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요한 바오로 2세

2005. 4. 4. 오후 12:37:14

글자

▶ 교황


한자  敎皇 
라틴어  Papa 
영어  Pope 

 

   1. 명칭과 직위 : 교황이라는 명칭의 원어 Papa(아버지)는 본래 지역 교회의 최고 장상(주교, 대수도원장, 총주교)을 부르던 말인데 중세 초기부터 차츰 로마의 주교에게만 사용하게 되었다. 교황은 로마교구의 교구장 주교이며 세계 주교단의 단장으로서 현세 교회의 통괄적 최고 사목자이다.

 

   2. 교황직의 교리적 내용 : ① 교황은 사도 베드로의 후계자 : 주 예수께서 당신의 교회를 순전한 사상운동으로만 선포하지 않으시고 구체적인 공동체로 세우셨다. 그는 교회의 이념인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시면서 열두 사도들을 선택하시어 그들에게 교회를 지도할 권한을 주시어 파견하셨다.(마태 10:1-4, 마르 16:15, 마태 18:18, 28:19-20, 사도 1:8). 그리스도는 사도단을 구성하실 때에 그들 중에서 시몬을 베드로(반석)이라고 개명하시어 사도단의 으뜸으로 세우셨다. 베드로 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는 약속(마태 16:15-19), 베드로에게 다른 형제들을 부탁하신 것(루가 22:31-32), 베드로에게 양들을 맡기신 일(요한 21:15-17) 등은 분명히 베드로를 사도단의 으뜸으로 세우실 의향을 명시하는 것이다.

   초대 교회에서 베드로는 마티아를 사도로 보선하고(사도 1:15) 최초로 공개 설교를 하고(사도 2:14이하), 유대 원로원에서 사도들의 활동을 변호하고(사도 4:8, 5:29), 이방인 개종자 문제(사도 10:24-28)와 구약율법의 문제(사도 15:7-22) 등에 있어서 단장격으로 행세하고 있다. 베드로는 예루살렘과 팔레스티나에서 선교하다가 로마를 떠나서 다른 곳으로 갔는데(사도 12:17) 역사의 증언에 의하면 42~43년에 로마에 가서 로마교회를 창설하였고, 거기서 그의 첫째 편지를 썼으며(1베드 5:13), 네로의 박해 때인 64년에 로마에서 순교하였다. 그래서 그의 후계자인 로마의 주교는 당연히 베드로의 권위와 책임을 계승한 것으로 확신하였고 교회도 그렇게 인정하였다. 1세기 말에 베드로의 3대 후계자 즉 4대 교황인 성 글레멘스 1세는 멀리 고린토교회의 분쟁을 조정하였고, 2세기 초에 안티오키아의 주교 이냐시오와 2세기 중엽에 리용의 주교 이레네오는 로마의 주교가 전 교회의 으뜸이라는 것을 증언하고 있으며, 2세기 말에 교황 성 빅토리오 1세는 동방의 부활축일 논쟁에 개입 조정하였고, 3세기 중엽에 성 스테파노 1세 교황은 재세례(再洗禮)를 금하는 조처를 북아프리카와 소아시아 주교들에게 내리고 있다.

   이와 같이 교회의 수위권(首位權)은 이론적으로 정립되기 전에 이미 고대교회에서 실시되고 있었고, 그 후 역사적인 기복을 거쳐서 (교회사 참조) 제1차 바티칸 공의회(1869~1870)에서 신조(信條)로 정의되었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년)가 재확인하였다(교회헌장 22).

   ② 교황은 세계 주교단의 단장 : 교황의 수위권이 아무리 확고하고 강력할지라도 각 지역 주교들의 고유한 사목 권한을 배제하거나 축소하거나 대행하지 않는다. 주교들은 주교품을 받음으로써 사도들의 후계자가 되고, 위임된 지역교회의 완전한 사목자가 되며, 로마 교황과 더불어 한 주교단을 이룬다. 베드로가 사도단의 단장이었던 것처럼 교황도 주교단의 단장이며, 따라서 교황을 제외한 주교단이나 주교단과 유리된 교황이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것이다(교회헌장 22). 그러므로 주교단 안에서 각 주교들은 그들의 사목권을 교황으로부터 받는 것이 아니고 주교서품을 통하여 하느님으로부터 받기 때문에, 자기에게 위임된 지역 교회(교구)안에서 교황의 대리가 아니고(교회헌장 27) 고유하고 직접적이고 통상적인 사목자이며(교회헌장 23), 세계 교회에 대해서는 교황과 함께 한 주교단으로서 전반적 최고 사목권의 주체가 된다. 주교단의 단체성은 세계 공의회에서 잘 나타난다. 공의회의 결의는 단장인 교황의 동의를 받아서 교회 전제에 대한 보편적인 사목지침이 되는 것이다. 공의회 밖에서도 세계 주교들의 일치된 결정은 동의를 전제로 하여 교회의 최고 사목권의 발로로 인정된다(교회헌장 22, 주교교령 4).

   교황도 로마의 주교이기 때문에 다른 주교들과 함께 유일한 주교직에 참여하고 있다. 일찌기 치프리아노는 3세기에 다음과 같이 주교직의 단일성을 강조하였다. “주교직은 하나이고 각 주교는 여기에 연대적으로 참여한다”(De unitate, 5). 전체 교황의 수위권은 모든 교회문제에 대한 완전한 것이고(plena), 주교를 포함한 모든 신자 개인과 단체에 미치는 보편적인 것이고(universalis), 공의회보다 더 높은 최고의 것이고(suprema), 직책상 당연히 가지고 있는 통상적인 것이고(ordinaria), 누구를 통하지 않고 직접 개입할 수 있는 것이고(immediata), 필요하면 언제 어디서나 발동할 수 있는 자유로운 것이다(libera).

 

   3. 교황의 직무 : 교황의 직무도 교회의 직무내용처럼 진리를 가르치는 예언직(豫言職)과 이에 상응하는 교도권(敎導權), 인간을 성화하는 사제직(司祭職)과 신품권(神品權), 교회를 다스리는 왕직(王職)과 통치권(統治權)으로 대별하여 생각할 수 있다.

   ① 교도권(potestas magisterii) : 구원의 계시 진리를 가르치는 책임을 진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권위를 부여받은 주교들이다”(교회헌장 25). 주교들의 통상 권위로 가르치는 것을 통상 교도권이라 하고, 주교들이 세계 공의회를 통하여 가르치는 것과 교황이 교황직위를 발동하여 가르치는 것을 장엄(莊嚴) 교도권이라 한다. 교황의 통상 교도권 행사는 일반 주교들처럼 공식 설교, 교리해설, 사목교서, 교구회의 등으로 하고, 또 교황령(敎皇領) 회칙(回勅) 등 문서로도 하며, 교황청의 행정부서의 율령이나 법원의 판결같이 간접적으로 행사하기도 한다.

   교황의 장엄 교도권은 세계 공의회를 통하여 행사하기도 하고, 교황 스스로 ‘교좌에서의 선언’에 의하여 행사하기도 한다. 그런데 교황이 장엄 교도권으로 신앙이나 도덕에 관한 최종 결정을 하는 경우에는 절대로 그르칠 수 없다는 것이 가톨릭 교회의 신앙이다. 교황의 이 특은을 무류지권(無謬之權)이라 한다(무류지권 참조). 교황이 교좌에서(Ex cathedra) 선언한 것이 무류하기 위하여 다음 조건이 채워져야 한다. ㉮ 전체 교회의 최고 목자로서 공식적으로 선언한다. 따라서 교황도 로마 교구장의 자격이나 개인 학자의 자격으로 주장하는 것은 무류하지 않다. ㉯ 계시 진리를 최종적으로 정의하려는 의도를 밝혀야 한다. 따라서 교황의 자격으로 할지라도 통상적인 지도 · 권유 · 해설 · 반박 · 경고 등은 무류하지 않다. ㉰ 신앙이나 도덕에 관한 문제에 국한된다. 따라서 과학 · 예술 · 사회 · 경제 · 정치 · 기타 문제에 관한 교황의 선언은 무류하지 않다.

