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7일 복음말씀

2006. 7. 17. 오전 7:2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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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7일 복음말씀

저녁노을님이 2006-07-16 16:46:53에 올려주신 글

2006년 7월 17일 연중 제15주간 월요일

제1독서
이사야 1,10-17
10 소돔의 지도자들아, 주님의 말씀을 들어라. 고모라의 백성들아, 우리 하느님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여라. 11 무엇하러 나에게 이 많은 제물을 바치느냐? ─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나는 이제 숫양의 번제물과 살진 짐승의 굳기름에는 물렸다. 황소와 어린 양과 숫염소의 피도 나는 싫다. 12 너희가 나의 얼굴을 보러 올 때 내 뜰을 짓밟으라고 누가 너희에게 시키더냐?
13 더 이상 헛된 제물을 가져오지 마라. 분향 연기도 나에게는 역겹다. 초하룻날과 안식일과 축제 소집, 불의에 찬 축제 모임을 나는 견딜 수가 없다. 14 나의 영은 너희의 초하룻날 행사들과 너희의 축제들을 싫어한다. 그것들은 나에게 짐이 되어 짊어지기에 나는 지쳤다.
15 너희가 팔을 벌려 기도할지라도 나는 너희 앞에서 내 눈을 가려 버리리라. 너희가 기도를 아무리 많이 한다 할지라도 나는 들어 주지 않으리라.
너희의 손은 피로 가득하다. 16 너희 자신을 씻어 깨끗이 하여라. 내 눈앞에서 너희의 악한 행실들을 치워 버려라. 악행을 멈추고 17 선행을 배워라. 공정을 추구하고 억압받는 이를 보살펴라. 고아의 권리를 되찾아 주고 과부를 두둔해 주어라.


복음 마태오 10,34─11,1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34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지 마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35 나는 아들이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갈라서게 하려고 왔다. 36 집안 식구가 바로 원수가 된다.
37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38 또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39 제 목숨을 얻으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고, 나 때문에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40 너희를 받아들이는 이는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이고, 나를 받아들이는 이는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41 예언자를 예언자라서 받아들이는 이는 예언자가 받는 상을 받을 것이고, 의인을 의인이라서 받아들이는 이는 의인이 받는 상을 받을 것이다.
42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그가 제자라서 시원한 물 한 잔이라도 마시게 하는 이는 자기가 받을 상을 결코 잃지 않을 것이다.”
11,1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에게 다 지시하시고 나서, 유다인들의 여러 고을에서 가르치시고 복음을 선포하시려고 그곳에서 떠나가셨다.




산간지방을 다스리고 있던 어떤 임금이 있었습니다. 그는 산간지방에만 살았기 때문에, 바다에 대해서는 상당히 낯설었지요. 어느 날, 이 임금은 바다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바다에서 아주 멋진 새를 하나 발견했습니다. 바다 위를 유유히 날고 있는 그 모습은 너무나 우아해 보였고 심지어 고귀해 보이기도 했습니다. 사실 그 새는 흔한 바다갈매기였지만 산간지방에서만 살았던 그에게는 처음 보는 새였던 것이지요. 이 임금은 욕심이 생겼습니다.

“저 새는 진귀한 새가 분명하다. 저 새를 우리의 조상신으로 모셔야겠다.”

그는 그 새를 잡아서 자기 조상의 사당으로 안내했습니다. 그리고 소와 양, 돼지를 잡아서 성대한 잔치를 벌였지요. 잔치에는 그 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악사들도 초대되어 축하 음악을 연주했습니다. 하지만 그 새는 음식에 전혀 입을 대지 않는 것입니다. 오히려 슬프고 씁쓸한 표정만 짓고 있었습니다. 왜 그럴까요? 바다에 살던 새가 육지에 사는 인간의 음식과 음악에 관심을 가질 리가 만무하겠지요. 하지만 임금은 새의 그런 모습을 보고 제멋대로 생각할 뿐이었습니다.

‘역시 진귀한 새의 근엄함은 그 깊이를 알 수 없구나.’

이틀이 지나고 사흘……. 그리고 열흘이 지나도록 새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습니다. 그럴수록 임금은 더욱 좋은 음식과 술을 새에게 바쳤지요. 그러나 열하루 째가 되던 날, 새는 결국 굶어죽고 말았습니다. 임금은 한탄하며 말했지요.

“고귀한 새여, 제가 그토록 정성을 들여 모셨건만 왜 저를 거부하셨습니까?”

바로 그때 그 옆을 지나가던 현자가 혀를 차며 말합니다.

“쯧쯧, 왕이 아닌 새로 대접했다면 그 새가 굶어죽었겠소? 그 배고픈 새에게 쇠고기, 양고기, 돼지고기, 그리고 술이 무슨 소용이 있겠소? 더구나 인간들이나 듣는 궁중 음악까지…….”

그렇지요. 만약 그 임금이 그 새를 새 자체로 받아들였다면, 그래서 새가 좋아하는 것들을 주었다면 결코 굶어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조상신이라는 엉뚱한 모습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새를 죽이는 것은 물론 자신 역시 커다란 실망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이 이야기를 보면서 지금 우리가 주님을 대하는 모습도 혹시 이렇지 않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그 큰 사랑을 보여주시고, 그 사랑을 우리들도 실천하라고 십자가를 직접 지셨습니다. 즉, 우리 역시 십자가를 지고서 주님을 따라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십자가를 지어야 하는데, 단순히 보기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단순히 보기만 하기 때문에 주님께 커다란 실망을 간직했었던 것은 아닐까요?

보기만 하는 십자가가 과연 의미가 있을까요?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을 통해서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사람은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우리들은 나에게 주어지는 그 십자가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요? 혹시 하나의 액세서리 정도로만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요? 십자가는 짊어졌을 때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비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방귀와 귀의 차이점(웃긴 글)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배에 가스가 차더니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서 음악 듣던 이어폰을 빼고 몰로 방귀를 뀌었다. (방귀낄 때 소리 나면 대략 낭패다 싶어서)

한참 뒤에도 배가 살살 아파 다시 이어폰을 빼고 방귀를 뀌었다.

이렇게 몇 번 하다 보니 다른 사람들이 모르는 것 같아 안심이 됐다. 이번에도 이어폰을 빼고 방귀를 뀌려고 하는데 옆자리 짝이 의자를 밀치고 일어나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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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이어폰 빼지마! 귀에서 열라 냄새나!"

  

 

 






♬ Hear my prayer-O for the wings of Dove- Mendelssohn-Anthony 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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