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사리아는 헤로데왕에 의해 BC 20년에 재건되었다. 헤로데 왕이 죽은 후에도 그의 명성 때문에 로마의 행정 수도로서 건재했었다. 1100년 십자군에 의해 함락된 카이사리아는 1251년 루이 11세에 의해 요새화 되고 도시 주변이 난공불락의 요새로 구축되었다. 이곳은 베드로 사도가 이방인 고르넬리노에게 세례를 베풀고 전도한곳 {사도10장}"카이사리아에 코르넬리우스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탈리아 부대라고 불리는 군대의 백인대장이었다. 신심이 깊은 그는 온 집안과 함께 하느님을 경외하며, 유다 백성에게 많은 자선을 베풀고 하느님께 기도하였다. 어느 날 오후 세 시쯤, 그는 환시 중에 자기가 있는 곳으로 하느님의 천사가 들어와 "코르넬리우스!"하고 부르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그는 천사를 유심히 바라보며 겁에 질려, "천사님 무슨 일이십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천사가 그에게 대답하였다. "너의 기도와 너의 자선이 하느님 앞으로 올라가 좋게 기억되고 있다. 이제 야포로 사람들을 보내어 베드로라고 하는 시몬을 데려오게 하여라.그는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묶고 있는데 그 집은 바닷가에 있다." 이며, 바오로가 이방인 고로넬리오에게 세레를 베풀고 전더한곳에 로마로 압송되기 전2년 동안 머물렀던 곳이다.성벽 바깥쪽에는깊은 해자를 파 놓아 외적 침입을 차단하였고 성채 안으로 들어가는 문은 직각으로 구부러지게 만들어 적들이 용이하게 진입 할 수없도록되어있다. 20여m 정도 높이 높이, 2000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로마시대의 야외극장이 성채 남쪽에 자리잡고있다. 1950년에 발굴된 본시오 빌라도의 이름이 나타나는 비문모형이 전시되어있다. "본시오 빌라도. 유다의 수호자, 티베리움을 만들어 아우구스토 황제에게 바친다." 라고 되어 있어 이곳이 빌리도의 거쳐였음을 말해 주고 있다.
카이사리아
한정란
2011. 3. 8. 오후 7:52: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