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적인 글이라 올렸어요..
진정한 행복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구요..^^
<가난한 날의 행복>
정태는 밤 열두 시가 넘어서야 동네에 들어섰다. 하루종일 공사판에서
흙과 먼지를 뒤집어써 땀내와 함께 절은 점퍼 주머니에 손을 꽂고 비틀
거리며 걷던 정태는 아내가 과일 가게 앞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 아내
는 빨갛게 살오른 딸기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어둠속에서 남편을 발견
하고는 달려와 팔짱을 끼었다.
"왜 이렇게 많이 마셨어? 가누지도 못하면서...."
"내가 술 마신게 불만이야? 그럼 술 안마시고 돈 많이 벌어다 주는 놈하
고살면 될 거 아냐!"
"조용히 좀 해. 동네 사람 다 들어."
"들으라지, 들으라고 해! 너도 정신차려. 나 같은 놈하고 평생 살아봐
야..."
"자, 얼른 들어가기나 해."
"어, 대답을 안하는 건 그렇다는 거지? 그래 다 필요없어."
정태는 잠자리에 들면서도 계속 마음에 없는 소리를 했다. 두사람이 서
울 변두리 월세방으로 옮겨온 건 두 달 전이었다. 내의 공장에서 함께 일
을하다 만난 두 사람은 피차 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객지에 나와 어렵
고 외로운 처지라는 공통점 때문에 가까워졌고, 일년 전에 결혼을 했다.
많이 배우지 못했고 특별한 기술도 없었지만 알뜰한 미영과 성실한 정태
는 참 잘어울리는한쌍이었다.
그런데 그들이 일하던 내의공장이 더운 날씨 탓에 수요가 사라지면서 급
기야 문을 닫게 되었다.
"당장 먹고 살아야 하는데... 일단 방 줄여서 나가보자. 살 길이 있겠지."
"여보, 너무 걱정하지 말자. 우린 아직 젊은데 뭐."
"우리 애는 고생시키면 안 되는데..."
아직 2개월 밖에 안된 미영의 배를 쓰다듬는 정태의 마음은 납덩이처럼
무거웠다.
이사를 하고도 한 달은 일이 없어 방에만 있었다. 벽을 보고 돌아누워
하루종일 뒹구는 정태를 보는 미영의 마음도 무겁기는 마찬가지였다. 그
러다 얼마전, 공사 일이 생겨 한 달째 일을 하고 있던 중이었다.
미영도 가만히 앉아 있을 수는 없어 여기저기 일을 알아보다 봉제인형
마무리하는 일을 맡게 되었다. 하루종일 눈이 시리도록 붙들고 있어도
만 원도 채 안되는 수입이었지만 미영은 감사했다.
그런데 정태는 사정이 좀 달랐다. 사실 정태는 어제 어둑한 새벽녘에 공
사장에 갔다가, 막막한 이야기를 들었다.
"어이, 이제 일은 일주일이면 끝날 거 같아.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알아?"
하루하루 언제 그만둘지 몰라 조마조마했는데 그 일마저 이제 끝이 보
이니 답답한 마음을 술로 달래지 않으면 제정신으로 집으로 들어가기가
힘들었다. 남편을 눕혀놓고 돌아앉아 토끼 인형에 눈을 붙이는 미영에
게 정태는 아직도 풀리지 않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제 이 일도 끝이야. 날 뭘 믿고 사니? 나 같은 놈은 뭘 믿고..."
"그러지마, 여보. 우리 애기가 들어. 당신은 진짜 행복이 뭔지 알아요?
어느 소설 중에 가난한 부부가 서로 선물을 하고 싶은데 돈이 없어서
남편은 시계를 팔아 아내의 머리핀을 사고, 아내는 머리를 잘라 남편의
시계줄을 샀다는 얘기..
난 그 얘기 생각할 때마다 눈물이 나. 가난한 건 좀 불편한 거지, 불행
한게 아니야. 왜 그걸 몰라."
미영은 철없이 방황하는 정태가 야속하고 가엾다는 생각에 왈칵 눈물이
고였다.슬며시 고개를 돌린 정태는 아내의 뒷모습이 그렇게 애처로울 수
가 없었다. 두사람의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느덧 창문으로 새벽이 밝
아오고 있었다.
그날 이후 며칠 동안 정태는 술을 마시지 않았다. 정태는 벽돌을 나르
면서도 며칠 전 아내가 훌쩍이며 했던 이야기가 자꾸 떠올랐다. 해가 떨
어지자 공사장의 일꾼들도 마무리 준비를 했다. 수건으로 땀을 닦고 먼
지를 턴 정태는 서둘러 시장으로 갔다. 정태는 유아용품 가게에 들러 아
기 목욕통과 아기 신발을 샀다. 그리고좌판 할머니에게로 가 딸기 한 근
을 샀다.
"어머 예뻐라.. 어디서 이렇게 예쁜 신발 사왔어?" 아기 목욕통까지..."
"정말 예뻐?"
"응...^^"
어색한 얼굴로 빙긋이 웃고 있는 정태의 손을 잡으며 미영은 행복했다.
"이건 당신 주려고 사왔어. 당신 이거 먹고 싶었지?"
"어머. 딸기잖아.. 내가 아니라 이 녀석이.."
불룩해진 배와 딸기를 번갈아 보는 두 사람은 배시시 웃음이 나왔다.
까만 봉투안에 들어있는 딸기 한 근으로 아내를 향한 사랑과 고마움을
다 전할 순 없지만 그 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행복해하는 미영과 정
태의 등뒤로 저녁 노을이 딸기보다 붉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하지만 미영은 몰랐다.
아기 목욕통, 신발, 그리고 딸기 한 근을 사기 위해 정태가 몇 번이나
점심을 걸러야 했는지를.., 그리고 집에서 공사장까지 한 시간이 넘는
거리를 매일마다 힘겹게 걸으며 차비를 아껴야 했던 것을....

이철환 <연탄길 2>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