소공동체 운동에 관심이 많다』는 유미 수녀는 『신자들의 신앙을 북돋우고 교회에 생기를 주기 위해서는 「소공동체」 운동이 중요 관건임을 느낀다』고 전했다

『일본 신자들은 가톨릭 교회에 대해 「자신들의 교회」라는 인식이 부족한 듯 합니다. 소공동체 운동을 통해 가톨릭 신앙인으로서 갖는 긍지와 자부심을 얻게 되었으면 합니다』 유미 수녀는 교리교사 양성 과정을 통해 소공동체의 중요성을 느끼고 2000년 필리핀 ASIPA(아시아의 통합적 사목적 접근) 총회 참석 등으로 소공동체 운동과 인연을 가졌다. 교황청 우르바노 대학에서 선교학을 전공한 유미 수녀는 『앞으로 한일간 수도회들의 교류에도 적극 나설 예정』이라면서 『특히 교리교사들의 신앙심을 깊게하는 방안을 꼭 접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국교회 소공동체 10년을 점검한다

 

 
평신도사도직 활성화 '큰 결실' 현장중심 사목·선교 인식확산 등 성과 한국에 맞는 토착화 프로그램 계발해야 「한국 교회 평신도들의 미래가 걸린 일」이라는 주최측의 코멘트 만큼 7월 12일 전국에서 300명 가까운 소공동체 관계자들이 참가한 가운데 열린 「2004 소공동체 심포지엄」은 학문적인 견지에서 또 구체적인 사례와 활동 면으로 한국 교회 소공동체 운동의 10여년 역사를 되돌아 보고 향후 전망을 논의했다는 점에서 급변하는 시대 상황에 따른 한국 교회의 더욱 새로워지려는 움직임으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한국화·토착화 기반 마련 특히 1992년 서울대교구가 사목의 장기적인 목표로 소공동체를 설정한 이후 타 교구에까지 영향을 미쳐 현재 대부분의 교구가 소공동체 사목에 참여하고 있는 상황에서 소공동체의 신학 원리 실천 원리에 대한 고찰 등으로 신학적 성찰과 객관적 측면의 점검을 시도하고 소공동체와 영성 리더쉽 등의 관계를 살펴본 점은 이론적 토대위에서 소공동체 사목의 성숙을 꾀하고 다소나마 「한국화」 「토착화」의 기반을 마련했다는 평을 들을 만 하다.
무엇보다 소공동체가 여전히 단순한 「구역 반모임 프로그램」으로 이해되거나 일부 마니아들만이 찾는 것으로 아는 불확실한 이해를 낳고 있는 현실을 볼 때 심포지엄에서 다뤄진 다양한 주제들은 「새로운 교회상을 지향하는 총체적인 사목 원리와 체계」로서 소공동체 개념을 이끌어 내는 견인차 역할이 됐다는 의견이다

서울대교구를 중심으로한 내용이지만 심포지엄에서 진단된 10여년 동안의 소공동체 활성화 작업의 성과는 「말씀을 원천으로한 신앙 성숙」「평신도 사도직 활성화」「삶의 현장 중심의 교회」「선교에 대한 인식 확대」 등으로 꼽혔다

「말씀」이 신자들의 신앙 생활의 중심에 자리 잡게 된 것은 교구에서 말씀을 중심으로한 소공동체 활성화 방안으로 여러 해 동안 구역 반장들 대상으로 복음 나누기 7단계와 복음 나누기의 여러 방법을 시행하고 지속적으로 안내한 결과로 분석됐다. 이를 통해 대부분 구역 반 소공동체 모임에 복음나누기가 정착되었고 말씀이 생활의 중심으로 자리잡는 경향이 점차 확고해 지고 있다는 것이다

평신도 사도직 활성화는 소공동체를 통한 복음화 추진 과정에서 가장 큰 결실을 이룬 것 중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
서울대교구 평신도 사목국장 정월기 신부는 『소공동체는 소외되거나 무시당하는 사람이 없이 서로의 인격을 존중하고 신뢰하며 각자의 카리스마를 발휘하여 권한과 책임을 수행 할 수 있는 장』이며 『모든 신자들이 소공동체를 통해 교회의 임무를 나누고 활동할 수 있는 구체적인 기회를 부여받음으로써 교회 직무와 사명을 책임감 있게 수행하는 능동적 주체로 성장하고 있다』고 밝혔다

기초공동체 인식 확산 여기에는 소공동체에 대한 사목적 관심과 함께 구역 반장 등을 평신도 지도자로 양성하기 위한 구역 반장학교의 설립으로 공동체 건설과 평신도 사도직에 대한 내용이 지속적으로 강조됨으로써 구역 반장들로 하여금 교회의 정체성을 점차 공동체로 인식하도록 만든 과정이 큰 몫을 한다.
그런 면에서 이제는 구역 반 소공동체가 본당의 행정 조직이 아니라 교회의 기초 공동체라는 이해가 확산됨과 동시에 평신도 사도직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사명감에 대한 이해도 커졌다는 입장이다

한편 반성과 과제 면에서는 소공동체를 중심으로한 통합적인 사목 정책이 이뤄지지 못했다는 지적과 함께 교회 구조와 성직자의 신원의식 부족 문제가 제기됐다

