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부르스/안정애

2007. 5. 18. 오후 5: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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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부르스

최치수 작사 / 김부해 작곡 / 가수 안정애



잘 있거라 나는 간다 이별의 말도 없이
떠나가는 새벽 열차 대전발 영시 오십분
세상은 잠이 들어 고요한 이 밤
나만이 소리치며 울 줄이야
아- 붙잡아도 뿌리치는
목포행 완행열차

기적소리 슬피 우는 눈물의 플랫트홈
무정하게 떠나가는 대전발 영시 오십분
영원히 변치 말자 맹서했건만
눈물로 헤어지는 쓰라린 심정
아- 부슬비에 젖어오는
목포행 완행열차

1959년 어느날 밤 12시40분경. 산책 나온 듯한 한 사내의 시선이 대전역내
플랫폼 가스등 아래 머문다.
청춘남녀가 두손을 꼭잡고 눈물 글썽한 시선으로 이별을 아쉬워하고 있다.
북쪽에선 남자를 떠나보낼 목포행 0시50분 증기기관차가 플랫폼으로 들어오고…

사내는 곧바로 여관으로 되돌아가 시를 쓴다. 대전부루스 가사였다.

사내는 당시 신세기레코드사 사업부 직원이었던 최치수씨로
지방출장을 위해 대전역 인근에서 유숙하고 있었다.
최씨의 가사를 받은 작곡가 김부해씨는 블루스로 리듬을 정한 뒤
3시간여의 작업 끝에 대전부루스를 완성했다.
가수는 블루스를 잘 부르는 안정애로 정해 녹음에 착수했다.

출반 3일만에 서울 지방 도매상으로부터 주문이 쇄도했다.
대전블루스는 야간작업까지 강행, 창사이래 가장 많은 판매량을 기록했고
작사. 작곡가, 가수에게 특별보너스와 월급인상 혜택이 돌아갔다.

십수년이 흐른 뒤 이노래는 조용필의 리바이벌로 세상에 다시 고개를 들었다.

모임이 있을 때 술이 몇순배 돌아가면 누군가 좌중을 헤치고 비척비척

일어나 소주병이나 막걸리병을 입에 대고 목청껏 부르는 노래가 대전부루스다.

피서철이면 대전역 광장에 몰려드는 젊은이들이
한잔의 술과 함께 야간열차를 기다리며 즐겨부르기도 한다.
술이 뒤따라야만 제목청이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노래는 우리의 전통적 정서를 잘담고 있다.


아리랑 관동별곡 진달래 처럼 만남과 이별, 귀향과 가출, 생성과 소멸의 상반된

이미지를 내포한 역(驛)을 내세워 60년대 어려웠던 소시민의 애환을 달랬다.
기다렸던 혹은 오지 말아야 할 막차가 지친 몸을 이끌고 들어오는

역의 실루엣은 작가들의 단골 소재다.

 

대전부르스 (작사: 최치수, 작곡: 김부해, 노래: 안정애)
1959년 2월 제33열차로 탄생한 이 기차는 밤 8시 45분에 서울을 출발,
대전에 0시40분 도착, 다시 목포를 향해 0시50분에 출발했다.
지금은 서대전역을 통해 호남선이 다니지만 당시에는 대전역을 거쳐갔다.


이 열차를 이용한 사람들은 대전역 인근 시장에서 광주리 물건을 팔던
농사꾼이거나 술에 얼큰히 취해 막차를 기다리던 지방사람들이었다.
방학철에는 캠핑이나 귀향하는 학생들로 새벽열차가 북적대기도 했다.


대전발 0시50분 열차는 지금은 없다. 1년만인 1960년 2월 대전발 03시05분발차로
시간이 변경되면서 짧은 수명을 다했다.
레코드사 사장에까지 올랐던 최치수씨와 김부해씨는 이미 운명을 달리했다.
대전역 부근 허름한 선술집에선 지금도
쉰 목소리의 대전부르스가 흘러 나온다

댓글 1

  • 2007년 5월 22일 오후 10:53

    이 노래를 나도 엄청나게 부르면서 돌아다닐때가 있었는데 이제는 이런 역사가 있었다는 것은 확실히 알지를 못했는데 고맙게도 이렇게 알려 주시다니 고맙고 고마워라!! 야훼께 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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