   ② 신품권(potestas ordinis) : 교황의 신품권은 다른 주교들의 신품권과 같다. 모든 주교는 주교품을 받음으로써 완전한 신품권을 받아서 칠성사를 집전하고 모든 전례를 주관한다. 그래서 어떤 주교가 교황으로 선출되어도 더 큰 신품권을 받는 것이 아니며, 주교 아닌 사람이 교황으로 선출되면 즉시 주교품을 받아야 로마의 주교가 되고 세계 교회의 교황이 된다. 교황이 전례의 유효성에 관한 절차나 조건을 정하고, 전례문을 제정하거나 변경하거나 또는 전례상의 관면이나 제한을 하는 것과 성년을 선포하고 시성식을 거행하는 행위는 주교보다 더 큰 신품권이 있어서 하는 것이 아니며, 다음에 말할 더 큰 교회 통치권을 행사하는 것이다. 따라서 교황이 집전한 성사나 주교가 집전한 성사나(자기 권한 내에서) 신부가 집전한 성사의 객관적 가치는 완전히 동일한 것이다.

   ③ 통치권(potestas jurisdictionis) : 교황의 통치권은 그의 수위권 때문에 모든 성직자들의 통치권을 능가하고 포괄한다. 교황의 통치권은 주교를 포함한 모든 신자에게 미치고, 교회의 사명 수행에 직접 관련되는 모든 사항에 해당한다.

   교황의 통치권은 교회를 지도하기에 필요한 입법권과 사법권과 행정권을 포함한 것이다. 교황은 이러한 삼중 통치권을 행사할 때에 여러 가지 보좌기관(법원, 행정부서, 회의 등)을 이용하지만 최종 결정권자는 교황 자신이다. 그래서 현대 국가의 삼권분립제도는 교회나 교황에게 해당되지 않는다. 그러나 교황의 통치권에 의한 결정 중에서(장엄 교도권과 직접 결부된 신조선언이 아닌) 일반 명령이나 지시는 그 자체로서 무류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교황의 지시를 존경과 순명으로 받아들이면 충분하고, 교회의 현세적 조건(정교조약, 재산관리 등)에 대한 교황의 결정은 비판할 수도 있는 것이다.

 

   4. 교황직 약사(略史)

   ① 고대 교회 : 초대 교회에서부터 로마 주교는 베드로의 후계자라는 위치로 인하여 전체 교회의 중심인물이었으므로, 이단자들도 자기네 주장을 변명하기 위하여 로마로 갔으며(마르치온, 노바시아노, 몬타노, 그노시스 이단파의 지도자들), 교부들도 반대자들의 핍박을 피하여 로마의 보호를 청하였다(아타나시오 등).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로마 제국의 수도를 비잔틴(후에 콘스탄티노플로 개칭)으로 옮긴 후부터 로마의 정치적 비중은 줄었지만 로마 주교의 종교적 권위는 더욱 커졌다. 박해 후에 신학적 사색이 발전하면서 동방에서 논쟁이 분분할 때에 로마 황제들은 여러 번 공의회를 개최하여 문제의 해결을 시도하였다. 주로 동방 주교들이 참석하여 결의하였지만 그 결의는 언제나 교황의 명시적 또는 묵시적 동의를 얻어야만 공의회로 인정되었으며, 칼체돈 공의회(451년)는 성 레오 1세 교황의 사절들이 사회하였다. 이 때에 이르러 명실공이 교황의 수위권이 확립된 것이다. 서로마제국이 멸망할 무렵부터(476년) 서유럽의 정치적 혼란에 즈음하여 교황은 교회뿐 아니라 서유럽의 수호자로 등장하였고, 게르만민족을 교화시키고 수도회와 성당을 통하여 로마 문화를 전수하였다. 6세기 말에 성 그레고리오 1세 교황은 영국을 개종시키고 로마주교에 대한 동로마 황제의 압력을 물리치고 중세유럽의 형성자가 되었다.

   한편 동로마 황제의 후광을 입고 있는 콘스탄티노플의 총주교들은 계속하여 로마 교황과 대등한 동방에서의 수위권을 요구하여 사소한 교리 해석의 차이와 전례의 차이 등을 핑계로 삼아 교황의 수위권에 도전함으로써 결국 동서 양교회가 분리될 소지를 만들어 갔다.

   ② 중세 교회 : 중세는 로마 교황과 신흥 세력인 게르만 민족들과의 관계에서 시작되었다. 게르만 민족들이 개종하고 교화되면서 서유럽에 많은 왕국이 형성되었고, 교황은 이들 신생 국가들의 왕권에 교회의 보호를 요청하게 되었는데, 시초에는 교황이 왕권의 후견인이었으나, 왕권이 비대해지고 교회를 보호한다는 구실 하에 왕권이 교권에 간섭하게 되자 양자의 충돌이 일어났다. 8세기 프랑크 왕국은 강력해지고 칼 대제는 교황 성 레오 3세에 의하여 서유럽의 황제로 대관식을 받아서(800년) 교회를 옹호함과 동시에 교권에 깊이 간여하였다. 그 동안에 동프랑크(독일)도 개종하여 오토 대제가 교황 요한 12세에 의하여 황제로 대관되고(962년) 소위 신성 로마제국을 형성함으로써 교권에 간섭하였다.

   이렇게 7 · 8 · 9 · 10세기의 교황들은 정권의 비호와 간섭을 받으면서 수위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였고, 10세기에서 11세기에 걸쳐서 정권의 동요와 경제의 불황으로 사회는 혼란하였으며, 교황권의 약화는 성직자들의 기강 문란과 주교 서임권에 관한 왕권과의 다툼을 초래하여 서유럽 사회와 교회는 암담한 상태에 빠졌다. 이러한 시기에 편승하여 동방교회는 해묵은 수위권 시비로 결국 1054년에 로마 교회와의 관계를 단절하고 말았다. 이러한 와중에서도 로마 교회는 꾸준히 복음 선포에 힘써서 7세기에 스페인, 8세기에 독일, 9세기에 슬라브족과 스칸디나비아족, 10세기에 폴란드와 러시아, 11세기에 유럽의 대부분을 그리스도교화 하였다. 동방교회의 이교(離敎) 후에는 교황의 권위는 서방 교회에 국한되었다. 11세기에 성 그레고리오 7세 교황은 집요한 투쟁으로 교권을 왕권에서 해방시켰고, 12~13세기의 교황들은 여러 번 공의회를 열어서 교회의 개혁과 분리된 동서방 교회의 재일치를 시도하였으나 크게 성공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12세기부터 프란치스코회와 도미니코회의 활약과 새로 등장한 대학의 노력으로 13세기에는 중세문화의 전성기를 이루었다. 그러나 이 전성기는 쇠쾨기의 시작이었으니 14세기에 여러 명의 대립 교황들이 출현하여 소위 대이교(大離敎, 1378~1417년) 사태가 벌어져서 교황의 위신은 땅에 떨어졌다. 다행히 피렌체 공의회(1438~1445년)로 이교 사태는 수습되었지만 교황의 지위는 약화되고 때마침 일어난 문예부흥 사조와 지리상의 대발견 등으로 서유럽의 통일과 정신적 일치의 구심점으로서의 교황의 위치는 결정적으로 흔들리고, 신학의 퇴조와 교회생활의 타락은 새로운 사조의 발흥을 소화하지 못한 채로 종교개혁이라는 정신적 대혁명을 겪게 되었다. 14 · 15세기의 교황들 중에서 성인으로 시성된 교황이 한 분도 없었다는 사실이 그간의 사정을 잘 말해준다.