또한 「토착화」면에서 서울대교구가 소공동체를 통한 복음화 노력을 10여년 동안 진행해 왔지만 소공동체에 관한 연구 논문이 극히 미미하다는 내용이 발표됐다. 그것은 한국의 신학이 유럽 신학을 직수입하는데 머물러 있으면서 우리 신자들이 이미 힘을 얻고 살고 있는 신앙과 삶의 풍요로움에는 눈을 돌리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문제를 타파하기 위해서는 10여년동안의 과정을 총체적으로 평가하고 이를 토대로 한국인의 정서와 의식구조 문화와 실정에 적합한 토착화된 소공동체 모델과 방법 및 프로그램 계발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정신부는 소공동체가 성장 발전하기 위해서는 『본당의 사목자와 교구의 사목정책 추진자들 사이에 만남과 연구와 시범 실시가 지속적으로 이뤄져서 구역 반 소공동체뿐만 아니라 본당 전체 사목 체계가 유기적이며 통합적으로 움직이면서 본당 신부가 바뀌더라도 지속성을 유지하는 방안이 강구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소공동체 활성화 문제와 관련해 실천적 관점에서 소공동체 문제를 다뤘던 곽승룡 신부(대전교구 사목기획국장)가 소공동체의 전문성과 장기 발전계획을 제기하면서 『그렇지 않다면 소공동체 역시 신심 단체중에 그저 또 하나가 되고 말 것』이라고 밝힌것도 새겨들을 만 하다

한국 소공동체 역사 70년대 초반부터 구역 반 모임을 추진했던 한국 교회가 교구 차원에서 구역 반 공동체 운동이라는 조직 활성화에 집중적으로 관심을 기울인 것은 200주년 사목회의를 전후해서다

이후 1990년대 초부터 서울대교구에서 시작한 아시파 모델을 원용한 소공동체 사목을 위한 장기적 노력이 각 교구에 파급됐고 전국 교구 사제 수도자 평신도들이 서울대교구 연수에 참여하면서 소공동체 사목의 원리들이 여러 형태로 도입되고 시도됐다

이후 소공동체 사목 모델을 비전으로 하는 사목에 대한 관심과 함께 전국 교구간 사목적 교류와 협력 필요성이 대두됐고 서울대교구와 마산교구의 AsI
A(아시아의 통합적 사목적 접근) 2차 총회(2000) 참가를 계기로 소공동체 전국 모임이 준비됐다

2001년 「소공동체 사목」을 주제로 열린 제1차 소공동체 전국 모임에서는 전국 차원의 지속적 모임을 결의했고 이를 위해 한국천주교 주교회의에 「소공동체 소위원회」 설립을 요청했다

2002년 제2차 소공동체 모임으로 한국 교회안에 소공동체 중심의 사목이 확산되는 분위기가 고양됐으며 이는 아시파 3차 총회 한국 개최의 동기 부여 역할을 했다

2001년부터 전국 교구 사목국장들과 실무 담당자들이 소공동체 사목 활성화를 위해 개최했던 「교구 대표자 모임」이 2002년 2월 「소공동체 사목 전국 협의회」로 공식 출범했고 산하에 「연구위원회」를 구성 소공동체 사목에 대한 신학적 사목적 연구를 심화 확산시켜 나가는 노력이 진행됐다. 협의회는 전국 15개 교구 사목국과 주교회의 복음화 위원회 산하 소공동체 소위원회가 참여하고 있다

소공동체 소위원회는 소공동체 사목과 관련된 교구간 교류 활동과 국제 연대 활동을 지원하기로 결정 2001년 11월 23일 설립된 것이다

 



유럽이 반한 한국교회 소공동체

 

 
독일 주교단 초청 '소공동체 연수'가 4월 14~22일 수원 아론의 집과 제주도 서귀포 KAL호텔 등지에서 열렸다. 이번 연수에는 독일에서 밤베르그대교구의 쉬크 대주교를 비롯해 5명의 보좌 주교와 관계자 등 10여 명이 참석했다. 필리핀 부투안교구의 푸에블로 주교 등 아시아 주교 및 관계자도 6명이 참석했다.

이들 앞에서 한국교회 소공동체 전문가들은 소공동체의 원리와 적용에 대해 설명했다. 효과와 비전 등에 대해서도 높은 신학적 식견을 전달했고, 그동안의 경험에 대해서도 소상히 안내했다. 소공동체 현장의 활기찬 나눔과 친교의 모습도 보여줬다. 이에 독일 주교단 및 참가자들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고 급기야는 "독일교회에 당장 적용하겠다"는 응답이 터져 나왔다.

참으로 감동적이다. 보편교회에 한국교회가 기여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그동안 물적, 영적, 신학적 차원에서 받기만 해온 한국교회가 이제 주는 교회로 전환한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만족할 일이 아니다. 소공동체 정체성에 대한 논란은 한국교회 사제단 안에서 아직도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사제들마다 소공동체에 대한 규정과 인식이 다르다 보니, 본당 소공동체의 운용도 천차만별이다. 소공동체를 본당 사목을 위한 실용(實用)적 차원에서 보느냐, 아니면 작은 교회의 구체적 실현(實現)으로 보느냐는 아직도 논란거리다. 실용과 실현을 동시에 구현할 수 있기 위해선 어떤 노력이 있어야 할지에 대한 논의도 부족해 보인다.

이번 독일 주교단의 한국 방문은, 최근 한국 불교가 쇄신 작업의 단초를 미국 불교에서 찾고 있는 것과 비교할 수 있다. 새롭게 시작하는 미국 불교가 불교의 원래적 정신을 가장 잘 구현해 내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오래된 것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새롭게 시작하는 것 또한 항상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하지만 새로운 것은 그 자체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오랜 역사를 지닌 유럽교회에서 볼 때 한국교회는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교회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는 한국교회가 그만큼 새롭고,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늘 새롭게 깨어 있을 때, 한국교회도 유럽교회에 선물로 다가갈 수 있다.

이번 독일 주교단 초청 소공동체 연수는 역설적으로 한국교회에 '새로운 교회됨'을 요청하고 있다. 새로운 교회됨의 첫 걸음은 독일 주교단이 말했듯 '소공동체'에 있다.


