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덕고개(은이 고개, 신덕비 앞)
☞ 신덕송
하느님, 하느님께서는 진리의 근원이시며 그르침이 없으시므로 계시하신 진리를 교회가 가르치는 대로 굳게 믿나이다.
♣1846년 4월 13일 은이 공소에서 마지막 미사를 봉헌하시면서 교우들에게 남기신 말씀
“험난한 때에 우리는 천주님의 인자하심을 믿어 마지막 순간까지 그의 거룩한 이름을 증거할 용맹을 주시기를 간절히 기구합시다. 지금 우리의 주위에는 검은 마귀의 손길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내일의 삶을 모르는 위급한 처지에 처해 있는 우리들입니다. 내 마음과 몸을 온전히 천주님의 안배하심에 맡기고 주 성모님께 기구하기를 잊지 맙시다. 다행이 우리가 살아 있게 된다면 또 다시 반가이 만날 날이 있을 것이오. 그렇지 못하면 천국에서 즐거운 재회를 합시다. 끝으로 내 홀로 남으신 불쌍한 어머님을 여러 교우 분들이 잘 돌보아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1846년 6월 8일 스승과 동료 신부에게 보낸 옥중 서한 중 일부분
미구에 천당에서 영원하신 성부 대전에서 다시 만나 뵙기를 바랍니다. 저를 대신하여 다른 모든 신부님들께도 인사를 드려 주십시오.
지극히 사랑하는 나의 형제 (최양업)토마스, 잘 있게, 천당에서 다시 만나세. 나의 어머니(고) 우르술라를 특별히 돌보아 주도록 부탁하네.
저는 그리스도의 힘을 믿습니다. 그분의 이름 때문에 묶였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형벌을 끝까지 이겨낼 힘을 저에게 주실 것을 기대합니다.
하느님,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우리의 환난을 굽어보소서. 주께서 만일 우리의 죄악을 살피신다면 주여, 누가 감히 당할 수 있으리이까!!!
지극히 공경하올 신부님들 안녕히 계십시오.
무익하고 부당한 종, 그리스도를 위하여 묶인 조선의 교황 파견 선교사 김 안드레아 올림.』
망덕고개(망덕비 앞)
☞ 망덕송
하느님, 하느님께서는 자비의 근원이시며 저버림이 없으시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통하여 주실 구원의 은총과 영원한 생명을 바라나이다.
♣ 망덕(해실이)고개에서 생긴 일
<김대건 신부님의 시신 이장로> 용인천주교회사 참조
『태재고개에서 잠시 쉬고는 능골(陵院里) 앞산에 이르니 또 동이 트기 시작했다. 이곳에서부터는 용인 땅이다. 여기까지만 와도 내 집 근처에 온 듯이 안도의 숨이 쉬어진다. 이곳서 하루를 보낸 그는 다시 해가지자 길을 재촉하였다. 여기서부터는 압고지(前里), 용인읍, 송전으로 간다면 직선 코스라 하루밤이면 갈 수 있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으나 큰길로 가자면 위험에 뒤따를 것을 아는지라 그는 “참바데” 고개를 넘어 새래, 삼막골, 태화산 기슭으로 들어가 퉁점골(金魚里), “다리내”고개를 넘고 “두렁이”고개를 넘어 “은이”를 지나 “별미”(海里) 고개에까지 왔다.
반 년 전만 해도 신부님이 계시던 “은이” 마을이요, 지금 쉬고 있는 고개에서는 신부님이 미사를 드리시던 토담집이 무성한 나무사이로 지붕만 보이고 지금 앉아 쉬고 있는 이 길이 바로 신부님이 지나시던 길이라 신부님의 발자국 소리가 나는 듯했고 신부님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그는 여기서 처음으로 마음 놓고 신부님을 부르며 통곡했다. 이곳에서 하루 해를 보내고는 다시 길을 재촉해서 “별미” 고개 능선을 타고 해실이 고개를 접어드니 이에 김신부님을 뫼시고 여러 번 다녀본 길이라 밤이라해도 그리 서툴지 않았다.