   ③ 근세 교회 : 종교개혁 운동으로 독일 · 영국 · 북유럽의 여러 교회들이 로마와 절연하는 와중에서 교황들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교회개혁에 착수하여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년)를 통하여 개혁론자들의 이단을 배격하고 교리를 체계화하고 교회생활의 모든 분야를 혁신하는 조처를 취하였고, 성 비오 5세, 그레고리오 13세, 식스토 5세 교황들은 정력적으로 트리엔트 공의회의 결의를 실시하였다. 활력을 다시 찾은 교회는 신생 예수회를 비롯한 많은 선교수도회를 통하여 극동 선교에 나섰으며, 로마에 포교성성(布敎聖省)을 설립하여 포교사업을 지휘하였다(1622년). 17세기에는 프랑스에, 18세기에는 독일에 국수주의적 교회관이 생겨서 소위 정교분리 사상(政敎分離思想)이 강력히 대두되어(갈리카니즘, 페브로니아니즘, 요세피니즘) 교황의 수위권은 또 한 번 도전에 직면하였다. 이로써 속사에 대한 교황의 간섭권은 크게 약화되었으며, 프랑스 대혁명과 나폴레옹의 승리는 전반적인 교황권의 실추를 초래하였다. 19세기에는 이탈리아의 통일 기운이 성숙하여 1870년에 근 천년 동안 유지해 온 교황영토가 이탈리아에 합병됨으로써 교황의 속권(俗權)은 영구히 무산되었다. 한편 세계는 점점 민주주의에 심취하고, 과학만능주의 · 유물론 등이 성행하면서 유럽 여러 나라들이 교회의 영향력을 벗어나고 있을 때에, 교황의 교권이나마 굳건히 세우기 위하여 비오 9세 교황은 제1차 바티칸 공의회를 소집하였다. 공의회는 신앙의 근본 문제에 대한 오류를 배척하고, 교황의 수위권과 무류지권을 신조로 선언하였다.

   공의회 이후로 속권에서 벗어난 위대한 교황들이 속출하여 교회뿐 아니라 현대의 사회문제에도 훌륭한 지침을 제시하였다. 교황 레오 13세는 민주주의를 승인하고 노동문제에 빛을 던졌으며, 성 비오 10세는 근대주의를 단죄하고 전례운동을 촉진하였다. 베네딕토 15세는 교회법을 개혁하였고(1917년), 비오 11세는 공산주의를 단죄하고 사회문제의 해결책을 제시하는 한편 세계의 선교사업을 크게 촉진하였으며, 바티칸 시국의 독립을 달성하였다(1929년). 또 비오 12세는 성모승천 교리를 선포하고 동유럽이 공산화되는 고통을 겪었다. 위대한 교황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세계는 점점 탈(脫)그리스도교화하는 과정에 있는데, 교황 요한 23세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개최하여 교회의 쇄신과 개방을 선언하였다. 공의회 이후로 바오로 6세와 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공의회의 정신을 구현하기 위하여 동분서주하였고, 교황의 위신은 교회 내에서는 물론 교회 밖에서도 정신적 지도자로서 인정받고 있다.

 

   5. 교황의 법적 지위

   ① 교황은 로마 교구의 교구장(Ordinarius)이다 : 이 점은 다른 교구의 주교의 경우와 같다. 로마 교구의 주교좌는 바티칸이 아니고 라테라노 대성전이다. 교황은 로마 교구 사목을 위하여 총대리 추기경의 보좌를 받고 있다.

   ② 교황은 로마 관구의 수도(首都) 대주교(Metropolita)이다 : 로마 교구와 그 주변 7교구를 합한 로마 관구의 관구장이며, 7개 속교구에는 전통적으로 주교급 추기경을 두고 있다.

   ③ 교황은 이탈리아의 수좌(首座) 대주교(Primas)이다 : 이탈리아의 모든 교구 중에 수석 교구의 교구장으로서의 명예직이다.

   ④ 서방(西方) 교회의 총주교(Patriarcha)이다 : 역사적으로는 로마를 모교회(母敎會)로 하여 발전한 라틴식 전례를 가진 모든 교회들을 총괄하는 대주교를 뜻하는데 현재로서는 명예직이다.

   ⑤ 교황은 바티칸 시국(市國)의 국가원수이다 : 1870년 이탈리아가 통일되면서 교황의 영토는 몰수되고 교황의 주거지인 바티칸 언덕과 몇 개 기관들만 교황의 관할로 남았었는데, 1929년 비오 11세와 이탈리아 정부 사이의 라테라노 조약에 의하여 바티칸 시는 독립된 주권국가로 인정되었고, 교황은 국가원수로서 불가침 특권과 외교특권을 인정받게 되었다. 따라서 교황이 파견한 교황대사는 주재국에 대하여 교황의 전권대사이며, 주재국의 교회에 대하여 감독과 연락의 책임을 지고 있다. (鄭夏權)

 

   [참고문헌] O. Karrer, Pape, in Encyclopedie de la foi, t. 3/ K. Rahner-J. Ratzinger, Episkopat und Primat, Freiburg 1961/ J. Colson, L'Episcopat catholique, Paris 1963, O. de la Brosse, Le pape et le concile, Paris 1965/ Y. Congar-J. Dupont, La collegialite episcopale, Paris 1966. 

<가톨릭대사전에서>

 

 

▶ 병자성사


한자  病者聖事 
라틴어  Sacramentum unctionis infirmorum 
영어  sacrament of anointing of the sick 

 

   교회가 고통당하시고 영광받으신 주님께 죽음의 위험에 처한 환자를 맡겨 드려, 주께서 그를 구원해 주시도록 하는 성사. 사제가 전례서에 규정된 기도문을 봉송하면서 환자에게 기름을 바르는 예절로 집전한다.

 

   성서에서 열두 제자는 수많은 병자들에게 기름을 발라 병을 고쳐 주었고(마르 6:13), 원로들은 주님의 이름으로 앓는 사람에게 기름을 바르고 기도해 주어야 한다(야고 5:14)고 하였는데, 전자는 병자성사를 암시하고 후자는 그 보급을 시킨 증거라고 트리엔트 공의회는 해석하였다(Denz. 1695).

 

   초대 교회에서 병자성사는 환자 자신이나 그의 친척이 축성된 기름을 바르는 사적(私的) 도유와 사제에 의한 전례적 도유 등 두 가지 방식으로 집전되었다. 전자는 가벼운 질환을 앓는 자가 질병의 치료를 목적으로 하였고 후자는 중환자가 사제로부터 영적 도움을 얻고자 한 것인데 성사이론이 발전하지 못한 때여서 양자의 차이가 분명하지 못하였다. 9세기 이래 병자성사는 죽을 위험에 처한 자에게 마지막으로 영적 도움 즉 은총을 주기 위한 성사로 이해되었다. 이때부터 성사적 성격이 뚜렷이 나타났으며 마지막 도유 즉 종부성사(Extreme Unction)라는 용어가 사용되었다. 13·14세기에 칠성사의 이론이 발전하였을 때 병자성사의 주요 효과는 질병을 영적으로 극복하는 성사은총을 주는 것이라 하였고 질병의 치유를 부수효과로 보았으며 병자성사를 받는 자의 자격 즉, 죽을 위험에 있어야 한다는 조건을 강조하였다. 트리엔트 공의회는 병자성사를 칠성사의 하나로 규정하고(Denz. 1716) 성사의 효과로서 영적인 도움과 이에 부수하여 일어날 수 있는 육신의 질병 치유를 조화시켜 명시하였고(Denz. 1696), 성사받는 자의 자격을 죽음에 임박하지 않는 자도 가능하게 하였다(Denz. 1698).

 

   그러므로 병자성사는 “병이나 노쇠로 죽을 위험이 엿보이는”(전례헌장 73) 신자에게 먼저 영신적인 목적을 위하여, 다음으로 육신적인 건강을 위하여 베푸는 성사라 할 수 있다. 병이나 노쇠로 죽음의 위험에 처한 자는 사망하거나 건강을 회복하게 되므로 병자성사도 이 두 경우를 대비하는 것이지만 병자성사의 은총은 그 어느 경우를 막론하고 항상 질병에 대한 초자연적인 승리를 준다. 성사 은총은 환자 개인의 영신 생명에 영적 능력을 주어 신앙과 용기를 증진시킨다(Denz. 1969). 이는 병자성사를 통하여 치유자이신 그리스도와 만난 덕분이다. 그 결과 환자가 선종하면 이 죽음은 그리스도의 빠스카 신비에 참여한 것이므로 질병을 영적으로 극복하여 승리를 거둔 셈이 된다. 그렇지 않고 환자가 육신의 건강을 회복하는 경우는 인간이 정신과 육체의 상관적인 단일체이므로 성사은총으로 인한 영적 위안이 육신 치유의 결과를 낳은 까닭이다. 그러므로 병자성사는 치유를 계속하고 계시는 그리스도를 만나게 해주는 성사이며, 그 결과 성사 은총으로 말미암아 육신의 건강을 주거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참여케 해 주는 성사인 것이다.