[한국교회 소공동체 20년] ① 총론

 

인간적 유대 강화한 공동체가 미래교회 이끈다

 

 
▲ 한국교회는 1992년부터 '2000년대 복음화'라는 정기적 목표 아래 복음나누기 프로그램을 공식적으로 파급시켰다.
 
 
 
'삼천년기 한국교회의 비전', '교회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지목되고 있는 소공동체가 한국교회에 도입된 지 20주년을 맞았다.

1992년 서울대교구의 '2000년대 복음화' 선포로 본격화된 소공동체는 20년이 흐른 2012년 현재 주교회의 산하에 전담위원회를 두고 매년 전국 소공동체모임을 가질 만큼 질적?양적으로 주목할 만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또 여전히 한국교회 안에 새로운 사목 대안으로서의 중요 화두다. 그만큼 그에 대한 논의도 계속되고 있다.

본지는 차제에 한국교회 '소공동체' 운동의 현장을 중심으로 20년 역사 전반을 점검하는 신년기획 시리즈, '한국교회 소공동체 20년'을 마련한다.

특히 이번 기획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 개막 50주년을 맞고 있는 시점에서,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지향했던 현실 접목의 바람직한 방법으로 지칭되는 '소공동체'를 새로운 복음화의 큰 틀 안에서 조명해보는 기회가 될 예정이다.

이번 총론에서는 소공동체의 역사적 배경과 한국교회의 소공동체 여정을 다룬다.

■ 소공동체의 씨앗

'소공동체'라는 용어는 교황청에서 규정하는 '기초 교회 공동체'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남미 주교회의에서 사용한 명칭을 교황청이 받아들이면서 거기에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하려 했던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밝힌다.

교회 안에 '기초공동체' 논의를 불러온 중남미 기초공동체의 출발은 1956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구역 바라도 피라이에서 움튼 공동체적 복음화 운동과 평신도, 그리고 교리교사들의 노력이 시작이다.

당시 아그넬로 로씨 주교는 사목자의 손이 미치지 않는 지역에서 평신도 교육자들을 통해 복음화 운동을 벌였는데 이때 시작된 기초공동체는 전국 곳곳으로 번져갔고 브라질 지역을 넘어 중남미교회 전체에 수십만 개의 조직으로 퍼졌다.

기초공동체가 발아한 후 10년이 지난 1968년, 이미 기초공동체의 중요성은 남미 주교총회에서 다뤄질 정도였다. 콜롬비아 메델린에서 열렸던 라틴아메리카 주교총회에서 주교들은 기초공동체를 '교회의 핵'으로 정의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후 기초공동체는 교황청의 공식적인 인정을 거쳐 바티칸공의회가 제시한 교회 쇄신의 산물로서 현대교회 복음화의 유효한 수단으로 권장되는 모습을 갖게 됐다.

교황 바오로 6세의 사도적 권고 '현대의 복음선교'는 제2차 라틴아메리카 주교총회가 발표한 메델린문헌에서 기초공동체를 인정한 이래, 교황청에서 나온 최초의 공식적인 가르침으로 알려진다.

교황 바오로 6세는 '현대의 복음선교' 58항을 통해 "기초공동체는 교회적이고 인간적인 유대를 더 강화하고자 하는 데에서 발생한 새로운 교회 형태"라고 밝히면서 "복음 선교의 못자리가 되고, 보다 큰 공동체, 특히 지역교회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또 교황 요한바오로 2세는 회칙 '교회의 선교사명' 51항에서 "기초공동체가 그리스도 교육과 선교 추진의 좋은 중심처로 인정되고 있다"고 가르쳤다.

■ 한국 소공동체의 시작

1989년 세계성체대회 이후 서울대교구는 1991년부터 '복음화'라는 사목목표를 설정하고 '소공동체의 활성화'라는 방법을 제시했다.

1992년부터 2000년까지 9개년을 '2000년대 복음화'라는 장기적 목표 아래 두는 한편 소공동체 활성화 방안으로 아프리카 룸코(Lumko)에서 개발된 복음나누기 프로그램을 공식적으로 파급시켰다.

당시 한국교회 상황은 급속도로 성장한 외형적 교세의 모습을 보이면서도 그로 인한 본당 비대화와 교회의 내적 공동화를 초래하는 등 "복음 정신에 입각한 사귐과 섬김의 공동체 모습에서는 오히려 멀어지고 있다"는 자체적 진단이 나오던 상황이었다.

서울대교구는 1991년 사목교서를 통해 "신앙과 삶의 유리된 상황을 극복하지 못하도록 우리 자신이 참으로 복음화 되지 못하고 따라서 물질주의로 인하여 갈수록 비인간화되고 속화되어가는 이 사회를 복음화하는 능력도 미비함을 겸손되이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히면서 "오늘의 한국교회는 성찰하면 할수록 무사안일하게 현실에 안주할 수 없는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다"고 천명했다.

이러한 성찰 안에서 새로운 복음화의 방안으로 소공동체를 선택한 서울대교구는 기존의 반모임과 구역모임에 복음나누기 프로그램을 접목시켜 의욕적으로 소공동체를 확산시켰고 이는 전국으로 파급돼 나갔다.

2001년 제1차 소공동체 전국모임이 개최되면서 소공동체 운동은 보다 한국 교회 안에 그 자리를 분명하게 드러내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2000년 AsIPA 2차 총회에 참가한 서울 마산 사목국이 "소공동체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는 사목자들이 함께 모이는 자리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하면서 준비 추진된 자리였다.

이 자리에서 교구 대표자들은 "소공동체가 복음화 신앙쇄신 등 한국교회의 당면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라는 공감대를 이뤄냈고 전국 차원의 지속적 모임 결의와 함께 주교회의에 전담 위원회 설립을 요청한다.

