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순교 ◆ 殉敎 martyrium
신앙을 증거하기 위하여 죽음을 당하는 일. 신약성서 중에 사도행전만이 순교의 장면을 묘사하고(사도 7:54-8:1) 순교자의 이름을 전해 주지만 스테파노와 야고보의 순교를 단순히 ‘없애버림’(anairedis, 사도 8:1, 12:2) 즉 살해로 표현했을 뿐 순교를 뜻하는 단어는 사용하지 않았다. 폴리카르포 주교(150년경)의 설명에서 신앙을 위해 죽음을 당하는 것을 의미하는 ‘순교’가 신약성서에는 말로써 증언하는 것을 가리켰을 뿐이다.
순교는 엄격히 말해서 세 가지 요소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즉 실제로 죽음을 당해야 하고, 그 죽음이 그리스도교의 신앙과 진리를 증오하는 자에 의하여 초래되어야 하며, 그 죽음을 그리스도교의 신앙과 진리를 옹호하기 위하여 자발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내용이 그것이다. 일찍이 오리제네스는 신자들이 일상생활 가운데 자신들의 십자가를 기꺼이 지고 구세주의 뒤를 따르는 행위를 양심의 순교라 불렀고, 아일랜드의 수도원에서는 하느님을 사랑하기 위하여 자신이 애호하는 것을 기꺼이 포기하는 행위를 백색(白色)순교, 고통을 극복하고 속죄하는 행위를 녹색순교 등으로 부르기도 하였으나 이는 엄밀한 의미의 순교는 아니다. 순교는 박해를 계기로 발생하는 것이 보통이나 박해없이도 가능하다. 그 예로 그리스도교의 정덕(貞德)을 지키기 위하여 죽음을 당한 경우를 들 수 있다.
순교는 죽음에 직면하여 신앙의 의미와 진리를 효과적으로 증거하는 행위이다. 가장 소중한 생명을 바침으로써 육신을 죽이는 자를 초월하는 주님의 존재를 드러내는 행위이다. 그러므로 순교의 목표는 최고의 가치를 실현하는데 있으며 그 가치는 최고의 존재자를 긍정하는 일이다. 또 한 인간이 다른 인격을 긍정하는 것은 사랑이므로 순교는 사랑의 행위이다. 이는 신앙의 조문을 증거하는 행위에 그치지 않고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과의 인격적인 만남 속에서 그 분을 증거하는 행위이다. 순교하려는 자는 비록 하느님에 대한 사랑을 증거하고자 하는 명시적인 의도를 가지지 않고 오직 ‘이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살고 싶은’(필립 1:23) 마음뿐일지라도 순교의 결과는 증거가 되는 것이다. 순교는 이를 대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소중한 목숨을 구태여 방어하려 들지 않고 기꺼이 빼앗기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순교를 높이 평가하는 그리스도교적 이유는 그것이 다른 삶의 실재를 증거하기 때문일 뿐 아니라, 순교를 통한 죽음이 성부의 메시지를 선포하기 위하여 죽으신 그리스도의 생명에 순교자의 생명을 일치시킨다는 진리 때문이다. 순교자와 그리스도의 유사점은 두 가지로 나타난다. 첫째 순교자는 그리스도처럼 생명을 빼앗는 폭력에 저항하지 않고 자신을 성부께 봉헌한다는 확신을 지닌 체 죽음을 맞이한다. 둘째 순교자의 죽음은 그리스도의 죽음에 실제로 참여한다. 그래서 교회는 초기시대 이래 순교자를 공경하며 모든 성인의 통공 속에 순교의 의미를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념으로 되새긴다. 이처럼 순교는 그리스도와 함께 성부께 자기를 봉헌하는 행위이며 이로써 초대 교회 때부터 순교를 혈세(血洗)라 하였다. 순교는 최상의 은혜요 사랑의 최고 증명일 뿐 아니라 성세성사의 상징을 실재로 구현하기 때문이다. 즉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묻히며 함께 부활하기 때문이다(로마 6:3-11). 순교의 은혜는 "소수의 사람들 앞에서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교회가 언제나 당하고 있는 박해 중에서도 십자기의 길로 그리스도를 따라갈 준비는 갖추고 있어야 하겠다"(교회헌장 42).
◆ 순교자 ◆ 殉敎者 martyr
신앙의 진리를 증거하기 위하여 생명을 바친 사람. '증인'을 뜻하는 그리스어(martus)에서 유래한 말이다. '증인'은 사도행전에서 사도들만이 부활의 증인으로서 복음의 내용을 보증한다는 특수한 의미로 사용되며(사도 10:41) 스테파노(사도 22:20)와 바울로(사도 22:15)에게 적용되었고 묵시록에서는 예수께서 증인이라 불린다(묵시 1:5, 3:14). 그밖에 묵시록(6:9, 12:17, 19:10)에는 예언자의 신분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증언을 내는데 위험한 시대에 증언을 한 증인들이(묵시 2:13, 11:3, 17:6) 순교자가 된 것이다.
2세기 중엽부터 교회는 재판소에 끌려가서 말씀의 증언을 하고도 죽지 못한 자들을 증거자(confessores)라 부르고 피로써 증언을 낸 자들을 증인(martyres)이라 불러 양자를 구별하였는데 이는 죽음 자체가 지니는 특수한 의미 때문이었다고 생각된다. 순교자를 처음으로 증인이라 부른 것은 폴리카르포주교의 순교전(165년경)에서였다. 여기서 순교자란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이 곧 하느님의 아들의 그것임을 피흘려 증거한 자라는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한편 110년경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는 스미르나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순교자란 피흘려 죽음을 당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하신의 실재성을 입증한다고 하여 예수의 죽음을 부정하는 가현주의자(假顯主義者)들의 주장을 논박하였다. 2세기 말엽 이레네오도 순교자를 "죽음을 당하신 그리스도의 증인"(반 이단론)이라 불렀다. 이와같이 교회는 가현주의를 배격하는 입장을 분명히 하는 과정에서 교회내 순교자들의 특수한 지위를 확인하게 되었다.
순교자가 죽음을 당하면서까지 신앙을 증거할 수 있는 초인적 용기는 순교자 안에 현존하는 하느님 때문에 가능하다(디오그네토에게 보낸 편지), 순교는 모든 죄를 없애주는 행위이므로 제2의 세례이며(테르툴리아노) 순교자 안에 그리스도께서 현존하시므로 순교자는 죽은 후 바로 천국의 영광을 누린다(알렉산드리아의 글레멘스). 신앙 때문에 죽을 수 있음을 몸소 보여주는 순교자는 악의 세력을 쳐 이긴 승리를 증거하고 다시는 고통이 없는 부활을 선포한다(오리제네스). 그러므로 순교자는 완덕(完德)에 이른 자이며 이들로 인하여 역사상 그리스도 교인의 숫자가 놀랍게 증가하였다. 그래서 "순교자는 그리스도 교인의 씨앗이다"라고 테르툴리아노가 일찍이 설파하였다.
(출처: 가톨릭 대사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