 

   [참고문헌] Prudent De Letter, Anointing of the sick, Sacramentum Mundi, vol. I, Burns & Oates, 1968.
 
<가톨릭대사전에서>

 

 

요한 바오로 2세의 해외 순방(Apostolic visit)

 


ㅇ 교황은 1978년 즉위이래 27년간 총105회의 해외순방에 나섰으며, 전세계 131개 나라를 방문, ‘행동하는 교황’으로서의 면모를 과시함


ㅇ 교황은 2000년도에는 중동 지역 성지순례 계획임


ㅇ 교황의 해외순방 기록
79.1.25-2.1 도미니카 공화국, 멕시코, 바하마
79.6.2-10 폴란드
79.9.29-10.8 아일랜드, 미국 (UN 방문 포함)
80.5.30-6.2 프랑스 (UNESCO 방문 포함)
80.6.30-7.12 브라질 방문
80.11.15-19 서독 방문
81.2.16-27 파키스탄, 핀리핀, 괌, 일본, 엥커리지
82.2.12-19 나이지리아, 베넹, 가봉, 적도 기니
82.5.12-15 포르투갈
82.5.28-6.2 영국
82.10.31-11.9 스페인
83.3.2-10 포르투갈 및 중미(코스타리카, 니카라구아, 파나마, 과테말라, 온두라스, 벨리즈, 하이티)
83.6.16-23 폴란드
83.8.14 프랑스 남부 도시인 루르드(Lourde)
* 성모 마리아 출현의 기적이 있었다는 성당이 있는 도시
83.9.10-13 오스트리아
84.5.2-12 한국, 파푸아 뉴기니, 솔로몬 군도, 태국
84.6.12-17 스위스
84.9.9-20 캐나다
84.10.10-13 스페인(자라고자), 도미니카 공화국, 푸에르토리코
85.1.24-2.4 베네쥬엘라, 에쿠아도르
85.5.11-21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벨기에

85.8.8-19 토고, 아이보리 코스트, 카메룬, 중앙아프리카 공화국, 자이레, 케냐, 모로코
85.9.8 스위스(클로텐), 리히텐슈타인
86.1.31-2.10 인도
86.7.1-8 콜롬비아
86.10.4-7 프랑스
86.11.18-12.1 방글라데시, 싱가폴, 피지, 뉴질랜드, 호주
87.3.31-4.13 우루과이, 칠레, 아르헨티나
87.4.30-5.4 독일
87.6.8-14 폴란드
87.9.10-21 미국, 캐나다
88.6.23-27 오스트리아
88.9.10-20 짐바브웨, 보츠와나, 레소토, 모잠비크, 스와질란드
89.4.28-5.6 마다가스칼, 잠비아, 말라위
89.6.1-10 노르웨이, 아일랜드, 핀랜드, 자메이카, 스위스
89.8.19-21 칠레
89.10.6-10 한국, 인도네시아, 모리셔스(Mauritius)
90.1.25-2.1 카포 베르데(Cape Verde), 기니비사우(Guinea Bissau), 말리, 브루키나파소(Burkina Faso), 챠드
90.4.21-22 체코슬로바키아
90.5.6-14 멕시코
90.9.1-10 탄자니아, 브룬디, 르완다, 아이보리코스트
91.5.10-13 포르투갈
91.6.1-9 폴란드
91.8.13-20 폴란드
91.10.12-21 브라질
92.2.19-26 세네갈, 기니, 갬비아
92.6.4-10 앙골라, 상투메 프린시페(Sao Tom&eacute; and Principe)
92.10.9-14 도미니카 공화국 수도, 산토 도밍고


93.2.3-10 베넹, 우간다, 하르툼(수단의 수도)
93.4.25 알바니아
93.6.12-17 스페인
93.8.9-16 자메이카
93.9.4-10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94.9.10-11 자그레브, 크로아티아
95.1.11-21 필리핀(마닐라), 파푸아뉴기니, 호주(시드니),
스리랑카(콜롬보)
95.5.20-22 체크 공화국
95.6.3-4 벨기에
95.6.30-7.3 스로바키아 공화국
95.9.14-20 카메룬, 남아공, 케냐
95.10.4-9 미국(뉴욕) (10.5, 유엔총회 참석)
96.2.5-12 과테말라, 나카라구아, 엘살바도르, 베네주엘라
96.4.14 튀니스
96.6.17-19 슬로베니아
96.6.21-23 독일 (브란덴브루크門 연설)
96.9.6-7 헝가리
96.9.19-22 프랑스
97.4.12-13 사라예보 (보스니아 수도)
97.4.25-27 체크 공화국
97.5.10-11 레바논(베이루트)
97.5.31-6.10 폴란드
97.10.2-6 브라질(리오 데 자네이로)
98.1.21-26 쿠바
98.3.21-23 나이지리아
98.6.19-21 오스트리아
98.10.2-4 크로아티아
99.5.7-9 루마니아
99.11.5-9 인도, 그루지아
2000 시나이 산,이스라엘, 파티마
2001 그리스, 시리아, 몰타, 우크라이나, 카자흐스탄, 아르메니아
2002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 카나다,과테말라,멕시코, 폴란드
2003 스페인,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슬로바키아
2004 스위스, 프랑스 

 

<주교황청대사관 홈페이지에서>

 

 

[교황재위 25돌] 김수환 추기경이 본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우리를 하느님께 인도한 '진정한 그리스도의 대리자'

 

 

(사진설명)
1. 5월 6일 103위 시성미사를 주례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보다 많은 신자들과 만남의 기쁨을 나누고자 김수환 추기경 안내로 제단을 내려서고 있다.

2. 5월 3일 방한 직후 절두산 성지순례에 이어 가톨릭대학교를 방문, 도착미사를 봉헌한 후 신학생들을 일일이 포옹해주고 있는 교황.

3. 2001년3월24일 교황청에서 사도좌 정기방문중인 한국가톨릭교회 주교단과 함께 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중앙). 당시 한국주교회의 의장 박정일(왼쪽)주교가 주교단을 대표해 교황에게 인사말을 하고 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재위 25주년을 바라보는 김수환 추기경의 감회는 남다르다. 교황 재위 상반기 부분에 해당하는 84년, 그리고 89년, 두차례에 걸쳐 교황의 한국방문을 이끌어내고 교황의 방한일정을 함께하면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한국교회 사랑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김추기경은 '온 세상을 하나로 묶는 엄청난 지도력'을 가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 모두를 하느님께로 인도한 그리스도의 대리자'라고함축해서 표현했다.


"세계가 점점 세속화하고 가치관이 무너져 개인이나 국가가 확실한 길을 찾지 못하고 있을 때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하느님 말씀으로 우리 모두를 이끌어 주셨습니다."

 

16일로 피선 25주년을 지낸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대한 김수환 추기경의 소회다. 김 추기경은 또 "누가 될지 모르지만 후임 교황님은 굉장히 힘드실 것"이라고 전망(?)했다. 어느 누가 현 교황처럼 세계 곳곳을 사목방문하고 또 온세계를 하나로 묶는 엄청난 지도력을 보여줄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김 추기경은 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무엇보다도 '인간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고 인간에게 관심을 가지신 분'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인간과 세계 평화를 위한 모든 정답을 그리스도로부터 구했으며 그분의 모든 가르침과 생각, 말씀의 중심에는 그리스도가 계셨다"고 설명한 김 추기경은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하느님께 인도한 '진정한 그리스도의 대리자'"라고 말했다.

 

김 추기경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처음 만난 것은 1970년대 초 당시 교황이  카롤 보이티야 추기경으로서 세계주교대의원회의(주교시노드) 상임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을 때였다.