이에 따라 주교회의는 그해 추계총회를 통해 주교회의 복음화위원회 산하에 '소공동체소위원회' 설립을 결정하고 위원회는 11월 23일 공식 가동됐다. 소공동체운동이 전 교회적 차원의 공감대 구성을 명실공히 이루게 된 것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2003년 2월 13일에는 사목국장 중심의 자발적인 전국 네트워크 '소공동체 사목전국협의회'가 결성됐고 협의회를 통해 2006년까지 소공동체 전국 모임이 개최됐다.

소공동체 전국모임은 2011년 모임 개최 10주년을 맞아 그간의 활동상에 대한 성찰과 함께 미래를 전망하는 자리를 가진 바 있다. 교구 벽을 넘어 교구나 본당의 소공동체 사목 실무자들이 함께 만나 사목을 나누고 교류하는 장이 됐던 이 전국 모임은 한국교회 소공동체 운동이 신자들 안에 뿌리 내리도록 하는 기반이 됐다.

소공동체 도입 20주년을 맞는 올해에는 주교회의 소공동체소위원회 주최 '소공동체 세미나' 등 한국 소공동체에 대한 점검과 발전 전망을 모색하는 자리가 활발하게 전개될 전망이다.


 
▲ 2011년 6월 청주 꽃동네 사랑의 연수원에서 한국교회 최초로 열린 소공동체
 

 
▲ 주교회의 소공동체소위가 주최해 2011년 9월 26~29일 수원 아론의 집에서 열린 소공동체 교육 10차 전국모임.

(2) 소공동체의 이해 ①

 

전세계에 나타나는 보편교회적 현상 ‘소공동체’/ 교회 쇄신·성직자 부족 등 각국 사회·교회 상황따라 소공동체 탄생·모습 다양/ ‘소공동체’ 용어 의견 분분 교회 특성·정체성 포함한 ‘기초교회공동체’ 주장도

 
1991년 '소공동체란' 주제를 다룬 노트르담대학교 국제협의회에서는 소공동체가 '많은 이름과 얼굴을 지닌' 세계적 현상임을 인정했다. 이에 따르면 전체 보편교회 안에 존재하는 명칭과 용어들이 2,846개에 달했다. 그만큼 많은 교회들 안에서 소공동체가 형성되고 발달됐다는 의미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한국교회의 소공동체는 1992년 서울대교구가 아프리카 룸코(Lumko) 프로그램을 원용한 복음나누기 프로그램을 보급하면서 본격화됐다고 볼 수 있다.

한국교회의 소공동체 활성화 노력의 배경이 된 소공동체의 모습들은 과연 어떤 것일까.

한국교회 소공동체 여정 20년의 이해를 돕는 의미에서 기초교회공동체의 기원이 된 라틴 아메리카 교회의 소공동체를 비롯, 각 지역 교회들의 소공동체 형성 과정을 알아본다.


● 지역 교회별 소공동체

세계 여러 지역교회에서 시도하고 있는 소공동체의 모습은 다양하다.

'기초교회공동체' 개념이 처음 드러난 라틴 아메리카는 사회 정치적인 억압과 착취, 극심한 빈곤 상황을 극복하려는 사회 정의와 해방 운동이 기초교회공동체 발생의 주된 요인이 된 것으로 전해진다.

아프리카에서는 사목자 부족을 극복하고 신자들의 미성숙한 신앙 의식을 의식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교도권이 소공동체에 사목적 우선권을 두고 위에서부터 추진한 특징을 보인다.


 
▲ 세계 여러 교회에서 시도하고 있는 소공동체의 모습은 다양하다.
아프리카에서는 사목자 부족을 극복하고 신자들의 미성숙한 신앙 의식을 고취하기 위한 목적으로 소공동체에 사목적 우선권을 두고 추진하고 있다.
사진은 아프리카 수단의 공소 모습.
 
 
■ 라틴 아메리카
라틴 아메리카의 소공동체 즉 기초교회공동체는 1956년 브라질 리우 데 자네이루의 바라 도 피라이(Barra do pirai)교구에서 처음 발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이 교구에서는 로씨 주교에 의해 공동체 복음화 운동이 일었다. 계기는 사제 부족 현상을 타개하기 위해 몇 명의 교리교사를 선발, 공동체를 이끌어갈 지도자를 훈련시키는 데서 비롯됐다. 지도자들은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사람들을 모아 함께 기도하고 하느님 말씀을 듣게 하면서 공동체를 이끌었다.

한편 나탈(Natal)교구에서는 기초 교육 운동이 전개됐다. 라디오 방송을 통한 의식화교육이었는데 이 같은 교육에 의해 생겨난 공동체들을 기초공동체로 불렀다.

이 같은 공동체 운동이 번지면서 브라질 주교회의는 기초교회공동체 육성의 일환으로 3개년 비상계획을 발표, 1965년에는 기초공동체 형성을 위한 제1차 전국 5개년 사목계획(1965~1970)을 수립했다. 국가 단위에서는 처음으로 기초교회공동체 운동이 공식화 된 것이다.

파나마교회에서는 창의적 사목을 시도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기초공동체가 생겨났다. 1963년 주교단의 적극적인 지원과 평신도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통해 파나마대교구의 산 미구엘리토본당에서 바닥교회 형태의 공동체가 출범하는 기록을 보인다.

이러한 기초교회공동체 운동은 1968년 메델린 라틴 아메리카 주교회의를 계기로 라틴 아메리카 전역에 파급됐다. 주교회의에서 사목적 신학적 반성과 함께 기초공동체를 하나의 완전한 교회로 인정하는 결정을 내린 것이 계기였다.

이는 또한 전 보편교회가 기초교회공동체 형성에 관심을 가지는 단초이기도 했다.

