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론성지는 한국 천주교 전파의 진원지로서, 천주교사의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성지이다.
배론이란 지명은 골짜기가 배 밑바닥 같다 하여 한자 새김으로 주론(舟論) 또는 음대로 배론(排論)이라고도 한다.
1801년 신유박해때 많은 천주교인이 배론 산골로 숨어들어 살았는데 그들은 옹기 장사로 생계를 유지하였고
1801년 신유박해때 많은 천주교인이 배론 산골로 숨어들어 살았는데 그들은 옹기 장사로 생계를 유지하였고
황사영이 당시의 박해상황과 교회의 재건방안을 호소하는 백서를 중국 교주에게 보고하기 위해 토굴속에 숨어
집필한 곳이기도 하다.
1855년부터 1866년까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교육기관인 성요셉 신학교가 소재했던 지역이고,
1855년부터 1866년까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교육기관인 성요셉 신학교가 소재했던 지역이고,
우리나라 최초의 유학생이며 김대건 신부에 이어 두 번째 신부가 된 최양업의 분묘가 소재한 지역이다.
일요일에는 전국에서 천주교인들의 성지순례가 끊이지 않고 있다.
또한 배론성지는 충북에서 처음 조성된 자연휴양림으로 60-70년생 소나무 수림과 높고 낮은 봉우리,
일요일에는 전국에서 천주교인들의 성지순례가 끊이지 않고 있다.
또한 배론성지는 충북에서 처음 조성된 자연휴양림으로 60-70년생 소나무 수림과 높고 낮은 봉우리,
기암절벽의 경은사 등이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으며, 충주와 제천을 연결하던 박달재 정상에는
슬픈 전설이 전해지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