 

"세계주교대의원회의 후속 문헌 준비 작업을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아시아대표로 참석한 나는 카롤 보이티야 추기경 옆에 앉게 되었는데, 그분의 명석하고 뛰어난 능력에 놀라워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토론에 참여하면서 책을 읽고 있었는데, 눈으로는 책을 읽고 귀로는 토론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죠. 토론 중 다른 사람 이야기를 듣고 당신 의견도 발표하곤 했습니다. 서로 다른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하는 것을 보고 참 놀랐습니다."

 

첫 만남에서 이처럼 깊은 인상을 받았던 김 추기경은 1978년 10월16일 카롤 보이티야 추기경이 교황으로 선출된 직후 교황과 관련한 일화 하나를 소개했다.

 

"콘클라베에서 교황으로 피선된 뒤 참석한 추기경들과 한 사람씩 인사를 할 때였습니다. 당시 너무나 짧은 재위 기간을 기록한 전임 요한 바오로 1세를 생각해 볼 때 건강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교황님과 인사를 나누면서 '교황님 건강을 위해서 수영장이 하나 있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교황님은 '좋은 아이디어'라고 좋아하시면서도, 손으로 당신의 뒤를 따르는 비서진들을 가리키며 낮은 목소리로 '그런데 저 사람들이 뭐라고 할지 모르겠다'며 미소를 지어보이셨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뜻을 받아들셨는지 1~2년 후 교황님은 여름 별장지인 카스텔간돌포에 수영장을 만드셨습니다. 그런데 그 사실이 알려지면서 여론이 일자 교황님은 '수영장을 만드는 비용이 교황이 서거해서 콘클라베를 열고 취임식을 하는 비용보다는 적게 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고 하더군요."

 

김 추기경은 며칠 후 10월22일 교황 취임식에서 요한 바오로 2세에게 한국을 방문해 줄 것을 요청했으며 이는 1984년 결실을 맺었고 1989년 서울 성체대회 등 두 차례 한국 방문으로 이어졌다. "교황님께서 1984년 처음 한국을 방문하셨을 때에 저에게 '교황 피임후 나를 가장 먼저 초청해 준 사람이 당신이야' 하면서 저의 방문 요청을 기억하고 계셨다"고 김 추기경은 회상했다.

 

김 추기경은 또 교황이 취임식에서 추기경과 인사를 나눌 때 북한에 대해서도 각별한 관심을 피력했다고 밝혔다. 당시 공산권 국가였던 폴란드 출신인 교황은 한국이 분단국가인데다가 북한이 '침묵의 교회'로 남아있는 현실을 가슴아파하면서 큰 관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요한 바오로 2세의 선임 교황 요한 바오로 1세(재위 1978년 8월26~9월28일)와 그 선대 교황 바오로 6세(1963~1978)을 모두 만난 김 추기경은 선임 교황들에 대해 "요한 바오로 1세는 재위 기간이 워낙 짧아 함께 할 시간이 없었고, 바오로 6세는 나를 주교품에 올려주시고 최연소 추기경에 서임해 주신 분으로 아버지 같은 분"이라고 말했다. 김 추기경은 "나같이 못난 사람을 주교로,또 추기경으로 서임해 주신 것은 한국교회에 대한 바오로 6세 교황님의 남다른 애정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회고하면서 "바오로 6세가 아버지 같은 분이라면 요한 바오로 2세는 나이 차이도 얼마 나지 않아선지 형님 같은 분"이라고 표현했다.

 

84년 한국천주교회 200주년 기념위원회 주교회의 의장으로, 89년 제44차 서울 세계성체대회 준비위원장으로 두번의 방한기간 중 최 측근에서 교황과 함께한 김 추기경은 "교황님이 한국을 방문해 주셨다는 것만으로 너무 기쁜 일이었기에 어려운 점도 없었고 힘든 줄도 몰랐다"면서 "다만 교황님이 더 오래 머물지 못하신 것이 가장 아쉬웠다"고 말했다.

 

교황의 방한 당시 김 추기경이 감동했던 일화 하나.

 

"1984년 5월 교황님이 방한하셨을 때 광주, 대구 등지를 가려고 특별기를 함께 탄 적이 있었습니다. 비행기가 이륙하자 교황님께서 측근들과 몇 마디 나누시고는 곧장 성무일도를 펴고 기도를 시작하셨지요. 뒷칸 수행 비서들도 각각 자리에서 성무일도를 바쳤습니다. 비행기가 성당이 된 듯했습니다. 교황님께서 순례하는 마음으로 항상 기도하시면서 해외사목방문을 하고 계신다는 것을 깊이 체험할 수 있었지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84년 한국 방문 당시 103위 시성식 미사를 한국어로 집전, 김추기경과 전 한국 신자들은 물론 비신자들까지도 감동의 물결로 몰아넣은 바 있다. 당시 교황의 한국어를 지도한 교사는 장익신부(현 춘천교구장 주교). 장신부는 교황의 한국방문을 대비,교황의 모국어인 폴란드어 알파벳으로 한국말 발음을 적어 교황의 한국어 공부를 도왔으며 당시 배운 교황의 한국어는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한국신자들을 감동케하고 있다. '찬미예수'와 '감사합니다' 등 교황청에서 한복입은 한국인을 보거나 한국인의 알현을 받을 때면 여전히 익숙하게 들을 수 있는 교황의 한국어 실력 때문이다.

 

지난 1999년 인도 뉴델리 아시아주교대의원회의 후속 문헌 발표 때에,그리고 가장 최근에는 2001년 3월 교황청립 로마 한인신학원 축복식 때에 교황을 알현한 김 추기경은 "성당을 가득 메운 한국 신자들의 환호에 응답하고 신자들의 손을 하나하나 잡아주는 열정적 모습을 여전히 간직하고 계셨다"고 말하고, "교황직에 즉위했을 때에는 박진감 넘치는 지도력을 가진 분이셨는데, 25년 세월이 흐르면서 점점 더 너그러워지는 깊이를 교황님에게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하느님께서 허락하시는 그날까지 교황님이 영육간에 건강하실 수 있도록 신자들의 많은 기도를 바란다"고 당부한 김 추기경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재위 25주년 기념행사와 추기경 회의 참석을 위해 12일 로마로 출국했다.

 

<평화신문, 제744호(2003-10-19), 조은일 기자>

 

 

[교황재위 25돌] 가톨릭 교회의 최고 목자

 

사반세기동안 131개국 방문 복음선포

 

 

(사진설명)
1) 요한 바오로 2세가 1978년 10월16일 교황으로 선출된 직후 베드로 대성전 발코니에 서서 신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2)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1989년 10월7일 제44차 서울 세계성체대회 기간 중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봉헌된 젊은이 성찬제 미사에서 선물을 받고 있다.  



1978년 10월16일 추기경들이 교황청 시스티나 경당에 소집된 지 이틀만에 새 교황이 선출됐음을 알리는 흰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리고 한 시간 뒤 폴란드 크라코프대교구장 카롤 보이티야 추기경은 베드로 대성전 발코니에 나타나 유창한 이탈리아어로 '예수 그리스도는 찬미받으소서' 하고 인사했다. 그가 바로 비이탈리아인으로서는 455년만에 탄생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다. 오는 16일이면 피선 25주년 은경축을 맞는 교황 요한바오로 2세,그는 명실상부한 전세계 가톨릭교회 최고 목자이자 인류의 영적 지도자로 사랑과 존경을 받고있다. 평화와 화해의 사도로 온 세상을 두루다니며 복음을 선포하고 있는 교황 요한바오로 2세 피선 25주년을 맞아 그가 수행해온 주요 활동과 업적을 비롯 인간적 면모, 그리고 한국교회와의 관계 등을 4회에 걸쳐 조명한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가톨릭교회 최고목자로서 수행한 활동으로 무엇보다도 먼저 지칠줄 모르는 해외 사목방문을 들 수 있다. 교황은 피선 이듬해인 1979년 1월 중남미의 멕시코와 도미니코 공화국 방문을 시작으로 지난 9월 슬로바키아 방문에 이르기까지 지난 25년간 102회에 걸쳐 131개국을 방문하면서 가는 곳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고 그 지역 교회를 격려했다. 이것은 각 지역 교회를 찾아 격려한 초대 교회 사도들의 여정을 뒤따르는 일이었다. 교황 친히 지난 6월 자신의 해외 사목방문은 '베드로 사도의 후계자로서 직무를 수행하는 일'이라고 밝힌 바 있다.