이후 기초교회공동체는 라틴 아메리카 교회의 주요 사목 정책으로 채택됐으며 1974년 열린 제3차 세계 주교 대의원 회의에서도 공식적으로 알려지고 복음화의 유효한 수단으로 선포됐다. 기초교회 공동체운동이 아프리카·아시아 등 다른 제3세계에 널리 확산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 것이다.

메델린회의 이후 '해방하는 복음화' 주제로 10년 만에 열린 푸에블라회의에서는 기초교회공동체 체험이 보다 신학적으로 심화되어 성찰됐으며 '기초교회 공동체 운동이 기본적인 복음화 길'로써 선언되어졌다.

당시 약 2백만 명의 가톨릭신자들이 기초공동체에서 생활하고 있는 현실의 중요성을 라틴 아메리카 주교단이 직시한 결과로 풀이할 수 있다.

라틴 아메리카 교회의 기초교회공동체 형성 과정에서 눈여겨 볼 점은 브라질에서 가난한 이들에 의해 아래로부터 자생적으로 발생한 기초교회공동체들이 몇 명 주교들의 사목적 지원을 통해 더욱 활성화 돼 확산됐고, 이에 브라질 주교회의가 체계적인 사목 정책으로 지원함으로써 대륙 전체에 퍼질 수 있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평신도 주축으로 발생한 기초교회공동체를 주교회의에서 정책적으로 인정하고 강화하게 되면서 '교회 안의 기초공동체'라는 공고한 지위가 부여된 것이라고 평한다.

라틴 아메리카 기초교회공동체의 기본적인 일반 구성 요소는 '성서', '공동체', '현실(생활)', '기도' 등이었다. 이 중에서도 성서묵상과 나눔이 큰 성과를 가져온 것으로 알려진다.

'Relectura(리렉투라: 새로운 눈으로 읽는다)'라고 일컬어지는 성서읽기를 통해 하느님 말씀을 읽고 성찰하고 나누는 작업은 라틴 아메리카 신자들이 하느님 역사하심과 그리스도인들의 응답을 이해하는데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었고, 본질적으로 개인적이기보다는 공동체적인 성서의 영성을 배울 수 있게 이끌어 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 라틴 아메리카의 독립 200주년을 기념하는 장엄미사가 교황 베네딕토 16세 주례로 봉헌되고 있다.
라틴 아메리카의 각국들은 식민지사·독립운동사를 거쳐 현재의 독립국이 되었지만 독립 후에도 쿠데타와 독재정치에 시달려왔다.
이러한 사회·정치적 분위기 속에서 억압과 착취, 극심한 빈곤의 상황을 극복하려는 움직임이 발생, 이것이 기초교회공동체 발생의 주된 요인이 된 것으로 전해진다.
 
◆ 소공동체 용어에 대하여


소공동체 vs 기초교회공동체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먼저 '기초 공동체(Basic Community)'라고 불렀다. 이 명칭은 브라질교회를 중심으로 실시한 의식화 교육 프로그램, '기초 교육 운동'의 결과로 생긴 작은 공동체에서 유래한다.

이후 비종교적인 집단과 구분하기 위해 '기초 그리스도인 공동체(BCC : Basic Christian Community)'라는 말이 생겨났고 후에 교회적인 본질을 강조하기 위해 '기초교회공동체(BEC : Basic Ecclesial Community)'로 부르게 됐다. 여기서 '기초'의 의미와 특징은 '교회의 기초세포라는 것', '그리스도의 기초로 돌아간다는 것', '사회의 기초인 가난한 삶들에 속했다는 것', '교회의 기초인 평신도에게 속한 것' 등을 나타낸다. 또한 교회라는 말은 기초교회공동체가 단순히 사회적·정치적·심리적으로 규정될 수 있는 공동체가 아니라 하느님께 대한 신앙에 토대를 둔 공동체라는 뜻과 함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으로 하느님 백성의 사명을 수행하고 보편교회와 친교를 이룬 공동체를 뜻한다.

유럽·아메리카·아시아 지역에서는 '기초 그리스도인 공동체(BCC)'라는 말을 사용하다가 최근에는 '기초교회공동체(BEC)'나 '작은 그리스도인 공동체(SCC:Small Christian Community)'라는 말을 함께 쓰고 있는 경향이다.

아프리카에서는 영어를 사용하는 지역에서 '작은 그리스도인 공동체(SCC)'라는 말을 사용하고 불어 지역에서는 '살아있는 교회공동체'라 부른다.

한국에서는 1980년대 '기초공동체' 표현을 주로 사용했으나 1990년대 들어와 '기초공동체'와 '소공동체'라는 말을 혼용했다. 1993년 서울대교구에서 "한국 교회에 적합한 용어를 모색해 가되 우선 '소공동체'를 공식 용어로 사용"하기로 결정, '소공동체' 용어가 일반화되면서 정착되는 과정을 보인다.

그러나 한편 '소공동체'라는 표현이 공동체의 작은 규모만을 나타낼 뿐 교회 공동체의 고유한 특성과 정체성을 드러내지 못해 적합한 용어로 변경할 필요성이 있다는 의견이 제기되기도 했다.

서울대교구 시노드에서도 '소공동체'와 '기초교회공동체' 용어 중 어떤 것을 사용할 지 결론을 내지 못한 가운데 연구과제로 돌렸다.

 

소공동체의 이해 ②

 

모든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진정한 기초/ 성숙한 신앙 교육 위해 교도권에 의해 추진/ 삶 속에 뿌리내리는 참된 공동체 양성 목표

 
● 지역 교회별 소공동체

■ 아프리카

아프리카 가톨릭교회의 소공동체 모습은 지역별로 형성이 이뤄졌다고 볼 수 있으며 비교적 동아프리카 지역에서 활발한 작업이 이뤄졌다. 첫 소공동체 모습은 1960년대 자이레에서 찾을 수 있다. 이어서 1966년에는 탄자니아에서, 또 1971년에는 잠비아에서 시도된 것으로 알려진다.

