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0년 역사 伊 성 글라라수도원 첫 외국인 원장 박효순 수녀
이충해·2005. 3. 18. 오후 10:43:00
700년 역사 伊 성 글라라수도원 첫 외국인 원장 박효순 수녀
"앞치마 두른 마음으로 늘 봉사할 것"
조선일보, 김한수 기자
한국인 수녀가 700년 역사의 이탈리아 성(聖) 글라라수도원의 첫 외국인 수도원장으로 선출됐다. 94년 경기도 양평에 성 글라라수도원 분원(分院)을 세우고 운영해 온 박효순 마리아 끼아라 수녀다.
25일 이탈리아로 떠날 박 수녀를 위해 17일 낮 양평 성 글라라수도원에서 신도들이 축하·송별식을 가졌다. 그는 지난 1월 3일 수도원 수녀들의 투표 결과 만장일치로 임기 3년의 원장으로 뽑혀 1월 7일 교황청에서 열린 수도자성회에서 승인까지 받은 뒤 일시 귀국해 부임 준비를 해왔다. 보수적인 이탈리아 수도원에서 외국인 원장을 뽑은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어서 국내 교계에서도 경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수도원장 선출 축하와 송별을 겸한 모임에서 박효순수녀가
신도로부터 꽃다발을 받고 기뻐하고 있다.
박수녀 앞의 흰 문턱은 일반인과 수녀들의 공간을 나누는 봉쇄선이다.
박 수녀는 지난 87년 이탈리아 남부 노체라에 있는 성 글라라수도원에서 수녀가 됐다. 양평의 성 글라라수도원은 지난해 11월 정식 독립자치수도원으로 승원(昇院)됐다. 봉쇄 수녀원인 이곳에서는 현재 13명의 수녀가 ‘기도, 노동, 형제애로 온 세상에 복음의 빛을’이라는 목표 아래 새벽 4시 50분에 기상해 밤 10시 취침할 때까지 기도와 묵상, 노동하고 있다.
성 글라라수도원은 이탈리아 아시시 출신의 성녀 글라라(1194~1253)가 창설했다. 일단 입회한 수녀들은 평생 대외활동을 삼가고 청빈한 생활과 노동, 기도에만 전념한다. 수도원 안에는 봉쇄선이 있어 수도자(수녀)와 외부인의 구역을 나눈다. 미사 때에도 신도들 자리에선 봉쇄선 안의 수녀들 모습이 보이질 않는다. 이 선은 주교라 해도 넘어갈 수 없다고 한다.
박 수녀는 이날 송별식에서, “한 점이 한 획이 되고, 찰나가 영원으로 이어지듯 10년 세월을 통해 오늘의 양평 글라라수도원이 있게 된 것을 주님께 깊이 감사드린다”고 인사말을 하며 감격에 복받친 듯 3~4차례나 울먹였다. 인터뷰를 극구 사양하다 나무 창살이 쳐진 봉쇄선을 사이에 두고 잠시 기자와 만난 박 수녀는 나이나, 수도원장 피선 소감을 묻는 질문에도 “제 개인적인 이야기는 곤란하다”며 대신 이런 이야기를 들려줬다. “수도원장 피선 통보를 받았을 때, 저는 앞치마 두르고 일하고 있었어요. 얼떨떨해하고 있는 제게 곁에 계시던 수녀님이 ‘지금 앞치마 두르고 있는 것처럼 봉사하면 된다’고 축하해 주셨어요. 그런 마음 뿐입니다.”
<2005-02-19 조선일보, 김한수 기자, 사람들 A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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