 

보편교회의 목자로서 교황의 가르치는 직무 또한 빼놓을 수 없다. 교황은 1979년에 발표한 첫 회칙 룗인간의 구원자룘에서부터 지난 4월에 발표한 회칙 룗교회는 성체성사로 산다룘에 이르기까지 14편의 회칙과 13편의 교황권고를 비롯해 38편의 교서, 그밖에 수많은 강론과 연설 등을 통해 가톨릭 교회의 신앙과 윤리적 원칙을 명확히하고 시대에 요청되는 사회적 가르침을 제시했다.

 

교황은 이와함께 1980년 네덜란드 주교시노드(주교대의원회의) 특별회의와 '가정'을 주제로 한 제5차 주교시노드 정기회의 개최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6차례의 주교시노드 정기회의와 8차례의 대륙(또는 지역)별 특별회의를 개최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인 '친교의 교회'상에 따라 교황과 주교단의 친교 속에 보편교회 또는 지역 교회가 당면한 문제를 함께 논의하고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서였다.

 

교황의 이런 활동의 중심에는 교회의 쇄신과 현대화, 개방과 대화라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이 들어 있었다. 교황은 피선 이튿날인 1979년 10월17일 추기경단 앞에서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의 온전한 실현을 위해 헌신하겠다고 밝혔는데, 실제로 교황의 지난 25년은 공의회 정신이 교회와 신자들의 삶에 구현되도록 하는 데 있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은 특히 교황이 1983년에 반포한 룗교회법전룘과 1992년에 공표한 룗가톨릭 교회 교리서룘에 결정적으로 반영돼 있다.

 

공의회 정신의 구현을 통해 새로운 천년기도 함께 준비해온 교황은 교회의 과거 오류와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데도 주저하지 않았다. 1992년 지동설을 주장한 갈릴레이 갈릴레오(1564-1642)에 대한 중세 교회의 재판이 잘못이었음을 인정한 데 이어 1994년에는 대희년 준비 교서 룗제삼천년기룘를 통해 교회의 모든 자녀들에게 과거에 대한 잘못을 참회하고 용서를 구함으로써 대희년을 합당하게 준비하도록 촉구했다. 그리고 교황은 대희년 2000년 3월 '용서의 날' 참회예식에서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의 유다인 학살에 저항하지 못한 점, 십자군 전쟁, 13세기의 종교재판 등을 참회하고 용서를 구했다.

 

성모 신심이 각별한 교황은 지난해 10월에는 교서 룗동정 마리아의 묵주기도룘를 반포, 개인의 성화와 가정의 화목 그리고 세계 평화를 위해 특별히 묵주기도를 열심히 바쳐줄 것을 당부하면서 올 10월까지를 묵주기도의 해로 선포했고, 묵주기도 신비에 예수의 공생활을 묵상하는 '빛의 신비'를 추가했다.

 

<평화신문, 제742호(2003-10-05), 조은일 기자>

 

 

[교황 재위 25돌]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각종 기록들

 


(사진설명)
재위 25년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무려 131개국을 순방, 무수한 사람들을 만났으며, 그리스도의 지상 대리자로서 그 사랑을 전했다. 평소 젊은이들에 대한 각별한 사랑을 나태내고 있는 교황이 1993년 이탈리아 시칠리아 방문 당시 젊은이들과 함께 손뼉을 치며 노래 부르고 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다양한 기록을 갖고 있다. 교회 역사상 네번째로 오랫동안 교황직을 수행하고 있을 뿐 아니라 100회가 넘는 해외사목방문을 했으며, '성인 제조기'라 불릴 정도로 수많은 이들을 성인으로 선포했다.

 

◇ 재위 기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가톨릭교회 역사상 네번째로 오랜 기간 교황직을 수행하고 있다. 네덜란드 출신의 하드리아노 6세(재위 1522~1523)에 이후 455년 만에 처음으로 비이탈리아 출신인 교황은 내년 3월이 지나면 세번째로 오랜 기간 교황직을 수행한 레오 13세(재위 1878~1903)의 25년 5개월 기록을 뛰어넘게 된다. 전통적으로 가장 오랫동안 교황직에 머문(34~37년간) 것으로 추정되는 초대 교황 베드로 사도에 이어 두번째로 오래 재임한 교황은 비오 9세(1846~1878년)로 31년 7개월 3주간이다.

 

◇ 해외 사목방문

 

교황은 지난 25년 102회 131개국을 방문했다. 이는 25년동안 이탈리아를 제외하고 해외에서만 570여일을 보낸 셈이며, 비행기로는 70만마일(112만㎞)를 비행한 것이며, 지구를 29바퀴 돈 것과 맞먹는다. 해외 사목방문을 통해 찾은 도시는 600곳이 넘으며 연설한 횟수는 2,400회가 넘는다. 그러나 교황은 숙원인 러시아와 중국을 아직 방문하지 못하고 있다.

 

◇ 시성 시복

 

교황은 지난 9월까지 474위를 성인으로 선포했고, 이달에 3위를 더 시성할 계획이다. 이 수는 1588년 교황 식스토 5세(재위 1585~1590년) 시성절차가 정립된 이후부터 전임 교황 요한 바오로 1세(1978년)에 이르기까지 약 300년간 선포된 성인 296위를 휠씬 뛰어넘는 수이다. 이 가운데는 한국의 103위 순교성인(1984)과 베트남의 177위 성인(1988)이 포함돼 있다. 교황은 또 오는 19일에 예정된 마더 데레사 수녀 시복식을 포하면 25년간 1319위의 복자를 탄생시키게 된다.

 

◇ 추기경 서임

 

교황은 추기경 서임에서도 역대 교황의 추종을 불허한다. 9월28일 31명의 새 추기경을 발표함으로써 요한 바오로 2세는 지금까지 모두 232명의 추기경을 임명했다. 두번째인 레오 13세 교황은 147명의 추기경을 서임한 바 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또 전세계 4600명(2001년말)의 주교 중 70%를 임명했다.

 

<평화신문, 제742호(2003-10-05), 조은일 기자>

 

 

[교황 재위 25돌] 한국 가톨릭교회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103위 시성과 세계성체대회 통해 '긴밀한 일치' 보여줘

 

 

(사진설명)
1. 1989년 10월8일 여의도 광장. 두번째로 한국을 방문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100만명의 신자들이 운집한 가운데 제44차 서울 세계성체대회를 주재했다.

2. 평화의 순례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84년 5월3일 김포 국제공항에 도착, 혹독한 시련 속에서도 굳건히 신앙을 키워온 순교자의 땅에 입맞춤, 사랑과 존경을 표하고 있다.

3. 84년 4박5일간 방한기간 중 5월4일 소록도 나환우촌을 찾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소외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아픔을 어루만져 위로했다.

4. 103위 시성미사 예물봉헌 중 봉헌된 어린아기.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어린 아기는 103위 성인 탄생을 축하하며 새로운 신앙을 다짐하는 의미로 봉헌됐다.

 

"한반도 모든 백성의 선익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의 노력을 하느님께서 계속 축복해 주시도록 기도합니다."(2001년 한국 가톨릭교회 주교단의 사도좌 정기방문 중)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기도 목록엔 늘 '한반도'가 들어 있다. 민족상잔으로 갈라진 땅, 한반도 복음화와 평화를 지향으로 기도해 온 교황의 '각별한' 한반도 사랑을 보여주는 대목. 게다가 재임 중 '전세계 주님의 포도밭' 131개국을 사목방문한 교황은 한국에 두차례 방문, 84년에는 조선조 박해시대에 순교한 한국교회 복자 103위를 시성하고 89년에는 제44차 서울 세계성체대회를 통해 한국교회와 '긴밀한 일치'를 보여주었다. 특히 교황청에서만 거행해오던 시성 관례를 깨고 교황은 직접 한국을 방문, 시성식을 거행하는 등 남다른 한국 사랑을 보여준 바 있다.