아래로부터 신자들에 의해 시작된 남미의 경우와 달리 아프리카에서의 소공동체 운동은 그리스도인의 생활 가치와 기본 소명에 대한 의식이 형성되지 못한 신자들을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교육하기 위한 것이 일차적 목표였고, 그런 면에서 교도권에 의해 소공동체 육성이 추진됐다. 사목 지역은 넓고 성직자들은 부족했던 지역적 상황이 그 배경의 뿌리라 볼 수 있다.

초기 선교사들은 지역 어려움을 해소하고자 농촌 본당에 많은 공소를 세워 소성당이나 선교지로서의 기능을 담당토록 했다. 그러나 신자들의 사목적 욕구를 채우기에는 무리가 따랐고 능력있는 평신도들이 있다 해도 신자 양성이나 지역교회 활동 참여를 이끌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도 가톨릭 신자들은 다른 종파나 프로테스탄트 교회로 계속해서 옮겨가는 상황이었다.

지역에서 선교 활동을 하던 메리놀회 사제들은 이 같은 현상을 문화인류학자 마리 프랑스 페리제(Marie-France Perrin Jassy)에게 연구 의뢰했고, 페리제는 탄자니아 북 마라(North Mara) 지역을 조사, 1973년 그 결과를 발표했다.

"가톨릭 신자들은 대부분의 경우 수동적인 역할만을 담당하며 여러 가지 이유로 교회의 본질적 활동에 참여하지 않고 책임을 지지도 않는다. 그러나 아프리카 독립교회들은 보통 규모가 작고 마을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공동체 의식이 강하다. 그 안에서는 소수가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지도력을 발휘하며 사도직을 담당하고 있다"는 것이 주요 골자였다.

여기에서 독립교회는 선교 교회나 토착 교회 안에서 외국인의 지배를 벗어나 현대적이고 토착화된 방법으로 복음을 수행하려는 동기에서 발생한 교회 운동을 말한다.



 
▲ 외국인의 지배를 벗어나 현대적이고 토착화된 방법으로 복음을 수행하려는 동기에서 발생한 독립교회에 대한 연구결과에 주목한 아프리카 주교회의는 아프리카교회 발전에 가장 적합한 방법으로 소공동체를 강조했다.
사진은 잠비아 무풀리라에 있는 테레사본당의 미사 입당 장면.
이들은 아프리카 전통춤을 추며 부족어인 벰바어로 성가를 부른다.
 
 
 
1973년 동아프리카 주교회의는 이 연구 결과에 주목, 이미 여러 지역에서 진행되고 있는 소공동체를 위한 노력을 수용하고 소공동체를 양성키로 결정했다.

1974년 제3차 세계 주교대의원회의에서 '강생의 신학'을 전개해야 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한 주교회의는 '소공동체가 가정 다음으로 모든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진정한 기초가 될 것'임을 강조하고 '이 소공동체들은 교회 공동체와 각 신자들의 생활 중심으로서 삶의 자리에 뿌리를 내리고 성장해야 한다는 것'을 역설했다. 소공동체들이 교회의 지역적 육화로 간주된 것이다.

이같이 아프리카 주교단은 소공동체 설립에 사목적 우선성을 부여하는 입장을 천명했다. 또 소공동체 건설은 아프리카 민족의 생활 기초가 되는 진정한 인간적 가치들을 수호하는 최상의 길로 묘사됐다.

1976년 개최된 동아프리카 주교회의에서는 소공동체 건설에 사목적 우선 순위를 둘 것을 거듭 강조했고, 1979년 동아프리카 주교회의는 아프리카교회 발전에 가장 적합한 방법으로써 소공동체를 강조했다. 이 회의에서는 소공동체에 대한 많은 정보와 소공동체 확립을 위한 현실적인 지침이 제시됐다. 이때 남아프리카 룸코(Lumko)연구소는 실제적이고 상세한 체험과 정보를 제공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소공동체 건설에 주력한 동아프리카 주교회의 영향을 받은 남아프리카 주교회의도 1976년 개최된 회의를 통해 소공동체 장려를 승인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현대의 복음선교」를 인용, 지역 내 소공동체 사목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을 제안하는 등 소공동체의 가치를 인정했다.

이미 남아프리카 스와질란드 지역과 모잠비크 지역은 독립한 이래 계속해서 공동체들을 세워왔고 특히 짐바브웨 무타레교구에서는 공동체 조직에 상당한 노력이 기울여지던 터였다.

주교들은 또 이 자리에서 소공동체 형성과 성장에 있어 평신도들에게서 비롯될 수 있는 주도권 문제를 우려하면서 소공동체들의 균형있는 발전을 위해서는 평신도들의 지도력과 성직자들의 소공동체에 대한 관심이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이후 남아프리카 주교회의는 1989년 총회에서 "우리의 계획은 교회가 참된 공동체가 되게 하는 것이다. 그 안에서 서로가 그리스도의 형제자매임을 느끼는 것이다. 우리의 첫 번째 사목적 계획은 공동체를 건설하는 것이다. 본당에서 공동체를 건설하는 가장 강한 형태는 '작은 신앙 공동체 건설'"이라고 밝힘으로써 다시 한 번 소공동체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

서아프리카의 경우 시에라리온에서 기초 교회 공동체 건설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비교적 활발한 편이다. 특히 케네마에 있는 사목센터는 공동체 건설을 촉진하는 일에 주력해 왔으며, 이 센터에서는 시에라리온을 비롯한 서아프리카 국가들은 물론 아프리카 전역과 기타 지역에서 온 사람들을 대상으로 연수회를 열고 있다.
 
