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월 4일 주님 공현 전 수요일

2012. 1. 4. 오전 5:4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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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월 4일 주님 공현 전 수요일

제1독서 1요한 3,7-10

7 자녀 여러분, 아무에게도 속지 마십시오. 의로운 일을 실천하는 이는 그분께서 의로우신 것처럼 의로운 사람입니다. 8 죄를 저지르는 자는 악마에게 속한 사람입니다. 악마는 처음부터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악마가 한 일을 없애 버리시려고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나타나셨던 것입니다.
9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죄를 저지르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씨가 그 사람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느님에게서 태어났기 때문에 죄를 지을 수가 없습니다. 10 하느님의 자녀와 악마의 자녀는 이렇게 뚜렷이 드러납니다. 의로운 일을 실천하지 않는 자는 모두 하느님께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도 그렇습니다.


복음 요한 1,35-42

그때에 35 요한이 자기 제자 두 사람과 함께 서 있다가, 36 예수님께서 지나가시는 것을 눈여겨보며 말하였다.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37 그 두 제자는 요한이 말하는 것을 듣고 예수님을 따라갔다.
38 예수님께서 돌아서시어 그들이 따라오는 것을 보시고, “무엇을 찾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들이 “라삐, 어디에 묵고 계십니까?” 하고 말하였다. ‘라삐’는 번역하면 ‘스승님’이라는 말이다.
3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와서 보아라.” 하시니, 그들이 함께 가 예수님께서 묵으시는 곳을 보고 그날 그분과 함께 묵었다. 때는 오후 네 시쯤이었다.
40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님을 따라간 두 사람 가운데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동생 안드레아였다. 41 그는 먼저 자기 형 시몬을 만나, “우리는 메시아를 만났소.” 하고 말하였다. ‘메시아’는 번역하면 ‘그리스도’이다.
42 그가 시몬을 예수님께 데려가자, 예수님께서 시몬을 눈여겨보며 이르셨다. “너는 요한의 아들 시몬이구나. 앞으로 너는 케파라고 불릴 것이다.” ‘케파’는 ‘베드로’라고 번역되는 말이다.



거리의 나무를 바라봅니다. 나뭇잎이 모두 사라진 앙상한 나뭇가지만을 우리들에게 보여주는 요즘의 겨울나무. 그런데 지금 이렇게 앙상한 나뭇가지만 있다고 해서 나무가 성장을 완전히 멈춘 것일까요? 성장을 멈춘 것 같지만 아주 조금씩 성장하고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제가 신학생 때 신학교에서 보았던 작은 묘목이 어느 날 신부되어 가보니 커다란 나무가 되어 있더군요. 그 당시에는 이 자그마한 나무가 언제 클까 싶었지요. 그러나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아주 조금씩 성장해서 이렇게 큰 나무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어느 순간 훌쩍 커버린 이 나무를 바라보며 감탄을 합니다. 그리고 동시에 ‘그런데 나는 그 동안 무엇을 했는가?’라는 반성을 하게 되지요. 하지만 우리들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성장하고 있는 나무의 모습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즉, 우리 역시 전혀 성장하지 않는 것 같지만, 우리 역시 분명히 성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중고등학교 때 저는 체중이 잘 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먹어도 항상 똑같은 체중에, ‘나는 원래 먹어도 안찌는 체질이야.’라고 말하곤 했었지요. 그런데 어느 순간 체중이 불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사람들로부터 ‘살 좀 빼라.’는 소리를 듣는 상태까지 왔습니다. 언제 이렇게 체중이 늘었을까요?

나도 모르게 커버린 키와 늘어난 체중을 보면서, 주님께서는 우리들 모르게 그렇게 신경을 많이 쓰고 계시는구나 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하긴 어떤 것을 배우다가 한 달 혹은 1, 2년 동안 쉬게 되었을 때를 떠올려 보세요. 그래도 다시 배우기 시작하면 얼마 되지 않아 자신의 능력이 쉬기 전보다 많이 향상되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쉬고 있는 동안에도 새로운 것에 눈을 떠 능력이 향상된 것이지요.

계속해서 우리를 성장시켜주시는 주님이십니다. 이 주님을 보고 이 주님을 믿고 따를 때, 우리들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감사하면서 행복의 길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문제는 주님을 보려하지 않습니다. 나를 성장시켜주시는 분을 보지 않으니, 항상 불평불만만 가득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요한의 두 제자에게 “와서 보아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냥 따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 스스로 주님을 직접 보고 깨닫는 것이 먼저였기에 예수님께서는 당신과 함께 묵으면서 보라고 하셨던 것이지요.

이렇게 주님께 다가와 주님과 함께 하면서 주님을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이 모든 과정은 모두 버리고 왜 자신에게 주어진 결과만을 내세워 불평불만을 던지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을까요?

이제는 “와서 보아라.”라는 예수님 말씀을 기억하며, 주님 앞으로 나아가 주님을 보아야 합니다. 그때 우리를 쉼 없이 성장시켜주시는 주님의 사랑에 감탄하게 될 것입니다.


생각만 간절히 할 것이 아니라 희망을 갖고 삶을 시작하라.(에밀리 반스)



걱정에 대해

지난 성탄에 선물받은 것. 저를 기억해주심에 감사할 뿐입니다.

서두를 때면, 항상 ‘걱정’이라는 마음이 생겨나게 됩니다. 언젠가 여행을 할 때였습니다. 낯선 곳이었고, 시간을 보니 버스 출발 시간이 그렇게 많이 남아 있지 않는 것입니다. 서둘러 정류장을 향하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혹시 버스를 타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혹시 내가 버스 시간을 잘못 알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렇게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걱정합니다.

그러나 조금만 여유를 가지고 생각해 보면, 버스를 놓쳤다고 하더라도 언젠가는 다음 버스가 올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걱정하는 것은 내 마음 안에 조바심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걱정 속에 사는 사람은 항상 급하게 서두를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걱정이 많아진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내 마음이 편해지는 것도 아닙니다. 걱정은 계속해서 꼬리를 물어 어떠한 상황에서도 나를 불안하게 만들 것이 분명합니다.

지금 혹시 걱정이 있으십니까? 그리고 이 걱정을 가지고 또 다른 걱정을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조금만 여유를 가지고 주님께 이 걱정을 내려놓아 보십시오. 주님께서는 우리가 안고 있는 걱정 대신 희망을 우리에게 건네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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