 

현 교황 재임 25년은 따라서 그야말로 한국교회가 사도좌 및 보편교회와 일치를 통해 그리스도 신앙의 은총 안에서 넘치는 기쁨을 누린 시기였으며, 그리스도 신비체의 사랑과 일치를 향해 교황과 함께 나아간 4반세기였다.

 

현 교황이 그간 임명한 주교는 고 박석희(전 안동교구장)주교를 포함해 총 19명에 이른다. 현직 주교들 가운데 정진석(서울대교구장)·이문희(대구대교구장) 대주교, 경갑룡(대전교구장) 주교를 제외하고, 12개 교구장 주교와 보좌주교들을 모두 현 교황이 임명했다. 그만큼 한국교회엔 현 교황의 사목적 색채와 영향이 짙게 드리워져 있는 셈.

 

요한 바오로 2세 재임 기간 동안 한국교회 주교단은 80·85·90·96년과 2001년 총 5차례에 걸쳐 5년마다 실시되는 '사도좌 정기방문'(Ad Limina)을 통해 한국교회 현안을 논의하고 교황과 일치를 재확인해 왔다. 또 그때마다 교황은 아버지와 같은 사랑으로 한국과 한국교회에 대한 깊은 애정을 표시하면서 가정과 평신도 역할, 성소 문제, 성직자 생활, 한국교회법 문제, 타종교와 대화, 남북한 화해와 북한에 관심, 아시아 선교 등 한국교회가 당면한 현안과 미래 지향적 과제들에 주교단과 깊숙이 논의하면서 필요한 격려와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교황은 특히 분단된 남북의 현실을 가슴 아파하면서 한반도의 평화와 화해, 북한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보였다. 서울세계성체대회 때 북한 주민과 신자들을 마리아께 봉헌하며 평화를 기원한 교황은 이후에도 끊임없이 '북녘 형제와의 연대'를 강조해왔다.

 

95년 이후 북한에 심각한 식량부족 사태가 발생하자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교황청 국무원 외무부 대표단을 북한에 직접 파견, 구호식량과 의약품·의료장비 등을 전달하고 굶주림으로 고통받는 북한 주민과 연대하고자 하는 확고한 의지를 보여주었다. 이같은 교황의 연대 표명은 한국교회에 북녘동포돕기운동을 불러 일으켜 갈라진 겨레에 대한 연대를 확인하며100억원이 넘는 구호식량과 지원물품을 보내는 성과를 거두는 데 크게 기여하는 동력이 됐다. 교황은 한국 주교단의 2001년 사도좌 정기방문 때는 이렇게 당부했다.

 

"합당한 방법으로, 그리고 사목적 사랑으로 북녘 가톨릭 공동체와 모든 북한 주민들과 물질적, 영적으로 연대하는 것은 화해를 향한 긍정적 단계를 증명하게 될 것입니다."

 

또 김수환 추기경과 김대중(토마스모어) 전 대통령 등으로부터 직접 '방북' 건의를 받기도 한 교황은 비록 아직까지 북한 방문이 성사되지 않고 있지만 북한과 중국, 러시아 중 가장 먼저 방문하고 싶은 국가로 북한을 꼽고 있다는 것이 교회 당국자들의 전언이다.

 

교황은 또 세계 선교, 특히 아시아 복음하를 위한 한국교회의 역할을 계속 강조하면서 큰 기대를 걸어왔다. 한국교회가 성장한 만큼 이제는 교회의 본질적 사명인 선교활동의 범위를 아시아로 넓혀 '아시아인 선교는 같은 아시아인인 한국교회가 맡아야 한다'는 주문으로 풀이되고 있다.

 

지난 90년 10월 한국 주교단의 사도좌 방문 당시, 교황 말씀은 새 천년기 새 복음화를 향해 나아가는 한국교회에 여전히 유효하다. "사랑하는 형제 주교 여러분, 그리스도를 닮은 행동으로 하느님 나라의 가치를 확실하게 증거함으로써 이 시대의 도전에 대응하도록 주님께서 당신의 사랑 안에서 한국교회를 부르고 계신다는 확신으로 우리는 일치되어 있습니다. 한국교회를 위한 저의 끊임없는 기도를 약속해드립니다.…"

 

<평화신문, 제744호(2003-10-19), 오세택 기자>

 

 

교황 선출 절차에 관한 보도 자료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선종으로 그 뒤를 이을 차기 교황 선거에 대한 문의가 천주교회 측에 쇄도하고 있습니다. 이에 교황 선출 절차의 개요를 알려 드립니다.

교황 선거는 새로운 선거법, 곧 사도좌 공석과 교황 선출에 관한 교황령 「주님의 양 떼」(Universi Dominici gregis, 1996년 2월 22일,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 제7호, 5-47면 참조)에 따라 이루어질 것입니다.

교황 선출 절차 개요

    1) 교황의 사망 확인, 추기경 회의 소집: 교황 궁내원장은 교황 전례원장과 교황 궁내원의 고위 성직자들 앞에서 교황의 사망을 공식적으로 확인하고, 공식 사망 증명서를 작성하게 한다. 추기경단의 수석 추기경은 교황의 사망 소식을 모든 추기경에게 알리고 추기경 회의를 소집한다.

    2) 교황의 장례, 추기경 회의: 추기경들은 교황 장례식을 9일장으로 거행한다. 사도좌 공석 때에는 두 종류의 추기경 회의가 열린다. 전체 회의는 교황 선거권을 가진 모든 추기경들이 참석하여 교황의 장례와 선거에 관한 중요 문제들을 결정한다. 개별 회의는 교황 궁내원장과 3명의 보좌 추기경으로 구성되어, 통상적인 업무를 처리한다. 보좌 추기경들은 세 품계(주교, 신부, 부제)에서 한 사람씩 추첨으로 선발하고, 임기는 만 3일이며, 교황 선거가 끝날 때까지 계속하여 교체한다. 전체 회의는 날마다 열리는데, 첫 회의에서 선거법의 준수와 비밀 유지를 서약하고 맹세한다. 전체 회의에서 선거 개시일을 결정하고, 여러 가지 준비를 한다. 특히 교회의 당면 문제들과 새 교황 선출에 필요한 문제들에 관한 묵상(2회)을 위하여, 정통 교리와 지혜에 뛰어난 교회 인사에게 묵상 주제 발표를 맡긴다. 추기경들은 성녀 마르타 숙소에 머문다.

    3) 교황 선거: 교황 선거권은 80세 미만의 추기경들만이 가지며, 그 수는 최대 120명이다. 사도좌가 법적으로 교황 사망부터 만 15일 이상 최고 20일까지 전세계 추기경들의 도착을 기다린 다음에 교황 선거를 시작한다. 교황 선출을 위한 비밀 회의는 바티칸 시국 영토 안의 지정된 장소와 건물에서 열리며, 이 건물들과 장소는 교황 선출의 공식 발표 때까지 폐쇄된다. 교황의 장례와 선거 준비가 완료되면(교황 사망 후 만 15일이 지난 날부터 20일까지) 정해진 날 오전에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교황 선출을 위한 기원 미사를 장엄하게 거행한다. 그날 오후에 선거인 추기경들은 장엄 행렬로 바티칸 교황궁의 시스티나 경당으로 간다. 선거가 끝날 때까지 시스티나 경당은 철저한 봉쇄 구역으로 지정되어 완전 비밀을 보장한다. 시스티나 경당에 도착한 선거인 추기경들은 정해진 서약문에 따라 외부 개입 배제와 비밀 엄수를 맹세한다. 선거인 추기경들은 교황을 선출하기 위하여 두 번째 묵상을 한다. 수석 추기경은 선거인단에 선거 개시 여부를 묻고 필요한 절차나 의문에 대한 해명을 한다. 선거인들의 과반수가 선거 개시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하면, 교황 선거를 시작한다.