 


 
▲ 아프리카 민족 특유의 흥겨움은 공동체에 활기를 불러 일으키며 서로간의 친교를 다지도록 돕는다.
사진은 2009년 8월 잠비아 솔웨지(Solwezi)교구 주교좌 성다니엘성당에서 거행된 사제서품식에서 신자들과 한데 어우러져 전통춤을 추고 있는 수도자의 모습.
 
 
 
■ 룸코연구소


'말씀' 중심의 소공동체 건설 주력

한국교회 소공동체 도입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로 지목되는 룸코연구소는 본래 남아프리카 선교를 위한 목적으로 설립된 기관이다.

1952년 4월 남아프리카 주교 총회 결정을 통해 인류학 선교학 등을 연구하는 연구소로 설립됐으나 교황청 인류복음화성에서 연구소 승인을 취소함으로써 1962년 연구소 책임을 맡았던 퀸즈교구 로젠탈 주교가 교구 차원의 연구소 '룸코 선교연구소'(Lumko missiological Institute)로 새롭게 출범시켰다.

'룸코' 명칭은 한 가톨릭 신자 가족 이름에서 연유됐다. 룸코라는 사람이 로젠탈 주교에게 개인 소유 땅을 기증했고, 그곳에 연구소를 설립하면서 룸코연구소라는 명칭이 붙었다.

1972년 남아프리카 주교회의로 소관된 연구소는 이후 주교회의 산하 사목연구소가 됐으며 이들이 계발한 30여 종 이상의 사목 모델과 프로그램들은 아프리카 지역뿐만 아니라 한국교회를 비롯 아시아 등 50여 개 나라에서 활용되고 있다.

연구소의 사목 비전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을 실현하고 가톨릭 교회의 복음화 과업을 촉진하는 것이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공의회의 '하느님 백성'에 의거 성직자·수도자·평신도의 본질적인 동등성을 회복하고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예언직·사제직·왕직의 사명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것과 함께 공의회에서 새롭게 발견한 '친교의 교회'를 실현하기 위해 하느님 말씀을 원천으로 하는 공동체를 활성화하는 것이다. 더불어 사회에서 예언자적 사명을 수행하는 참된 지역 교회 건설도 지향점으로 삼고있다.

즉 교회의 공동체성을 회복하고 평신도들이 교회의 사명 수행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말씀'이 중심이 된 소공동체(small christian community) 건설이 주된 활동 목표라 할 수 있다.


 

(4) 소공동체의 이해 ③ 아시아의 소공동체

 

필리핀 - 아시아 최초 소공동체 탄생. 지연·혈연에 근거한 공동체. 주교회의 중심축으로 운영/ 인도 - 교구 중심 소공동체 운영. 사제의 적그성이 성공 요인/ 미래 주역 아시아교회에서 소공동체 꽃 피우다

 
아시아 지역은 다른 대륙과 달리 지리적·민족적·문화적·종교적으로 다양한 50여 개 국가로 구성돼 있다. 필리핀을 제외한 다른 나라들에서 가톨릭 신자들은 소수를 차지한다. 아시아 지역 전체에서 필리핀에만 6천만 명에 가까운 가톨릭 신자들이 집중돼 있고 그 외 인도, 인도네시아, 베트남, 한국 지역에 신자들이 분포돼 있다. 이들을 제외한 대부분 아시아 국가에서 가톨릭 신자들은 1% 미만의 소수 집단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아시아교회는 제삼천년기 보편교회 안에서 주도적 역할을 수행해 갈 것이라는 기대를 모으고 있는 중이다. 이러한 현실과 기대만큼 소공동체의 시동과 전개 양상도 특별하고 그 귀추 역시 주목받고 있다.



아시아주교회의(FABC) 차원에서 소공동체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한 것은 1990년 제5차 인도네시아 반둥아시아주교회의였다. 이때 총회는 '아시아 안에서의 교회의 새로운 존재 양식(a new way of being Church in Asia)'을 '공동체들의 친교(communion of communities)'로 규정했다.

이 기간 동안 FABC는 '공동체들의 친교' 실현을 위한 구체적인 방법의 하나로 룸코연구소의 '소공동체' 사목 모델과 프로그램들을 소개했고 아시아 주교들은 이 방법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 자리는 한국을 비롯 아시아 여러 나라들에서 아시아 주교들에 의해 표명된 '공동체들의 친교'와 '참여하는 교회' 비전을 실천하기 위한 구체적 방법으로 룸코연구소의 '소공동체' 사목 모델을 원용하는 계기가 됐다고 볼 수 있다.

이후 2000년 타이 샴프란에서 열린 제7차 아시아 주교회의에서는 '아시아교회의 쇄신과 사랑과 봉사의 사명'이라는 주제로 아시아교회 쇄신의 전망과 의미를 제시하고 사랑과 봉사의 사명 수행에서 부딪치는 문제와 도전들에 대해 다루면서 소공동체 육성을 언급했다.

이때 아시아 주교회의는 "사랑과 봉사의 사명을 위한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는 진정으로 공동체들의 공동체가 되고자 하는 깊은 열망을 나타내야 하며 그러한 사명을 위한 효과적인 수단이 교회 기초공동체에 바탕을 둔 소공동체 그리고 교회 단체들"이라고 밝히면서 소공동체의 중요성을 거듭 천명했다.

아시아 소공동체 정착의 구심점이 된 아시파(AsIPA, As-ian I-ntegral P-astoral A-pproach : 아시아의 통합적인 사목 방법)는 아시아 주교회의에서 천명된 교회의 새로운 비전 실현 방안 모색을 위한 자구책의 부산물이다.

1990년 반둥회의 이후 1993년 10월 30일부터 11월 3일까지 말레이시아에서 평신도사무국과 인간발전사무국 주최로 자문협의회가 개최됐는데 이 회의에는 평신도사무국 의장과 두 사무국의 총무 그리고 각 나라의 주교·성직자·수도자·평신도들도 참가했다. 회의 동안 참가자들은 교회의 새로운 비전을 수행할 수 있는 아시아교회에 적합한 방안들을 모색했다.

