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교
성 알데리코
(Aldericus)
알데리꼬 · 알데리꾸스 · 알데리쿠스 · 알드릭 · 알데릭 · 알드리히 · 알드리치
성 알데리쿠스(또는 알데리코)는 800년경 프랑크 왕국에서 작센(Sachsen)과 바이에른(Bayern) 혈통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는 12살 때 아버지에 의해 아헨(Aachen)에 있는 샤를마뉴(Charlemagne) 황제의 궁정으로 보내졌고, 그곳에서 샤를마뉴의 아들인 경건왕 루이 1세(Louis the Pious)의 집에서 지내며 교육을 받았다.
그는 821년경 21살의 나이에 궁정을 떠나 메스(Metz)로 가서 사제품을 받고 메스 대성당의 참사 위원으로 임명되었다.
그 후에 그는 다시 루이 1세 황제의 궁정으로 불려가 황실 전속 사제이자 황제의 고해 담당 사제가 되었다.
성 알데리코는 832년에 르망의 주교로 임명되었고 그해 12월 22일 주교로 축성되었다.
그는 공적인 사목 활동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미덕으로도 명성이 높았다.
그의 최고 관심사는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고 수도회를 육성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그는 자신의 모든 능력과 개인적인 재산까지도 모두 쏟아부었다.
그는 전례를 중요하게 여겨 모든 대축일에는 초 10개와 90개의 램프를 밝히게 했는데, 이때부터 이런 관습이 타지방으로 전파되기 시작했다.
성 알데리코는 정치적으로 격동의 시대를 살았다.
주교는 왕국 내의 수많은 분쟁과 논쟁에 휘말릴 수밖에 없는 공적인 인물이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833년 대반란 이후 카롤링거 왕조의 계승권을 둘러싼 분쟁 시기에 성 알데리코는 루이 1세와 그의 후계자인 샤를 2세(Charles II le Chauve)에게 충성을 유지했으나 그로 인해 일시적으로 주교직에서 해임되었다가 복귀하기도 했다. 836년에는 루이 1세 황제의 뜻에 따라 르망의 성 리보리오(Liborius, 4월 9일) 주교의 유해를 신생 교구인 독일 북서부의 파더보른(Paderborn)으로 보냈다.
성 리보리오의 유해 인계를 통해 르망 교구와 파더보른 교구는 영원한 우정의 유대를 맺었고, 그 유대는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성 알데리코는 파리(Paris)의 주교와 함께 836년 아헨 공의회에 참석해 아키텐(Aquitaine)의 왕인 피핀 1세(Pepin I, 817~838년 재위)를 방문해 왕당파가 약탈해간 막대한 교회 재산을 반환하도록 설득하였다.
그는 또한 846년 파리 공의회와 849년 투르(Tours) 공의회에도 참석했다.
그는 24년간의 주교직을 마치고 856년 1월 7일 르망에서 선종해 생뱅상(Saint-Vincent) 성당에 묻혔는데, 임종 전 2년 동안은 마비 증세로 병상에 누워서 지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1월 7일 목록에서 프랑스 르망에서 하느님과 성인들을 공경하는 일에 지극한 열정으로 헌신했던 성 알데리코 주교가 잠들었다고 기록하며 그의 이름을 새로 추가하였다.
성 알데리코는 성 알드릭(Aldric), 성 알데릭(Alderic), 성 알드리히/알드리치(Aldrich)로도 불린다.♣
가톨릭 용어 안내
성인(성녀)
순교자나 거룩하게 살다 죽은 이 가운데 훌륭한 덕행과 모범이 인정되어 공식적으로 성인품에 오른 사람. 넓게는 거룩한 사람, 곧 하늘나라(천국)에 간 모든 사람을 일컫기도 합니다.
대천사
하느님의 특별한 사명을 전달하기 위하여 파견된 천사를 뜻하며,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가 있습니다.
복자(복녀)
가톨릭 교회가 시복(諡福)을 통해 신자들의 공경의 대상으로 공식 선포한 사람. 남자는 복자, 여자는 복녀라 합니다. 복자가 시성(諡聖)되면 성인(여자는 성녀)이 됩니다.
세례명
가톨릭 신자들이 세례 때 받는 이름. 좋아하는 성인의 이름을 골라 정하며, 일생 동안 그 성인을 수호자로 공경하며 그 덕행을 본받으려 애씁니다. 흔히 본명(本名)이라고도 합니다.
영명축일
가톨릭 신자가 자신의 세례명으로 택한 수호 성인의 축일. 대개 그 성인이 선종한 날이 축일이 됩니다.
성인 자료 출처: 가톨릭 인터넷 굿뉴스 · catholic.or.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