    4) 투개표 절차:교황 선거 방법은 비밀 투표뿐이다. 유효한 교황 선출을 위해서는 출석한 선거인 총수를 기준으로 3분의 2 이상의 득표가 요구된다. 선거가 시작되는 첫째 날 오후에는 한 차례의 투표만 실시한다. 첫 번째 투표에서 아무도 선출되지 않을 때, 그 다음 날들에는 오전에 두 차례, 오후에 두 차례에 걸쳐 투표를 실시한다. 투표 절차는 세 단계로 진행된다.
    ① 투표 용지를 배부한다. 계표인, 병자 집표인, 검표인을 각각 세 명씩 추첨한다. 투표 용지에는 한 사람만의 이름을 쓰고 두 번 접는다(추기경이나 주교가 아니어도 교황으로 뽑을 수 있다).
    ② 선거인 추기경들은 기표한 투표 용지를 들고 서열에 따라 제단으로 나아가, 그리스도를 증인으로 삼아 맹세하고, 제단 위에 있는 집표함에 투표 용지를 넣는다. 선거인 추기경들의 모든 투표 용지가 집표함에 모이면, 첫 번째 계표인이 집표함을 여러 번 흔들어 표를 뒤섞은 다음, 마지막 계표인이 모든 선거인 추기경이 보는 앞에서 집표함 밖으로 한 장씩 표를 꺼내 다른 빈 집표함에 넣으며 투표 용지를 센다(그 수가 선거인들의 수와 일치하지 않으면, 투표 용지를 모두 불태우고 즉시 두 번째 투표를 실시하여야 한다). 투표 용지의 수가 선거인들의 수와 일치하면 곧 개표가 이루어진다. 계표인들은 제단 앞에 놓인 탁자에 앉는다. 첫 번째 계표인이 투표 용지를 한 장씩 집어서 편 다음, 선택된 사람의 이름을 적고, 두 번째 계표인에게 그 투표 용지를 건네 준다. 두 번째 계표인 역시 선택된 사람의 이름을 적고, 그 투표 용지를 세 번째 계표인에게 건네 준다. 세 번째 계표인은 크고 분명한 목소리로 선택된 사람의 이름을 읽어 모든 선거인이 기록할 수 있도록 한다. 세 번째 계표인 자신도 기록한다. 모든 투표 용지를 개표한 다음에, 계표인들은 각 개인이 얻은 투표 총수를 집계하여 별도의 용지에 기록한다. 마지막 계표인은 개개의 투표 용지를 읽을 때마다, “나는 뽑는다”(Eligo) 하는 낱말을 바늘로 찔러 투표 용지들을 실에 꿰어 안전하게 보전한다.
    ③ 계표인들은 각 개인의 득표 총수를 집계한다. 검표인들은 투표 용지와 계표인들이 적은 기록을 점검하고 확인한다. 총 투표 수의 3분의 2를 얻은 사람이 나오면, 교회법적으로 유효한 교황 선출이 이루어진 것이다. 교황 선출이 이루어지든 이루어지지 않든, 검표 뒤에 곧바로 그리고 선거인 추기경들이 시스티나 경당을 떠나기 전에, 계표인들은 교황 선거회 서기관과 의전장들의 도움을 받아 모든 투표 용지를 소각한다. 그러나 곧바로 두 번째 투표를 실시하여야 할 때는 첫 번째 투표 용지를 두 번째 투표 용지와 함께 소각한다. 모든 선거인이 갖고 있는 모든 종류의 기록도 투표 용지와 함께 소각한다. 교황 궁내원장 추기경은 각 회기마다 선거인 추기경들에게 투표 결과를 발표하고, 그 결과를 문서로 작성하여 봉인한 다음 지정된 문서고에 보전한다. 이 문서는 교황의 명시적인 허락 없이는 아무도 개봉할 수 없다.
    교황 선거가 시작된 날의 오후를 제외하고, 다음날들의 오전과 오후에는 교황 선출이 이루어지지 않은 투표 다음에는 곧바로 두 번째 투표를 속행한다. 두 번째 투표에서도 위의 투개표 절차가 그대로 준수되는데, 다만, 맹세를 새로 하지 않고 계표인 등을 다시 추첨하지는 않는다. 선거인 추기경들은 「교황 선거 예식서」에 수록된 대로, 거룩한 예식을 거행하고 기도하며, 매일 오전과 오후에 치러지는 모든 투표에서 위의 절차를 그대로 따른다. 이러한 절차에 따라 3일 동안 투표를 하고서도 교황이 선출되지 않을 때에는, 투표를 최대 1일 동안 중단하고, 기도와 더불어 비공식적인 토의를 하고 선임 부제 추기경의 간단한 영성적 권고를 듣는 시간을 갖는다. 이어서 같은 절차에 따라 투표가 속개되며, 7회의 추가 투표 뒤에도 교황 선출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또 한 번의 기도와 토의, 그리고 선임 사제 추기경의 권고를 듣는 시간을 갖는다. 이어서 다시 연속하여 7회의 투표를 실시하며, 여전히 교황 선출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에는, 한 번 더 기도와 토의, 선임 주교 추기경의 권고를 듣는 시간을 갖는다. 그런 다음 같은 절차에 따라 7회의 투표를 계속한다. 이렇게 투표를 실시하여도 교황 선출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에, 교황 궁내원장은 선거인 추기경들에게 선거 진행 방법에 대한 의견 제시를 요청한다. 그 뒤의 투표는 선거인들의 과반수가 결정하는 대로 진행된다. 그러나 교황 선출은 과반수 득표로만 유효하며, 바로 직전의 투표에서 최다 득표를 한 두 사람에 대해서만 투표를 하는 때에도 과반수 득표로만 교황 선출이 이루어진다.
    이 교황령의 규정과 다르게 치러지는 선거는 바로 그 사실 자체로 무효이다. 교황 선거에서 성직매매죄가 저질러질 경우 그러한 죄를 저지른 모든 이는 자동 파문의 처벌을 받는다. 어느 누구이든, 추기경이라 할지라도, 교황의 생존 때에 교황과 협의하지 않고 후계자 선출에 관한 계획을 세우거나, 투표를 약속하거나, 비밀 모임에서 이에 관하여 결정하는 것을 금지한다. 비밀 서약을 비롯하여 이 교황령의 규정을 위반하면 자동 파문의 처벌을 받는다. 선거인 추기경들은 특정인 또는 특정 다수에게 투표하거나 기권하지 않도록 만드는 모든 형태의 조약, 협정, 약속, 서약을 삼가야 한다. 맹세하면서까지 그렇게 한다 하더라도, 그러한 서약은 무효이며 지킬 의무도 없다. 이러한 금지 규정을 위반하는 사람들은 자동 파문의 처벌을 받는다.

    5) 새 교황의 수락과 공포, 즉위:교황 선출이 교회법적으로 이루어지면, 후배 부제 추기경은 추기경단의 서기관과 교황 전례원장을 선거장으로 부른다. 이어서 수석 추기경이나 품계와 연배가 가장 높은 추기경이 선거인단을 대표하여 교황으로 선출된 사람의 동의를 구하고, 동의를 받는 즉시 교황 이름을 묻는다. 이어서 공증인의 임무를 맡은 교황 전례원장은 두 명의 의전장을 불러 증인으로 삼고, 새 교황의 수락과 그가 택한 이름을 증명하는 문서를 작성한다. 교황으로 선출된 사람이 이미 주교품을 받았을 때에는, 그의 수락과 동시에 그는 로마 교회의 주교이고 합법적인 교황이며 주교단의 수위권자가 된다. 선출된 사람이 아직 주교가 아닐 때에는 곧바로 주교로 서품되어야 한다. 선거인 추기경들은 새로 선출된 교황에게 경의와 순종을 표명하기 위하여 새 교황을 알현한다. 이어서 하느님께 감사를 드린 다음, 선임 부제 추기경이 외부 사람들에게 교황이 선출되었음을 알리고 새 교황의 이름을 공포한다. 곧 이어 새 교황은 사도궁전의 로지아에서 로마와 전세계에 축복을 보낸다. 새 교황은 적절한 때에 즉위식을 거행한 다음 라테라노 대성전의 총대주교좌에 착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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