아시아에서 교회의 새로운 존재 양식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든 사목적인 과정, 즉 아시파(AsIPA)는 이 자리를 통해 그 모습을 드러냈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탄생된 아시파는 아시아교회 안에서 소공동체가 정착할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현재 아시아의 통합적인 사목방법을 연구 보급하고 있는 아시파는 아시아 소공동체 담당자들의 네트워크를 조직, 아시아지역 소공동체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다. 아시파 총회에서 보고된 각국 소공동체 현황에 따르면 한국을 비롯해 필리핀, 인도, 스리랑카,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 국가에서 '공동체들의 친교' 및 공동 책임의 '참여하는 교회'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소공동체를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다음은 아시아 각국 교회 안에서 소공동체가 전개된 사례들이다.


 
▲ 아시파 제5차 총회(2009.10.20~28)에 참가한 강우일 주교를 비롯한 한국 참가단이 아시아 각국 신자들과 함께 그룹을 이뤄 복음나누기를 하고 있다.
 
 
 

필리핀

아시아에서 소공동체에 대한 개념이 제일 먼저 대두된 곳은 필리핀이다. 필리핀에서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와 라틴 아메리카의 기초교회 공동체 영향을 받아 1960년대 중반부터 기초교회 공동체가 태동했다.

사회 정치 경제적으로 라틴아메리카와 비슷한 상황이었던 필리핀에서 주교들은 1970년대부터 기초교회 공동체에 사목적 우선권을 두었다.

1992년 개최된 필리핀 주교회의 제2차 총회는 '친교의 교회'와 '기초교회 공동체'의 경험과 중요성을 강조하였고 여기에서 주교들은 "일치 참여 사명으로서의 교회 그리고 예언자직 왕직 사제직을 수행하는 사람들로서의 교회와 가난한 교회에 대한 우리의 비전은 오늘날 기초교회 공동체 운동들 안에서 확실하게 드러나고 있다"고 밝혔으며 "다른 여러 형태의 작은 신앙 공동체들이 있지만 기초교회 공동체야말로 교회 쇄신을 보여주는 살아있는 표현들이다"고 천명했다. 이같이 주교회의가 중심축이 되어 시도되었다는 점에서 필리핀 기초교회 공동체는 독특함을 가진다.

450여 년의 식민지 생활 그리고 7천여 개의 섬들로 이루어진 지역적 여건, 100여 개나 되는 언어, 다양한 부족 모습 등 상대적으로 여러 열악한 조건을 지니고 있었음에도 기초교회 공동체가 운영될 수 있었던 것은 필리핀 특유의 지연이나 혈연으로 묶여진 소규모 단위의 생활 모습이었다.

필리핀에서의 기초교회 공동체는 이같은 고유의 가정 공동체적인 조건과 결부되면서 성장했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은 모임 특성에 따라 BEC(기초교회공동체), BHC(기초인류공동체), BCC(그리스도교 기초공동체) 등으로 불리는데 최근에는 훼손된 생태계의 회복을 위해 BCC(기초피조공동체, Basis Creature Community)가 형성되기도 하는 등 시의적절하게 토착화된 소공동체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 2009년 필리핀에서 열린 아시파 제5차 총회 참가자들의 모습.
아시파는 아시아 주교회의에서 천명된 교회의 새로운 비전을 실현하기 위한 자구책으로 탄생됐고, 아시아 소공동체 정착의 구심점이 됐다.
 
 
 
인도

 


 
▲ 인도 망갈로르교구 안젤로본당의 소공동체 모임 모습.
1989년 교구 사제 사목협의회를 통해 모든 본당은 적어도 3년 이내에 하나의 소공동체를 시작해야 한다고 결의한 망갈로르교구는 인도교회 안에서도 소공동체가 성공한 지역으로 꼽히고 있다.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
 
주교회의가 중심이 되었던 필리핀과 달리 인도에서는 교구 중심의 소공동체 모습이 눈길을 끈다.

특히 망갈로르교구가 대표적인데, 이 교구에서는 1989년 교구 사제사목협의회를 통해 모든 본당은 적어도 3년 이내에 하나의 소공동체를 시작해야 한다고 결의했다.

이 교구의 경우 룸코식 복음나누기의 공동개발자인 오스왈드 히르마 주교가 지도하는 전국 단위 룸코식 복음나누기 훈련과정에 다섯 명의 교구 사제가 참가한 후 룸코식 복음나누기 교육을 전 교구 사제들에게 확산시켰고 이후 1989년에는 소공동체 전담 사제를 임명했다.

망갈로르교구는 인도교회 안에서도 비교적 소공동체가 성공한 사례로 꼽히고 있는데 그 이면에는 몇 가지 제도적인 요인과 사제들의 적극성이 주효한 뒷받침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우선적으로 복음나누기 7단계 방법을 모든 소공동체 모임의 기본으로 만들었으며 이 밖에 사제들이 평신도들과 돈독한 관계를 맺고 있는 상황에서 소공동체 모임에 항상 참석하는 여건을 만들었다. 또 8천여 명에 이르는 평신도 지도자들이 본당 사목위원이나 단체 회원으로 활약하면서 본당 활동의 중심에 있었고 대다수 본당들은 사목협의회 산하에 소공동체 위원회를 설치, 소공동체를 본당의 주요 사목 안건으로 다루었다.

교구 차원에서도 소공동체 전담 사제 및 각 지구별 소공동체 대표 사제를 임명하고 동시에 지구 내 소공동체 운영 점검을 위한 본당 사목 방문을 실시하는 등 사제들의 관심과 협력을 이끌어 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