그러나 워낙 나무가 울창하고 험하여 가끔 산짐승들이 나타나는 곳이기도 하며 또한 산 도적들이 나타난다는 곳이기도 했다. 그러나 워낙 힘이 세고 담력(膽力)이 센 원선시오는 한 두 놈의 도적이나 군졸 따위를 만나도 때려뉘고 갈 마음의 준비는 되어 있었다.
해실이(망덕) 고개에 이르렀을 때다 별안간 획하는 소리와 함께 두 눈에 서기(瑞氣)가 비치는 송아지만한 호랑이가 나타났다. 아무리 담력이 센 원선시오였지만 이 때만은 등골이 오싹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이 무서운 짐승을 노려보며 크게 호령을 했다한다.
“네 이놈 아무리 짐승이기로서니 우리의 위대한 김신부님의 시체를 모시고 가는 앞길을 막다니 썩 물러나지 못할까!” 이 한마디의 호령으로 호랑이는 슬그머니 산중턱으로 사라졌다.
원선시오는 다시 한번 성모님과 자기 수호천신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또 걸음을 재촉하였다. 마지막 고개인 애덕(오두재)고개까지 오니 날이 새었다. 이곳에서는 바로 눈앞에 “검은정이”동리와 미리내도 보인다. 그러나 만일을 위해서 여기서 또 하루를 지내기로 했다. 그리하여 시체를 감추어 둘 곳을 물색하니 마침내 화전콩밭이 있어 콩밭 속에 시체를 감추어 놓고 자기는 솔폭(솔포기, 소나무) 밑에 누워있기로 했다.』
애덕고개(애덕비 앞)
☞ 애덕송
하느님, 하느님께서는 사랑의 근원이시며 한없이 좋으시므로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하며 이웃을 제 몸같이 사랑하나이다.
♣ 오두재(애덕)고개에서 생긴 일
<이민식 빈첸시오 옹(翁)을 만나서 들은 오기선 신부의 증언>
『자꾸만 계속되는 5리나 되는 길을 걸으며 나는 이 빈첸시오 할아버지께 꼬치꼬치 여쭈어보았다. 이 할아버지는 제법 구수하게 유모어를 구사하면서…
“남곡리 양지에서 미리내까지 오려면 신덕 ․ 망덕 ․ 애덕의 세 고개가 있지. 박해를 피하던 신자들이 삼덕을 기리며 넘나든 곳이지. 나도 신덕 ․ 망덕 고개는 잘 빠져 넘었는데, 애덕 고개를 넘으려니까 날이 밝지 않겠나. 저 비탈 콩밭 오른쪽 밭고랑에 김신부님의 시체를 숨겨 놓고 솔가지를 쳐서 여러 겹으로 덥고 보니 해가 점점 높아지지 뭐냐.”
해가 높아지자 콩밭에 임자가 일군들을 데리고 올라와 가을걷이를 시작하더라는 것이다.
이 할아버지는 고개를 넘어가 소나무 밑에 배를 쭉 깔고 숨어서 눈만 내놓고 망을 보았다.
그런데 콩을 거두는 일군들이 점점 시체를 숨겨둔 곳 가까이로 다가가는 것이 아닌가. 10년 공부 나무아미타불이라고 할아버지의 가슴이 졸아들었다. 몇 번인가 헤아릴 수 없이 많이 드렸던 묵주신공이지만 더욱 정성껏 드리기 시작했다.
“제 목숨을 대신 드려도 좋으니, 우리 착한 목자 김 신부님 장례나 잘 치르게 해주십시오. 저걸 보세요. 이제 두서너 고랑만 더 베어 들어오면 만사는 허사가 되고 맙니다. 그러니 성모님 기적을 내려 주십시오.”
온갖 생각이 주마등같이 스쳐갔다. 사람들은 콩밭을 계속 베어 들어오고 있었다. 김 신부님의 시체를 감춰 둔 곳에 거의 다가왔을 때, 갑자기 맑은 하늘에 먹구름이 끼고 동서남북에서 장대 같은 소나기가 쏟아지면서 천둥과 벼락이 울었다.
그러자 콩밭 임자가
“여보게들 내려가세. 다음에 날씨 좋을 때 와서 거두세.” 하는 것이 아닌가. 콩밭주인이 일군들을 데리고 사라지자 하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 흰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날이 개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